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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월호 산문

시, 간 여행(안학수 시인)

작성자이옥근|작성시간24.10.16|조회수31 목록 댓글 1

詩,간여행

 

동경의 동심 세계 

안학수

 

 

등단하고 30년이 지났습니다. 문단에 기라성을 이루신 선배님들 앞에서 오래되었다는 뜻의 30년이 아닙니다. 그만큼 지났음에도 습작하던 때처럼 아직도 동시 앞에 자신감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니, 제가 동심을 사랑하면서도 그 동심의 영역에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저는 문학 하기 전부터 어린이를 좋아하고 동심을 사랑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하반신 마비로 만 4년을 휴학하고 앓았습니다. 겨우 회복하여 2학년으로 편입했을 땐 함께 공부하는 동창들이 평균 4살씩이나 어렸습니다. 그 차이는 서로 뜻이 맞는 친한 친구를 얻지 못하게 했습니다. 중학교 졸업할 때까지 고독하게 보내다가 진학을 포기하고 사회에 나섰습니다. 나이는 이미 20세 성인이었지만 정신은 미성년이었던 제게 생존경쟁의 사회는 매우 냉혹했습니다.

새로운 아픈 경험과 실망과 상처를 얻으며 더더욱 고독해져만 갔습니다. 그런 제게 새롭게 마음 둘만한 곳으로 열린 데가 당시의 교회였습니다. 청년회에서 동병상련의 친구도 만났고, 교회학교를 맡으며 어린이들과 가까워질 수 있었습니다.

어린이들을 맡아보니 동심의 세계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제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동심의 세계에 들어가 함께하고 싶었습니다. 그땐 제가 동시를 쓰게 될 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제가 동시를 쓰게 된 바탕으로 그 동심을 사랑하는 마음이 첫째 요인이 되었습니다. 친구가 없어서 책을 친구 삼았던 독서량이 어린이에게 동화구연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요인 중 하나입니다.

또 교회학교의 아동용 찬송 가사들이 학교에서 배운 동요 못지않게 제가 동시를 쓰는데 좋은 표본이 되었습니다.

그때 불렀던 어린이 찬송 중에 지금도 훌륭한 동시로 여겨지는 노랫말 한 편이 대략 생각납니다.

 

제목 : 꽃처럼 물처럼(확실치 않음)

꽃가지에 내리는 가는 빗소리 / 가만히 귀 기울여 들어보아라 / 너희들도 이 꽃처럼 맘이 고와라 / 너희들도 이 꽃처럼 맘이 고와라 //

시냇가에 종종종 작은 새소리 / 가만히 귀 기울여 들어보아라 / 너희들도 이 물처럼 맘이 맑아라 / 너희들도 이 물처럼 맘이 맑아라 //

 

처음엔 저자가 누군지 몰랐는데 나중에 동요 작가 이태선(동요 「펄펄 눈이 옵니다」 저자) 선생님의 노랫말이란 걸 알았습니다. 그 당시엔 문학을 모르던 저였지만 이 노랫말을 듣고 마음으로 듣는 소리도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 깨달음도 제가 동시를 쓰게 된 요인(要因)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제가 동심을 사랑하는 까닭은 동시를 쓰기 때문이 아닙니다. 동심을 사랑하기 때문에 동시를 쓰게 된 것입니다. 동심은 어떠한 대상이든 열린 마음의 세계입니다. 자라면서 때가 묻을수록 하나씩 닫혀가는 마음이 동심입니다. 해맑은 계곡물이 이룬 선녀탕도 제가 생각하는 동심의 세계를 비유하기엔 부족할 것입니다. 저와 같은 너절한 자가 그런 동심을 지니고 싶은 건 언감생심일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껏 동심을 동경하면서도 그 주위만 맴돌 뿐, 감히 발을 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동심의 세계 앞에서 제 마음을 표현하자면, 당장 뛰쳐나가고 싶을 만큼 눈 덮인 새하얀 세상을 좋아하면서도 나서지 못하는 심정과 같습니다. 어쩌면 그 동심의 세계가 저를 거부하는 것인가 싶습니다. 제겐 자녀가 없는 것이 그렇고, 어린이 주위를 얼씬도 할 수 없는 처지가 그렇습니다. 가까운 초등학교 운동장에 나가보고 싶어도 요즘 아이들은 몹시 경계하고 다가오지 않습니다. 또 어린이 지킴이를 하는 분들이 나서서 수상한 자로 취급하기 때문입니다.

어린이를 위해 생각할 때, 생김새부터 기형인 저를 경계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다만 저 스스로 안타까움과 함께, 제 글이 동시답지 않게 무거워지는 현상을 벗어나고 싶어 안달하는 것입니다. 그냥 이대로 사는 날까지 동심을 짝사랑이라도 할 수 있는 것만으로 위안 삼아야 할 것 같습니다.

 

 

 

 

 

 

 

 

 

 

 

 

안학수 add31202@hanmail.net

대전일보 신춘문예 당선. 제1회 한국작가상 동시부문 수상. 권정생창작기금 수혜. 동시집 『박하사탕 한 봉지』,『낙지네 개흙잔치』,『부슬비 내리던 장날』,『아주 특별한 손님』과 장편소설 『하늘까지 75센티미터』,『그림자를 벗는 꽃』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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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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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이옥근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10.17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안학수 시인님, 그곳에서는 자유로운 몸으로 아이들과 평화와 사랑을 누리며 편안하게 지내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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