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이 계절의 동시>
새들은 어디로 갈까
김영주
나뭇잎 다 떨어지면
새들은 어디로 갈까
나뭇잎보다 많은 새소리는
어디로 갈까
《동시빵가게》 2021년 26호
아파트 후문 버스정류장 옆에는 넓은 공터가 있습니다. 그 공터는 아주 오래 전 가을이면 누런 벼가 출렁이던
논이었지만 지금은 풀이 무성한 공터일 뿐입니다.
"개발"이라는 푯말이 꽂혀 있었습니다.
십여 년이 넘도록 버려진 공터, 그 버려진 풍경은 버려졌기 때문에 집 없는 고양이들의 놀이터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가끔 아주 가끔은 건너편 산에서 왕복 6 차선 차도를 넘어 온 고라니가 공터에서 긴 목을 빼고
두리번거리는 것을 아파트 창을 통해 내려다 본 적도 있습니다.
공터 한 복판에는 아담한 나무 한 그루가 서 있습니다. 누가 심었는지, 저절로 저렇게 자랐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언제부터 어디서 씨앗이 날아와 나무가 된 것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는지.
가만히 귀 기울여보면 그 나무에서는 유난히 새소리가 많이 들려왔습니다. 때때로 나무에 가까이 다가가보고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새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될까 봐 갈 수 없었습니다.
먼발치에서 보는 나무에는 한 마리의 새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감쪽같이 숨어 새소리만 찍찌굴 지줄
왁자하게 들려왔습니다. 그러다가 한 번씩 나무가 쿵! 하고 발을 구르면 나뭇가지는 커다란 담요를 펄럭인
것처럼 출렁이며 허공으로 새를 날려 보냈습니다. 와! 저토록 많은 새들이 푸른 하늘로 날아오르는 광경이라니!
그 때 처음 알았습니다.
나뭇잎 뒤에는 저토록 많은 새들이 숨어 있었다는 것을.
새들은 노래하는 나뭇잎이었다는 것을.
나뭇잎은 모두 새였다는 것을.
찬바람이 불고, 나뭇잎이 하나 둘 떨어지고, 나뭇가지가 앙상해지고 잎이 하나도 남지 않게 되자 마침내
새 소리도 들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나무는 발을 쿵! 구르지도 않았습니다.
그 많던 새들은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요.
그 많던 새소리는 모두 어디로 숨은 것일까요.
지난겨울에는 가끔씩 고라니가 뛰쳐나오던 건너편 산마저 포크레인이 밀고 지나가버렸습니다. 산으로 가로
막혔던 이웃 마을은 지구 저 편까지 보일 정도로 뻥 뚫렸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고라니가 차도를 넘어 공터에서
발견되는 일도 없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부터 공터의 "개발"이라는 푯말은 "쇼핑몰"이라는 현수막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아직 노선이 많지
않은 버스정류장 벤치에 앉아 드문드문 오는 버스를 기다리는 일은 오후에 해가 지는 일처럼 고즈넉한 일이었습니다. 더디 오는 버스를 기다리며 공터의 나무를 쳐다봅니다. 나무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할까요.
다시 봄이 오고 나뭇가지에 물이 올라 연두잎이 초록으로 무성해지면 새들은 찍찌굴 지줄 지저귀어 줄까요.
한 번씩 쿵! 발을 굴러 나뭇잎 같은 새들을 하늘로 날려 보낼까요.
도대체 그 많던 새들은 나뭇잎이 다 떨어지면 어디로 가는 것일까요.
김영주 ozkim1999@hanmail.net
2009년 《유심》으로 시조 등단, 2016년 《푸른동시놀이터》 동시 추천 완료.
중앙시조대상 신인상을 수상, 시조집 『미안하다, 달』, 『오리야 날아라』,
『다정한 무관심』, 현대시조 100인 선집 『뉘엿뉘엿』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