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가 -마경덕
부스스 머리를 풀어헤친
집이 운다
빗물 고인 장독을 들여다보고
앞마당 잡초더미
봉숭아 한 그루 붉게 터졌다
조랑조랑 꽃을 달고
어리둥절 서있다
바람 한 점에
픽, 바지랑대 쓰러지고
놀란 집이 퍼뜩
한 쪽 발을 쳐든다
사타구니 뵈는 집
더는 숨길게 없다고 주머니를 뒤집어 탈탈 턴다
누가 알맹이를 빼먹고 껍질만 남겼을까
요즘 옥수수가 한창입니다.
그런데 옥수수를 보았습니까?
속을 보여주기 싫어(?) 얼마나 옷을 단단히 입었는지 아십니까?
드러내지 않음입니다.
어디 옥수수 뿐입니까?
밤도 그렇고, 도토리도 그렇고. 잣도 그렇고.
반면 그대로 드러내는 것도 많이 있습니다.
다래,오미자,대추 등등.......................
또 어떤 것은 땅속 깊이 있으면서 줄기로, 잎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것도 있습니다.
더덕같은 경우는 잎이나 줄기를 보면 몇년 정도 되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심지어 향기로 자신을 드러내는 것도 있습니다.
물론 좋은 향기를 내는 것도 있지만 고약한 냄새를 내는 것도 있습니다.
그런데 참 유독 인간만이 잘 드러내지 않고 있는 것 같습니다.
대인관계의 핵심,
그것은 바로 나를 활짝 열어 보이는 데 있는 것 같은데.
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 있는가.
그렇다면 깊은 관계는 시작될 수 있지만,
여전히 나를 숨기려 하고, 치장하려 하고,
모든 것을 보여 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모든 관계는 피상적일 수 밖에 없는데.
피상적인 관계를 맺는 사람과 함께하는 것은
즐거움이 아닌 부담이고 괴로움입니다.
그 사람 앞에서는 끊임없이 연극을 해야 합니다.
연극에서 실수는 용납될 수 없습니다.
실수하지 않으려면 계속해서 힘을 주고 에너지를 쏟아야 합니다.
그런 관계는 자연스럽지 못합니다.
억지스럽고 에너지만 끊임없이 낭비 될 뿐입니다.
겉으로는 웃고 있을 지 몰라도
그 깊은 속에서는 웃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린 언제나 습관처럼 세상을 향해 웃고는 있지만
과연 그 웃음이 진정성을 띈 것인가.
존재 깊은 곳에서 온 몸으로 온 마음으로 자연스레 웃는 것인가.
자연스러운 관계란
모든 것을 다 드러낼 수 있는 관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내 모든 것을 드러내,
하나도 감추지 않았을 때 비로소 자유롭습니다.
상대도 나도 마치 혼자 있는 것 처럼 편안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이런 깊은 관계를 맺기를 의도적으로 원하지 않습니다.
피상적이고, 즉흥적이며,
치고 빠지기 식의 표면적인 만남만이 있을 뿐,
배려와 사랑이 바탕 된 깊은 관계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 이유중에 하나가 바로 자기중심성이 아닌가 합니다.
나를 좀 더 그럴싸하게 포장하고자 하는 욕구가 생기고,
그러기 위해서는 나의 나쁜 부분을 감춰야 하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이기 보다는
잘 치장된, 잘 포장된 나를 보여야만 인정받기 쉽습니다.
그런 온갖 종류의 화려한 가면을 쓴 사람들이
거리에 쏟아져 나오고,
가면과 가면이 마주보며,
표피적인 대화와 가벼운 농담,
혹은 때때로 육체적이고 욕망적인 만남으로
외로움을 달래는 흔들리는 사회, 희뿌연 거리,
텅 빈 존재감과 관계들을 우린 얼마나 자주 목격하게 됩니까?
자신이 부족한 존재임을,
많은 문제를 가진 사람임을
겸손한 마음으로 세상에 드러내야 하는데...
꽉꽉 동여매고, 잔뜩 껴입고 있습니다.
좀 더 깊이 들어가
조금 더 투명하게 다가서는 것을 두려워 합니다..
드러내고 나면 모든 관계는 옹달샘처럼 투명해질덴데...
요즘 교육의 수장이라는 사람의 모습을 보면서
너무 많은 옷을 껴 입은 것 같은 느낌을 봅니다.
잔뜩 껴입은 옥수수도 그리 보기 싫지는 않지만
다 드러낸 빨간 오미자의 모습도 참 보기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