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9년 지석영선생의 '언문'74p에는 '빈자소인(貧者小人)'이란 말이 나온다.
"가난한 사람은 (현실적인 한계와 핍박으로 인해) 지조를 지키지 못하고 저절로 소인(小人)이 되기 쉽다"라는
인간의 심리와 현실을 담은 한자 성어이다.
이 말은 가난한 사람을 비하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적 빈곤이 인간의 정신적 여유와 도덕적 지조를 지키기 어렵게 만드는 고단한 현실을 표현한 것이다.
물론 가난이 문제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가난한 마음이 더 큰 문제가 아닐까?
여기 나와 같이 근무했던 두 사람을 보면
가난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마음> 때문에
일짝 죽음의 길로 갔다.
1979년 그녀와 나는 전입동기다.
그녀는 양호와 교련 담당이었다.
그녀는 시골에서 어려운 가정 속에서 자랐다고 했다.
악착같이 공부하기 위해 중학교를 졸업하고
인근 도시에 있는 간호학교로 진학하였단다.-6개월 과정
간호조무사로 근무하다가 이 학교로 오게 되었다고 했다.
그 때 그녀의 나이는 나와 같은 33살이었다.
그녀의 남편은 인근학교의 체육선생.
그리고 아들 딸.
당시 그녀는 좋은 아팟트에서 살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교사들은 점심을 매점에서 먹었는데
그녀는 항상 도시락을 싸가지고 왔다.
반찬은 김치나 된장, 깻잎이 전부였다.
모두 혀를 찼다.
더군다나 그녀는 사채놀이를 했는데 동료교사에게 까지 했다.
그것뿐이 아니었다.
모은 돈으로 모델과 여관을 하는 인근도시에 살고 있는 오빠에게 투자했다.
어디 그것 뿐인가.
같이 근무하던 가난한 총각선생에게 접근하여 온갖 감언이설로 자기 조카와 결혼시켰다.
그 선생 역시 어머니 밑에서 가난한 사람이었는데 23평 아파트까지 사주었다.
결국 조카도 이른 나이에 죽었다.
어느 교사가 내게 말했다.
"우리 학교에서 그녀에게 커피 한잔 얻어 마신 교사는 당신뿐"이라고.
참으로 무섭고 지독한 사람이었다.
선생들은 그녀를 보고
도대체 그렇게 돈을 벌어서 어디다 쓰려고 하느냐고 혀를 내둘렀다.
그렇게 10여년이 흘렀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학교에 사표를 냈다.
이유는 후배들이 주임으로 승진했기 때문이었다.
아마 자존심이 무척 상했나 보다.
그리고 얼마 후 그녀에 대한 소식이 들려왔다.
위암으로 죽었다는 소식이 왔다.
당시 그녀의 나이 겨우 46세이었다.
지독한 가난 때문에 악착같이 살은 그녀.
그 후 가난이 문제가 아니고 <가난한 마음> 때문에 그렇게 살다간 것은 아닐까?
왜 그녀는 스스로 <가난한 마음>으로 살았는가?
또 한 사람.
1979년에 만났다.
그는 나보다 한 살이 적다.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다녔고 서울에 집도 있었다.
그런데 같이 근무하면서 개인적으로 관계한 것이 없다.
처음부터 나를 라이벌로 생각했는지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나에 대한 뒷말을 했다.
그는 학생들을 자기 집에서 하숙을 시켰는데 문제가 많이 있었다.
학생들의 부모와 돈거래부터, 심지어 성적 조작도 .........
하숙을 그만 둔 학생에겐 자기과목의 성적을 형편없게 주기도 했다.
어느 날 교장이 내게 말했다.
그가 '소탐대실'이니 주의 하라고.
그가 주로 맡으려고 한 것은 수학여행이었다.
돈 때문이었나?
돈 때문에 교회를 옮겨 다닌 그였다.
그의 부인 역시 시장에서 몇 푼 안 되는데도 '외상거래'를 하는 사람으로 소문이 났다.
학교에서는 나와의 관계를 아는지 같은 학년을 배정해 주지 않았다.
그렇게 12년 동안 서로 피하면서 지냈다.
공적인 외에 사적으로 한번도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그 후 나는 여러 사정으로 인해 12년을 청산하고 공립으로 나가게 되었다.
그런데 2년 후 그 역시 공립으로 나왔는데 내가 근무하는 지역이었다.
하여 다시 나는 벽지로 내신을 내 그곳을 떠났다.
그런데 무슨 인연이 그런가?
그가 다시 내가 있는 지역으로 왔다.
나는 분교였고 그는 본교였다.
하여 다시 나는 내신을 내 다른 학교로 갔다.
그곳에서 2년 근무하다 사정이 생겨 다른 벽지로 내신을 해서 갔더니
그 역시 그 학교로 발령이 되어 왔던 것이다.
더군다나 형편상 같은 관사를 써야 했다.-3명이
각자 방에서 자고 각자 알아서 출근했다.
그렇게 지내다 내가 학생부장으로 발령받고 그는 내 부서의 차석으로 왔다.
그는 또 다시 2학년 담임을 맡았다.
수학여행 때문인가?
역시 내 예상이 맞았다.
내가 주무여서 그에게 투명하라고 신신당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치욕적인 곤욕을 치뤘다.
여행가서 담임들 간에 소송까지 하겠다며 싸웠다.
왜 그는 수학여행에 그렇게 집착했을까?
돈 때문이었나?
서울에 집까지 있는 사람이.
그렇게 3년을 같이 근무하다가 그와 나는 다시 집 가까이로 내신을 냈다.
천만 다행인 것은 그는 시내로 발령을 받고 나는 외지로 발령 받았다.
그것으로 24년의 인연이 끝난 줄 알았다.
아니었다.
얼마 후 연락이 왔다.
병원에서.
위암 말기였다.
그의 나이 54세.
그 학교에 가서도 다시 맡은 것은 수학여행이었다.
도대체 얼마를 먹어야 만족하는가 ?
가난 때문이 아니었다.
<가난한 마음> 때문이 아니었을까?
두 사람.
나보다 휠씬 부자임에도 왜 그들은 돈에 그렇게 집착하였는가?
어릴 때 가난에 대한 보상을 받기 위해서?
그래서 그렇게 <가난한 마음>을 가지고 살았는가?
가난은 불편할 뿐이다.
그러나 <가난한 마음>은 더욱 불편한 것을 왜 그들은 몰랐을까?
두 사람을 보면서 참으로 안타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