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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일본은 왜 하필 임진년에 전쟁을 일으켰을까?

작성자드보라|작성시간26.06.11|조회수3 목록 댓글 0

어제는 문득 1592년이란 숫자가 꿈에 보였다.

임진왜란이 일어 난 해.

그런데 왜 하필 임진년일까?

일본이 1592년 임진년(壬辰年)을 선택해 임진왜란을 일으킨 이유는

역사적·정치적 배경이 맞물린 결과이지만,

동양의 사주명리학 및 음양오행 관점에서도 매우 정교하게 계획된 타이밍이었다. 

사주·명리학적 관점과 역사적 관점에서 일본이 하필 임진년을 택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사주·명리학적 이유.

수(水) 기운의 극대화: 바다를 건너는 전쟁.

임(壬)과 진(辰)의 결합.

천간의 임(壬)은 오행 중 큰 물(대수, 大水)을 뜻하며 색으로는 흑색이다.

지지의 진(辰)은 용(龍)을 뜻하므로 임진년은 '흑룡(黑龍)의 해'가 된다.

물 만난 용(龍): 용은 물을 얻어야 하늘로 승천하고 조화를 부릴 수 있는 상상의 동물이다.

섬나라인 일본이 바다(水)를 건너 대륙으로 진격해야 하는 대규모 수로·해상 작전을 펼치기에

'물 기운이 가장 왕성한 흑룡의 해'가 최고의 길일이자 천시(天時)라고 판단한 것이다.

 

조선과 일본의 오행 상성 (금생수·수극화).

일본의 화(火) 기운: 명리학에서 일본은 동쪽의 섬나라로, 활발한 화(火) 기운이나 목(木) 기운으로 해석되곤 한다.

화 기운이 강한 일본에 임진년의 강한 수(水) 기운은 자신들의 과열된 에너지를 밖으로 분출(배설)시키는 통로가 되었다.

황룡을 치는 역신의 기운: 민간 역학에서 흑룡은 중앙의 황룡(당시 천자국인 명나라)에 반역을 꾀하는

강력한 역신(逆臣)의 기운으로도 풀이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명나라를 정복하겠다는 야망(정명가도)을 실현하기에 이보다

적합한 사주적 타이밍은 없었던 것이다.

 

2. 역사·정치적 이유 (실질적 배경)

사주적 길일이라는 명분 뒤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철저한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었다.

[전국시대 통일 (1590년)] ➔ [내부 불만 고조 (무사 계급)] ➔ [대륙 침략(임진년, 1592년)으로 시선 돌리기]

내부 불만 세력의 외부 방출.

100년 넘는 전쟁(전국시대)을 통일한 히데요시는 넘쳐나는 군사력과 다이묘(지방 영주)들의 불만을 잠재워야 했다.

땅과 보상이 부족해지자 이들의 관심을 조선과 명나라 영토 확장으로 돌린 것이다.

조선의 방비 허술 파악.

일본은 전쟁 전 조선에 통신사를 보내 정세를 살폈고, 조선이 오랜 평화로 인해 전쟁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는

확신을 가졌다.

개국 200주년의 타이밍.

1592년은 조선이 건국(1392년)된 지 딱 200년이 되던 해였다.

국운이 한 차례 꺾이고 해이해 지는 시점을 정확히 노려 침공한 것이다.

 

요약하자면 일본은 내부의 정치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쟁이 필요했고,

이를 실행하기 위해 "바다를 건너 대륙을 치기에 가장 상서롭고 강력한 물의 기운"을

가진 임진년(흑룡의 해)을 침략의 해로 최종 선택한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물의 기운은 우리에게 승리를 -이순신-주었다.

 

그렇다면 1592년에만 그랬을까?

다른 임진년을 차례로 보자.

 

392년은 한국(삼국시대)과 일본(왜)의 역사에서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남진 정책으로 인해

한반도 정세가 격변하고, 백제·신라와 왜의 관계가 긴밀하게 얽히기 시작한 시점이다.

당시 사이가 나쁘지 않았다.

 

다시 300년 후인 692년(효소왕 1년 / 지통천황 6년).

한국(통일신라)과 일본 간에 왕위 교체에 따른 긴밀한 외교적 교류와 기술 전수가 이루어진 시기이다. 

역시  사이가 나쁘지 않았다.

 

다시 300년 후인 992년은 한국과 일본 모두 국가적 기틀과 문화를 다지던 시기였다.

역시 사이가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1292년에 와서 사이가 틀어지게 되었다.

1292년의 한국과 일본은 어떤 관계였을까?
한국(고려)과 일본은 몽골(원나라) 중심의 외교적 긴장 상태에 있었다.

고려 충렬왕 18년에 원나라는 사신 홍군상을 고려에 보내 일본을 몽골에 복속시키기 위한 외교적 설득을 요구했고,

고려는 원나라의 일본 원정 준비가 어렵다는 사실을 알리고 전쟁을 지연시키려 했다. 

1292년 양국 상황

고려: 원나라의 거듭된 일본 원정 요구와 겹쳐 카단이 이끄는 몽골 반란군 토벌을 원나라와 합동으로 진행하며

국내외적으로 큰 혼란과 정치적 부담을 겪고 있었다.

일본: 가마쿠라 막부 시대(쇼오 5년)로, 두 차례의 여원연합군 침공(1274년, 1281년)을 막아낸 이후

원나라의 끈질긴 항복 및 복속 요구를 계속해서 거부하고 있었다.

이 시기 양국은 직접적인 교전을 벌이지는 않았으나,

원나라의 세력권 안에서 간접적인 외교 마찰과 과거 원정의 여파를 수습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었다.

 

복수심이었나?

그로부터 300년 후인 임진왜란이 일어났던 것이다.

일본은 300년 동안 복수의 칼을 갈았는가?

그러나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한 일본은 300년후인 1892년 본격적으로 침략의 야심을 드러냈다.

 

그렇다면 300년 후인 1892년 임진년에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1892년 한국(조선)과 일본은 본격적인 침략과 저항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기 직전의 상태였다.

당시 일본은 조선에 대한 본격적인 철도 부설 및 경제적 수탈을 계획하고

식민사관을 작성하는 등 침략 야욕을 구체화했다.

결국 한국은 1910년 일제의 식민지가 된다.

 

그렇다면 이것으로 일본과 한국은 끝났는가?

지금은 평화의 시대이다.

 

그렇다면 300년후인 2192년-지금으로 부터 166년 후-에 임진년에는  

일본과 한국은 어떤 관계가 될까?

계속 평화가 유지 될까?

아니면 다시 일본은 침략의 야심을 품을까?

공식적인 예측 자료는 없다.

 

1. 인구 구조와 사회적 대변화.

인구 소멸 위기 심화: 한국과 일본 모두 심각한 저출생과 고령화를 겪고 있다.

22세기 말인 2192년에는 양국의 인구가 현재의 절반 이하(혹은 그 이상)로 급감하여

사회 구조의 전면적인 재편이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이민자 사회로의 전환: 노동력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양국 모두 적극적인 이민 수용 정책을 펼쳤을 것이며,

이에 따라 다민족·다문화 국가로 변모했을 확률이 높다.

 

2. 기후 변화와 지리적 환경.

해수면 상승: 기후 변화가 지금 추세대로 지속된다면 2192년에는 해수면이 크게 상승하게 된다.

한국의 서해안 및 남해안 일부 저지대와 섬나라 인터페이스를 가진

일본의 상당수 해안 도시(도쿄, 오사카 등 부두 지역)가 침수 피해를 입어 국토 지형이 변했을 수 있다.

재난 대응 협력: 기후 위기로 인한 초강력 태풍, 지진 등 자연재해가 일상화되면서

양국은 생존을 위해 재난 구조 및 환경 분야에서 강력한 결속을 맺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3. 정치·외교적 관계.

과거사 문제의 변화: 1965년 국교 정상화 이후 지속되어 온 독도 영유권, 강제징용 등 20~21세기의

갈등 현안들은 세대가 여러 차례 바뀌면서 외교적 형태가 크게 달라졌거나

새로운 국제 정세 속에서 재정립되었을 것이다.

동아시아 안보 공동체: 22세기의 새로운 글로벌 패권 경쟁 속에서 지리적으로 인접한

한국과 일본은 생존을 위해 군사·안보 및 경제적 측면에서 지금보다

훨씬 더 밀접한 연합 체제(예: 동아시아 연합 형태)를 구축했을 시나리오도 존재한다.

 

그런데 역시 한가지 유의할 점이 있다.

바로 탄허스님의 예언이다.

'일본이 물에 가라앉는다"고 했다.

그런 사실을 일본이 모를 일이 없다.

그러면 일본은 가만히 있겠는가?

무슨 트집을 잡아서라도 우리나라를 다시 침략하려고 하지 않겠는가?

 

앞으로 남은 166년.

만에 하나 우리도 대비해야 한다.

 

옛말에 

"좋은 집보다는 좋은 이웃이 휠씬 낫다"고 했다.

일본은 과연 우리의 진정한 이웃인가?

그들은 일어나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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