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9년 지석영선생의 '언문'164p에는 '狹路(협로)라는 말이 나온다.
협로(狹路)'는 '좁은 길'을 뜻하는 한자어이다.
인생의 어려운 국면이나 피하기 힘든 상황을 비유적으로 표현할 때 자주 쓰인다.
아울러 "협로상봉(狹路相逢)"은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는 속담이다.
위 표는 이번 선거에서 우연에 일치라고 했다.
과연 우연일까?
사실 우리는 악연이건 선연이건 기적같은 일이 자주 일어난다.
원수를 외나무 다리에서 만나는 것은 기적이다.
그런데 우리는 살면서 그런 기적을 가끔 만난다.
어디 그 뿐인가?
원수가 아닌 사람도 그렇다.
인간이 태어날 확률이 눈먼 거북이가 100년에 한번 바다위를 떠오르는데
그때 이리저리 떠다니는 구멍난 판자데기에 머리를 집어넣을 확률이라고 했다.
또 정자와 난자가 만날 확률은 1조 분의 1이라고 했다.
-난자 1/30곱하기 정자 1/1억5천마리=1/45억-
내가 태어날 확률은?
0.000007%.
'운명의 다리'라는 소설이 있다.
1714년 어느날, 폐루에 있던 포도나무줄기로 만들어져 있던
다리가 끊어져 다리를 건너던 다섯명의 사람이 사망한다.
<운명의 다리>의 화자인 <쥬니퍼>사제는 의문을 제기한다 .
즉,이러한 사건들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을 것이고,
그 이유는 결코 중력이나,썩어가는 밧줄이 아닌 다른 이유
어떤 알 수 없는 힘이 존재 할 것이라는 ...
그래서 한사람,한사람을 추적한다.
그랬더니 결론은 '그럴 수 밖에 없었다'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운명'이었다는 말이었다.
이 사람들은 원수인가? 아니면 선연인가?
번개에 맞을 확률은 0.0001%라고 한다.
만명에 한 사람.
그런데 인생에 몇번 번개를 맞고 산 사람이 있다.
기적이 아닌가?
이번 선거에 출마한 사람을 4번이나 만난 적이 있다.
교회에서, 식당에서, 결혼식장에서, 병원에서.
기적같은 일이 아닌가?
그런데 나는 그 사람을 찍지 않았다.
나 때문에 그가 낙선했는가?
또 한사람이 있다.
현직교육감인데 재출마했다.
그 역시 몇번 만났다.
얼마 전에는 축제에 갔다가 또 봤다.
역시 나는 그를 찍지 않았다.
나 때문에 낙선했는가?
악연이었던 사람이 있다.
12년동안 같이 근무했다.
두번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두번이나 만났다.
시장에서, 식당에서.
모른 척했다.
그런데 더 기가막힌 만남도 있었다.
서울에서 볼일 보러 남대문에 나갔다가 중학친구를 만났다.
기적이 아닌가?
우린 서로 껴안고 뛰었다.
아내를 만날 확률은 얼마일까?
0.000000000000002%라고 한다.
기적이 아닌가?
나는 1/50이었다.
0.02%이다.
그래도 기적이 아닌가?
그런 기적속에서 만났는데 왜 또 다른 기적을 만들려고 외도를 하는가?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인슈타인이 한 말이다.
신 조차 모른다는 말이다.
더 나가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너무 확률만 따지지 말자.
단 한번의 실수로 100% 죽는 사람도 있다.
확률이란 '가능성'이란 말이다.
그런데 위 표는 정말 이상하다.
우연이라기엔 너무 이상하다.
내 눈에만 이상하게 보이는가?
정말 정말 우연의 일치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