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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정의 글

콩꺼풀

작성자덕 many|작성시간09.10.01|조회수65 목록 댓글 0

 

콩꺼풀  / 유안진


식순이다.

돌아서 하객들에게 절하는 새 부부에게 힘찬 박수로 축하를 보냈다.

 

콩꺼풀이여 벗겨지지 말 지어다

흰콩꺼풀이든 검정콩꺼풀이든 씻겨지지 말 지어다.

색맹이면 어때 맹맹이면 어때

한 평생 오늘의 콩꺼풀이 덮인 고대로 살아갈지어다.

어떻게 살아도 한 평생일진대

불광(不狂)이면 불급(不及)이라지

미치지 않으면 미칠 수 없느니

이왕 미쳐서 잘 못 본 이대로

변함 없이 평생을 잘 못 볼 지어다

잘 못 본 서로를 끝까지 잘 못 보며

서로에게 미쳐서 (狂)

행복에도 미칠(及) 수 있기를


빌고 빌어주며 예식장을 나왔다,

기분 좋은 이 기쁜 날.



사랑에 눈이 멀게 되면

세상이 온통 한 사람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비가 내리면 내려서 좋고,

바람이 불면 불어서 좋고,

눈발이 흩날리면 흩날려서 좋습니다.


세상 모든 일이

오직 사랑하는 한 사람에 의해 움직이며

오직 한 사람을 위해 의미가 부여됩니다.


사랑하기 전에는

마음은 바람부는 언덕 위에서

갈피를 못잡고 이리저리 나부끼는 깃발이었으나

사랑하고 부터는

가을 국화 향기처럼 은은하게 피어올라

온 세상을 사랑의 향기로 훔삑 취하게 합니다.


사랑에 눈이 멀게 되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자나깨나 눈앞에는

오로지 사랑하는 한 사람만 보일 뿐입니다.

 

콩꺼풀.

 

제게도 콩꺼풀이 씌웠던 적이 두 번 있었습니다. 

 

한번은 고3때입니다.

 

친구 여동생인데 제게는 첫사랑입니다.

 

한창 입시에 몰두할 때 그녀가 먼저 제 마음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그녀의 집은 당시 아주 잘 사는 집이었습니다.

 

아버지가 미국 유명 대학원 나왔고, 어머니가 이화여대 나왔으며

 

그녀의 할아버지는 남원 부자였습니다.

 

아버지는 당시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경제학자로서 큰 회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요즘 < 다 함께...> 라는 드라마에 사장딸과 별 볼일 없는 남자와의 사랑이야기가 나옵니다.

 

아마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들이 결혼할 확률은 거의 없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명문대학에 붙으면 독일 유학까지 생각했던 그녀의 집은 낙방하자 극구 반대했습니다.

 

정말 아무 것도 없는 저의 집안이었습니다.

 

제게는 용기도, 패기도 없었습니다.

 

친구는 되고 딸의 애인은 안 된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습니다. 

 

결국 그녀를 제 마음속에서 밀어내는데 8년이란 세월이 걸렸습니다.

 

두번째는 대학때입니다.

 

역시 그녀의 집은 대전에서 잘 사는 집이었습니다.

 

건축업을 하는 아버지와 회사를 운영하는 어머니였습니다. 

 

역시 그녀를 제 마음속에서 밀어내는데 10 여년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40 여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역시 콩꺼풀이 씌워서 지금 아내와 결혼하였습니다.

 

그리고 생각해 봅니다.

 

그녀들과 결혼하였더라면 제가 어떻게 변했을까 하고.

 

제 인생이 얼마나 달라졌을까 하고.

 

그렇게 죽고 싶을 정도였는데,....

 

그렇게 미쳐 죽고 싶었는데.....

 

그렇게 방황하고 미쳐 잠을 잘 수가 없었는데...

 

살 의미가 없었는데.....

 

그런데 지금 생각 해 보면 그녀들과 결혼했어도 별반 크게 제 인생이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물론 극단적인 면-서로-을 갖지 않는 한 어차피 제 인생입니다.

 

대상이 다르다고 제 인생이 달라졌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첫번째 그녀는 지금 미국에서 살고 있습니다.

 

결혼 얼마 후 이혼하고.

 

두번째 그녀는  서울에서 살고 있습니다.

 

집에서 반대하는 결혼을 했던 그녀는 남편 따라 미국가서 남편 뒤바라지를 했다가 

 

남편이 간암으로 그만 젊은 나이에 죽고 말았습니다.

 

지금 그녀들의 얼굴이 전혀 생각나지 않습니다.

 

그렇게 불면의 시간속에 있었던 그녀들이었는데 

 

세월이 흘렀다고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다니!  

 

잊혀진 여자가 가장 불행하다고 했는데....

 

그들은 더 이상 제게 어떤 의미로 다가 오지 않았습니다.

 

콩꺼풀이 씌었는데 이제 그 콩꺼풀이 벗겨진 것입니다.

 

더군다나 저의 이기적인 생각은

 

제가 그녀들과 결혼했더라면 저 역시 그녀와 십중팔구 이혼 했을 것이고,

 

병으로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얄팟한 생각으로 위로(?)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사랑이란 바로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아니면 살아갈 의미가 없다고 ,

 

콩꺼풀이 씌워도 단단히 씌워진 사람들.

 

그냥 그렇게 열심히 살아가야 하는데

 

요즘은 그 콩꺼풀이 쉽게 벗겨지나 봅니다.

 

이제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40여년이 흘러가 보면 

 

사랑이란 꼭 콩꺼풀이 쒸워야 잘 사는 것이 아님을 알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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