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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일 』설 교

하나님의 진실 된 빛을 증언하는 주현절(Epiphany

작성자예찬|작성시간10.04.27|조회수138 목록 댓글 0

하나님의 진실 된 빛을 증언하는 주현절(Epiphany)

박승규

1. 들어가는 말

주현 절기는 교회력에서 성탄절보다도 오래 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초대교회 때부터 중요하게 지켜진 절기인 부활절, 오순절과 더불어 기독교 3대 절기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그 동안 주현절은 개신교회 내에서 잊혀진 절기와도 같았다. 특별히 한국 교회에서는 주현절의 의미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그 이유들 중 하나는 한국 교회가 교회력 중심의 예배와 목회보다는 세상의 달력에 의지하는 행사 중심 목회에 치중하는데 그 원인이 있는 듯하다. 특별히 주현절(1월 6일)의 시기가 연초이다 보니까 성탄절을 중심으로 예배를 드리곤 곧바로 연말과 연초의 세상적인 감각과 분위기에 따라서 초대교회에서 중요하게 지켜지던 절기 중 하나인 주현절은 더더욱 관심의 대상에서 제외되고 말았다. 그러므로 본 장에서는 주현절의 기원과 역사적인 발전 과정을 살펴보고, 그 신학적 의미와 주현절과 관련한 예배와 주현절의 메시지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2. 성탄절기(The christmas Cycle)와 주현절

교회력은 부활절을 중심으로 하는 부활절기와 성탄절을 축으로 하는 성탄절기의 두 개의 축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주현절은 성탄 절기에 속한 것으로 성탄 절기는 4세기 후반에 대강절-성탄절-주현절의 오늘과 같은 모습으로 이루어졌다. 그런데 이 주현절과 관련해서 우리가 중요하게 보아야 할 것은 서방교회와 동방교회는 이 절기의 강조점을 달리해왔다는 사실이다. 즉 서방교회는 이 절기 동안 성탄절에, 그리고 동방교회에서는 주현절에 그 중심을 두고 있다는 것이 그 차이점이다. 그러나 두 교회 모두 성육신(Incarnation), 동방박사들의 방문(the visit of magi), 예수님의 세례(the baptism of Jesus), 그리고 가나안의 혼인잔치의 기적(The marriage at Cana)이라는 중요한 사건들을 중심으로 하여 이 주현 절기를 축하하고 기념한다. 어쨌든 성탄 절기는 말씀이신 그리스도의 오심을 축하하는 절기이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구원 사역이 현실화 된 것을 축하하는 절기이다.

3. 주현절의 의미

"Epiphany"라는 말의 뜻은 희랍어의 "epiphaneia" 또는 "theo-phaneia"가 어원인데, 이는 epi(upon)와 phaino(show)가 합쳐진 말로서"나타남"(appearance)또는"현현"(manifestation) 이라는 뜻이 있다. 고대세계에서 epiphany 라는 말은 신의 가시적인 현현이나 신처럼 존경받는 통치자가 그의 왕국의 도시들을 격식을 차려 방문함을 의미하였다. 그런데, 이 단어가 초대 교인들에게는 빛이 어둠 속에서 스스로를 나타내듯이 하나님께서 예수님 안에 자신을 계시하고, 하나님의 영광이 예수님인안에 보인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다시 말해서 "현현"이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바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세상에 자신을 계시하시고 나타내 보이신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주현절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셨다."라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셨다"는 의미가 우선적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주현절은 인간이신 나사렛 예수님 안에 하나님이 가장 분명하게 나타나신 것을 우리에게 전하여 주는 절기이다.

4. 주현절의 기원과 역사

1) 주현절의 유래

주현절의 유래는 모호하지만, 이것이 유대인의 축제가 아니었던 것만은 분명하며, 이집트의 것으로 추정된다. 이것은 주현절의 유래를 이교의 동지축제에서 빌려온 것으로 보는 견해이다. 테베의 아메넴헷 1세(Amenemhet I of Thebes)가 통치하던 주전 1996년에 동지는 1월 6일이었으며, 1월 5-6일의 밤 축제는 동정녀인 코레(Kore)로부터 에온의 출생을 경축하는 행사였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일자 계산의 과오로 인하여 동지는 1월 6일이 아니었으나 축제는 계속되었다. 그러다가 주전 331년에 알렉산드리아가 수립되고, 주전 313년에 동지일을 12월 25일로 바꾸면서, 새롭고 근대적인 이교축제가 제정되었고, 태양신 탄일은 그대로 1월 6일로 계속 지켜왔다. 이 축제들은 불굴의 태양제(Natalis solis invicti)인 로마의 지일제(至日祭)와 흡사한 것이었다. 즉 주현절로 지키는 1월 6일은 이집트인의 동지 때에 지키던 이교도의 축제일이었던 것이다. 스코틀랜드의 예배학자 알란 멕아더(Allan McArthur)는 이것을 콘스탄티노플이나, 소아시아, 안디옥에서 먼저 지킨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 이러한 이교도의 축제가 왜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축제 중의 하나로 되었는가? 이 문제에 대해서 많은 신학자들과 예배학자들은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한다. 즉 주현절은 아마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나신 하나님의 언제 나타났느냐 하는 기독론적인 논쟁의 와중에 발전되었다는 것이다. 아돌프 아담(Adolf Adam)의 주장에 의하면, 주현절 축제의 가장 오래된 흔적은 주후 205년경의 알렉산드리아(이집트)의 클레멘트의 기록에 나타난다. 그의 기록에 의하면 영지주의자 바실리데스(Gnostic Basilides:A.D. 150)를 따르던 무리들이 예수님의 세례의 축제를 기념하였다고 보고하였는데, 그들은 예수가 세례를 받는 바로 그 순간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태어나는 순간이라고 강조했다. 따라서 이런 영지주의자들의 주장을 보면서, 초대교회는 이단들의 주장에 대한 반작용으로 주현절을 지키게 되었고, 이는 동방 교회에서 먼저 그리스도의 탄생의 절기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는 것이다. 즉 초대교회는 영지주의자들의 “예수님의 세례가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난 순간”이라는 주장을 반대하기 위해, 오히려 "예수님의 육적인 탄생"을 주현절의 의미로 부여 하게 된다. 이러한 주현절을 동방교회는 그리스도의 영광의 계시를 축하하는 절기로, 그의 탄생(birth)과 세례(baptism) 그리고 그의 첫 이적(first "sign")이라는 세 가지 요소로 보고 있었으며, 서방교회에서는 “의로운 태양”(sun of righteousness)(말라기 4:2)의 개념이 강조되어, 주현절을 의로운 태양이신 예수께서 구세주로서 이 세상을 뚫고 들어오신 사건으로 보게 된다.

2) 통합 절기로서의 주현절(Unitive Festival of Incarnation)과 성탄절의 분리

그리스도의 탄생과 세례를 합하여 기념하였던 주현절은 4세기 초에 동방에서 널리 일반화되어 있었다. 그러나 서방인 로마에서 12월 25일이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새롭게 제시되었고, 336년에 12월 25일을 성탄절로 지키기 시작함으로서 성탄절이 주현절로부터 분리되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시작된 성탄절은 점차 동방으로도 확대되기 시작하였다. 기록에 의하면 성탄절은 373년 콘스탄티노플에서 처음으로 기념되었으며, 안디옥에서는 375년경에 지켜지기 시작하였다. 크리소스톰은 386년경에 안디옥 교회에서 설교하기를 그리스도의 육신의 생일은 안디옥에서 10년 전 까지 만해도 성수 되지 않았다고 했다. 또한 2세기말부터 그 이후 여러 세기 동안 널리 퍼졌던 양자설 이단은 사실상 예수님의 육적 탄생을 영적 탄생(수세)과 성탄절과 주현절을 분리하게 하는 촉진작용을 하였다. 앞서 설명하였듯이 양자설은 그리스도의 신성이 그가 세례를 받음으로써 시작되었다고 주장한 반면에, 기독교 정통교리에서는 그는 날 때부터 신성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하였고, 결국 정통 기독론이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정통교리는 그리스도의 선재와 수태의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절대적 신성의 선재를 강조하였으며, 더불어 육체적 출생은 기독교인의 의식 가운데 점점 더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결국 성탄절을 기독교의 특별한 절기로 지키는 관례가 정통적 기독론의 승리와 함께 4세가 중엽부터 급속히 퍼져나가게 되어 4세기말에는 성탄절은 주현절과 완전 분리되어 교회력에 자리 매김을 하게 되었고, 주현절은 예수님의 탄생을 떼어냄에 따라 새로운 강조점이 요구되었다. 그래서 예수님의 세례 이외에 주요 주제로서 동방박사의 방문, 가나의 첫 이적, 그리고 그 외에 그리스도의 변형 등과 같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의 현현의 주제들이 강조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주현절의 의미가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에서 조금 다르게 강조되었는데, 동방교회는 예수님의 세례를 축하하는 절기로서의 의미를 두는데 반하여, 서방에서는 예수님의 세례보다는 동방박사들의 방문에 더욱 중요한 의미를 두었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4세기에 박사들의 유물들을 콘스탄티노플에서 밀란으로 옮긴 후 서방교회는 주현절을 박사들의 베들레헴 방문과 결부시킨 것 같다. 아무튼 동서방교회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개념은 결국 주현절이란 온 세상에 예수님께서 나타나심을 축하하는 절기라는 것이다. 또한 주현절은 구세주의 세상에 나타나심을 의미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서 세상으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나아올 것을 초청하는 절기이며, 하나님의 진실된 빛을 증언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그래서 주현절 기간 동안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께서 놀라운 기적과 가르침으로 하나님을 우리에게 나타내 보이심을 기념해야 한다.

5. 주현 절기

초대교회의 주현 절기는 1월 6일을 기점으로 사순절 전까지 4-9주간을 가리키는 기간이었다. 즉 부활절 일자에 따라서 때로는 길게 또 때로는 짧은 기간의 절기였다. 그런데 최근에 새롭게 설정된 성서일과와 교회력은 400여년 만에 처음으로 개신교와 로마 카톨릭 모두에서 초교파적인 달력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는데, 그것에 의하면 주현절은 이제 하루(1월 6일)의 축일로 되었으며, 주현절 후의 주일들은 "일상적인 시간"(Ordinary Time)으로 간주한다. 그리고 1월 6일은 박사들의 방문에 초점을 두고, 주현절 후 첫 주일을 주님의 세례 받으심을 축하하는 날로 지키게 되었다. 그리고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 바로 전 주일을 “예수님의 산상 변모주일”로 지키고 있다. 그러나 주현절을 1월 6일 하루로 지키고, 그 다음 주는 예수님의 수세주일로 그리고 사순절 바로 전 주일을 산상변모주일로 지키는 것보다는, 이전처럼 1월 6일 이후부터 사순절 전까지를 주현 절기로 지키며, 예수님의 수세주일과 산상변모주일을 동시에 받아들이는 것이 초대교회가 주현절을 중요하게 지키던 본래의 의미를 되살리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6. 주현절기의 신학적 의미

1) 성부 하나님의 현현

주현절이 가지는 첫 번째 신학적 의미는 성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방인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을 드러내신 것이다. 그러므로 주현절은 하나님의 현현이요, 하나님께서 인류와 함께 하신 것을 기리는 절기이다. 동방의 박사들은 인간의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찾아오신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경배를 드렸다(마태 2:1-12). 그런 의미에서 서방교회는 주현절을 동방 박사들의 방문과 연결을 시키고 있다. 무엇보다도 그들이 이방인이었다는 점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방을 비추는 하나님의 빛으로 그들에게 나타나 경배를 받으신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의 세례 받으심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입증하는 사건임을 우리는 사도규약을 통해 알 수 있다. "주현절 축일에 노예들을 쉬게하라. 왜냐하면 그 날에 성부께서 그리스도가 세례 받을 때, 증언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신성이 밝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또한 보혜사가 비둘기 모양으로 그를 증거 하는 모든 자들 앞에서 주님을 가리켰기 때문이다." 결국, 주현절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광의 계시”로 이방을 포함한 온 세상에 나타나심을 축하하는 절기인 것이다.

2)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

주현절이 예수님의 신성을 강조하게 된 데는 이미 앞서 지적한대로 당시 교회의 상황과 무관치 않다. 영지주의자들이 예수님의 인성을 부인했을 때 교회는 성탄절을 통해서 예수님의 육적인 출생을 분명히 함으로써 예수님의 인성을 확인하였다. 이에 비하여 주현절은 예수님의 신성과 관련이 있다. 4세기 초 아리우스주의자들은 예수님의 피조성을 주장하면서 예수님은 하나님과 같은 신성을 가질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Arianism). 그들은 예수님이 완전한 인간도 아니요, 완전한 신도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즉 예수님은 반신이요, 반인간적인 분이라고 하였다. 여기에 대하여 아타나시우스는 성부와 성자는 동일한 본질로서, 그리스도는 완전한 신성을 가진다고 하였다. 결국 325년 교회는 니케아 회의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완전한 신성을 인정하게 되었다. 이런 역사적인 배경에서 주현절은 예수님의 신성을 강조하는 절기로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성탄절과 주현절에 관한 융맨(J.A. Jungmann)의 언급은 이 두 절기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내용이라고 하겠다. "성육신의 신비는 이 두 절기에 모두 적절한 주제다. 그러나 성탄절에 우리는 주로 인간의 가난한 아이들 중의 하나가 되어 찾아오신 하나님의 아들을 생각하고, 반면 주현절에 우리는 이 세상에 자신을 나타내 보여주신 그리스도의 신적 위엄성(divine dignity)에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성탄절이 하나님의 인성(humanity)에 대하여 기념하는 것이라면 주현절은 인간 예수 안에 있는 신성(divinity) 을 기념하는 것이다.

3) 성령님의 임재를 통한 직임

주현절은 예수님의 세례가 기념되는 절기이기도 하다. 성자 예수님은 세례를 통하여 비둘기 같은 성령님의 임재를 체험하시고, 성부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세례를 통하여 말씀하셨다(마 3:13-17). 이것은 주현절에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 하나님의 현현을 기리는 중요한 의미가 포함되어 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또한 세례 사건에서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함을 체험한 후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메시아의 직임을 수행하셨다. 세례 후 예수님은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요, 메시아로서 많은 권능들을 행하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본격적으로 선포하셨다. 그러므로 세례 시 성령님의 강림은 예수님의 직임을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지상 선교의 출발점이 되었다는 선교적인 차원에서도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4) 증거의 절기

주현절은 구세주의 세상에 나타나심을 의미하는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서 세상으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나아올 것을 초청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진실된 빛을 증언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따라서 우리는 주현절에 복음을 전하고 어두운 세상에 그리스도의 빛을 널리 비춰야 하는 의미를 더욱 강조해야 할 것이다.

5) 예배의 절기

주현절은 예수께서 현현된 하나님의 영광과 관계가 있다. 주현절은 동방박사가 갓 태어난 왕을 경배하러 오는 것에서 시작하여 변화 산에서의 놀라운 예배의 경험으로 끝난다. 그러므로 주현절은 예배의 절기라고 할 수 있다. 예배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빛, 구원의 빛으로 초대받은 심령들이 감사와 감격으로 응답하는 행위이다. 그러므로 주현절 이야말로 하나님의 빛 앞에 나아와 감격스러운 응답의 행위를 드려야 할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경배 드리는 삶에 대하여 다시한번 점검해야 하는 절기이다. 그리고 특별히 예수님께서 그의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세례를 받으신 모습 속에서 교회는 성례전적인 삶에 대해서도 다시한번 분명하게 확인하는 계절이 되어야 한다.

7. 주현절의 설교적 접근

1) 기독론적인 현현(Christological Epiphany)

주현절의 메시지는 그리스도를 분명하게 보여주어야 한다. 즉 주현절의 메시지의 핵심은 이 세상에 예수님이 나타나셨다는 데 있다. 오늘날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큰 흐름인 종교다원주의는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의 유일성을 부인하고 있다. 이는 초대교회가 당면하였던 영지주의 이단들의 공격에 못지않은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교회는 주현절이 갖고 있는 그 신학적인 의미와 그 메시지를 다시한번 회복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주현절의 메시지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하신 구세주이시며, 그 만이 하나님께서 보내주시마 약속하신 메시아임을 더욱 분명하게 깨닫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2) 교회론적인 현현(Ecclesial Epiphany)

주현절의 메시지는 교회를 이 세상에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현현으로 선포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즉 교회의 정체성을 분명히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세속적 사회 속에서 잘못하면 교회가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릴 수가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마 5:14)는 말씀은 주현절의 교회론적인 메시지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3) 사도론적인 현현(Apostolic Epiphany)

주현절의 메시지는 사도의 직무에 대한 정체성을 보여주어야 한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자신의 삶을 통해 사도성을 나타낸 것처럼, 오늘 우리가 우리의 사역과 고난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게 하고, 세상 속에 보냄을 받은 자로서 우리의 빛 된 삶을 통해서 세상에 그리스도를 나타낼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교회는 그리스도와 교회와 사도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선포하고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4) 선 교

이미 앞서 지적한 바대로 주현절은 이방인에게 복음이 선포된 것에 어울리게 선교를 강조해야 한다. 교회는 이 시기에 특별히 세상을 향한 선교에 그 초점을 맞추어 메시지를 전할 수 있어야 한다.

5) 세 례

주현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세례를 받으심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선포하였고, 왜 이 세상에 왔는지는 분명히 선포하셨다. 그러므로 교회는 주현절 동안 세례를 베풀고, 세례의 의미에 대한 메시지를 선포할 수 있어야 한다.

6) 예배의 의미

이미 앞서 지적한 바대로 주현절은 예배의 절기이다. 이 절기는 동방박사의 경배로 시작해 변화산에서의 신비한 예배의 경험으로 끝난다. 그러므로 이 기간 동안 설교자는 참된 예배의 의미에 대해서 선포하는 것도 필요하다.

8. 나가는 말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주현절은 연말연시의 분위기 속에 자리를 잡지 못하고 휩쓸려 매몰되어서는 안 될 매우 중요한 하나님의 계시적인 사건이 담겨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한국교회에서는 잃어버린 교회력의 회복에 그다지 열심을 내고 있지 않은 실정이다. 그것은 아마도 한국교회에 안에 교회력에 대한 바른 이해가 부족한 것과, 교회력이 천주교회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라는 잘못된 선입견 등 때문일 것이다. 1990년대 이후에 잃어버린 교회력을 회복하려는 한국교회의 노력이 교회음악이나 기독교 교육 등 여러 분야에서 시도되고 있지만, 아직도 여전히 교회력 중에서 가장 외면당하고 있는 것은 “주현절”이다. 그러나 이제 한국교회에서는 초대교회의 3대 절기 가운데 하나인 주현절을 회복해야 한다. 주현절이 갖는 신학적인 의미를 바르게 이해하고, 또한 적절한 메시지의 선포 등을 통해서, 그리고 주현절의 의미를 살릴 수 있는 예배순서의 개발 등을 통해서 이 일을 담당할 수 있을 것이다.

“주현절은 우리의 마음과 정신을 예수님의 신성(divinity)에 맞추도록 한다. 주현절은 인간이신 나사렛 예수 안에 하나님이 가장 분명하게 나타나신 것을 우리에게 전하여 준다“

 

- 토의 내용 -

1. 절기 한 축인 주현절을 한국교회가 놓치고 있는 문제점이 무엇인가?

2. 주현절을 회복할 수 있는 방안은?

3. 주현절에 대한 교육방법 및 행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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