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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망정"

작성자그루터기|작성시간26.06.11|조회수13 목록 댓글 0

   일시: 2026, 7, 10, 수요일, 구름조금, 동묘역 들머리,

   동묘역에서 내려,, 이정표도 없는 골목길을 돌고 돌아,, 낙산 "동망정" <東望亭>으로 오릅니다 ~

   회색의 도심속에,, 녹음이 드리워진 숲은,, 도시민들에게 있어 "쉼" 을 제공하는 "허파" 가 아닐런지..? 

   "동망정" 은,, 조선 6 대왕 단종이 영월로 유배를 떠난 후,, 죽임을 당하자,, 그의 비<妃>인 "정순왕후 송씨"<定順王侯 宋氏>가 ~

   지금의 청룡사 자리 "정업원"<淨業院>에서,, 시녀와 같이살면서,, 매일 동쪽<영월>을 볼수 있는 이곳에 올라와 ~

   "망왕"<亡王>의 명복을 빌었다 하여 동망봉이라 부르게 된 유래에 따라 이곳에 팔각정자를 건립해 "동망정" 이란 이름을 붙였답니다 !! 

   넓은 능선길 위에 조성 된,, 공원에  튼실하고 건장한 "은행나무" 가  하늘을 찌를듯 솟아있네요 ~    

   귀가 밝은 저 사람이,, 어디선가 들려오는 물소리를 따라 가면,, 이몸은 자석에 이끌리듯  졸,,졸,,졸..? 

   계곡수를 연상케 하는  물의 흐름은,, 청량감<淸凉感>을 선사하구요 ~

   맑은 음률<音律>이 전해지는 "층층폭포" 는  여름날의 백미<白眉>를 장식합니다 !!

   산책로 옆 "공작 단풍" 이,, 청정수와  어우러져 보는이의 눈을 깨끗히 정화시켜 준다고 할까..?

   "동망봉"<東望峰>은,, 단종이 숙부에 의해 1457,6월 영월로 유배를 떠나자,, 정순왕후가 청룡사에 기거하면서 매일 이곳에 올라 ~

   단종이 있는 영월을 향해 "무사안녕" 을 빌었던 곳으로,, 1771, 8월 영조가 이곳에 거동하여 친히 "정업원구기"<淨業院舊基>라 써서 ~ 

   비석을 세우게 하고,, 같은해 9월 "동망봉"<東望峰>이란 세글자를 비석과 마주 대하고 있는,, 봉우리의 바위에 새기게 하였으나 ~

   지금은 비석만 남아 있을 뿐,, 글자를 새긴 바위는 없어져 버렸으니,, 아마도 60년대 채석을 한 낙산 채석장이 원인이 아닐런지요..? 

   매년 가을 길일을 택해 지역 주민들이 정순왕후의 "넔" 을 기리고,, 주민들의 무사 안녕과 평온을 기원하는 제<祭>를 올리고 있답니다 !!

   "비운의 왕비<悲運 王妃> 단종비 정순왕후" 의 이야기를,, 만화로 그린 줄거리입니다 ~

   여량 부원군 송현수의 딸로 태어나,, 15세의 어린 나이에,, 한살 아래 단종 홍위와 결혼하여 왕비가 되었고 ~

   단종은,, 음흉한 수양대군이 실권을 쥐고 있어,, 왕비와 누나인 경혜공주에게 의지하다가 ~ 

   호시탐탐 권좌를 노리던 수양에게 왕권을 물려주고 수강궁으로 물러났으니 ~

   단종 복위를 위한 사육신 사건이 실패로 끝나,, 노산군으로 강등돼 단종과 정순왕후는 영도교에서 영영 이별을 해야 했읍니다 ~

   궁궐을 나온 정순왕후는 정업원에 기거하며,, 매일 산봉우리에 올라 단종의 무사안녕을 기원했으나 ~

   단종의 서거 소식을 접한 정순왕후는 단종의 유배지 동쪽을 향해 통곡하였고,, 봉우리를 "동망봉" 이라 불렀답니다 ~ 

   수양이 보낸 음식을 끝내 거부하며,, 평생 소복을 입고 채소만을 섭취하며 가난한 일생을 보내다가 ~ 

   단종의 "넔" 을 기리며 "한" 많은 일생을 살았던 정순왕후는 82 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읍니다 !!

   조선 조 왕비중에서 가장 "한"<恨>많은 비운의 왕비,, 이곳 동망봉에서 남편을 그리며 눈물 지었을 정순왕후를 떠울려 봅니다 !!

   채석장으로 인해 동망봉이란 각자가 없어졌다는 이야기구요 ~

   지아비가 얼마나 그리웠으면,, 사릉의 소나무는,, 영월 방향으로 자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는 거죠 ~  

   사후 177년이 지나서야 숙종이 단종을 왕으로 복위하여 왕후 신위가 종묘에 안치되고,, 단종만을 생각한 왕비의 능호를<思陵>이라 했다는겁니다 !! 

   낙산 채석장을 줌으로 땡겨 보니,, 동망봉 각자는 거대한 암석과 함께,, 떨어져 나갔으리란 생각이구요..?

   "삼각산 청룡사"<三角山 靑龍寺>~ 정순왕후에 얽힌 흔적을 찾아 들어갑니다 ~

   사찰의 규모는 아담한 느낌이며 ~

   "우화루"<雨花樓>는 단종이 유배를 떠나기 전날 밤 "정순왕후" 와 마지막이 된 밤을 보낸곳으로 ~ 

   비 "우"<雨> 꽃 "화"<花>자를 쓴,, 연유는 모르겠지만,, 함께한 그 밤은 통곡<痛哭>을 넘어,, 비통의 나락<奈落>이었으리,,,  

   "전봉후암 어천만년"<前峯後巖 於千萬年>이라 쓴 현판은,, 영조의 친필로 【앞산 뒷바위 천만년 가오리】 란 뜻이고 ~ 

   정업원 터 비석에는 "정업원구기세 신묘년구월육일 음체서"<淨業院舊基歲 辛卯年九月六日 飮涕書>를 풀이 하면..?

   정업원 옛터 신묘년<영조47>9,6일 눈물을 머금고 쓰다,, 영조의 친필이며,, 뒤돌아 본 정업원은 아담한 작은 동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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