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기 2570년 6월 21일 6월 셋째주 정기법회 (법회소식 1585호)
피할 수 없으면 받아들이자
법문 : 학륜 스님
불교에서는 불행하고 고달픈 일이 닥쳐올 때. '내가 지은 바이니 기꺼이 받겠다.'는 자세로 살 것을 가르칩니다. 내가 지은 바를 기꺼이 받겠다고 할 때, 그 업을 녹일 수 있는 힘이 안에서 샘솟아 불행을 능히 극복하게 한다고 가르칩니다.
반대로 '나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하면서 현실의 고난을 피하려 하거나 짜증을 부리게 되면 더 깊은 업의 결박 속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곧 다가선 업의 과보를 피하려 하고 받지 않으려 하면 더 큰 불행과 고난이 다가서게 되는 것입니다.
'어차피 받을 것! 기꺼이 받겠다.'는 자세로 삶에 임하면 미래가 차츰 밝아 지지만,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여 '싫어! 저리가!'라는 자세로 살아가면 미래가 참으로 암담해 집니다.
옛날 한순간에 집안이 몰락하여 거지가 된 이가 있었습니다. 보통 거지는 문전걸식하며 하루의 끼니를 얻게 마련인데, 이 거지는 어떻게나 복이 없었던지 동냥을 다니면 밥을 얻기는커녕 몽둥이찜질을 당하거나 개에게 물리기 일쑤였습니다.
하는 수 없이 그는 주린 배를 달래기 위해 남의 집 쓰레기더미를 뒤져 먹을 것을 찾았습니다. 그 음식들은 더럽기 짝이 없었고 상한 것이 대부분이었지만 살기 위해서는 하는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기막히고 비참하게 살아가던 어느 날,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한 그는 마을 뒷산으로 갔습니다. 밧줄로 올가미를 만들어 나뭇가지에 묶고 목을 매려는 순간, 갑자기 허공에서 호통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쓰레기 열 포대 먹을 업을 지은 놈이 어찌 세 포대밖에 먹지 않고 죽으려 하느냐!" 아직 일곱 포대의 쓰레기를 더 먹어야 하니 죽을 수도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환청과도 같은 허공의 소리에 거지는 문득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렇다! 어차피 열 포대를 먹어야 할 운명이라면 싫다 말고 빨리 찾아 먹자," 그날부터 거지는 조금도 운명을 탓하지 않고 열심히 남의집 쓰레기통을 뒤져 먹을 것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한 포대 분을 채 찾아 먹기도 전에 거지는 우연히 만난 귀인의 도움을 받아 전처럼 잘살게 되었습니다.
기막히게 비참했던 자기의 팔자를 비관하여 목숨까지 포기하고자 했던 거지는 '기꺼이 받겠다.'는 자세로 살기 시작하여, 한 포대의 쓰레기를 찾아 먹기도 전에 나머지 일곱 포대의 업을 녹여 버린 것입니다.
현재 내가 처한 현실이 힘들고 괴롭더라도 '기꺼이 받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참고 나아가면 나쁜 업이 더 빨리 소멸 됩니다. 그야말로 '기꺼이 받겠다.'는 자세가 '나'의 몸가짐과 말과 생각을 바꾸어 놓고 업장을 녹이는 것입니다.
삶이나, 일이나, 업만이 아닙니다. 사람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껄끄러운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가 좋지 않은 남편과 아내, 참으로 잘 통하지 않는 자식과 부모로 있을 때에도, '밉다⋅싫다⋅헤어지자⋅벗어나자'는 생각을 돌려 '지금의 이 인연을 받아들이고 기꺼이 받겠다.'고 작정하면, 서로의 관계가 예상외로 빨리 좋아집니다.
결코 잊지 마십시오. 내가 행복하거나 불행한 '지금 이 자리'는 果의 자리입니다. 곧 과보를 받고 있는 지금 이 자리요, 과보를 받고 있기 때문에 괴롭기도 하고 즐겁기도 한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이 과보의 자리만은 아닙니다. 과보를 받음과 동시에 새로운 인因을 심는 자리입니다. 새로운 씨를 심는 자리입니다. 따라서, 과보를 받고 있는 지금 이 자리에서 어떠한 씨를 심느냐에 따라 미래에 거둘 결실이 달라집니다.
또, 果를 받으면서 새로운 因을 심는 지금은 동시에 緣의 자리가 되기도 합니다. 이미 심어놓은 과거의 여러 因들이 발아를 하고 성장하는데 영향을 미치는 환경緣이 되기도 하고, 앞으로 지을 업이나 앞으로 받게 될 과보들의 강도를 조절하는 緣이 되기도 합니다.
곧 과거에 마음의 먹구름을 일으켜 아주 나쁜 인을 심고 업을 지었을지라도, 지금 바른 마음으로 바르게 실천하며 살고 있으면 과거의 업이 해를 끼치지를 못합니다. 오히려 밝고 바른 지금의 삶 때문에 마음의 하늘이 밝아져 과거에 형성된 먹구름이 '나'를 해칠 수 없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