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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화 감상

[스크랩] 조선시대회화 이경윤작(1545년-1611)

작성자dmsehdxotlr|작성시간10.03.01|조회수282 목록 댓글 0

 

 

 

 

전 이경윤작품 (사호위기)장지 42센치 x 42센치(개인소장)

 

 

 

 

이경윤(李慶胤. 1545-1611)

이경윤은 김시와 더불어 우리 옛 그림에 있어 그 이전과 구별되는 독자적 인 분명한

시대화풍을 이룩했다 이른바 조선 중기 화단의 화풍으로 지칭이 가능케 한 선구적인

문인화가이다 16세기 후반에서 17세기 초에 활약한 화가 중 전칭작 이나 방작의 수 또한

상대적으로 많다 결국 그 화가의 영향력 및 화단에서의 위상을 의미한다

묵죽(墨竹)에 있어서는 조선 중기 화단의 서두인 16세기 후반까지 시대가 올라가는

화가로 종실출신 이정(李霆.1554-1626)이 단연 전래작이 많다 조선 묵죽의 정형을

이룩한 그이고 보면 성가에 걸 맞는 사항이기도 하다 반면에 묵죽이나 묵매의 범주를

제외하고 그에게서 산수나 인물화의 유작은 매우 희귀하다 그와 더불어 산수화나

산수인물화에 있어서는 전칭을 포함해 유작이 많은 화가가 종실출신 이경윤이다

대작도 없지 않으나 소품으로 구성된 기존의 알려진 화첩의 존재가 이를 대변한다

즐겨 그린 분야의 차이에서 연유한 것이나 그른 이정과 달리 영모화도 남기고 있다

김시와 이경윤 집안은 조선 중기에 있어 그림을 즐긴 이름 난 가문이다 조선 중기

화풍의 정형의 형성과 특징은 김시와 이경윤에 의해 선명해지니 이들에 의해 이른바

조선 중기 절파계 산수가 성립된다

이경윤에 대한 평가는 윤두서(尹斗緖.1688-1715)가 화단에서 언급했고 현존 그림의

예에서도 확인되듯 강건하고 긴요하며 아담하고 깨끗하나 그 규모가 너무 좁음이 특징이자

단점으로 지적된다 오늘날 소품이 주로 전래되듯 이는 대작이 많지 않음을 지적한 것으로

도 생각된다

오늘날 전하는 그의 유작은 결코 적지 않은 양이다 이들 가운데는 족자 형태의 대작.

일괄 화첩 전래 사유가 추정되는 유작 전래사유는 명확하지 않으나 화격이 높은 것

방작으로 생각되는 유사한 소재의 전칭작 등 상당수에 이른다

유작 가운데 대경산수인물도 범주의 대작으론 3점이 특별전 등을 통해 알려져 있다

개인소장으로(사호위기)도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산수도)가 이동주 선생의

(한국회화소사)에 1972년 초판에는(사호위기)만이 1982년 개정판에 비로소이 (산수도)

까지 함께 게재 되었다(pp170-171.pls.54.55) 전자는 지금까지 알려진 이경윤의 그림 중

가장크다(개인소장)

아울러 고려대 박물관에 소장된 10점으로 된 일련의 그림은 내용 가운데(탁족)등 이화첩

과 공통 주제도 있다 먹만으로 비단에 그린 것으로 용묵법이나 용필법이 돋보이는 그

림들로 비록 화면이나 화첩 내 어디에도 화가를 알려주는 관인은 전혀 없다 그러나

기량가 격조가 돋보이는 그림들로 이경윤 진작으로 특별전에 여러차례 출품되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1972년 개최한 한국회하-한국명화근 5백년전(1972.11.14-12.22)

에 고사탁족 과 지아나문답이 공개되었다 이어 그 이듬해 연 한국미술2천년 기획전에

역시(고사탁족)이 이경윤의 그림으로 출품된 이후 또한 고려대학교 박물관 주최

미국 여러대학 순회전시에서도 전칭(傳稱) 아닌 진작으로 소개 되었다

 

 

전 이경윤작품 (개인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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