푯대를 향하여(빌 3 : 12 - 16)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양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늘 과거를 바라보고 살아가는 삶의 양식이고 또 하나는 미래를 바라보고 살아가는 소위 미래지향적 삶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삶의 양식은 나이와는 크게 상관이 없습니다. 나이는 젊다 할지라도 더 이상 꿈을 꾸지 않고 비전을 상실했다면 이 사람의 삶은 과거 지향적인 삶이 되는 것이죠. 그러나 비록 나이가 많은 분이라 할지라도 아직도 꿈을 꾸고 비전을 바라보고, 미래를 향해서 나아가고 있다면 이 분은 미래지향적인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인 빌립보서 3장은 바울이 로마의 옥중에서 쓴 옥중 서신입니다. 바울을 연구하고 있는 학자들은 대개 바울이 A. D 1 - 2년에 태어났을 것 이라고 추정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태어나고 나서 약 4 - 5년 지나고 나서 바울이 태어났다는 것이죠. 그리고 바울은 A. D 68년경에 죽었을 것으로 봅니다. 그런데 이 빌립보서가 기록된 해가 A. D 61년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빌립보서를 썼을 때 나이는 60세 전후였을 것입니다. 오늘날과 달리 옛날에는 수명이 짧았기 때문에 바울이 60세가 되었을 때는 그 당시로서는 늙은 나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빌립보서를 읽노라면 바울의 마음속에는 아직도 벅찬 비전이 꿈틀거리고 그의 눈에는 생동하는 미래가 펼쳐지고 있음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빌립보서를 깊이 묵상하다 보면, 하나님께서 왜 바울을 그토록 귀하게 사용하셨는가를 짐작할 수 있어요. 따라서 오늘 우리는 바울의 이러한 미래지향적인 삶을 통해서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배우고자 합니다. 여러분, 미래지향적인 삶, 푯대를 향하여 나아가는 삶을 위해서는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할까요?
첫째는 현재에 대한 건설적이고 창조적인 비판 혹은 불만을 가져야 합니다.
12절의 말씀을 같이 한번 읽겠습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쫓아가노라” 먼저 전제할 것은 이 말씀은 바울의 구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이 말씀에 근거해서 바울이 구원에 대한 확신이 부족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것은 완전히 잘못 읽은 것입니다. 바울은 구원에 대한 분명한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바울이 말한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데요, 먼저는 신앙적인 성숙을 위한 그의 노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10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여기에서 중요한 단어는 ‘알려 하여’입니다. 바울은 알고 싶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이미 받았지만,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는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 더욱 깊이 알고 싶은 열망과 사모함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이 성숙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는 과정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의 깊이와 넓이와 높이와 길이를 점차 더 깊고 자세하게 알아 가는 과정 이것이 바로 신앙의 과정이요, 성숙의 과정입니다. 뿐만 아니라 부활의 권능과 고난에 참여하는 것을 알고 싶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주님의 부활의 권능과 고난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하나님이 그에게 위임하신 비전을 알고자 간절히 소망했습니다. 지금까지 해 온 일에 비하면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한 기대와 소망이 너무나 컸다는 것이죠. 한 마디로 바울은 “하나님, 나는 아직도 멀었습니다. 나를 더욱 성숙하게 하시고, 주님의 부활과 고난에 참여하게 하여 주옵소서!”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처럼 지금 자신의 현재에 대해서 건설적인 불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항상 부족하고 덜 되었다는 겸손함으로 미래의 소망을 키워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인들에게는 이와 같이 건설적이고 창조적인 비판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현재에 안주해 버리고, 이만 하면 됐다고 자신해 버리면 미래를 열어갈 수 없어요. 교회만이 아니라 세상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재에 대해서 무언가 창조적이고 건설적인 불만과 비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 새로운 발명과 연구가 이루어 질 수 있는 것입니다.
유명한 월트 디즈니의 이야기가 있지 않습니까? 월트 디즈니가 어린 딸의 손을 잡고 동네 공원을 갔습니다. 그런데 동네 공원은 매우 지저분하고 위험하기조차 했습니다. 그의 마음에 강력한 불만이 일어났습니다. “이정도 밖에 공원을 만들 수 없는가?” 월트 디즈니의 마음속에 일어난 이 불만이 창조적인 미래를 꿈꾸게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생각했습니다. “과학적인 탐구도 할 수 있고 자연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공원에서 미래의 꿈을 꿀 수 있는 어린이들만의 천국을 만들 수는 없을까?” 이렇게 해서 태어난 것이 바로 그 유명한 ‘디즈니랜드’입니다. 우리나라 아이들도 좋아하는 롯데월드니 에버랜드니 하는 것들이 다 디즈니랜드를 본 따 만든 것 아닙니까? 한 사람의 건설적이고 창조적인 비판과 반성으로 인해 이처럼 놀라운 변화가 생겨난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다면 건설적이고 창조적인 불만의 반대는 뭘까요? 그것은 현실에 대한 안주입니다. ‘뭐 이만하면 되었지!’ ‘이정도면 뭐 괜찮지 않아?’ 이런 생각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것이 얼마나 위험한 생각인 줄 아십니까? 이렇게 생각하는 그 순간부터 인생은 정말 늙는 것입니다. 나이를 먹어야만 늙는 것이 아니에요. 현실에 대해 안주하고 미래에 대한 비전을 포기하는 그 순간 인생은 늙고, 후퇴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개인이나 공동체가 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건설적이고 창조적인 불만을 갖아야 합니다. 그래야 푯대를 향하여 나갈 수 있습니다. 불만을 위한 불만, 혹은 불평을 위한 불평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오히려 미래를 향해 나가려는 사람의 발목을 잡고, 과거로 되돌아가게 합니다. 원하기는 우리 살림교회 모든 성도들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푯대를 향해 나아가려는 건설적이고 창조적인 불만을 가지고 오늘 힘차게 앞으로 나아 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두 번째, 푯대를 향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미래에 대한 확고한 목표의식이 필요합니다.
14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그렇습니다. 푯대를 향하여, 바울은 예수님을 만난 후 그리스도 안에서 분명한 푯대, 즉 목표가 설정되었습니다. 바로 그 푯대를 향해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푯대는 다른 말로하면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 즉 소명이라는 것이죠. 바울은 그 소명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의 인생이 그 소명 앞에 순종하며 인생을 다 살고 주님 앞에 섰을 때, 그에게 주어진 상급을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저를 부르실 때는, 단순히 구원을 위해서만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죄 사함을 얻고 구원 받은 것은 놀라운 일이지만, 그것은 사실 출발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궁극적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소명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죄를 용서하시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신 것은 이제 여러분과 저의 인생을 향한 놀라운 부르심, 즉 소명을 이루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그 소명에 근거해서 인생의 목표를 정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중요한 일입니다.
여러분, 인생의 소명을 성취하는 일, 그리고 그 목표를 바라보고 달려가는 일은 아무도 대신 할 수 없는 특별한 일입니다. 소명은 하나님이 나에게 특별하게 맡기신 일, 즉 내게 주신 사명입니다. 물론 신앙인 모두에게 주신 전도와 같이 일반적인 소명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 나를 부르신 주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소명이 있습니다. 그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위해 인생을 사는 것은 정말 내가 이 땅에 존재하는 존재의 이유요, 목적입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은 사업을 하면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교육계에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전도라는 것이 우리 모두에게 주어지는 보편적 소명이지만, 그 보편적 소명의 커다란 테두리 안에서 특별히 나에게 주신 나만의 은사, 재능, 삶의 조건을 통해서 나만이 추구해야 할 삶의 목표를 설정하는 일은 정말 중요해요. 그래서 분명하고도 확고한 인생의 목표를 설정하는 것입니다. 이 시간 스스로 질문해 보십시오. “내 인생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세 번째, 미래 지향적인 삶, 푯대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목표에 집중해야 합니다.
여러분, 누구나 인생의 목표를 정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 인생의 목표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소수의 사람들만이 어느 정도 목표를 실행합니다. 이런 사람들을 세상은 성공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왜 그럴까요? 많은 사람들이 목표를 설정하고 인생을 살지만, 목표를 이루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어디에 차이가 있습니까? 차이는 간단하다고 생각합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목표에 헌신하지 않기 때문에 성공하지 못합니다. 목표에 집중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성공하는 사람들을 살펴보십시오. 그들은 목표에 집중한 사람들입니다. 본문13절의 바울 사도의 고백을 볼까요?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바울은 목표를 설정한 다음에 이렇게 고백 합니다. 이제는 내가 ‘오직 한 일’, 여기서 오직 한 일이라는 단어를 주목해 보십시오. 바울은 이제 그의 삶이 오직 한 가지 일, 정해진 목표에 집중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바라보며 달려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14절에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할렐루야! 바울은 설정한 목표, 오직 한 가지 일을 위해 강력한 집중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직 그 일만을 생각하고, 그 일만을 하고, 그 일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어떤 선생님, 학생들에게 숙제를 내어주었는데, 학생들의 창조적 모험심을 실험하기 위한 흥미로운 숙제였습니다. “어린이 여러분, 어떤 사람이 호랑이에게 쫓기게 되었어요. 한참 쫓겨서 달려가다가 보니까 낭떠러지 앞에 왔습니다. 앞에는 낭떠러지여서 더 이상 갈 수가 없습니다. 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호랑이가 입을 크게 벌리고 달려 들 기세입니다. 자, 여러분, 다가오는 호랑이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러자 아이들이 제각각 재미나는 대답을 많이 합니다. 어떤 아이는 ‘째려본다.’ ‘기 싸움을 한다.’ 또 어떤 아이는 ‘죽는 척 한다’, 또 어떤 아이는 ‘호랑이가 덮치는 순간 살짝 피한다. 그래서 호랑이를 낭떠러지에 떨어지게 한다.’ 등등, 많은 대답을 했습니다. 그런데 유독 선생님 마음에 합격한 답안이 하나 있었는데, 대답이 뭐냐 하면, “꿈을 깬다.”입니다. 여러분, 아무리 극한 위기 앞에 서 있어도 깊이 집중해서 생각하면, 돌파할 수 있는 길은 반드시 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뒤로 물러날 수 없습니다.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에요. 이제는 앞을 향해 전진할 따름입니다.
바울 사도의 고백 속에는 바로 이러한 신앙인의 기계가 잘 나타나 있지 않습니까? 16절입니다.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할렐루야! 그렇습니다.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내 현재의 자리를 점검한 다음에 그 목표를 향해서 그대로 계속해서 달려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오스 기니스의 <소명>(홍병룡역, IVP)이라는 책에 보면, 저자인 오스 기니스는 역사상 처음으로 세계를 일주한 위대한 모험가 영웅 마젤란의 생애를 소개합니다. 거기에 보면, 마젤란이 이처럼 위대한 역사를 이루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시련과 난관을 돌파해야만 했는지 모릅니다. 항해지도의 잘못된 판독으로 2년으로 계획했던 항해는 3년 이상 걸립니다. 식량이 다 고갈되었습니다. 그들이 쓰고 있던 모든 배의 장비가 마모되고 파손되는 어려움을 겪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스페인 몇몇 귀족들이 선상에서 반란을 일으킵니다. 그야말로 사면초가의 어려움에 직면합니다. 그러나 이 숱한 어려움을 겪으면서 마젤란 선장은 한마디의 문장만을 승객들과 선원들에게 되풀이해서 외칩니다. 그것은 “계속 항해하라!”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항해하라!”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같은 말로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이제 목표를 설정했으니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아프리카 선교의 아버지 데이비드 리빙스턴이 노년에 병을 얻어서 잠시 쉬기 위해 안식년을 맞아 영국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때 누군가가 리빙스턴에게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리빙스턴 박사님, 이제 어디로 가실 겁니까?” 그러자 리빙스턴은 매우 의미심장한 대답을 하게 됩니다. “앞으로 나아가는 곳이면 어디든 갈 것입니다.” 그는 결코 뒤를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그의 인생은 주님의 복음으로 새롭게 살아나는 생명의 미래를 바라보았고, 그 미래를 향해 자신의 생을 불태우려 한 것입니다. 역사는 바로 이런 사람들에 의해서 새로운 새벽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는 생명을 살리는 교회라는 표어를 가지고 항해를 출발한 지 벌써 2년을 맞이했습니다. 이제는 뒤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맡겨주신 복음전파의 사명을 붙잡고, 그 푯대를 향하여 위에서 부르신 부르심의 상급을 위하여 앞으로 나아가는 아름다운 주님의 공동체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