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1) 이진구의 삶과 죽음의 언저리에서 조 흥 제 1 인사말 하나를 가지고 그 나라의 사정이나 국민성을 운위하려는 것은 억지일지도 모른다. 일찍이 시인 뮛새는 어느 말에나 맞는 안장과도 같다고 해서 속담이나 격언을 싫어했다. 하기는 코에 걸면 코걸이요, 귀에 걸면 귀걸이식의 속담이나 격언도 많기는 하다. 이런 논법을 적용한다면 인사말을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한다는 것은 한낱 재담으로서의 값어치밖엔 쓸모가 없을 것일 게다. 어떤 이는 ‘굿 모오닝’이라는 아침 인사는 좋은 날씨의 혜택을 많이 받지 못한 고장에서 사는 영국인들다운 인사말이요, ‘오하이오 고자이마스(일찍 나오셨습니다)’라는 인사말은 일본인의 부지런한 생활습성을 잘 나타낸다고 한다. 자기가 제일 일찍 일어난 줄 알았더니 저 사람 일어나 나왔구나 하는 생각이 그대로 아침 인사가 되었을 터라는 것이다. 그리고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진지 잡수셨습니까?’ 따위의 인사말도 우리나라다운 현상이라고 재미있어 한다. 따는 위의 것들 앞에 각각 ‘도둑이 많은데, 물건이나 안 물리시고, 춥지 않게, 연탄내나 안 마시시고, 다솔식구 좁은 방에서, 쌀값이 비싼데, 한 술 죽으로나마’ 등등의 말을 귀 담아 보면 제법 사실적인 인사말이기도 하다. 재담에 그치는 장난이라 해도 확실히 흥미있는 재담이긴 하다. 하여간 아침에 일어나 무심코 남에게 하는 인사말이 전혀 맹랑할 이치는 없음직하다. 법으로 제정된 것도 아니요, 저절로 누구의 입에서나 같은 말이 두고두고 되풀이 되는 동안에 고정화했을 터이고 보면, 이것이 어느 공통된 심정의 장난(?)이 아니라고 장담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더구나 나라에 따라서 대개는 서로 다르니, 수수께끼의 절반은 풀리는 셈이 아닐까? 독일인은 인생을 철학하고, 프랑스인은 인생을 산다는 말이 있다. 우리는 누구나 살고 있으면서도 정말 살 줄 아는 사람을 만나기는 좀처럼 힘들다. 살 줄 안다는 것은 그만큼 어렵다는 증좌일 게다. 어려운 것이라면 우리는 흔히 철학을 꼽는다 과연 철학, 또는 철학한다는 것은 하나의 고행이라고 볼 수 있을 만큼 어려운 일이다. 젊었거나 늙었거나 얼굴 양미간에 ‘川’자 깊이 새겨진, 괴벽스럽고, 꾀까다로운, 사랑하라면 10리만큼 도망갈, 그러면서도 무언가 신비에 싸인, 무턱대고 존경을 하는 것이 도리일 듯싶어지는, 많은 초상화들 이름 아래 그것은 확증된 것으로 접어 두어야 한다. 그러나 철학한다는 것은 명제를 만들고, 이를 풀어 나가는 행위이다. 따라서 철학에는 항상 뚜렷한 대상과 해답이 있을 수 있다. 이에 반해서, 산다는 것은 스스로 대상 그 자체가 되는 것이다. 동시에 주체가 되고, 객체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제니 해답이니의 분계선조차 있을 수 없다. 어렵기로 말하면 산다는 것 위에 설만한 것은 아마 없을 듯싶다. 프랑스 문화 또는 프랑스인을 이해하기 어려운 까닭이 여기에 있는 것 같다. 프랑스 문화와 프랑스인은 항상, 그리고 어디에서나 오해, 곡해, 또는 왜곡의 피해를 받고 있다. 산다는 것에 대한 해석이 영원히 구구하듯이. 우연이랄지, 과연이랄지, 불인들의 아침 인사는 ‘봉 쥬우르’이다. ‘봉 쥬우르’란 ‘좋은(행복한, 즐거운, 유쾌한)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라는 뜻으로 볼 수 있는 말이다. 불인들은 눈만 뜨면 ‘오늘 하루를 또 행복하게(즐겁게, 유쾌하게) 살아야지’다짐부터 하고, 만나는 사람에게도 우선 그것부터 깨우쳐 온 모양이다. 알뜰하게도, 악착같이도 살려고 드는 백성들이다. ‘사는 즐거움’을 불인들처럼 잘근잘근 씹어가며 살고 있는 국민은 적다고한다. 어느 일본의 프랑스 여행기에 아래와 같은 구절이 있다— “(파리에서는)자동차는 신날만큼 빠른 속도로 달리고들 있다. 이에 반해서 보행자들은 모두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걷고 있다. 그리고 젊은 남녀의 아베크는 약속이라도 한듯이 으레히 손에 손을 잡고 꿈꾸듯이 걷는다. 에펠탑 아래에서 한 쌍의 젊은 학생이 뒤로 서로 엇걸어 잡고 (남자의 바른 손과 여자의 왼 손을), 발을 맞추어 걷고 있는 모습은 참으로 음악의 흐름과도 같았다. 트로카데로의 공원 안 오솔길에서 서로의 의자를 맞붙여 놓고 키스를 하고 있는 젊은 남녀를 보았는데, 그야말로 주위에 사람이야 있거나 말거나라는 태도였다. 근처에는 노인이랑 아이들이 있었건만, 누구 한 사람 그쪽을 보는 이는 없었다. 두 연인은 서로 입술을 갖다 대고, 가만가만히 키스의 맛을 즐기며 도취한 듯싶어 보였다. 인생의 美酒를 알뜰살뜰히 마시는 일에 있어선 프랑스인은 참으로 열심스럽기도 하구나. 그리고 그 솜씨라니, 미끈하고 아름답기도 하다.” 나도 이러한 정경은 흔히 보았지만, 직접 목도할 수 있기 이전에도 남들의 얘기나 글, 또는 그림을 통해 상상 속에서는 이미 눈 익은 광경이며, 또 무슨 영화에서였든가, 큰 길가에서 젊은 남녀가 포옹하고 있는데, 살수차가 마침 지나가는 바람에 물을 흠뻑 뒤집어 쓰면서도 아랑곳 않고 여전히 붙어 서 있는 것을 보고 감탄했던 일도 있다. 불인들의 애무행위가 간곡하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며 좋아도 소 닭 보듯 하는 것이 미덕으로 지켜져 온 우리나라 사람들의 부러움 섞인 미움이랄까 비웃음이랄까를 사고 있는 사실이기도 하다. 사랑 표현의 솔직하고 자연스런 수단이라곤 모르니, 필연코 그것이 속으로 곯고 썩어서 짐승 같은 마음의 움이 나고 싹이 터 있어도, 겉으로 점잖음만 흐르지 않는 것은 허물이 될 수 없고, 그저 도취되어 있을 뿐, 따로이 야수 같은 마음도, 천사 같은 마음도 깃들일 여유조차 없더라도, 행동으로 나타난 애무나 포옹이 꾸중을 도맡을 수밖에 없는 노릇이긴 하다. ‘음악의 흐름’ 같다고 보아 주는 눈은 우리 주변에는 드물 것 같다. 산다는 것은, 특히 사랑한다는 것은 죄가 많은 것인가 보다. 사는 즐거움 속엔 먹는 재미가 또한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먹기 위해 사느냐, 살기 위해 먹느냐는 어지간히 지각이 있는 사람들조차도 가끔 혼동하는 모양이더라. ‘오늘도 재미있게 살자’는 불인들이 먹는 일에 범연할 리가 없다. 그들의 식도락은 유명하다. 맛도 따지거니와 양도 어지간하다. 아침을 잘 먹으려 드는 우리나라 사람과 달라서, 하루에 점심을 제일 잘 먹고 있는 그들은, 여북하면 직장에서도 2시간이라는 점심시간을 주기로 되어 있고, 그동안은 일반 가게들도 문을 닫으며, 초등학교 아동들까지도 집에 돌아와 식사를 하고 다시 학교에 간다. 아마 이런 나라에서 이른바 ‘죽 먹기 운동’같은 것을 벌였다가는, 아니 그런 말이라도 끄집어냈다가는 볼만할게다. 이것도 별로 좋은 소리 듣기 어려운 생태의 하나다. 더구나 바로 이웃에 수수한 식생활로 나날이 번영일로를 달리는 독일이 있고, 바다 건너라지만 그야말로 지호지간인 영국인의 알뜰한 식탁이 늘 대조되고 있지 않은가? 멀리 떨어진 우리나라에서도 이름 높은 불란서 요리에 코를 박고 있는 바로 그 사람들에게까지 별로 고마운 평은 안 나오는 형편이다. 입은 맛과 말을 즐기고, 머리는 철학을 일삼자는 것인가? 먹기 위해 일해야 할 시간을 줄여가며 집에까지 와서 배불리 먹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도 반드시 잘하는 것은 아니지마는, 집의 식생활에 대해서 너무나 대범한 나머지, 돌아와서 먹어야 할 아무런 애착도 일찍부터 못 가져 본 터라 외식이 오리혀 주가 되는 생활에 이미 아무런 거리낌도 없게 된 사람들의 행각도 다 잡아져야 할 것이라고 본다. 아이들은 앓아서 자리에 눕게 되기 전까지는 한사코 밖에 나가서 산다. 그들은 자기의 생명을 터지도록 살아야 한다. 그 긴장이 조금만 풀려도 당장에 심심해 못 견디어 한다. 참으로 아이들은 산다는 것의 상징이다. 불인들은 어른들도 밖에서 살기를 즐긴다. 햇볕을 즐기고, 공원을 즐기고, 거리의 테라스를 즐기고, 산책을 즐기고, 남들과의 담소를 즐긴다. 틈만 나면 찾아드는 공원이기에 아름답게 가꾸어지고, 벤치는 안락하게 만들고, 바라보고 거닐고 하며 살아야 하는 곳이기에 길을 풍치 있고 깨끗이 하고, 나무를 심어 가꾸고, 다시 그 길 굽이굽이 걸음 멈추어지는 곳에 기념탑도 세우고, 분수도 만들고, 그 누군가의 입상도 다듬어 놓고, 이들 아래에서 주고받을 말이기에 항상 정화하고 우아한 화법을 궁리해야 하는 그들이다. 파리의 아름다움은 호사가 아니다. 프랑스의 형상화된 역사다. 불인들 자신이다. 모든 불인들의 향수가 그리로 집중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것은 설혹 아름다운 도시가 아니더라도 부러움 받을 도시이다. 거기다가 아름답기까지 하다니, 인생을 살아 온 사람들만이 차지할 수 있는 과보가 아니고 무엇이랴. ‘봉 쥬우르—즐거운 하루’부터 찾으며, 저마다 자기의 행복의 길을 자기류의 방향과 방식으로 모색하는 사람들이 개인주의에 투철한 것은 필연적인 귀결이다. 이 개인주의가 또한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이 사는, 개성도 없고 자발성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관습의 조종를 따라 꼭두각시놀음을 하는, 정신적인 제복을 입은 수많은 모범인간들에게는 파계에 가까운 위험교리이다. 공원이라면 모든 사람들이 모여 노는 곳인데, 거기서 포옹을 자행하는 남녀를 못본 체 하다니 얼마나 불건전한 개인주의 사회냐고 혀를 차는, 남의 장기에 따귀를 맞아가면서까지 훈수를 해야 시원한, 오지랖 넓은 사람들을 귀찮게 여기면서도, 그러면서도 인기투표는 대개 그쪽으로 던지는 것이 아직도 우주적인 현상이다. 개인주의는 아직도 고독한 것이다. 그러나 이 고독한 주의가 만약에 변절한다면 그 다음엔 우리들 하나하나가 그 고독을 가로맡게 될 것이다. 아직까지는 자기 생활에 간섭을 받을 것도 단연 거부하는 대신 남의 생활에도 아예 참석하지 않는 것을 생리로 살고 있는 프랑스인들이 욕설과 고독을 일신에 짊어져 주고들 있다. 죽은 사람이 일 저지르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일은 산 사람이 저지르게 마련이다. 사는 데는 과오와 실수가 으레히 따르는 법이다. 사는 즐거움에 충실한 불인들은 필연적으로 많은 실수들도 범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나는 그들을 생각하면 팔팔 뛰는 생기있는 물고기들을 연상할 때가 많다. 능글맞은 낚시에 걸리고 마는 물고기들 말이다. 모사는 뒤에 앉아 조종하고, 용사는 목숨 껏 싸우다가 용맹을 다한데서 오는 만족감을 안은 채 전사하게 마련이다. 그리고 이들이 전취한 영예와 칭송의 전리품은 모사가 관리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이것이 인생’이라고 께끔스럽고 태연한 낯빛을 잃지 않는다. 인생의 즐거움을 아는 그들은 또한 인생의 현실 앞에 천진스럽게 체념할 줄 아는 것이다. 한 여름을 문드러지도록 살고 난 다음 후회없이 낙옆져 가는 나뭇잎들처럼. 오늘도 그들은 ‘봉 쥬루르’로 발을 내어 딛을 것이다. 2 인생 50대면 계절로 치면 늦가을일게다. 푸른 잎들이 변색하고 메마르며 연방 떨어져 바람따라 휘날린다. 나의 주위에서 내 또래의 친구들도 곧잘 쓰러져 간다. 가을이 유달리 뼈속으로 스며드는 느낌의 요즈음이다. 그래서일까. 죽음의 영상이 자주 눈에 아물거리고, 그럴 때면 이런 기원을 하곤 한다— 예로부터 ‘鳥之將死 其鳴悲 人之將死 其言善’이란 말이 있다. 새가 죽을 때는 구슬피 울고, 사람이 죽을 때는 착한 말을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뒤집으면, 죽을 때에 가서도 착한 말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은 사람이 아니라는 말도 되지 않을까? 그야 말이 아주 없이 죽어가는 사람도 있고, 가령 19세기 시인 알프레드 드 비니 같은 이는 숫제 늑대를 본 따서 묵묵히 죽으라고 타이르고 있기도 하다. 침묵의 값은 또 따로 얘기가 되어야 할 줄로 알지만, 문제는 한 마디라도 말을 남기게 되는 경우에 있다. 태평양 전쟁 당시까지 일본의 ‘皇軍’장병들은 죽을 때엔 반드시 ‘천왕폐하만세’를 불렀다던가. 적어도 그렇게 선전했고, 선생들이 교단에서까지 그렇게 가르쳤으니, 그들이 전선 현장에서 반증을 잡아 볼 기회가 없었던 나로서는 그랬었거니 여길 수밖에는 없다. 다만, 6‧25 전란 때 불군과 함께 있어가며 내가 본 바로는, 그들의 대부분은 죽을 때 ‘엄마!’를 찾더라. 그렇지 않으면 애인의 이름을 부르거나, 또는 간혹 나이 지긋한 사람은 어린것들의 이름을 섬기기도 하더라. 황군 병사들과는 좋은 대조였다. 만들어진 인간과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인간과의 본보기라고나 하겠다. 역사상 그 행적을 보고, 또는 그 작품을 통해서 우리가 우러러 보는 사람들의 최후는 그럼 어떠했을까? 볼테에르는 임종에 이르러 “자아 이제 마지막 고비입니다. 선생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믿으십니까?”라고 묻는 신부에게 “그렇게 예수 그르스도, 예수 그리스도 하지 말고 조용히 죽게 해 주시오.”했다. 또 뽈 발레리는 “신자들은 죽음에 임해서 그 신앙의 도움을 받을까?”라고 묻는 그의 친구에게 “천만에, 그들이야말로 공포를 느낀다메. 그들은 악마나 신의 큰 낫(鐮)을 두려워하지. 하지만 나는 지금도 나의 근본사상에 한결같이 충실하이. 나에게는 벽만 있으면 충분해.”라고 대답했다. 예수의 그 유명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에 비해 얼마나 자신만만한 말들이냐! 또 다른 황군의 모습이 눈앞에 어리는 것 같다. 그러나 좋은 말, 착한 말, 멋 잇는 말들이 역시 더 많다— 데카르트—자아, 너 내 영혼아, 너는 오랜 동안 갇혀 있었다. 이제야말로 감옥을, 이 육체의 감옥을 나와서 육체의 번거로움을 벗어나야 한다. 즐겁게 그리고 용감하게 이 분리를 감내해 나가야 한다. 파스칼—신이여, 부디 저를 저버리지 마소서! 루소—(자기 아내를 향해서)낙담 말아요. 보구료, 하늘이 얼마나 맑게 개였소. 나는 저기로 가는 거라우. 괴에테—덧문을 열어. 빛을 좀 더 많은 빛을! 빅토르 위고—여기 낯과 밤이 싸우고 있다 뒤세—자게 되는구나, 겨우 자게 돼! 보오들레에르—달은 아름답구나! 톨스토이—나는 진실을 사랑한다. 무척 진실을 사랑하고 있어! 모파상—어둡다, 아아, 어두워! 아나톨 프랑스—엄마!……등등. 그런가 하면 브라암스는 죽기 직전에 한 잔의 포도주를 다 마시고는, ‘음,이건 됐어!’했더란다. 그리고 체흡도 의사가 처방한 샴페인 컵을 아내가 들어주자, “오랫동안 샴페인을 안 마셨었구나!”라고 감회 깊이 말했다고 전해진다. 나는 죽을 때 무슨 말로 세상을 하직할까? 궁금한 일이다. 그리고 혹 침묵으로 끝나고 만다면 모르되, 만약에 무어라고 한 마디라도 한다면, 해 놓고도 영영 나만은 다시는 알지 못한 채로 되고 말게 마련일터이니 더욱 궁금한 노릇이다. 그렇다고 이거야말로 물어 보아야 아무 소용없는 질문이다. 원고를 써서 미리 환하게 외우고 있어본다 해도, 그때에 가서는 필시 구름을 잡는거나 마찬가지 노력으로 그치고 말 터이고, 초인의 의지력을 가지고, 반드시 이 말을 하고 가리라고 단단히 벼르고 있어 본다 해도, 그것은 한낱 사상의 누각으로 끝날 얘기이다. 이왕이면 좋은 말, 멋진 말 한 마디쯤 마지막으로 세상에 던지고 갔으면 하는 것은 혹 허영으로 규정하더라도 그다지 눈살 찌푸려지는 허영은 아닐게다. 그러나 나는 그런 허영까지도 않았다. 내가 죽을 때에 무슨 말을 할 것인지 궁금해 함은 그저 남의 얘기나, 또는 하나의 현상에 대한 호기심 비슷한 것일 따름인 것 같다. 그러나 되도록 험하고, 사납고, 거칠고, 더구나 모진 말은 세상에 더 해 놓고 싶지 않기에, ‘人之將死 其言善’을 믿고, 선한 마지막 말을 위해 평소 다만 ‘사람’되는 길을 모색하고 있을 따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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