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 이창배의 낭만은 구름처럼
조 흥 제
—5월의 禮讚—
5월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달이다. 이 달을 봄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겠고 여름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봄에 대한 미련이 하도 많아서 나는 이 달을 차라리 봄이라고 부르고 싶다. 생각해 보라. 서울에서 이 달을 빼놓고 과연 봄다운 봄을 맛볼 수 있는 달이 있는가. 4월까지만 해도 하루 이틀 봄기운이 감도는가 하다가는 갑자기 눈발까지 휘날리는 영하의 기온이 몰아닥쳐 사람들은 계절의 순환을 의심할 정도가 되고, 찌푸렸다 풀렸다 하는 날씨에 한번도 마음을 풀어 놀만한 여유가 없었다.
그런가 하면 이 달이 지나고 6월이 되면 갑자기 날씨가 더워져서 온 몸이 노곤하여 자연의 변화나 계절의 아름다움을 즐길만한 여유가 없고 심신의 피로에 짜증만 느끼게 되며, 해에 다라서는 지루한 장마가 벌써 그 무렵부터 시작되는 수도 있다.
그러나 4월을 지나 5월에 접어들면 엊그제까지 10도 안팎을 오르내리던 기온이 갑자기 20도를 넘어서게 되고 비교적 건조한 기후가 연일 계속되어 쾌적한 날씨를 맞이하게 된다. 이때쯤 되면 그동안 변덕스런 날씨에 언제 피었는지 언제 졌는지 채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소위 봄 꽃이라고 하는 진달래 개나리 벚꽃 등은 아주 자취를 감추고, 자연은 어느새 완전히 여름 차림으로 바뀌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날씨가 아무리 시샘을 하고 장난을 쳐도 계절의 순환은 어김없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이와 동시에 우리의 옷차림도 완전히 여름으로 바뀐다. 언제나 계절의 변화는 우리가 옷을 갈아입는 것으로부터 실감하게 된다. 지난 겨울 이래로 우리를 잔뜩 짓누르던 오바나 스웨터 같은 것을 한 가지 한 가지 벗어버리고 가쁜한 여름 옷으로 갈아 입는 기분이란 참 상쾌하다. 두터운 양복과 아래 위로 껴입은 내복 때문에 바람 한 점 드나들지 못하던 온 몸에 산산한 첫 여름의 바람이 불어들면 살과 살이 스치는 감촉, 그리고 살과 옷이 스치는 감촉은 무어라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로 상쾌하다. 사실상 옷속으로 불어드는 바람은 그것이 옷 속으로만 불어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속으로 불어 든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피부로 느끼는 그 가볍고 보드랍고 상쾌한 감촉은 잘 생각해 보면 그것이 마음속에서 느껴지는 감촉이고, 불어 들어온 바람으로 우리의 옷만 부풀은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까지도 부풀게 되니 말이다. 그 부풀은 가슴으로 저 벌판이나 산등성이에 서서 파란 하늘이라도 바라보면 풍선처럼 당장 날아 올라갈 것 같은 기분에 가슴이 부푼다.
5월이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은 그 산산한 바람뿐이 아니다. 다정한 손길처럼 부드럽고 따스하기만 한 햇빛과 온통 대지를 덮는 저 신록이 사뭇 우리를 반하게 하는 것이다. 뜨겁지도 차지도 않은 5월의 햇빛과 엷지도 짙으지도 않은 5월의 신록은 엷게 미소짓는 여인처럼 매력이 있다.
신록은 그 말만 들어도 마음이 밝고 앳되고 청순해짐을 느낀다. 같은 푸르름이라도 4월의 푸름은 너무 야들야들하고 불면 당잔 날아갈 것만 같아 불안하고 경박하다. 반면 7, 8월의 짙은 녹음은 너무 의욕적이어서 당장 그 속에 물들 것만 같아 겁이 나서 싫다. 그에 반하면 5월의 신록은 젊은 여인의 피부처럼 환하고 생기와 희망에 빛나서 그 앞에 서면 우리의 마음까지도 밝고 향기로와지는 것을 느낀다. 신록의 나뭇잎에 5월의 햇살이 비칠 때면 그 눈부신 반사에 거의 현기증을 느낄 지경이 된다. 그것은 신록이 보이는 빛깔 때문만이 아니다. 도리어 향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이 좋으리라. 청순하고 화사한 빛과 감촉도 좋지만 우리를 이토록 취하게 하는 것은 그 향기이다.
신록의 향기는 그것이 온 천지에 충만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나는 숲속이나 벌판을 지날 때 어디서 풍겨오는지 또는 그것이 어떤 종류의 향기인지 확실친 않지만 온통 대기속에 가득 차 있는 일종의 훈향에 취하는 수가 었다. 그럴 때 발을 멈추고 풀잎이나 나뭇잎에 코를 대어 보면 그것이 그저 파릇한 풀 냄새에 불과한데 이렇게 대지가 온통 향기로운 것을 보면, 이 훈향은 새로운 생명체들이 일제히 내뿜는 정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고, 아니면 태양의 열과 푸른 빛과 맑은 공기 속에서 우리가 느끼는 환각인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취할 정도의 향기를 내뿜는 5월의 초목을 모르는 바 아니다. 라일락이 그렇고 등꽃이 그렇고 목련이 그렇고 아카시아가 그렇다. 이 꽃들의 향기는 어찌나 짙은지 흔히 그것이 10리밖까지 미친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라일락이나 등꽃이나 목련은 그다지 널리 보급되어 있지 않지만, 아카시아는 산비탈이나 개울가나 어디서고 볼 수 있을 정도로 흔해서 그 꽃의 향기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니, 이 철에 어디선가 맡았던 그 인상적인 향기에 사람들은 이때가 되면 그 향기와 더불어 누구나 자기 나름의 향수에 젖으리라고 생각한다. 혹은 그 향기 짙은 오솔길을 걸으며 로맨스의 꽃을 피운 추억을 못내 그리워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혹은 그 향기나는 언덕 위에서 철없이 뛰놀던 어린 시절의 추억을 더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 향기로운 초하의 대기를 무르익은 포도주 같다고 표현한 시인이 있다. 이 5월의 대기는 반드시 초목에서 나오는 향기 때문만이 아니라, 공기 그 자체가 오래 묵은 포도주같이 감미롭고 향기로운 것을 느낀다. 녹음 우거진 교외에 나가 공기를 마셔 본 사람이면 그것을 한 말로 감미롭다고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는 것을 느꼈으리라. 우리 인류의 조상 아담과 이브가 살던 에덴동산도 요즈음의 우리의 지상을 덮고 있는 이 향기로운 대기처럼 훈향에 넘쳐 있었다고 밀턴은 ‘실락원’에서 표시하고 있다.
그렇다고 하면 이 5월의 자연은 ‘창세기’의 에덴동산에나 비유함직한 지상의 낙원이다. 이것을 과장이라고 말할 필요는 없다. 그 낙원을 찾아 소아시아까지 갈 것 없이 요즈음 어디고 집 근처 초목이 우거진 동산에 올라가 잠시 그 자연 속에 파묻혀 보라. 햇빛은 아무리 쬐어도 뜨겁지 않을 것이고 몸을 에워싼 초목에선 생명의 정기가 훈향되어 뿜어 나올 것이고, 그곳에 조금만 키가 큰 나무가 있으면 그 가지에 반드시 꾀꼬리나 뻐국새가 와서 지저귈 것이고, 다행히 곁에 시냇물이라도 졸졸 흐르고 있으면 더 말할 나위 없이 어울리는 낙원의 풍경일 것이다. 그런 풍경 속에 잠시 몸을 내 맡기고 있어 보면 과연 가슴엔 생명의 환희가 넘쳐흐를 것이고 머리엔 낭만이 구름처럼 피어오를 것이다. 그래서 나는 5월을 좋아한다. 사람들은 살이있는 것이 기쁘고 고맙고 의욕이 솟구치고 무엇이고 사랑하고 싶고 현실은 다만 분홍빛 안개에 싸여 아득할 따름이다. 이런 순간이 어찌 행복하다고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런 행복감은 비록 순간적인 충동에 불과한 것임을 알고는 있지만 그것이 인간이 바랄 수 있는 최고로 값진 순간임엔 틀림없다. 그것은 분명 5월의 자연이 주는 은총이다. 가을이나 겨울과 같이 우리에게 뇌쇠와 죽음을 생각게 하는 철학적인 계절에 비할 때 우리에게 끝없는 희망과 낭만을 주는 봄과 여름은 얼마나 고마운 계절인가.
아카시아 풍기는 푸른 언덕에 누워 하늘 지나는 흰 구름을 바라보며 잠시 다음과 같은 시구를 생각해 보는 순간은 분명 멋진 순간이리라.
5월이 오면 그땐 온종일 나는
향기 나는 풀섶에 님과 함께 앉아
산들바람 부는 하늘에
흰 구름이 지어 놓은
눈부신 높은 궁전을 바라보련다
그녀는 노래 부르고, 나는 노래 지어주고
아름다운 시를 온종일 읽으련다
풀로 쌓은 집 속에 단둘이 누워 있으면
아—인생은 즐거워라, 6월이 오면. —로버트 브리지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