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5) 이희승의 夏雲은 多奇峰 조 흥 제 —여름과 구름— 데파아트의 쇼우인도우에 나 앉은 해수욕 제구가 어서 가라고 ‘봄’의 등을 밀어 쫓고, 아이스크림 장사는 벌써부터 거리거리에서 까마득한 여름을 불러 쌓더니 기어코 더위가 닥쳐왔다. 사람마다 “에 더워, 에 더워”소리를 치며 부챗살이 모지라져라 흔들어야 시원한 바람은 조금도 일어나지 않는다. 어디를 가야 이 무덥덥한 더위를 떨어 버리고, 서늘한 공기로 부걱부걱 괴어오르는 창자를 훝부셔낼까? 속옷이 척 들러붙는 등어리의 땀을 날려 보낼까? 손쉽게 찾아가는 곳이 氷水가게다. 준치 눈깔 같은 10전짜리 한 푼만 던져 주면, 영하 몇도라는 그야말로 101 퍼센트의 납량을 하게 된다. 그러나 마지막 사시를 입에서 떼자마자 땀은 다시 퍼붓는다. 이래서야 될 수 있나. 창경원에나 갈까? 입장료가 들 터이지. 남산이나 북악산은 좀 시원할까? 가다가 더위를 먹을까 겁이 난다. “에라 나선 길에”하고 한강 행 전차간에 몸을 내던진다. 이와 같이 사람은 더위에 쫓겨 산으로 들로 녹음으로 ‘소오다 파운텐’으로 헤매게 된다. 그러나 피신할 곳은 산에만 물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송도원, 월미도, 장안사, 삼방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게딱지 같은 모옥 안에서도 독서삼매로나 鍛念(단념) 명상으로 넉넉히 더위를 잊을 수 있는 것이다. 보다못해 허심무위로라도 심두의 화염을 꺼버릴 수 있는 것이다. 관조의 진경에는 혹한도 폭서도 침범하지 못할 것이다. 더욱이 어떠한 피서처를 물론하고 囊橐(낭탁)이 빈 사람을 오미트하는 이 세상에 처한 나로서는 이런 蝸室(와실)속에 농성하여 가지고, 혹서를 방비하고, 물것과 싸워가면서 ‘나’라는 생의 최고절정에 올라서 보려는 것이다. 이리하다가도 가슴 속에서 정 불이 나면 猫額(묘액)만한 안마당에 튀어나와 하늘을 쳐다본다. 똬리테 같이 둘리어 빠끔히 뚫어진 초가지붕 틈으로 창궁은 나에게 철학을 강의한다. 예술을 이야기하여 준다. 뭇별이 소곤거리는 여름 하늘뿐만 아니다. 따뜻한 빛이 뽀얗게 흐르는 봄 하늘이 그렇고, 달빛을 담아다 붓는 가을 하늘이 그렇다. 눈 덮인 용마루 너머로 紺碧(감벽)한 심연과 같이 아드막하게 들여다보이는 겨울 하늘이야 더할 말 있으랴. 이와 같은 천공에 구름이 흘러간다. 더욱이 여름 하늘에야말로 구름의 미술전당이 벌어진다. 어느 귀퉁이에 보일락말락하던 손바닥만한 구름장이 금시에 눈덩이 같은 햇솜을 틀어 던진듯 뭉글뭉글 피어 나온다. 그러다가도 순식간에 스르르 녹아버린다. 어느 틈엔지 푸른 초원에 미각의 유혹을 받은 양의 무리가 나타나고, 짓는 소리가 고대 들릴듯한 삽살개가 양을 따라가다가, 별안간에 맹숭맹숭한 동경 강아지가 된다. 바랑 지고 굴갓 쓴 중이 앞을 서고, 연잎 위에 坎中連한 부처가 뒤를 따른다. 금강문 명경대도 나타나거니와, 온갖 인물, 금수 등의 만물상이 파노라마같이 흘러간다. 내외 금강, 신금강, 해금강이야 춘하추동 조석 晴曇(청담)에 따라 그 색조의 변환이 각양각색일 터이요, 동룡굴속의 지하 금강도 경이의 的임에는 틀림이 없겠지마는, 분초를 사이에 두고 출몰 난기하며 변환무쌍한 저 천상금강이야말로 발섭의 수고도 없고 잠꼬대도 아니다. 좌유 와유하여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모두 나의 작은 마당 안에서 볼 수 있는 구름의 정취다. 이 테 밖을 벗어날 수 있는 사정이 허락된다면, 더한층 아름다운 경색을 누리게 될 것이다. 낙조에 타는 장밋빛 구름이나 아침 놀에 물든 연분홍 구름도 좋다. 원광을 걸러내는 비 뒤의 구름과 큰 풍우를 배고 지상에 저미하는 암운도 또한 볼만한 일경이다. 잔잔한 물속에 떠도는 구름, 높은 산모퉁이를 감도는 구름, 초원장제를 기어가는 구름, 바다 끝 수평선을 넘실거리는 구름, 이러한 구름들이 각각 특이한 풍정을 자아내지 않는 것이 없다. 세상에서 흔히 부귀와 공명을 부운에 비하여 그 허탄무상하고 하잘 것 없고 더러워서 취할 것이 못된다는 뜻을 애매한 구름에 들씌웠지마는, 흰 구름처럼—여름 하늘의 흰 구름처럼—우리의 마음을 가볍게 하고, 우리의 정서를 면면하게 하며, 속안을 순화하고 詩腸을 배부르게 하는 것이 또 어디 있으랴. 벽공의 저 백운, 우리의 시각만을 어루만져 주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부드럽고 서늘한 감촉과 깨끗하고 싱그러운 향미를 던져주는지. 그 화려한 탐스러운 모양은 우리의 가장 고조된 환상 그것이라 하겠다. 명리와 함께 쓸어버릴 부운이 아니다. 三公不換此江山이란 시구가 있지마는, 三公不換彼白雲이란 심경을 금할 수 없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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