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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승의 5척 단구 (146)

작성자~조흥제|작성시간26.06.14|조회수31 목록 댓글 0

                                    (146) 이희승의 五尺短軀

 

                                                                                            조 흥 제

 

  연령과 성별을 가리지 않고 사람의 유형을 두 가지로 나눈다면, 아마 대인과 소인으로 구별될 것이다. 그리고 또 대인이든지 소인이든지 이것을 각각 두 가지로 다시 나눈다면, 인간 개체에 육체와 심령이 있고, 인생 생활에 물심 양면이 있으며, 대우주 자체에 물질면과 정신면이 있듯이 대인에도 정신적인 대인과 육체적인 대인이 있을 것이요, 소인에도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데 소인이란 말을 사전에 찾아보면, 육체적인 것에 대하여는 별로 주석이 없으며 오직 정신적인 소인에 대하여서만,

  ① 細民

  ② 不肖한 사람

  ③ 스스로 겸손하는 말

이라고 규정되어 있다. 세민이라 함은 빈천한 사람을 의미하고, 불초한 사람이라 함은 학덕이 없고 성질이 사악한 사람을 가리킴이요, 셋째로는 상대자를 존경하기 위하여 자기를 낮추어서 ‘소인’이라 일컫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선조 때 사람 이수광의『芝峯類說』제 16권 (諧謔)조를 보면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난장이가 비대한 사람을 비웃는 말이

  말을 타니 다리가 땅에 끌리고

  방으로 들어가다 이마부터 부딪는도다

  배꼽에 불을 켜면 양초 대신이 될 것이요

  다리는 잘나서 사잇대를 삼을만 하도다

 

  이번에는 비대한 사람이 난장이를 비웃는 말이,

 

  갓을 쓰니 발이 보이지 않고  

  신을 신으면 정수리까지 들어가고 마는도다

  길을 가다 쇠발 자국 물만 보아도

  겨자씨 껍질로 배를 삼아 건느려는도다

 

  여기서 대인이니 소인이니 하는 것은 정신면이 아니라 온전히 육체를 가지고 한 말이다.

그러면 대인과 소인은 육체면과 정신면에 있어서 정비례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절충이 되느냐. 어느 한 가지 경우라고만 우겨 댈 수가 없다. 육체의 대소와 정신의 대소와의 관계는 매우 착잡하여, 이 세 가지 경우가 다 있을 것이요, 이밖의 경우도 한 두가지가 아닐 것이다. 이 사실에서만 보더라도 절대 무차별 평등이란 꿈도 꿀 수 없는 노릇이요, 형형색색, 다종다양이란 것이 인생이나 우주의 실태인 듯싶다.

이 다양다채성의 구색을 갖추기 위함인지 필자는 가장 단소한 체구를 타고 났다. 이 사실은 필자에게 비극이 되는 일도 있고, 희극이 되는 일도 있으며, 때로는 희비 교차의 혼성극이 되는 일도 있다.

어떤 친구는 이수광 볼 쥐어지르게 나를 놀려 댄다.

“웬 안경이 하나 걸어오기에, 이상도 하다 하였더니, 가까이 닥쳐 보니까 아 자넬세 그려.”

하는 말은, 우선 약과로 들어야 하고, 무슨 회합에서 불행히 사회를 맡아 보게 되거나 목침돌림 차례가 와서 일어서게 되면,

“자네는 서나 앉으나 마찬가지니 앉아서 하게.”

하는 반갑지 않은 고마운 말도 가끔 듣게 된다. ‘대추씨’라는 탁호를 받게 된 것은 단단하다는 의미 외에 ‘작다’는 뜻이 더 많이 내포되었다는 것을 빤히 짐작하게 되었고, 일찌기 소인구락부의 패장을 본 일이 있었으나 내 위인이 꺽져서가 아니라 키가 가장 작았기 때문이었다.

이런 것은 다 말로만인지라, 그다지 탓할 것도 없고, 마음에 꺼림칙할 것이 조금도 없다. 그저 마이동풍격으로 흘려만 보내고 받아만 넘기면 뱃속은 편할대로 편하여 천하태평이다.

그러나 가장 질색할 노릇은 무슨 구경터 같은 데서 서서 볼 경우에 키가 남보다 훨씬 크다면 사람 우리 테 밖에서 고개만 넘석하여도 못볼 것이 없을 터인데 나와 같이 작은 키로는 구경군들의 옆구리를 뻐기고 두더지처럼 쑤시고 들어가서, 제1선에 진출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우리 현대의 공중도덕의 수준에 있어서는, 나로서 이러한 모험을 감행하려면 우선 건곤일척의 결심과 대사일번의 노력이 필요하므로, 대개는 애당초부터 단념하고 말게 된다. 내가 만일 구경을 즐기는 벽이 있었더라면 그보다 더 큰 불행은 없었을 것이다.

어떤 추념을 내서 먹는 자리가 있다 하자. 체소한 필자는 본래 먹는 분량도 적거니와 먹는 템포조차 이 세상에 그 유례가 없을 만큼 느리기 때문에 내 젓가락이 음식 그릇에 들어가기 전에 한 두럭이 다 달아나고 말게 된다. 돈은 돈대로 내면서도 음식은 맛도 채 못보고 물러가게 되니 억울하기가 한이 없다.

먹는데 뿐이 아니다. 입는데도 마찬가지다. 옷감은 키 큰 사람의 것보다 절반쯤밖에 아니 될 터인데 값은 언제든지 전액에서 일분의 에누리도 없다. 구두를 사도 한 모양이다. 내가 일찍이 모회사에 근무하고 있을 적의 일이다. 선우전씨라는 분이 지배인으로 있었는데 이분의 키는 푼치 틀림없이 나의 갑절은 되었었다. 한번은 양복장사를 불러서 한 벌 맞추기로 하고 절가를 하여 놓았다.

나의 칫수를 다 잰 다음 누구에게든지 한 값이냐고 따졌더니 양복점 주인은 두말없이 오우케이를 하였다. 그때에 선우선생이 ,

“나도 한 벌 마춥시다.”

하고 일어서니, 양복점 주인이 입을 딱 벌리고 한참 쳐다보다가,

“선생님만은 특별예외로 하여 주십시오.”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들이 우겨대서 같은 값으로 한 일이 있었다.

이렇듯 키 큰 이가 나의 덕을 본 일이 있었지만 내가 키 큰 이의 덕을 입은 일은 꿈에도 없다. 요컨대 나는 결국 양복에 있어서나 구두에 있어서나 항상 키 큰 이를 보조하여 주면서 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허접쓰레기 사건은 하등 문제될 것이 없다. 마음에 안타까울 것도 앵하게 생각할 것도 아무것도 없다. 利他卽利己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오히려 만족하고 유쾌하게 여길 일이다.

키 작은 사람으로서 가장 타격이 큰 것은 외교에 있어서다. 신언서판이란 말이 있지마는 與人교제에 있어서는 몸집이 부대하고 신수가 미끈한 것이 우선 첫 인상으로 효과 100%다. 이 첫 인상이란 것이 매우 중요하다. 사람이 워낙 작고 오종종하고 줄토뱅이로 생겼으면 남에게 한 손 잡히는 것이 열이면 열 번이다. “고추는 작아도 맵기만 하다”라든지 “제비는 작아도 강남 간다”라는 속담이 통하기 전에 “산이 커야 골이 깊지”하는 선입견을 주기 쉽다. 그리하여 열냥중 나가는 사람이라면 닷냥중밖에 평가를 받지 못하게 된다.

3군을 질타하는 대장군이 된다든지, 의병이나 기타 민간단체의 두목이 되어 기울어져 가는 국세를 만회하려는 혁명하적 기상을 발휘하는 데는, 그리고 또 세계의 국제관계를 앉은 자리에서 바둑이나 장기 두듯 하는 대외교가가 되는 데는 우선 체수가 두둑하고 면상이 희멀겋게 생겨야 입선의 제일관문을 무난히 통과할 것이다. 필자가 30여년을 두고 한결같이 분필가루만을 먹고 사는 것은 이러한 점에 실격된 선천적 운명인지도 알 수 없다. 도대체 그 흔해빠진 연애 한번을 못해 보고 늙는 판이 아닌가.

이러한 넉두리를 듣고—아니 읽고—필자를 동정하는 사람이 있어,

“네 키가 작다 하니, 대체 몇자 몇 치나 되느냐.”

고 물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다음과 같이 정확하게 대답하여 두겠다.

대학 예과에 입학할 무렵에, 잠방이 하나만 입고 洋襪(양말)까지 벗어 버리고 재어 보니 꼭

五尺 ○寸二分

이었다. 어쨌든 오척 이상이니까 군인이 되는데 키로서는 우선 합격권을 확보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것으로 의기양양한 것은 없어도 또한 자포자기할 필요가 있다고는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내가 체소하기 때문에, 관심은 키 큰 사람에게보다 키 작은 사람에게 더 많이 간다. 어떤 기회에 혹은 거리를 다니다가 키 작은 사람을 발견하면 기어이 따라가서 내 키와 넌지시 견주어 보는 버릇이 생겼다. 난장이 아니고는 내 키보다 더 작은 이가 있을 리 없지마는 그러나 전연 없는 바도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키 크고 싱겁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말이 속담화 되어 있지마는 진정이지 金富貴와 같은 멋없이 늘씬한 키는 눈꼽만치도 부럽지 않다.

병자호란 때에 바람 앞에 촛불과 같은 국운을 두 어깨에 둘러메고 나서서 용하게도 난국을 돌파하여 나간 희세의 외교가인 오리대감 李元翼(이원익)선생은 두루마기 길(丈)이가 여덟치다는 말이 전하고 있으니, 이 자는 오늘에 우리가 아니라 필시 針尺이었겠지마는 무던히 작은 키라고 아니할 수 없다.

옛날 이야기는 덮어두고 현대의 예를 들기로 한다면 초대 부통령이시던 성재 이시영선생과 우연한 기회에 가까이 서 본 일이 있지마는 나보다 두어 주먹노리는 없을만큼 무던히 작은 키의 주인공이었다.

용기 백배라고 할 것까지는 없지마는 키 작은 것을 비관하여 염세 자살과 같은 쑥스러운 연극을 벌여 놓을 필요는 조금도 없다는 생각이 일층 강화되었다는 것을 솔직히 고백하여 둘까?

작년(1955)여름이었다고 기억된다. 어느 날 저녁 구 관립영어학교 동창들의 만찬회를 미장그릴에서 베푼 일이 있었고, 그 자리에는 객원격으로 미국 사람 두 분이 참석한 일이 있었다. 시장기가 해소되고, 주기가 돌고 한 연후에, 탁상일화를 돌려가며 한 마디씩 하게 되었다. 필자의 차례에 와서는 미국에도 다녀오고 하였으니 영어로 이야기를 하라는 것이었다.

“…한국에서는 나의 키가 작은 줄로만 알았더니, 미국에 가서 그렇지 않은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한국에서는 나보다 키 작은 사람을 좀체로 찾아낼 수가 없었는데 미국에를 가 보니 나보다 더 작은 사람이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특히 동부지방 뉴욕 근처에 가서는 더욱 그러하였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일동이 박장대소를 허였지마는, 미국 친구 두 사람은 이해가 잘 안된다는 듯이 어리둥절하고 있었다.

필자와 영어학교 동기되는 해공이 일어서더니 “그대의 이야기를 듣고 나도 한 마디 하겠다.”고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1916년부터 동 22년까지 대영제국의 총리대신을 지냈으며 제 1대 뜌포백작의 영위를 받은 세계적 대 정치가 로이드 죠오지 씨는 키 작기로 유명한 분인데 일찍이 정견발표를 하기 위하여 순회연설차로 스코틀랜드 어느 지방을 가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 지방에서는 그를 환영하기 위하여 수만 군중이 모인 가운데 큰 기대를 가지고 모두 긴장하여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위대한 로이드 백이라고 생각할 만한 사람은 온데간데 없이 그림자를 감추고 어디서 난장이 됨직한 조그만 사람이 단상에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일반 군중은 너무도 의외의 광경에 긴장이 일시에 확 풀리고, 크게 실망하는 빛이 장내에 떠돌았습니다. 대정치가인 로이드 백이 이 낌새를 못차릴 리가 만무하였습니다.

그는 첫 허두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합니다.

“여러분은 키의 대소를 가지고 사람을 평가하려 드나보다마는 키를 측정하는 방법이 고금이 같지 않고. 옛날에는 정수리에서 발귀꿈치까지 재는 것이었지마는 현대의 방법으로는 정수리에서 턱부리까지 머리의 장단을 재는 것이요. 여러분 어디 내 머리를 좀 재보시오.

하였다고 합니다. ‘로이드’씨의 머리는 과연 길었답니다.

이 한마디에 군중은 그만 감심을 하지 않을 수 없었고, 불을 내뿜는 듯한 그의 웅변에 다시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 합니다.”

이상이 해공의 이야기다. 나를 위로하기 위한 이야긴지 그의 유우머로 한 이야기인지 알 수 없으나 두 가지가 다 겸한 것이 아닌가 하여 나는 새삼스럽게 내 정수리부터 턱끝까지를 쓰다듬어 보았다. 그다지 짧지는 않은 듯하다.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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