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5) 정진권의 어린 시절 조 흥 제 1 “그만 썰어, 엄마. 그만 썰래두. 그만……그만……그만 그만.” 엄마는 써억써억 국수를 썰고, 더벅머리 여섯 살은 그만 썰라고 졸랐다. 그래도 엄마는 못듣고 썰기만 했다. 한칼 한칼 국수 꼬리가 줄어들 때마다 더벅머리 여섯 살은 애가 탔다. 엄마가 남겨 주는 건 늘 똑같았다. 언제나 꼭꼭 손가락 세폭, 그래도 조심조심 펼쳐 보면은 좁아도 긴 것이 한 뼘은 됐다. 조금은 아쉽지만 신나는 여섯 살. 솥에선 설설 물이 끓고, 아궁이에선 장작불이 활활 탔다. 불 앞에 쪼그린 더벅머리는 엄마가 굽던 대로 흉내를 내지만 봉긋봉긋 노르스름히 굽질 못했다. 아무리 기술 껏 구워 보아도, 한 군덴 숯이 되고 한 군덴 날것 그대로고. 그래도 여섯 살은 신이 났다. 새까맣게 숯이 된 것은 아삭아삭 고소하고, 날 것은 날것대로 쫄깃쫄깃 구수했다. 아끼고 아끼면서 뒷동산에 올라 자랑하느라면, 마을은 자욱한 저녁 연기속. “얘야, 얼른 와서 저녁 먹어라.” 더벅머리 부르는 어머니 목소리에, 별 두 개가 똑똑 안산 위에 떴었다. 2 “어디 가, 엄마? 나도 가. 나도 갈래.” “등너머 할머니가 벌써 이레째나 안 오시는 걸 보니, 어디가 편찮으신가 보다. 내 얼른 다녀올 테니, 널랑 집에 있거라. 누나가 감자 구워주면 그것 먹고.” “싫어, 나도 갈래.” “얘가 또 어째 이럴까? 얼른 다녀 온대두.” 그래도 더벅머리 여섯 살은 못 떨어진다. 엄마가 나가는 걸 숨어 보다간, 살금살금 골목을 돌아 뒤따라 간다. 엄마가 저만치 보이면, 이제는 마음 놓고 해찰도 하며 간다. 돌멩이도 툭툭 차 보고, 풀잎도 뜯어서 물어도 보고. 엄마가 돌아보고 집에 가라면, 손가락 입에 물고 이만치 서고, 엄마가 가면 또 졸랑졸랑 뒤따라 간다. 그러고 그러다가 더벅머리는 그만 어느 새 엄마 치맛자락을 잡는다. 엄마 치맛자락은 엄마 냄새, 구정물에 젖었어도 달디 달아. 그 한 자락 붙잡고 등을 넘자면, 골짜기마다 소복한 여우 얘기, 장사 얘기. “어째 또 따라왔어, 그래?” 엄마, 저렇게 큰 바윗돌로 어떻게 공기를 하고 놀았어?“ 두 눈이 새까만 더벅머리는 어느 새 다 잊고 딴전이다. 엄마가 집에 있으라던 일도, 집으로 쫓던 일도 다 잊고. “……옛날엔 힘센 장사들이 많았어……” 엄마도 다 잊었다. “그래도 무슨 힘이 그렇게 세어?” “한 발자국에 천리씩 갔는걸.” “그 불여우가 처녀 된 것은 정말이야?” “그럼, 옛날 얘긴 다 참말이야.” “……나도 저 바윗돌로 공기나 놀았으면 좋겠네. 한 발자국에 천리씩도 가고, 또 불여우도 때려잡고.” “그럼, 그럼. 네가 크면 그렇게 할 수 있어. 더 힘센 장사가 될거야.” 엄마 치맛자락 잡고 타닥이는 더벅머리는 등너머 십리 길이 꼬불꼬불 재미났다. 한 오백리 되었으면…… 3 “엄마, 발 시려. 아이구 발 시려.” “쯧쯧, 이렇게 추운데 맨발로 다니니까 그렇지. 여기다 발 넣고 가만히 있거라.” 놀다 들어온 더벅머리 여섯 살은 엄살이 대단했다. 엄마가 떠들어 주는 아랫목 이불 속에 두 다리를 쪽 펴 넣고는 몸도 한번 으스스 떨어 보였다. 그러면 엄마는 빨래 담긴 광주리를 이리저리 뒤적이다간, 이제는 더 못 신게 된 아버지 양말을 찾아내고, 가위와 헝겊과 실패도 함께 들고는, 더벅머리 발 넣은 이불 속에 함께 발을 넣고 앉았다. 더벅머린 언제나 바늘귀에 실을 꿰어서는 장한듯이 벙긋거리며 엄마 손에 들려주었고, 엄마는 웃으며 받아 낭자나 앞섶에 꽂았다. 그리고 엄만 구멍 뚫린 아버지의 양말을 뒤집어 손질을 하고, 더벅머리 발에다 한 번 대 보고, 가위로 사강사강 못쓸데는 잘라내고, 기워야할 덴 헝겊을 대고 쫀쫀 감치고, 그리고 가위 자국 따라서 또 찬찬 호고, 그 다음에 또 아까처럼 뒤집어서 손질을 하고, 그리곤 더벅머리 발에다 신겨 주었다. “엄마, 나 나가 놀게.” “이렇게 추운데?” “안 추워. 이젠 안 추워.‘ 바람이 쌩쌩 아무리 매워도 , 더벅러미 여섯 살은 춥지 않았다. 4 “엄마, 나 배 아파, 아이구……” 더벅머리 여섯 살은 배가 잘 아팠다. 머슴들이 흰떡 치는 작은 설날이다. 팔월 열 나흣날 달 밝은 밤이 으슥할 때는, 더벅머리 어섯 살은 꼭꼭 배가 아팠다. “아이구, 배 아프대두……” “어째 자지 안고 또 배가 아프대? 얼른 나가서 뒷동산에 한 번 훌쩍 뛰어갔다 와. 그럼 배가 푸욱 꺼질 테니까. 얼른.” 솥뚜껑을 뒤집어 돌에다 걸어 놓고 지금 한창 지글지글 적을 굽는 엄마는 앞치마를 뒤집어서 훌쩍거리는 더벅머리의 코를 닦아 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 더벅머린 짜증이 났다. 배가 이렇게 아픈데 어떻게 뛰어? 그런다고 엄마 품에 뛰어들 수도 없다. 저렇게 지글지글 굽고 있는 걸. 더벅머린 서러워서 달 한참 쳐다보고, 밤 깎는 아버지 옆에서 쪽밤 나오나 또 한참 보다간 졸음 겨운 눈을 비비며 엄마한테 또 갔다. “배 아프대두, 아이구 배야……” “……좀 뛰고 오라니까, 어째 또 이럭하니?” 엄마는 할 수 없이 일어나 더벅머릴 안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곤 살살 배를 문질러 주었다. “내 손은 약손이다. 우리 아기 얼른 낫거라. 내손은 약손이다. 내 손운 약손이다.” 더벅머린 어느 새 사르르륵 꿈나라고 갔다. 엄마 손이 닿으면 어째서 배가 나을까? 더벅머린 한번도 따져 본 일이 없다. 여섯 살의 여섯 곱을 더 넘긴 지금까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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