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 일대기 이문열의 불멸 (76)
조 흥 제
그런데 간도가 자신이 기대하던 땅이 못됨을 차츰 알게 되면서 안중근은 그 대안으로 해삼위를 바라보게 되었다. 특히 煙(연)秋(추)란 곳에 자리 잡았다는 이범윤부대는 안중근에게 앞으로 창설할 대한독립군과 그 기지의 원형을 보여주고 있는 듯했다. 이태 전 대한제국의 소환에 불응하고 부하들과 함께 러시아 땅으로 망명한 이범윤은 그 곳의 下(하)里(리)(카리)란 곳에서 황무지를 개척해 부하들의 생계를 해결하는 한편 큰 韓人(한인)村(촌)을 만들어 그들의 기지로 삼고 있었다.
안중근이 훈춘현 경신항 금당촌이란 곳으로 가게 된 것은 바로 그 곳이 간도에서 넘어가는 연추로 가는 길목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다 왔소. 저기 저 모퉁이만 돌면 下(하)別(별)里(리)요.”
한군데 눈 덮인 모퉁이를 돌면서 수레를 몰던 노인이 들고 있던 채찍채로 끝없이 펼쳐진 벌판 한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잠깐 나름의 상념에 젖어 넋을 놓고 있던 안중근이 놀라 깨어나며 물었다.
“어르신, 연추로 가는 중입니다. 그런데 하별리는…….”
“아, 몰랐던가. 연추는 좌우 30리로 넓게 펼쳐진 지역이라 우리는 사람 사는 마을을 上下(상하) 둘로 나누어 부른다오. 곧 상연추와 하연치인데 우리끼리는 상별리와 하별리로 부르기도 하지. 하별리는 바로 하연추요, 로씨아 마로는 니즈니예 얀치헤라고도 하고. 연추의 마을 가운데 가장 조선인이 많이 모이는 곳이오.”
“아, 그렇습니까? 고맙습니다.”
멋 적어진 안중근이 그렇게 받자 노인이 문득 안중근을 지긋이 살피는 눈길로 물었다.
“훈춘 경신향에서 오는 길이라기에 여기 나와 사는 사람인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닌 모양이로군. 어디서 왔소?”
마차에 태워 줄 때부터 별로 말수가 없는 노인이었다. 안중근이 청나라와 러시아 국경을 넘어설 무렵 흩뿌리기 시작한 눈발 때문에 은근히 마음이 급해졌을 때 부른 듯이 나타나 根菜(근채)와 곡물을 반쯤 실은 마차 한 모퉁이에 자리를 내 주었지만 눈 속에 국경을 넘는 속사정은커녕 통성명조차 제대로 받지 않았다. 그런데도 노인의 물음을 받고 보니 무언가 자신이 소홀했던 것 같은 느낌에 안중근이 사죄하듯 받았다.
“황해도 해주가 고향입니다. 지난 여정이 구구하여 진작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 노인은 별로 개의치 않은 표정으로 받았다.
“그럼 연추에서는 누굴 찾아가는 길이시오.”
“이범윤대장을 찾아뵈려 합니다.”
“간도에서 무슨 벼슬을 하다가 건너왔다는 그 양반 말이오?”
“예, 간도 관리사를 하셨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사포대 500명을 이끌고 이리로 망명하셨다고 들었는데.”
“그 분은 하연추에 계시지 않소. 그분 부하들이 연 땅은 여기서 다시 한참을 가야 하오. 이게 첫 길이라면 길잡이를 구해 가도 두어 시간은 걸릴 것이오. 거기다가 찾아 간다고 해서 그 분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소.”
그러는 사이 작은 숲 모퉁이를 돌아서자 저만치 큰 마을 하나가 나타났다. 북간도에서 흔히 보는 한인 정착촌을 상상했으나 홀연 평지에 솟듯 나타난 하연추는 전연 달랐다. 마을 가운데 제법 규모를 갖춰 지은 東方(동방)正敎(정교) 성당이 서 있고, 그 둘레에도 몇 군데 볼만한 러시아식 건물이 서 있었다. 마을의 크기도 한 눈에 수백 호가 넘어 보여 국경지대의 정착촌이라기보다는 작은 도시같은 느낌을 주었다.
먼빛으로 보는 가옥의 형태들도 상상과는 달리 안중근에게 더욱 낯설게 비쳤다. 한인들만 모여 사는 마을이 아니라 러시아 사람들도 함께 섞여 사는 듯 집들은 태반이 러시아 농가 형태였다. 한인 거주지로 짐작되는 곳에서도 북간도에서 본 그런 초가 오두막집들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왜 만날 수가 없습니까?”
안중근이 그렇게 반문하자 노인이 다시 한 번 살피는 눈길이 되어 한동안 안중근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간도에 있을 때는 청나라 사람들과 싸웠고, 노일전쟁 때는 일본군과 싸운데다 조선 임금의 소환까지 거역하고 이리로 망명 왔으니 이래저래 그 분의 목을 노리는 사람이 많다고 하더구먼. 거기다가―우리끼리니까 말을 해도 되나―집 인근에 의병부대 훈련장소가 있어 아무나 오는 게 반갑지도 않고…,듣기로 그 분을 만나려면 미리 연통을 놓고도 저쪽에서 부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했소.”
그래놓고 잠깐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물었다.
“이범윤 대장은 무엇 때문에 만나시려는게요?”
안중근은 그런 노인의 물음에 잠시 망설였으나 왠지 그가 무지랭이 농투성이 같지는 않다는 느낌에 간도에서 유세해 온대로 자신의 포부를 간단히 밝혔다. 특별히 감동하는 기색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듣도 있던 노인이 넌지시 말했다.
“그렇다면 차라리 崔(최)都憲(도헌)을 만나 보시오. 그 분도 틀리없이 젊은 양반을 기꺼이 만나 주실 거요. 그 댁이라면 집 앞에 내려 줄 수가 있소.”
“최도헌이 누구십니까? 어떠한 분이시기에 저를 기꺼이 맞아 주실는지.”
“최도헌은 이름을 재형이라고 하는데 로씨아 사람들에게는 최 페치카로 불리지요. 지금은 南(남)都(도)所(소)의 도헌으로, 이 지역에서는 손꼽는 유력자요, 항일 정신으로도 둘째 가라면 서러울 인사외다. 어쩌면 이범윤 대장보다 더 젊은 양반의 뜻을 받아줄지 모르겠소.”
그러면서 마차를 최재형의 집쪽으로 몰던 그 늙은이는 갑자기 사람이 변한 듯 쵀재형의 이력을 아는대로 장황하게 들려주었다.
최재형은 함경도 경원 출신으로 아홉 살 때 대기근을 만나 부모와 함께 연추로 옮겨 산 사람이었다. 어려서부터 러시아 교육을 받고 자란 뒤에 러시아에 귀화하여 젊은 날에는 러시아군 통역으로 일했다. 나중에는 군대에 쇠고기를 납입하는 어용상인이 되었는데 그 일로 재산을 일으키고 인맥을 키운 최재형은 마침내 러시아 관리로 일하기 시작했다.
최재형은 관리로서도 크게 수완을 떨쳐 보였다. 두 번이나 페테르부르크에불려가서 황제를 알현하고 다섯 개나 되는 훈장을 받을 정도였다. 마침내는 연추가 포함된 노우케에프스크의 都憲(도헌)이 되어 연봉 3천 루불을 받게 되었는데 그는 그 돈을 은행에 예치하여 그 이자로 매년 한인 유학생을 한 명씩 페테르부르크에 보내 공부시켰다.
그러다가 러일전쟁이 터지자 마흔여섯의 나이로 러시아 해군 장교로 임명되어 통역관으로 일하는 한편, 南部(남부)小集會(소집회) 감독으로서 귀화한 한인들을 규합하여 항일전에 참전케 했다. 그리고 이범윤이 부하들과 함께 간도에서 망명해 오자 그들이 연추에서 터 잡을 수 있도록 뒤를 봐 주었으며 그해 여름 대한제국의 군대 해산이 있자 해외로 탈출하여 연추로 모여 든 해산 군인들을 받아들여 군량과 군자금을 대 주었다.
“세상에 연추를 찾아오면서 최도헌도 모르고 오다니, 나같은 늙은이야 이미 농투성이가 되었지만 그래도 국권 회복을 말하고 해외에서 의병 창설을 의논해 보겠다는 젊은 양반이 어찌 그리 어두울 수가 있소?"
나중에는 그런 핀잔까지 주며 노인이 안중근을 내려 준 곳은 하연추에서 한참을 벗어 난 러시아식의 커다란 저택 앞이었다. 최재형의 집이 그토록 커 보인 것은 가는 동안 길 가에서 본 고만고만한 정착민의 가옥들 때문인지도 몰랐다.
“굳이 이름을 대기 어렵거든 상 연추의 김첨지가 젊은 양반을 이리로 모셨다고 하시오. 나는 늦었으니 이만 가우.”
늙은이가 그 말과 함께 마차를 몰아 떠난 뒤 안중근은 조심스레 최재형의 집으로 다가가 주인을 불렀다. 아닌게 아니라 생판 처음 보는 집을 불쑥 찾아 가는 게 멋쩍고 어색한 데가 있기는 했다.
안중근이 몇 번 소리쳐 찾기도 전에 집 뒤편 헛간 같은데서 누가 걸어 나오며 받았다.
“뉘기요? 무슨 일로 왔소?”
현관 쪽만 바라보며 주인을 찾던 안중근이 돌아보니 수달피 모자를 쓴 오십대의 건장한 사내였다. 가죽 장화에 두꺼운 외투까지 걸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도 방금 외출에서 돌아 온 것 같았다. 러시아풍의 차림 못지않게 짙은 콧수염도 그의 풍모를 이국적으로 보이게 했다. 힝힝거리는 말의 콧김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보아 헛간이라고 여긴 곳은 마구간인 듯했다.
“저는 안중근이라고 합니다. 조선에서 간도를 거쳐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미 그런 방식의 수인사에 이력이 난 안중근이 간단하게 자신을 소개했다. 최재형이 한 차례 그런 안중근을 훑어 본 뒤에 이웃 맞아들이듯 앞장을 서며 말했다.
“집안으로 듭세다. 날이 차오.”
그런 최재형의 말에는 아직도 북도의 억양이 강하게 남아 있었다.
최재형은 특별히 다정다감한 사람은 아니었으나 정중하게 안중근을 대했다. 최재형에 비해 젊어 보이는 부인도 러시아식 차와 과자를 내 놓으며 따뜻이 안중근을 맞아 주었다. 안중근의 대의에 대해서도 최재형은 망설임없이 동조해 주었다.
“그런 일이라면 잘 찾아 오셨소. 군대를 모아 치고 빠지는 식의 국내 진공전을 펼치기에는 연추만한 땅도 없을 것이오. 방금도 많은 열혈지사가 이곳으로 모여들고 있소.”
그렇게 안중근의 말을 묻더니 불쑥 물었다.
“그런데 어디서 내 이름을 들었소? 누가 나를 찾아가라 하던가요?”
“실은 훈춘에서 이범윤 대장의 얘기를 듣고 이리로 왔습니다. 그런데 상연추의 김 첨지라고 하는 분이 여기까지 태워 주셔서.”
안중근이 솔직하게 최재형을 찾아오게 된 경위를 털어 놓았다. 최재형이 별 표정 없는 얼굴로 안중근의 말을 듣다가 문득 흐려지는 낯빛으로 받았다.
“이범윤 그 사람은 지금 연추에 없을 것이오. 블라디보스토크로 간 것으로 알고 있소.”
“그럼 여길 떠나신 겁니까?”
“그건 아니고, 병영은 여기 남아 훈련을 계속하고 있소. 그 사람만 브라디보스토크에 거처하고 잇다시피 하고 있답디다.”
“여기서 해삼위까지 거리가 그리 가깝지 않다고 들었는데, 어찌된 일입니까? 대장이 오래 병영을 비워 두어도 되는지요.”
“요즘 블라디보스트크는 본국에서 건너 온 지사들로 넘쳐흐르는 모양이오. 이 관리사는 그들과 연결한다며 오락가락하다 벌써 보름째 돌아오지 않고 있다 하오.”
그 말을 듣자 안중근은 서울을 떠나오기 며칠 전 안창호에게서 들은 말이 떠올랐다.
‘義(의)庵(암) 유인석 선생께서도 해외로 떠나실 뜻을 굳히셨소. 아마도 해삼위로 가실듯하오. 누굴 보낼지 아직 정하지 못했소만 우리도 해삼위에 사람을 보낼 작정이오. 연해주에 있는 동포가 몇 만이 된다하니 거기에도 共立(공립)協會(협회)(안창호 등이 만든 미국 교포를 중심으로 한 재외 교민단체)의 지부를 열까 하오. 아마도 미국에서 함께 귀국한 이강 동지가 가게 될 것 같은데 뒷날 해삼위 쪽으로 가게 되면 반드시 그 분들을 찾아보시오.”
그때는 북간도만 바라보고 떠나려던 때라 안중근은 그 말을 그리 귀담아 듣지 않았다. 나중에 어쩔 수 없이 배편으로 해삼위로 향하게 되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직 유인석 선생이나 이강이란 사람이 떠났다는 소리를 듣지 못해 설령 해삼위에 내렸더라도 그들을 찾아 볼 마음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그런 안창호의 말을 상기하니 해삼위는 더욱 시급하게 가 보아야 할 땅이 되었다.
최재형은 이어서 안중근의 거처를 놓고 이것저것 걱정하며 논의를 시작했으나 안중근의 마음은 이미 해삼위로 달려가고 있었다. 의암 선생이 있고, 미국서부터 생사를 함께 하기로 하고 돌아 온 안창호의 동지가 있고, 거기다 이범윤까지 가 있다는 곳, 절망 속에 간도를 떠난 안중근에게는 어느덧 해삼위가 하루바삐 이르러야 할 목적지가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