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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작소설방

불멸 (81)

작성자~조흥제|작성시간26.06.14|조회수33 목록 댓글 0
                                         안중근 의사 일대기 이문열의 불멸 (81)


                                                                                                           조 흥 제


                                                제 16장 대한독립군 참모중장


 추풍(수이푼)에서 수청(뒷날의 파르티잔스크)까지 한인들이 모여 사는 마을은 모두 돌아 본 안중근과 엄인섭, 김기룡 일행은 다시 우수리스크에서 하바롭스크까지 기차로 모병과 모금을 위한 유세 여행을 나섰다. 하바롭스크에서는 때마침 녹기 시작한 아무르 강을 기선으로 오르내리며 인근에 흩어진 근교 농업에 종사하는 한인들의 개척 마을을 찾아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5월이 되어서야 연추로 돌아와 그 기나긴 유세 여행의 뒤를 대 준 최재형을 찾았다. 최재형이 그간의 경과를 다 듣기도 전에 흐뭇한 표정으로 말했다.
“동지들의 성과는 이미 지난달부터 이곳 연추에도 나타나고 있었네. 여기 저기서 군자금을 부쳐 오는가 하면 의병에 나서겠다는 사람들도 잇따라 모여들었네. 특히 의병은 그럭저럭 100명 가까이나 모여들어 보름 전부터는 내 농장 부근에 따로 거처를 마련하게 했지. 며칠 전에 가 보니 한 200 명을 임시 막사와 함께 제법 모양 나는 군사훈련 시설까지 갖추었더구먼. 그래서 全(전)齊(제)益(익) 대장에게 맡겨 그들을 훈련시키게 했네.”
전제익은 대한제국 지방 진위대 장교로 일본군 군대 해산에 맞서 싸우다가 의병이 된 사람이었다. 서북 의진에 들어 싸웠으나 일본군의 모진 토벌에 배겨내지 못하고 국외로 망명하여 연추로 오게 되었다. 최재형이 데리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는 가장 전투 경험이 많고 군사 지식이 풍부해 새로 만들어진 부대를 훈련시키는 데는 적임이지만 안중근에게는 최재형의 말이 조금 뜻밖이었다.
“이범윤 부대의 창의소로 보내지 않고 새로 부대를 만드시려고 하십니까?”
안중근이 마음 속의 의문을 숨기지 않고 바로 물었다. 안중근이 알기로 그때까지 최재형과 이범윤은 병력을 키우는 일을 명확하게 분담해 오고 있었다. 곧 재정은 최재형이 전담하고 군사는 이범윤이 맡아 흔히 이범윤부대로 불리는 연해주 의진을 키워왔다.
“일이 그렇게 되었네. 이제는 우리 동의회도 독립된 부대를 가지게 되었네.”
그 말을 듣자 안중근은 그 겨울 최재형이 따로 동의회를 만들고 그토록 정성을 들여 길러 온 까닭을 알 듯하다. 자신이 이끌 의병세력이 모체를 삼으려 한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게 되면 연해주 의진이 둘로 나뉘게 되는 꼴 아닙니까. 의암 선생께서는 모두 하나가 되어 일본과 싸워야 한다고 하셨는데…….”
안중근이 실망과 걱정을 감추지 않고 그렇게 말끝을 흐렸다. 하지만 무엇 때문인지 최재형은 단호하였다.
“싸울 때는 함께 힘을 합치면 되지 않는가? 부대를 따로 꾸민다고 바로 저쪽 부대와 대적한다는 뜻은 아니니까. 거기다가 지금 이범윤 부대는 우리 지원이 필요치 않을 만큼 사람도 돈도 넘쳐나는 판이네. 이들을 끌고 그리로 가봤자 거추장스러워할지도 모르지.”
그렇게 받은 최재형의 얼굴에는 단순한 선망을 넘어서는 어떤 어두운 그늘이 있었다.
“그건 또 어찌 된 일입니까? 저쪽에 무슨 일이 있습니까?”
“자네들이 유세를 하고 다니는 동안 저쪽에는 단번에 1만 루불이라는 거금이 들어 왔네. 이범윤 대장의 조카 이위종이 페테르브르크에서 군자금으로 가져온 걸세.”
“그렇다면 헤이그 밀사로 갔던 이위종 선생 말입니까? 일본이 궐석 재판에서 종신 징역을 선고한.”
“그렇다네. 더구나 그 돈이 대한제국 황실의 내탕금이란 소문이 돌면서 사람들도 함빡 그리러 쏠린다네. 벌써 옛날 聲勢(성세)를 넘어 모인 군사가 600명이 넘는다던가?”
그런 최재형의 말투에는 까닭 모를 자조까지 섞여 있었다. 드디어 일이 돌이킬 수 없게 되었음을 안 안중근은 늦었지만 이제라도 동의회를 공식화할 것을 건의하였다.
이에 다음날 최재형의 집에서는 떠들썩한 잔치와 함께 동의회의 결성이 뒤늦게 공식화되었다. 최재형은 동의회 총재가 되고, 주로 최재형 쪽에서 일하던 전제익, 백삼규, 황병길 등은 안중근과 엄인섭, 김기룡 형제와 함께 동의회 평의원으로 참여하였다. 또 새로 만든 의병부대의 대장은 전제익이 되고 안중근과 엄인섭은 그 훈련을 도왔다.
김두성으로부터 이범윤이 최재형과 합심하여 의병을 일으키기로 하였다는 말을 듣고 연추로 돌아온 안중근에게 최재형이 주도하는 동의회 소속의 의병부대가 따로 창설된 일은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지난 3월 대대적인 의병 창설에 필요한 인원과 자금을 모으기 위해 안중근이 유세를 떠날 때만 해도 두 사람은 예전처럼 화목해진 듯했다. 여비를 대고 알만한 한인촌에는 미리 연통을 해 준 것은 최재형이었지만 안중근이 떠나기에 앞서 인사차 갔을 때 이범윤도 전과 달리 대범한 국량과 결단을 보여 주었다.
“안공, 이는 우리 모두가 하나 되어 국내로 진공하기 위한 모병과 모금이니 열성을 다해주시오. 최도현과 나는 여기 남아 할 수 있는 일은 다할 것이오.”
그런데 유세활동에서 돌아와 보니 연추의 의진이 두 갈래로 찢긴 것이나 다름 없었다. 최재형과 먼저 맺은 인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동호회 쪽에 몸을 담게 되었으나 안중근의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 엄인섭과 함께 전제익 부대의 營(영)將(장)이 되어 새로 맞은 의병들을 돌보기로 하였으나 그 전에 먼저 이범윤을 찾아갔다.
“그건 최 도헌의 말씀이 맞네. 고래로 兵(병)이란 다다익선이니 역량대로 저마다 군사를 길러 우선 군세부터 키워 놓고 봐야 하네. 그런 다음 서로 연결하면 얼마든지 하나가 되어 싸울 수 있네. 어느 부대에 몸담고 있든 우선 養兵(양병)에 전력을 다 해 주게.”
다행히도 이범윤은 그같이 시원스러운 말로 안중근의 걱정을 씻어 주었다. 그리고 못미더워 하는 안중근을 오히려 북돋아 주듯 덧붙였다.
“의암 선생께서도 김두성을 내 세워 따로 한 갈래 부대를 기르고 계시네. 국내 진공을 위해 결진하는 날 한 깃발 아래 묶으면 볼만할 걸세. 회령의 왜군 수비대는 말할 것도 없고, 나남 사단도 단숨에 짓뭉겨 버릴 것이네.”
그 바람에 안중근은 겨우 마음을 놓고 동의회의 의병 훈련소로 갈 수 있었다.
안중근이 의병 훈련소에 이르러 보니 연병장에는 전제익이 그 사이 뽑아 세운 소대장들을 앞세워 제식훈련을 시키고 있었다. 대략 삼사십 명 되어 보이는 대오 셋이 검은 칠을 한 막대를 목총 삼아 메고 신식 군대처럼 행진하는데 제법 절도가 있었다. 안중근은 먼저 와서 훈련을 보고 있는 엄인섭에게 소리 죽여 인사를 건네고 나란히 서서 훈련 광경을 지켜보았다.
“지금 여러분이 흘리는 땀이 여러분이 전장에서 흘린 피를 대신할 수 있을 것이다. 땀 흘리는 걸 아까워하지 마라.”
달리기에 이어 맨손체조로 맺은 그 훈련에서 전제익은 노련한 장군처럼 그런 훈계를 이따금 끼워 넣었다.
한동안의 휴식시간이 있은 뒤에 드디어 사격 훈련이 시작되었다. 엄인섭과 안중근에게 넘겨진 순서였다. 엄인섭은 러일전쟁 때 러시아군으로 싸운 적이 있어 총을 잘 다루었다. 안중근도 동학군과의 실전 경험에다 청계동 시절 사냥으로 익힌 사격 솜씨가 더해 어지간한 포수보다 나았다.
먼저 신식 사격 훈련을 받아 본 엄인섭이 기본적인 집총 자세를 보여 주고 이어 기초적인 소총의 작동 원리와 함께 간단한 분해 결합 연습과 소제 방법을 알려 주었다. 이어 몇 가지 기본적인 사격자세를 보여 준 뒤 거총과 거총과 조준, 격발의 순서로 사격을 가르치는데 그때는 안중근도 엄인섭과 함께 하였다. 그러자 아직 총이 모자라 총 한 자루에 여남은 명씩 둘러 앉아 손발로 보다는 눈귀로 하는 게 더 많은 훈련이었다.
의병들이 사격 훈련에 쓰는 총은 몇 자루 안 되는 것도 거의가 러시아 군대에서 흘러나온 步銃(보총)이나 騎銃(기총)에다 훈춘 쪽에서 몰래 들여온 청나라 소총 같은 것들이었다. 하지만 갑오의려때부터 십여 년 청나라에서 수입한 영국제 연발총과 벨기에 製(제) 단총을 몸에 지니다시피 하여 써온 안중근에게는 그리 낯설지 않았다. 총을 둘러싸고 앉은 훈련병 사이를 옮겨 다니며 아는 대로 사격을 가르쳤다.
“권총이라면 대강 쏘아 보겠는데 이눔의 장총은 뭐가 이리 복잡햐. 남들은 훨씬 잘맞는다고 허더구먼. 총 쏘기가 이렇게 요사스러워서야.”
안중근이 한군데 훈련병이 둘러 앉아 방금 들은 것을 복습하고 있는 곳을 지나는데 누가 걸걸한 목소리로 그렇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대의 선임자인 듯한 또래의 청년이 러시아 보총을 들고 노리쇠 뭉치 쪽을 들여다보며 하는 소리였다. 안중근이 보니 탄피가 튀어나오게 되어있는 藥室(약실) 덮개가 잘 열리지 않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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