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중근 의사 일대기 이문열의 불멸 (82) 조 흥 제 “이리 주시오. 내가 한번 살펴보겠소.” 안중근이 그렇게 말하며 사내로부터 총을 받아 살펴 보았다. 짐작 가는대로 무리하게 힘을 가해 誤(오)작동되면서 노리쇠가 후퇴하지 않은 것 같았다. 안중근이 가볍게 응급처치를 하여 노리쇠를 후퇴시킨 총을 도로 내주며 말했다. “나도 이 총은 처음 만져보지만 너무 어렵게 생각할 거 없소. 원래 보총이란 무식한 농군도 사용법을 한번 듣기만 하면 알 수 있게 만들어져 있소.” “그렇다면 무식한 장사꾼에게도 다루기 쉬워야지. 총을 이렇게 상전 모시듯 다뤄서야 이 서캐 같은 왜놈들을 언제 다 때려 잡나.” 그러면서 총을 받는 상대를 보니 이목구비가 꾹꾹 박힌 사내다운 기개를 드러내고 있었다. 거기다가 권총을 많이 쏘아본 듯 말해 그 이력이 궁금하게 만들었다. “단총을 많이 다뤄보신 듯한데 어디서 오신 뉘시오.” 나는 서울서 온 禹(우)德(덕)淳(순)이라 하오. 노서아에 와서는 連(연)俊(준)이란 이름을 쓰고 있소. 노서아 관원이 서류에 잘못 적은 이름을 그냥 쓰고 있는 거요.“ “나는 해주에서 온 안중근이라 하오. 나도 여기서는 우형처럼 응칠이란 이름을 쓰고 있소. 할아버지께서 지어 주신 아명인데 여기서 字(자)처럼 쓰다가 그리 되었소.” “우형은 한국에 계실 때는 무얼 하셨기에 그리 단총을 잘 아시오?” ‘그냥 시장의 잡화상이었소. 권총은 국외로 도망쳐 나오기 전에 國賊(국적) 몇 놈을 처단한답시고 장만하였으나 연습만 요란하고 큰 성과는 내지 못했소이다. 브라우닝인가 뭔가 하는 꼬부랑 이름을 가진 서양 총인데 겨우 손에 익을만해지자 왜경들에게 뺏기고 자칫 감옥살이까지 할 뻔했소.” 총 이름을 듣자 반가워 안중근이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그 총이라면 나도 아오. 본국에 있을 때 여러 해 품고 다닌 것이오.” “내 것은 요새 개조해 나온 신형이 아니라 수십 년 전에 나온 구닥다리였소. 그걸로 몇 번 총격전도 해 봤소.” “내가 지니고 있던 것도 갑오년 이전에 나온 구식이었소.” 그로부터 2년도 못돼 다시 같은 총 신형으로 거사에 나섰다가 그 성패에 따라 생사가 갈리게 될 그들의 운명이 어떤 예감으로 다가든 것일까. 안중근과 우덕순은 그날의 우연한 만남에서부터 서로에게서 남다른 끌림을 느꼈다. 그날은 훈련 중간의 휴식시간이라 길게 얘기할 수 없었지만 그 뒤 오래잖아 그들은 서로 간담을 터놓고 얘기하는 사이가 되었다. 우던순은 원래 충청도에 살았는데 고향이 乙未(을미) 의병으로 시끄러워지자 서울로 옮겨 앉은 뒤 잡화상을 하여 생계를 삼았다. 배움은 어릴 적에 몇 해 서당에 나간 것뿐으로 통감 2권까지 읽었다고 했지만 한문으로는 글을 짓지 못하고 읽는 것도 자유롭지는 못했다. 서울로 올라온 뒤 기독교를 믿어 개혁에 눈떴고 을미년 이후에 격변을 겪으면서 민족의식과 동포애를 길러 나났다. 을사조약 이후 일본인 관료와 그 앞잡이들을 미워하여 私(사)戰(전)을 계획하다가 밀고를 당해 노령으로 망명하게 되었는데 그 무렵은 잎담배를 권련으로 말아 파는 것으로 생계를 삼고 있었다. 의암 유인석을 비롯하여 최재형, 이범윤 등 해삼위와 연추를 근거로 세력을 키워 가던 한국 의병부대들이 하나로 뭉쳐 연해주 義(의)陣(진)을 결성하고 국내 진공을 결의한 것은 1908년 6월 하순이었다. 結陣(결진)이 있던 날 김두성을 데리고 연추로 온 유인석은 최재형의 동의회 의병 훈련장에 자리 잡고, 이범윤과 창의회 소속 의병 부대장들을 모두 불러 모았다. 안중근도 동의회 소속 전제익 부대의 포병대 右營(우영)將(장)으로 左營(좌영)將(장)인 엄인섭과 함께 그 자리에 앉았다. “지난 정월부터 해삼위와 연추 일대를 근거로 삼아 연해주 의진을 결성하고 국내로 진공하여 국권 수복의 일전을 벌이자는 논의가 있어 왔소. 3월 들어서는 여러 갈래의 부대들이 각기 의병을 모으고 군기를 장만해 훈련에 들어갔으며 이제는 각 부대 모두 行伍(항오)를 짓기에 모자람이 없게 되었다고 들었소. 거기다가 계절도 가만히 국경선을 넘어 불시에 적의 수비대를 치고 국내로 진공하기에 알맞은 철로 다가들고 있소. 이제 모두 의병부대를 하나로 모아 연해주 의진을 결성할 때가 온 것이오. 나는 오늘 지난날 본국에서 무능과 무력을 아울러 드러낸 관동 창의대의 보잘 것 없는 이력보다는 이 자리에 모인 여러분보다 몇 년이라도 세상을 더 산 나이로 미련을 대고 앞장서 논의를 시작하고자 하오.” 먼저 유인석이 나서 길게 연해주 의진을 결성해야 할 때가 왔음을 역설하고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여럿에게 물었다. 이범윤이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의암 선생님의 말씀이 참으로 지당하십니다. 왜적에게 모진 타격을 준 뒤에는 어차피 연해주로 귀환해야 한다면 추병의 적기는 만주의 매서운 추위가 없는 5월에서 8월 사이, 양력으로는 6월에서 9월 사이가 될 것입니다. 금번 연해주 의진의 결성은 오히려 늦은 감이 있습니다.” 이범윤은 그렇게 말해 놓고 이어 정색을 하머 덧붙였다. “모든 일에는 근본이 서야 하고, 군사를 움직이려면 元首(원수)府(부)부터 먼저 정해져야 합니다. 특히 이제 결성될 연해주 의진은 여러 갈래의 부대가 합쳐져 결성되는 만큼 누구도 감히 그 명령을 어기지 못할 총독을 먼저 세워 軍令(군령)부터 확고하게 한 뒤라야 큰 공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 해 군사를 이끌고 싸워 본 경험에서 우러난 듯한 어조였다. 거기에 이미 누구를 총독으로 지목하고 있는지 암시하는 데가 있었으나 유인석이 모르는 척 하고 물었다. ‘그렇다면 공은 누구를 총독으로 세웠으면 좋겠소.“ “지금 여기서 연해주 의진을 휘어잡고 호령하실 수 있는 분은 의암 선생님밖에 없습니다. 누가 을미년 관동 창의 이후 국내외를 풍진노숙하시며 쌓아 올린 선생님의 위엄과 공업에 감히 거역할 수 있겠습니까?” 이범훈이 그렇게 대답하자 최재형도 머뭇거림 없이 찬동하고 나왔다. “그렇습니다. 선생님께서 저희를 이끌어 주셔야 합니다. 저희는 선생님을 받들어 있는 힘을 다하겠습니다.” 그러나 유인석은 무겁게 고개를 저었다. “나는 이미 나이가 먹어 兵陣(병진)에 들어서는 내 몸 하나 건사할 수 없는 늙은이가 되었소이다. 거기다가 그 동안의 실속 없는 소문으로 언제부터인가 내 이름은 왜적들이 경계하는 이름이 되었소. 내가 총독으로 나서면 공연히 지팡이로 풀숲을 건드려 독사를 놀라게 하는 꼴이 될 것이오. 무슨 큰 일라도 난 줄 알고 힘을 다해 독을 피우면 우리의 진공만 힘들어질 뿐이외다. 그러니 두 분 가운데 한 분이 총독을 맡고 오히려 나를 따라 온 김두성 대장이 키운 부대까지 거느려 주시오.” 그래도 이범윤과 최재형은 펄쩍 뛰며 손을 내저었다. 처음 연해주의 모든 의병 세력을 하나로 모은다는 논의가 시작된 때부터 모두가 하나같이 총대장으로는 유인석을 염두에 두어 온 터라 더욱 그랬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의암 선생님께서 여기 와 계시는데 누가 감히 선생님을 제쳐 놓고 총독을 대신할 수 있겠습니까? 저희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부디 의암선생님께서 이번 대사의 牛耳(우이)를 잡으시고 저희를 이끌어 주십시오.” 이범윤과 최재형이 그런 뜻으로 번갈아 사양했다. 유인석이 짐짓 난감해 하는 표정을 짓더니 문득 목소리를 가다듬어 말했다. “정히 그렇다면 이 늙은이가 이럴 때를 대비해 마련해 둔 임시변통을 말해 보리다. 차라리 저기 있는 김두성 대장을 총독으로 세우는 게 어떻겠소?” 김두성 대장은 본국에서 친위대 副尉(부위)로 있으면서 신식 군대의 전법을 두루 익혔을 뿐만 아니라 대한제국 군대 해산 이후로는 의병으로 싸워 일본군과의 전투 경험도 풍부하오. 또 이곳 연해주로 와서는 내 이름을 듣고 찾아 온 부대를 만들어 여기까지 이끌어 왔으니, 실상은 진작부터 나를 대신해 온 것이나 다름없소. 따라서 김두성 대장이 총독이 되어 연해주 의진을 이끈다면 보잘 것 없으나마 이 늙은이의 안목과 사려를 그 진문 안에 닦아 둔다는 뜻도 있을 것이오.” 그래 놓고 회중을 한번 둘러보더니 깨우쳐 주듯 덧붙였다. “저기 김두성 대장으로 총독으로 내세우는 잇점은 더 있소. 이 늙은이는 말할 것도 없고, 이범윤 대장이나 최 도헌도 이미 일본군에 잘 알려진 사람이오. 누가 총독이 돼도 일본군은 적을 아는 셈이 되오. 그러나 김두성 대장은 본국에서 의병으로 싸웠다고는 해도 이 늙은이 같이 儒生(유생) 출신의 의병장 밑에 이름이 묻혀 일본군에게는 전혀 낯선 인물이오. 저 사람들 두 분 위에 세워 연해주 의진의 총독으로 삼으면 모르긴 해도 일본군은 적지 아니 혼동될 것이오. 거기다가 실질로도 우리 의병은 주동하는 세력이 바뀔 때도 되었소. 언제까지고 동학과 문벌을 등에 업은 유생 출신의 의병장과 그를 따르는 幼學(유학), 농군들로 이루어진 구식 의병들로 저 표독스런 일본군을 맞서게 할 것이오? 저들은 명치유신 이후 안팎으로 크고 작은 전쟁에 날을 지새운 데다 날카로운 병기와 신식 훈련으로 정예하기 이를 데 없는 강병이오. 작년에 해산된 대한제국 장병이 좋은 본보기를 보여 주었듯 우리도 신식 훈련을 받고 날카로운 병기를 갖춘 젊은이들에게 의진을 넘길 때가 되었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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