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중근 의사 일대기 이문열의 불멸 (85) 조 흥 제 제 17장 敗走(패주) 안중근은 다시 일본인들을 끌어오게 해 물었다. “보아하니 그대들은 모두 일본국의 선량한 臣民(신민)들이다. 그런데 왜 천황의 거룩한 뜻을 받들지 않는가? 노일전쟁을 시작할 때 천황은 宣戰(선전)書(서)에서 동양평화를 유지하고 대한독립을 굳건히 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오늘날에 와서 그대들은 이렇게 이웃나라와 다투고 침략하니 이것을 어찌 평화라 하며 독립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하는 것이 역적이고 강도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러자 파랗게 질려 있던 일본인들이 갑자기 눈물을 줄줄 흘리며 말했다. “그것은 우리들의 본심이 아니고 부득이한 사정으로 그리 된 것입니다. 사람이 세상에 나서 살기를 좋아하고 죽기를 싫어하는 것은 떳떳한 정입니다.더군다나 우리는 만리 바깥 싸움터에서 참혹하게 주인 없는 원통한 넋이 되게 하였으니 이 어찌 통분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오늘 우리가 이 지경에 이른 까닭은 달리 있지 아니하고 오로지 이토 히로부미의 헛물 탓입니다. 그 자는 천황의 거룩한 뜻을 받들지 않고 제 마음대로 권세를 주물러서 일본과 조선 두 나라 사이에 귀중한 생명을 무수히 죽이고 저는 편안히 누워 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우리 역시 분개한 마음 없지 않으나 달리 어찌해 볼 길이 없어 오늘 이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저희라고 어찌 옳고 그른 것을 구별하지 못하겠습니까? 더구나 농사짓고 장사하는 일본 백성으로 조선에 온 자들은 더욱 곤란한 처지에 빠져 있습니다. 이와 같이 나라에 해롭고 백성이 고달픈데 동양 평화를 조금도 돌아보지 않고 우리 국세가 편안하기를 어찌 바랄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어쩔 수 없이 죽기는 하지만 통탄스럽기 실로 그지없습니다.” 마치 안중근의 속을 들여다보는 듯 안중근이 그냥 들어 넘기지 못할 소리만 골라 하고 말을 그친 일본인들은 소리 높여 통곡하기를 그치지 아니했다. 안중근이 그대로 있지 못하고 숙연한 낯빛이 되어 말했다. “내가 그대들의 말을 들어보니 과연 충의로운 사람들이다. 이제 그대들을 놓아 보내 줄 터이니 돌아가거든 그런 亂臣賊子(난신적자)를 쓸어버려라. 만일 또 그와 같이 간악하고 음흉한 무리가 까닭없이 종족과 이웃나라 사이에 전쟁을 일으키고 慘害(참해)하려는 언론을 내놓거든 그 이름을 쫓아가 쓸어버리면 그렇게 죽는 자가 열 명을 넘기 전에 동양 평화의 기틀이 잡힐 것이다. 그대들이 그렇게 할 수 있겠는가?” 그러자 그때까지도 눈물 범벅이 되어 울고 있던 일본군과 장사꾼들이 기뻐 날뛰며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안중근은 의병들을 시켜 그들을 놓아 주게 하였더니 그들 가운데 군인들이 나서 울며 애원했다. “장군께서 저희를 놓아주신다 해도 軍器(군기)와 총포를 안 가지고 돌아가면 軍律(군율)을 면치 못하니 이를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그러면 총포도 돌려주마.” 안중근이 그렇게 시원스럽게 말하고 한마디 보탰다. “그대들은 속히 돌아가서 뒷날에도 사로잡혔다는 오늘의 얘기는 입밖에도 내지 말고 삼가 큰일을 꾀하라.” 그러자 일본인들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안중근을 칭송하고 천번 만번 감사하면서 돌아갔다. 하지만 그 일이 軍中(군중)에 널리 알려지자 들은 장교들이 안중근을 찾아 와 불평하며 따졌다. “어째서 사로잡은 적들을 마음대로 놓아주는 것이오?” “현재 萬國公法(만국공법)에 사로잡은 적들을 죽이는 법은 전혀 없소. 어디다 가두어 두었다가 뒷날 배상을 받거나 우리 편 포로와 바꾸어 돌려보내는 것이오. 그러나 그 일본인들이 말하는 것은 진정에서 우러나는 것이라 놓아주지 않을 수 없었소이다.” 안중근이 그렇게 받았으나 그 장교의 표정은 조금도 누그러지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차츰 더 많은 장교가 안중근에게 몰려와 떠들었다. “저 왜놈들은 우리 의병들을 사로잡으면 남김없이 참혹하게 죽이고 있소.또 우리도 적을 죽이기 위해 이곳에 와서 風餐露宿(풍찬노숙)하고 있는 것이오. 그런데그렇게 애써서 잡은 적을 몽땅 놓아 보낸다면 도대체 우리는 무엇 때문에 여기 와서 이러고 있는 거요?” 안중근의 그런 장교들의 말을 받아 간곡하게 타일렀다. “그렇지 않소이다. 진실로 그렇지 아니하오. 왜적들이 그같이 모진 폭행을 하는 것은 하늘과 사람이 다 함께 노하게 하는 것이오. 그런데 이제 우리마저 저들과 같은 야만의 짓을 하려고 하는 것이오? 또 그렇게 하여 일본의 4천만 인구를 다 죽인 뒤에 다시 국권을 회복하려는 계획이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 백 번 이길 수 있소. 지금 우리는 약하고 저들은 강하니 저들과 더불어 구태여 惡戰(악전)을 벌일 것은 없소. 뿐만 아니라 충성스러운 행동과 의로운 거사로 이등박문의 포악한 정략을 성토하여 세계에 널리 알림으로써 열강의 동정을 얻은 다음에라야 한을 풀고 국권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외다. 그것이 이른바 약한 것이 강한 것을 물리치고, 어진 것으로 악한 것을 대적한다는 뜻이 되기도 하는 것이오. 그대들은 부디 더는 여러 말을 하지 마시오.” 그래도 장교들은 안중근의 말에 귀 기울여 주지 않았다. 오히려 더 성을 내며 대들었다. “당신이야말로 홀로 취해 꿈길 가는 소리 하지 마시오. 당신은 만국공법, 만국공법 하는데 언제는 만국공법이 없어 왜적이 황궁을 침범하고 을사조약을 강권하여 국권을 앗아 갔소? 그놈의 소금덩어리 같은 만국공법이 있는데 어찌 이등박문이 황제폐하를 퇴위시키고 남의 나라 군대까지 해산시킨 거요? 제발 꿈 깨시오. 당신이 말한 그런 만국공법은 없소. 강한 놈이 약한 놈을 먹고, 이긴 놈이 진 놈을 짓밟을 뿐이오. 당신 같은 사람을 참모 중장으로 세워두고 따르다가는 자는지 취하는지 모르는 사이에 다 죽고 말겠소.” 그렇게 안중근을 몰아세우는데 다시 고약한 소식이 들어왔다. “일본군 앞잡이 노릇을 하다 붙들린 조선 사람들이 모두 달아났소. 우리 짐꾼이 되어 일하는 척 하다가 사로잡힌 왜병이 놓여나는 것을 보고 뒤따라 사라졌다고 하오. 특히 경흥 관아에서 사정 노릇을 했다던 이덕칠이란 자는 우리 의병부대의 決議錄(결의록)과 同盟(동맹)錄(록), 旅行券(여행권) 등이 들어있는 짐을 지고 달아났는데 아마도 일본인 진영으로 간듯하오. 그리되면 왜적들이 우리 부대 사정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훤히 알게 되었으니 실로 큰일이오. 이 모두 참모중장께서 그들을 풀어 놓은 탓이오.” 그러자 의병장교 중에는 제 성을 이기지 못해 군사를 갈라 멀리 떠나 버리는 사람도 있었다. 안중근과 의형제를 맺었던 좌영장 엄인섭도 그들 가운데 하나였다. 부대가 수런거리며 자기 부하들과 함께 떠나는 장교들이 생기자 엄인섭도 그들과 함께 화를 내며 제 밑에 있는 소대 셋을 이끌고 떠나 버렸다. 그런 가운데 갑자기 요란한 총소리와 함께 일본군의 반격이 있었다. 회령에서 급히 돌아온 일본군 수비대가 안중근에게 풀려난 저희 편을 만나 서로 다투며 흩어지고 있는 안중근의 의병부대를 급습해 온 것이었다. 아무런 대비 없이 있다가 내부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쳐들어온 적군을 맞게 되자 안중근 부대는 크게 어지러워졌다. 급한대로 지세에 의지해 응전하고 있는데 날이 저물어 장대같은 비까지 쏟아졌다. 그렇게 되니 싸움은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었다. 한 뼘 앞을 알아 볼 수 없는 어둠 속에서 동이로 퍼붓는 듯한 비를 맞으며 허둥대는 사이에 의병들은 이리저리 쫓기며 흩어져 얼마나 죽고 얼마나 살았는지 조차 가늠하기 어려운 지경이 되었다. 안중근도 어쩔 수없는 형세에 쫓겨 곁에 있던 의병 수십 명과 함께 가까운 숲 속에 몸을 숨기고 밤을 새웠다. 다음 날이 밝고 일본군의 기척도 멀어지자 안중근은 사람을 풀어 부근에 흩어진 의병들을 찾아보았다. 저물녘이 되도록 모인 의병들이 그럭저럭 육칠십 명이 되었다. 그러나 부대장 전제익과 그 직속대가 없어졌고, 전날 밤까지도 안중근 곁에서 함께 움직여 온 우덕순도 이끌던 소대와 함께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안중근은 낙심하지 않고 다시 모인 사람들과 만나 간밤에 있었던 일을 차분히 알아보았다. 불행 중 다행으로 죽거나 사로잡힌 사람보다는 각기 부대를 나누어 흩어진 사람들이 많은 듯했다. 하지만 전날 밤 자기들을 급습했던 일본군이 규모가 어느 정도이며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 몰라 안중근의 의병부대는 함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사방에 망보기만 세우고 죽은 듯 숲속에 엎드려 저물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다 보니 제대로 먹지 못하고 쫓긴 지 벌써 이틀에 접어들고 있었다. 아래 위를 가릴 것 없이 의병 모두가 주린 기색을 보이며 한 목숨 구해 살아 돌아갈 궁리 뿐이었다. 그걸 본 안중근은 창자가 끊어지고 간담이 찢어지는 것 같았지만 그렇다고 그들만을 나무랄 수도 없었다. “날이 어두우면 산 아래로 내려가 마을을 찾아봅시다. 우리가 두만강을 다시 건넌 적이 없으니 여기가 아직은 대한 땅이라 사는 이들도 우리 동포들일 것이오. 왜적과 싸우다 곤궁에 빠진 우리를 모른 척 하지는 않을 것인즉 거기 가서 우선 주린 배부터 채운 뒤에 다음 방략을 논의합시다.” 두려움과 굶주림에 지친 의병들을 그렇게 달랜 안중근은 날이 어둡기 바쁘게 숲을 나가 마을을 찾아보았다. 밤길에 낯선 산길을 헤쳐 나가야했지만 운 좋게도 밤이 깊기 전에 제법 여러 집이 어우러진 화전민 마을 하나를 찾을 수 있었다. 안중근이 장교 몇 명과 마을 사람을 찾아보고 사정을 말하자 안중근이 말한 대로 되었다.마을 사람들이 급히 보리쌀을 곱삶고 산나물로 뜨끈한 국을 끓여 내왔다. 마을 사람들이 내온 밥과 국을 걸신 들린 듯 퍼먹고 있는 의병들과 함께 안중근도 우선 굶주림과 추위부터 면한 뒤에 물었다. “여기가 어디요?” 밥을 내온 마을 사람들 가운데 지리에 밝은 중년 하나가 나서 일러 주었다. “여기는 회령에서 동쪽으로 삼십 리쯤 되는 산속입니다. 북쪽으로 한 이십리 가면 두만강을 만날 수 있습니다만 왜놈 수비대가 촘촘히 지키지요. 서쪽으로 회령읍을 돌면 무산으로 빠지는데 백두산 자락이라 산길이 험할 것입니다.” 그 말에 비로서 안중근은 자신이 있는 곳을 가늠했다. 의병들과 함께 마을을 떠난 뒤 한 군데 사방을 살피기 좋은 산등성이 풀숲에 자리를 잡고 장교들을 불러 모아 물었다. “자, 이제 어지하면 좋겠소?” 전날 좌영장 엄인섭이 부대를 갈라 간데다 간밤의 싸움 중에 부대장 전제익이 그 직속대와 함께 사라져 남은 장교 중에는 안중근이 가장 선임이었다. 그러나 하룻밤의 모진 패전으로 장교들은 위계에 복종하려 들지 않고 병사들도 기율을 지키려 하지 않았다. “잡힌 범을 놓아 보낸 一敗塗地(일패도지)한 마당에 무엇을 어찌하기는 어찌한단 말이오? 북쪽으로 길을 잡고 하루 빨리 두만강을 건너 연추로 돌아가는 길 밖에 더 있소?” 조금 점잖은 대답이 그와 같은 핀잔이었고, 모진 것은 바로 야유와 욕설이었다. “뭘 걱정햐, 만국공법이 있잖여? 만국공법더러 우리 모두 살려내라면 될껴.” “니미럴, 목숨이라도 붙어 돌아가려면 바지에 똥 싸 붙이게 생겼구먼. 부대고 뭐고 다 흩고 총까지 팽개치고 튀어도 연추 땅 다시 밟는 놈, 몇 놈이나 되가서.” 안중근은 나중 자전적인 글에서 그때 일을 그렇게 회상하고 있다. ‘군중의 마음은 복종함이 없고, 기율도 따르지 않아, 이런 때를 당하여 이같이 질서 없는 무리를 이끌고서는 비록 孫子(손자), 吳(오)子(자)나 제갈공명이 되살아나도 어찌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안중근은 터질 듯한 속을 꾹 눌러 참고 그들을 달랬다. “이기고 지는 것은 싸우는 사람들에게 늘 있는 일이오, 비록 우리가 모진 적도를 만나 크게 상했으나 아직도 쉰이 넘는 병력에다 수십 자루의 총포와 싸움 몇 번은 치를 만한 탄약까지 남아 있소이다. 대로를 정비하여 한 번 더 싸워 보고 그때 다시 지게 되면 연추로 물러나도 늦지 않을 것이오. 회령읍이 여기서 멀지 않다 하니 돌아가더라도 부근 수비대나 하나 더 들이치고 돌아가도록 합시다. 전력을 다해 적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다면 그게 오히려 적의 추격을 끊는 길도 될 것이오.” 그리고 투덜거리며 떠나려는 이들을 돌려 세우는 한편 아직도 부근에 흩어져 있는 의병들을 찾아보게 하였다. 그런데 흩어진 의병을 하나라도 더 모으려고 이리저리 사람을 푼 게 다시 화근이 되었다. 그 사람들이 밤새 안중근 부대를 뒤쫓아 오던 일본군 부대에 포착되면서 안중근 부대는 다시 일본군의 강습을 받게 되었다. 뒷날 회령 전투라 불리게 되는 그 싸움에서 안중근 부대를 공격한 일본군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다. 회령에 집결해 있던 대대규모의 병력 중에서 홍의동과 신아산 부근의 수비대가 의병들에게 잇달아 공격 받았다는 연락을 받고 급파된 일개 중대 중의 한 갈래였다. 그러나 병사들은 한만국경에 오래 근무해 주변 지리와 인정에 밝은 장병들인데다 기관총이 두 정 딸려 있는 증편 소대로서 겁먹고 기죽은 안중근의 의병부대가 당해 내기는 무리였다. 애초부터 싸울 마음이 없이 어정거리면서 저마다 살 길을 찾아 눈치만 보던 의병들은 일본군의 한 차례 일제 사격에 그야말로 풍비박산이 났다. 제대로 應射(응사) 한 번 하지 못하고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나기 바빴다. 오래잖아 날이 희끄무레 밝아 왔을 때 의병들이 자리 잡고 있던 숲 속에는 몇 구의 시체만 남아 있을 뿐, 나머지는 모두 쓸려가기라도 한 듯 자취조차 없었다. 안중근도 홀로 버틸 수 없어 흩어져 달아나는 의병들과 함께 일본군의 포위 공격에서 벗어났다. 어둠 속이라 총소리와 섬광이 드문 쪽으로 달리다 보니 차츰 산은 높고 깊어져도 사방은 곧 어둡고, 조용해졌다. 다행히도 일본군의 주공 방향은 피한 듯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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