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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 (89)

작성자~조흥제|작성시간26.06.22|조회수25 목록 댓글 0
                       안중근 의사 일대기 이문열의 불멸 (89)


                                                                                               조 흥 제


  지난 봄 의병 모병과 군자금 조달을 위해 유세를 나설 때만 해도 안중근은 새로 출발하는 자의 열정과 패기도 있었다. 하지만 같은 목적으로 흑룡강을 오르내리고 있어도 지금의 안중근은 달랐다. 허망한 패퇴와 가혹한 생존의 체험은 안중근을 다시 10년은 더 늙어버린 듯한 느낌에 젖게 했다. 늙는다는 것은 그만큼 사려 깊고 신중해졌다는 뜻도 되지만 또한 그만큼 쇠잔하고 허무감에 친숙해졌다는 뜻도 된다.
함께 하는 사람도 달라졌다. 그때는 당찬 엄인섭과 우직하게 몰아붙이는 김기룡이 곁에 있었지만 지금은 어린 황영길과 어렵게 달래 데려온 김택형이란 떠돌이가 있을 뿐이었다. 안중근이 회룡에서 일본군을 놓아 준 일로 엄인섭은 아직도 의절 상태였고 김기룡은 안중근과의 우의는 회복했으나 몸져 누워 데려올 수가 없었다.
거기다가 패퇴의 소문은 생각보다 빨리, 그리고 상세하게 동포들의 마음에 전해져 사람들을 의기소침하게 만들었다. 겨우 다 둘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추풍이나 수분하 같이 연추에서 가까운 지역은 말할 것도 없고, 멀리 하발포 인근의 동포들까지도 몇 명이 국내로 진공하였으며 얼마나 어이없이 패퇴하였고, 또한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었는지를 훤히 알고 있었다. 그것이 해외에서 조직된 의병의 첫 진공전이란 점에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지만 자기들의 성의와 염원이 그렇게 허망하게 꺾인 것에 많은 한인은 총을 들고 나가 싸운 사람들 못지않은 상처를 받은 듯하였다.
그러다보니 안중근의 그 유세 길은 전 같을 수가 없었다. 안중근은 패퇴를 겪은 비장감까지 곁들여 독립특파부대로 싸울 의병을 모집하고 군자금을 빌었지만 모이는 것은 지난번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하지만 그래도 연추에서 멀어질수록, 그리고 전 번에 가 본 적이 있는 마을일수록 호응이 나아지는 것이 힘이 되어 그 여행을 이어지게 했다. 하발포에서 다시 기선을 타고 흑룡강을 오르내리며 물가에서 멀지 않은 곳에 마을을 연 한인들을 찾아보게 된 일이 그랬다.
“안 선생님, 바람이 찹니다. 이제 선창으로 내려가시지요,”
누가 감판 난간을 잡고 선 안중근의 등 뒤에서 그렇게 말했다. 나이가 어린데다 키가 작아 꼬마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하는 황영길이었다. 미욱한 데가 있는 김택형은 선창 안에서 낮잠이라도 자는 모양있다.
“그럴 거 없네. 여기 신한촌이 다 돼갈 걸세. 김 동지에게 가서 내릴 채비나 하라 이르게.”
안중근이 그렇게 이르자 황영길도 배를 탈 때 들은 말이 기억나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한 세 시간 쯤 지난 듯하네요.”
그리고는 한참만에 눈이 부숭부숭한 김형택을 데려 왔다. 세 사람이 내린 곳은 흑룡강 남안의 작은 계곡 어귀에 있는 작은 마을이었다. 한인 50여 호가 마을을 이루어 채소와 根菜類(근채류)를 재배해 하발포 시장에 내다 파는 일종의 근교 농업을 하고 사는데 작은 교회까지 있는 게 의식이ㅣ 풍부하고 안정된 마을 같았다. 안중근은 처음 와 보는 마을이었다.
마을로 들어간 안중근은 먼저 촌장격인 마을 어른을 찾아보고 자신이 온 까닭을 밝힌 뒤 마을 사람들을 모아 주기를 청했다. 다행히도 마을의 교회는 천주교 공소였고, 촌장격인 유 아무개란 노인도 천주교 신도였다. 거기다가 어렴풋하게나마 안중근의 이름도 들어본 사람인 듯 따뜻이 맞아 주었다.
그날 저녁 공소에 모인 마을 사람들을 상대로 안중근은 다시 한번 열변을 토했다.
“우리는 처음부터 한 번 의거로 국권 회복의 공업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떠났습니다. 첫 번에 이루지 못하면 두 번, 세 번, 열 번에 이르고 배 번 꺾여도 굴함이 없이, 금년에 못 이루면 내년에 다시 도모하고 내년 내후년, 십 년, 백 년이 가도 좋다는 각오와 기상으로 싸워나가야 할 일이 우리의 독립전쟁인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주저앉으면 적은 점덤 더 강성해지고 포악해져 나중에는 물리치려 해도 물리칠 수 없는 怪獸(괴수)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모인 동포들은 한결같이 눈에 비분의 빛을 띠며 주먹을 부르쥐었다. 그러나 갸륵한 것은 그들의 마음뿐이었다. 흑룡강을 따라 이제 막 생겨나고 있는 新(신)韓(한)村(촌)의 동포들은 아직 옮겨 앉은지 오래 안돼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한 상태였다. 정성을 다해도 내 놓을 것이 그리 많지 못했다. 그 마을 말고도 두 세 군데 더 돌았으나 다 합쳐도 하발포 한곳보다 못했다.
“아무래도 남쪽으로 내려가 보는 게 낫겠습니다. 그쪽에 노서아 땅으로 옮겨 앉은 지 오래 되어 뿌리 내린 동포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가 보지요.”
눈치 빠르고 민첩한 황영길이 안중근에게 그렇게 권했다. 안중근도 그 말을 옳게 여겨 기차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 가 처음부터 제쳐 놓고 온 곳으로 갔다. 소왕령과 수청 등지였다. 하지만 거기서도 성과는 신통치 못했다. 때로는 교육계몽운동이나 애국단체 결성으로 전환하여 여러 방면을 뛰어 다녔으나 안중근이 바라는 바에는 크게 미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황영길 김택형 두 사람이 함께 한군데 외진 한인촌을 찾아 가는데 인적 드문 산골짜기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어디에선가 흉악하게 생긴 패거리가 칼과 몽둥이를 들고 몰려 나와 앞서 가던 안중근을 다짜고짜 잡아 묶었다.
“우리가 의병 대장을 잡았다. 나라에 큰 공을 세웠다.”
흉측한 무리가 그렇게 소리치며 기뻐하는 사이 안중근을 뒤따라 오던 두사람은 용케 몸을 빼 달아났다. 그러나 그들이 처음부터 노린 것은 오직 안중근 뿐이었던 듯 그들을 뒤쫓지 않고 안중근만 족쳐 댔다.
“너는 어찌 감히 나라에서 엄금하는 의병을 모집하는 것이냐?”
조선에 있을 때 일진회라는 못된 무리가 일본구의 앞잡이가 되어 의병들을 모질게 죽인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 악종들이 그새 노서아 땅끼지 흘러든 듯했다. 그러나 안중근은 겁먹지 않고 받았다.
“지금 우리에게 대한제국이 있지만 이름만 그러할 뿐, 실상은 이등박문이 제 멋대로 쥐고 흔드는 정부다. 대한의 민족된 사람이 이 정부에 복종한다는 것은 실상 이등박문에게 복종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의병을 엄금하는 것도 이등박문 명령인 만큼 똑똑한 대한의 정부가 무엇 때문에 따르겠는가?”
그러자 그 패거리는 잡아먹을 듯 이까지 갈아붙이며 얼러댔다.
“네 놈은 땅에 묻혀 눈에 흙이 들어가야 죽는 줄을 알겠구나. 명년 오월이 네 제삿날이 되게 하여 주마.”
그리고는 긴 베수건으로 안중근의 목을 옭아 금방이라도 나뭇가지에 매달 듯 눈 바닥 위로 끌고 가며 마구잡이로 매질하였다. 안중근은 쏟아지는 몽둥이 아래서 아득해지는 정신을 가다듬으며 소리쳤다.
“만약 여기서 나를 죽이면 너희는 무사할 것 같으냐? 아까 나와 동행했던 두 사람이 도망쳐 갔으니 그들은 반드시 이 일을 동지들에게 알릴 것이다. 그리되면 우리 동지들이 뒷날 너희를 끝까지 찾아 내 모조리 죽일 터, 목숨이 아깝거든 알아서 해라.”
그러자 그 말에 뒤가 켕겼는지 그들의 매질이 잦아들었다. 뿐만 아니라 저희끼리 수군거리며 의논하는 눈치가 아무래도 안중근을 죽일 수는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윽고 그들 일진회 패거리는 안중근을 끌고 근처 산속 외진 초가로 들어갔다. 거기서 어떤 놈은 무슨 원수진 듯 다시 매질을 하고, 어떤 놈은 말리며 반나절을 보냈다. 안중근은 매질이 멈출 때마다 좋은 말로 그들을 달랬다.
“나라 안에 있을 때는 뜻이 다르면 서로 싸울 수도 있고, 정히 듣지 않으면 죽일 수도 있다. 그러나 천만 리 이국땅에 나와 동포끼리 이 무슨 짓인가? 삼천리금수강산과 반만년 역사에 부끄럽지도 않은가? 내 대한의 장부로서 왜적과 싸우다 죽는다면 아무 여한이 없거니와 이렇게 동포의 손에 죽으면 땅 속에 묻혀서도 눈을 감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자 때리던 놈들도 차츰 기세가 수그러지며 대답을 못하더니 마침내는 저희끼리 모여 다시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얼마 뒤에 말리던 패거리 중 하나가 유난히 앞장 서 매를 들도 설치던 작자를 보고 나무라듯 말했다. “이 일은 처음부터 金(김)哥(가) 네가 꾸미고 일으켰으니 김가 네가 알아서 해라.우리는 여기서 더는 상관하지 않겠다.”
그러면서 들고 있던 몽둥이며 쇠붙이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러자 김가는 내 몰린 듯 안중근을 이끌고 그 집을 나와 산 아래로 데리고 내려갔다. 안중근은 김가가 홀로 된 것을 보고 힘을 얻어 한편으로는 달래고 한편으로는 꾸짖으며 그 완악한 마음을 풀어보려 애썼다. 김가도 일이 그쯤 되자 더는 어찌할 수 없었던지 산 아래에 이르러 슬그머니 결박을 풀어주고는 말없이 사라졌다.
안중근이 겨울 죽을 고비를 넘기고 마을로 돌아가니 그제야 사람들을 모아 안중근을 찾아 나서려던 황영길 김태형이 놀라 맞았다.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비척거리는 안중근을 둘러 업고 빈 방을 찾아 눕힌 뒤 의원 일을 아는 마을 어른을 불러 상처를 살피게 했다.
황영길이 둘러 업을 때 긴장에서 놓여남과 함께 혼절해 버린 안중근은 다음 날 정오가 되어서야 깨어났다. 그러나 전처럼 성하게 돌아다니며 유세를 하거나 교육운동을 계속할 처지는 못 되었다. 이에 황영길과 김태형 두 사람은 수청에서 마차를 빌려 안중근을 해삼위로 옮겼다.
해삼위로 돌아온 안중근은 계동학교 앞에 있는 이치권의 집에 병석을 깔고 누워 일진회 패거리에게 부러지고 찢긴 몸이 낫기를 기다렸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처음 해삼위를 찾은 동포들에게는 여관이나 다름없는 이치권의 집으로 반가운 손님 하나가 찾아왔다. 정대호라고 안중근의 진남포에 있을 때부터 벗삼아 가깝게 지내던 이였다.
정대호는 일찍부터 신문학 쪽에 눈 떠 여러 말을 익혔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노서아 말에 능통하여 안중근에게서 부러움을 샀다. 그런데 결국은 그 노서아 말 덕분에 해삼위에서 기차로 반나절 길이 되는 포그리치야나란 곳의 海關(해관)에서 일자리를 얻게 되어 그해 봄부터 그리로 옮겨 살고 있었다. 그 무렵 진남포 본가에 들렀다가 안중근이 해삼위에 있다는 말을 듣고 수소문 끝에 이치권의 집으로 찾아 온 것이었다.
안중근의 딱한 처지를 본 정대호는 다음날로 안중근을 초크리치야나 인근에 있는 자기 집으로 옮겼다. 덕분에 안중근은 이치권에게 숙식을 눈치 볼 것 없이 그 겨울을 정대호의 집에서 나며 몸이 낫기를 기다렸다.
두 거나 험난했던 1908년이 가고 새해가 되었다. 이제 몸이 거의 다 나아 언제 연추로 놀아갈 것인가를 헤아리고 있던 안중근은 어느 날 밤 기이한 꿈을 꾸었다. 안중근이 진남포 옛집의 자기 방에서 앉아 있는데 홀연히 찬란한 무지개 같은 것이 하늘에 걸리더니 그 무지개의 아름다운 끄트머리가 차츰 그에게로 다가왔다. 그 무지개가 바로 안중근의 머리에 닿으려는 찰나에 갑자기 성모 마리아가 나타나 그 오묘한 섬섬옥수로 안중근의 가슴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놀라지 말아라, 걱정할 것 없다.”
그리고는 다시 황홀한 빛에 싸여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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