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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장비

나침반(Compass); 그대 손끝은 자유를 가리켰네

작성자오로지|작성시간12.02.10|조회수495 목록 댓글 2

인류 문명의 역사와 함께 해온, 세계 3대 발명품의 하나로 꼽히는 나침반.

단지 북쪽을 가리키는 바늘 하나가 미지를 향한 탐험의 시대를 열었고, 나아가 지도의 공백지대가 없는 세상에 이르게 되었다.

사진은 1984년 네팔 카트만두 타멜가에서 구입한, 영국 카셀라 런던(CASELLA LONDON)사의 렌즈식 나침반. 1799년부터 나침반을 생산해오던 이 회사에서 2차 대전 즈음 출시한 민수용으로 보인다.

과거 국내에서 흔히 사용하던 미 육군용 M1 타입 나침반도 이와 같은 구조로, 가늠줄과 가늠쇠를 목표물에 일치시킨 뒤 방위각을 측정하도록 되어있다.


남선우 본지 발행인 소장


글 이영준 기자\글 양계탁 기자

 

 

 

 

인류 역사와 함께 해온 세계 3대 발명품
그대 손끝은 자유를 가리켰네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죄르지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 첫 머리엔 이런 글이 나온다. 어떤 상황에서건 매우 자주 빗대어 인용되는 말이라서 들어본 독자들도 많을 것이다. 루카치는 이상적인 고전주의에 빗대 모두가 공통의 지향점(별, 고전)을 좇았던 과거를 찬양하며 한 말이지만, 나침반을 보고 있어도 이 말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그는 자신이 생각한 이상의 시대에 대해 뒤이어 이렇게 말했다.

 


‘이러한 시대에 있어 모든 것은 새로우면서도 친숙하며, 또 모험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자기의 소유로 되는 것이다. 그리고 세계는 무한히 광대하지만 마치 자기 집에 있는 것처럼 아늑한데…’


뒷문장까지 읽으면 나침반에 대한 이미지는 더욱 확고해진다. 영락없이 나침반과 지도를 들고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산을 탐험하고 오르면서도 그 낯선 공간 속에서 공포 따윈 잊고, 무위자연, 물아일체의 경지에 다다르는 산꾼의 희열을 말하는 것만 같다. 그래서 이런 희열 속에 산에 있는 것이 내 집과 같고 집을 곧 산으로 여기게 되어, 매일 집에 가듯 산으로 향하고 산을 통째로 집에 옮겨다 놓아 방에서도 침낭에서 자고 부엌에선 코펠에 밥해먹는 아름다운 행위들을 계속하게 되는 것이니….

 

 

 

기원전 중국에서 자석 발견해 나침반으로 발전

 


종이, 화약과 함께 인류 3대 발명품으로 꼽히는 나침반의 역사는 기원전 1천여 년 전으로 거슬러간다.

 

나침반의 핵심 부품인 자석을 처음 발견한 곳은 중국으로 알려져 있는데, 당시 철기문명을 꽃피우던 주(周)나라에서 지남차(指南車)라는 자석을 응용한 도구를 사용했고, 이것이 실크로드를 횡단하던 아라비아 상인들을 거쳐 유럽에 전해져 나침반으로 발전됐다는 것이다.

영어로 마그네틱(magnetic)이라고 하는 자석은 서아시아 지방의 마그네시아(magnesia)에서 나오는 철광석이 자성을 띄고 있어 이름이 유래됐으며, 나침반의 영어말 컴퍼스(compass)는 본래 수학에서 사용하는 컴퍼스의 용도와 같이 원을 그리는 데 사용하는 도구이나, 원을 방위로 구분한다는 뜻의 라틴어 컴퍼수스(compassu)에서 유래돼 같은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1960~70년대 산악인들이 흔히 사용하던 미군용 렌즈식 나침반. 당시 남대문 일대의 군수품점에서 구할수 있었던 군용나침반은 육군용인 M1타입과 포병용인 M2타입이 있다.

육군용은 일반 나침반과 같이 각도가 도 단위로 표기되어있고, 포병용은 밀(mil, 1/1000인치) 단위로, 360도를 640등분해 표기했기 때문에 독도를 하는 덴 적당치 않았다. 가늠줄과 가늠쇠를 목표 지점에 일치시킨 뒤 가늠쇠를 내리면 방위각이 고정돼 편리하게 원하는 곳을 찾아갈 수 있도록 되어있다. 최선웅 소장

 

 

나침반의 원리는 매우 간단해서, 막대자석을 공중에 띄우면 N극은 북쪽, S극은 남쪽을 가리키는 성질을 이용해 방위를 알아내는 것이다. 이 단순한 원리가 15세기 유럽에서 시작된 대항해시대를 열었으며, 이후 탐험, 군사, 경제와 정치 등 인간의 역사를 발전시켜왔다.

 

 
등산은 곧 탐험의 역사와도 함께 해왔기 때문에 산악인들이 배낭 속에 나침반을 챙기는 건 필수적인 일이었다. 과거 우리의 산에 지금과 같은 등산로들이 나있지 않았을 때에는 능선을 종주하며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고, 다음 목적지까지의 거리를 계산하고, 또 사전에 계획을 세우고 돌아와 기록을 남기는 것도 지도와 나침반을 빼놓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허나 전국의 산에 고속도로와 같은 산길이 뚫리고, 사람들이 몰리며 주말이면 앞사람 뒤꿈치만 바라보고 가도 길을 잃을 염려는 없어졌다. 어쩌면 지금의 산행 대부분은 독도를 통해 자신의 위치와 목적지를 파악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저 자리를 펴놓고 먹기 좋은 너럭바위를 찾는 일이 더 중요한 일이 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비단 산에서 뿐 아니라 나침반은 우리나라에서도 오래 전부터 사용되어왔다.

학자들에 따르면, 적어도 신라시대 중기부터 나침반이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풍수지리가들이 지금도 사용하는, ‘패철’이라 불리는 나침반은 중심에 방향을 가리키는 자석이 있고 그 둘레로 방위를 표기해놓은 기구이다. 예부터 집을 짓거나 묏자리를 쓰는 등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방위는 매우 중요한 조건 중 하나였고, 때문에 나침반은 꼭 필요한 도구였던 것이다.

 

 
국토지리정보원 지도박물관에 가면 <대동여지도>를 만든 고산자 김정호의 동상을 볼 수 있다. 한손에는 나침반, 다른 손에는 지도를 들고 있는 모습은 지금 산에 올라 독도를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나침반의 사용법과 원리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산자 김정호가 1861년 만든 <대동여지도>. 약 16만분의 1 축척으로 총 22개 첩으로 되어있다. 이를 모두 펼치면 가로 3m, 세로 7m에 이르는 거대한 지도가 된다. 보물 제850호로 지정돼 있으며, 사진은 1990년대 초, 고 이우형씨가 만든 영인본이다. 김정호도 나침반을 들고 전국의 산야를 누볐다. 이용대 소장

 

 

 

서울의 북쪽과 제주의 북쪽은 다르다?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이 북쪽이기는 하지만, 정확히 지구의 중심축은 아니라는 사실은 중학교에서도 배우는 상식이다. 자침이 북쪽으로 향하는 이유는, 지구 또한 거대한 자석이기 때문인데, 이 힘을 ‘지자기’라고 한다. 지자기는 지구 내부에 있는 맨틀의 대류현상에 의해 발생하는데, 지구의 구조가 날계란과 같다고 생각하면 쉽다.

액체상태의 계란을 회전시키면(지구의 자전) 껍질(지표면)에 자기 에너지가 발생하고, 이 중심 축은 계속 이동하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지구 자전축의 중심인 진북과 자침이 가리키는 방향인 자북은 장소에 따라 동쪽이나 서쪽으로 기울어있게 되는 현상이 생긴다. 이 각도를 자침편차각이라고 하며, 자북의 중심은 하루에도 수십km씩 이동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1세기 초 중국의 학자 심괄이 쓴 <몽계필담>에는 이 같은 사실이 기록되고 있으며, 1492년 신대륙을 찾아 떠났던 콜럼버스도 당시 포르투갈 서쪽 아조레스 군도의 코르보 섬 부근을 통과할 때, 지금까지 북극성이 가리키는 북쪽보다 서쪽으로 기울어져있던 나침반의 방향이 동쪽으로 바뀌었다고 항해일지에 기록하고 있다.

 

  
지구는 둥글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각 지점에서 나침반이 가리키는 북쪽도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국토지리정보원에서 발행하는 지형도에는 하단에 자침편차각이 표시돼 있다. 현재 유통되는 1996년도 판에는 서울지역의 자침편차각은 7도30분, 제주도의 경우 5도45분 서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나침반이 가리키는 서울의 북쪽과 제주도의 북쪽은 1도15분정도 차이가 나는 것이다. 

 

   
모든 휴대용 나침반은 지자기를 이용하기 때문에 이 같은 편차가 발생하며, 따라서 항공기나 선박에서는 지자기의 영향을 받지 않고 지구 중심축인 진북을 가리키는 자이로컴퍼스라는 특수한 나침반을 사용하고 있다. 

 

 

 

1970년대 초반 오리엔티어링 보급으로 저변확대

 


나침반은 등산의 필수장비이지만 지도와 따로 떼어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지도와 나침반의 관계는 헤드램프와 배터리, 등산화와 신발끈의 관계처럼 상호간에 하나가 없으면 무용지물이거나 매우 곤란한 상황에 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독도법은 암벽을 오르는 기술만큼 중요한 등산기술이기 때문에 나침반이 오래 전부터 산악인들 사이에서 사용되어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일제시대 산악활동과 관련한 자료들 중에 나침반과 독도법에 관한 건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나라는 일찍이 <대동여지도>를 만들었지만 보급은 널리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사용하는 등고선 지도의 토대가 된 건 일제가 한일합방 전에 육지측량부대를 비밀리에 파견해 만든 5만분의 1 <신속측도>가 시초다. 합방 후 일제는 1918년까지 조선 전역을 정밀하게 측량해 5만분의 1 지형도 722매를 완성했고, 이는 해방 후 미군정청을 거쳐 1962년 내무부 산하 국립건설연구소가 설치되기 전까지 별다른 수정 없이 사용되었다. 우리 손으로 만든 지도가 처음 나온 건 1974년의 일로, 네덜란드 기술을 들여와 항공촬영해 만든 것이다.

 

 
때문에 산악인들은 직접 지도를 그려 산행에 사용하는 경우도 많았는데, 나침반을 이용해 방위 정도만 알 수 있을 뿐 지금과 같은 정밀한 독도는 하기 힘든 것들이었다. 지도와 나침반을 이용하는 등산기술이 우리 산악계에 확산된 건 1970년대 초반 오리엔티어링이 보급되면서부터로 볼 수 있다. 

 

 
오리엔티어링의 어원은 ‘방향을 정해 뛴다’는 뜻으로, 지도와 나침반을 이용해 정해진 포스트를 찾아내고 빠른 시간 안에 골인지점에 도달하는 경기다.

약자로 OL이라고 하는 이 스포츠는 근대적인 지도의 발달과 기원을 함께 하는데, 1845년 처음으로 5만분의 1 지형도를 만들었던 스웨덴에서 생겨나 군사훈련의 일환으로 발전되어오다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유럽과 미주로 퍼져나가게 되었다.

1961년 국제오리엔티어링연맹이 결성되고 1966년 핀란드에서 첫 국제대회가 열렸는데, 이런 활동이 국내에 전해진 건 1971년 한국산악회에서 개최한 ‘알파인OL대회’를 통해서였다.

 

 
당시 대회를 주관했던 최선웅(매핑코리아 대표) 한국산악회 이사는 “60~70년대에는 등산 저변 확대를 목적으로 산악단체에서 각종 등반대회들이 많이 열렸는데, 한국산악회는 유럽에서 보고 온 OL 경기와 접목해 ‘알파인OL’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든 것”이라며 “하지만 OL대회에 대한 규정이나 방법을 몰라 대회 당일 선수들에게 독도법을 강의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광릉 소리봉에서 열렸던 1회 대회는 각 학교산악부나 일반산악회에서 참가했으며, 일반 2만5천분의 1 지도를 복사해 나눠주고 붓뚜껑으로 포인트를 찍은 후 포인트에 심판이 숨어 있다가 선수가 오면 시간을 기록하는 방식으로 치러졌다. 상위 입상자들에게는 등산장비들이 상품으로 주어지기도 했다.

 

 
국내에서 오리엔티어링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며 국제대회에 출전하기도 했는데, 당시 오리엔티어링이 전문화 된 스포츠로 인식되고 있던 서구와 달리 등산활동의 하나로 여겨지던 국내 현실 속에서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다.

오리엔티어링은 목표지점을 빨리 찾는 게 중요한 만큼, 서구에서는 선수들이 가벼운 배낭에 운동화 차림으로 전용 나침반을 가지고 참가하는데, 첫 국제대회 참가에서 우리 선수들은 중등산화를 신고 군용나침반을 들고 간 것이다.

 


오리엔티어링용 지도는 일반 지형도와 달리 지도상에 약속된 특수한 기호를 사용하고, 지명이나 고도도 표기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이런 지도를 처음 접한 선수들은 당황한 나머지 결국 코스를 완주하지도 못하고 돌아와야 했다.

 

    
오리엔티어링 전용 나침반으로는 스웨덴 실바(SILVA)사의 나침반이 가장 널리 쓰인다. 1930년대에 첫 선을 보인 ‘실바 나침반’은 오리엔티어링에 적합하도록 눈금자, 각도계, 돋보기, 진행선 등을 표기한 플레이트(평판)형 나침반으로, 들고 뛰어도 자침이 안정되도록 특수한 기름을 봉입해 등산에서도 탁월한 성능을 발휘하며 지금도 가장 많이 사용된다. 이와 유사한 형태로 핀란드의 순토(Suunto)와 스위스 렉타(Recta) 미국 브런튼(BRUNTON) 등에서도 플레이트형 나침반이 출시된다.

 

 

 

 

오리엔티어링이 새로운 야외활동으로 관심을 받게 되며, 언론에서는 ‘야외에서의 두뇌운동’ ‘선진국형 야외스포츠’라며 적극 권장해 갔다. 그러나 등산인구의 폭발적 증가만큼 나침반의 사용에 대한 이해와 저변이 늘어났다고 보긴 힘들다. 지금도 산에서 지도와 나침반을 휴대하는 사람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최선웅씨는 “등산학교에서 독도법에 대해 강의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렵다거나 귀찮다는 이유로 별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이는 ‘밖에 나가서까지 머리 쓸 일 있느냐, 등산의 목적은 건강과 휴식일 뿐’이라는 한국인들의 성향과도 관계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또 “서구나 일본 등은 거리에서 지도와 나침반을 들고 있는 사람을 흔히 볼 수 있을 만큼 저변이 넓은 반면, 나침반 하나 없는 가정이 대부분이고 ‘길치’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스스로 어딘가를 찾아가는 데 약한 성향을 보이는 우리나라는 이만 놓고 비교해본다면 아직 산악운동이나 아웃도어 활동에서 선진국이라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90년대 중반 GPS 보급 이후 중심 옮겨가고 있어 

 

 


1990년대 중반부터 국내에 보급되기 시작한 GPS는 나침반을 대체하는 새로운 장비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실상 산에서 GPS를 휴대하는 경우 또한 찾아보기 힘든 건 사실이지만, 등산 외에 다른 분야에서는 활발히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각종 학술조사, 측량, 군사, 경찰 등 관공서에서도 필수장비로 여겨지고 있다. 

 

 
휴대용 GPS에서 세계 시장의 7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는 미국 가민(GARMIN)사의 GPS에 전국 지도를 내장해 판매하고 있는 네베상사 이진용 사장은 “사람들이 기존 독도법을 어려운 것으로만 인식하고 이해도 부족해 저변이 약했지만, GPS는 켜기만 하면 자기 위치를 파악할 수 있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 핸드폰을 사용하듯 쓸 수 있는 게 GPS”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우리 산악인들은 새로운 장비를 받아들이는 시기가 늦어서 지금까지도 GPS가 왜 필요하냐고 반문하곤 하지만, 차차 보급이 늘어날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GPS는 기본적으로 위성신호를 감지해 자신이 위치한 경위도 좌표를 읽어내는 기능을 가지고 있지만 나침반도 내장되어있다. 이 나침반은 자석을 이용한 자기나침반과 달리 센서를 이용해 지자기의 강도를 검출하고 북쪽 방향을 계산하는 것으로, 주위 자기의 영향에도 강해 매우 정확한 성능을 지니고 있다.
한때 트로트 가요 중에 ‘나침반’이 유행했었다. 종로로 갈까 영동으로 갈까 청량리로 갈까 고민하다 결국 을지로 길모퉁이에 서있다는 노래 속 주인공은 정작 나침반을 볼 줄 몰랐나보다.

 

산에는 자유가 있고, 산으로 가는 길은 자유를 향한 걸음이다. 그러나 나침반과 지도 없이, 여긴 어디인지, 나는 어디에 있는지 알지도 않으려는 그건 어쩌면 좁은 산길과 표지판, 사람들이 우글거리는 정상에 갇힌, 자유 아닌 자유에 불과할지 모른다.

나침반은 대자연과 모험으로 뛰어들려는 당신에게 진정한 자유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거긴 무한히 광대한 세계이지만 마치 자기 집에 있는 것처럼 아늑하다. ⓜ

 

 

1990년대 중반부터 국내에 소개되기 시작한 GPS는 이제 지도와 나침반을 대체하는 새로운 도구로 여러 분야에서 자리 잡고 있다. 사진은 네베상사에서 수입판매하는 미국 GARMIN사의 GPS. GARMIN은 휴대용 GPS 시장에서 세계 70퍼센트 이상을 점유하고 있으며,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한글로 된 지도를 내장하고 있다.

 

 

[ 출처 : 월간마운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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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희연 | 작성시간 12.02.10 나침반의 중요성을 잘 느끼지못하고 사는 저는 길치입니다..그것도 완전 길치...웃기죠 ? 저같은 사람은 나침반을 중요시 여겨야하는데,,ㅎㅎㅎ
  • 답댓글 작성자오로지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2.02.11 자신을 아는 것은 힘입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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