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황씨 회산군파

작성자황교원|작성시간09.07.14|조회수352 목록 댓글 0

창원황씨는 회산군계와 시중공계의 큰 두줄기의 계보가 있으며 회산군파에서는 좌윤공파,사과공파,부사공파,제안공파,첨정공파,참군공파,안악공파,부정공파,판윤공파,별제공파,감사공파,감사공파,부사공파,사정공파가 나뉘어 집니다

창씨의 개요:창원 황씨는 황씨의 도 시조인 황낙의 후손으로 창원백에 봉해진 병고의 후손에서 계대를 알지 못하는 다음 다음 삼파로 크게 분류된다

첫째는 고려 충정왕때 도첨의 참리를 역임하고 회산군에 봉해져 문화평장사에 오른 황석기를 파조로하는 회산군계(파)가 있다

둘째는 토왕으로 불리는 시중공파와 세번째는 호장공 황양충의 계통이다

회산군의 계보를 보면 파지조인 석기의 맏아들인 상이 고려의 충혜왕때 호군이되어 주요 벼슬을 거쳐 1356년 기철 일당을 숙청하는데 공을 세워 판추밀원부사에 올라 1등공신이 되어 문화찬성사를 거쳐 회산 부원군에 봉해졌으며 서강도원수를 지냈다

석기의 5세손형은 성종때 무과에 장원급제하여 훈련원 도정, 병마절도사를 거쳐 공조판서에 이르렀으며

그의아들 기는 중종때 급제하여 직제학과 대사간을 역임하였고 경기도 관찰사로 나가서 선정을 배풀어 백성들로부터 신임을 받았다

율곡 이이의 문하에서 학문을 배운 신은 공조판서와 호조판서를 역임하고 위성 2등공신에올라 회원 부원군에 봉해져 추포집의 저서를 남기기도 했다

인조조에서 중광문과에 급제한 일호는 세자 시강원 문학을거쳐 장령이되었고 진주목사를 역임했으며 병자호란때는 청나라 황제인 태종의 암살계획을 추진하다가 청국인에게 발각되어 살해당했다

이렇듯 창원 황씨는 충신의 가문이며 창원의 옜지명인 회원의 지명에 따라서 창원 황씨로 불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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