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의 절망을 딛고 일어선
한국 증시는 1999년 밀레니엄의 광풍과
사상 최대의 파산이 공존하는
유례없는 역사적 변곡점을 맞이했다
1월 주가지수 1,000pt 시대의 귀환
1998년 말 시작된 상승 탄력이
새해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투자자들은 다시 객장으로 쏟아져 들어왔고
종합주가지수(코스피)는 단숨에 600선을 돌파했다
외환위기 극복의 신호탄으로
금리가 한 자릿수로 뚝 떨어지자
은행에 잠겨있던 자금들이
무서운 속도로 주식시장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2월 국내 최초의 뮤추얼 펀드인
박현주 펀드 1호가 출시 한 달 만에
100%에 육박하는 경이로운 수익률을 기록했다
개인 투자자들이 직접 매매 대신
펀드로 눈을 돌리는 간접투자 혁명이 시작되었다
돈이 돈을 부르는 유동성의 힘으로
증시는 브레이크 없는 질주를 계속했다
3월 2일 현대증권이 출시한
바이코리아 펀드가 대한민국 전체를 뒤흔들었다
3년 내 코스피 2,000을 돌파한다는
장밋빛 슬로건을 내걸고 발매 석 달 만에
무려 12조 원을 쓸어 담았다
제2의 금 모으기 운동에 비견될 만큼
전국적인 투기 광풍의 서막이었다
4월 벤처기업들의 무대인
코스닥 시장이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정부의 강력한 벤처 육성책에 힘입어
IT 인터넷 기업들이 연일 상한가를 기록했다
자고 일어나면 몇 배가 올랐다는 소문이 돌며
인생 역전을 노리는 직장인과
대학생들까지 주식 계좌를 개설했다
5월 정부가 코스닥 등록 기업에 대해
5년간 법인세 50% 감면이라는
파격적인 특단의 조치를 발표했다
상장기업이 폭증했고
거래대금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전통 제조업 중심의 거래소 시장보다
벤처 중심의 코스닥 시장으로
자금 쏠림 현상이 더욱 극명해졌다
6월 코스피는 IMF 이전 수준인
1,000포인트를 마침내 돌파하며
대세 상승장의 정점을 찍었다
그러나 축제의 분위기 이면에서
재계 서열 2위 대우그룹의 유동성 위기설이
수면 위로 튀어 올랐다
대우 계열사 주가들이 흔들리며
시장에는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7월 19일 대우그룹이 채권단에
구조조정 방안과 담보를 제공하며
자금 지원을 요청했다
시장은 충격에 빠졌고 금융시장 전체가 얼어붙었다
하지만 코스닥의 열기는 식지 않아
코스닥 지수는 역사적인 2,000포인트를 돌파하며
거래소 시장과 완전히 차별화된 흐름을 보였다
8월 재계 서열 2위 대우그룹의
워크아웃이 전격 결정되었다
총부채 89조 원이라는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파산이었다
대우 채권을 잔뜩 들고 있던
투자신탁회사들이 연쇄 부도 위기에 처하자
겁먹은 국민들이 펀드 돈을 빼기 위해 줄을 서며
100조 원 규모의 대규모 펀드 환매 사태가 터졌다
주가는 다시 급락세로 돌아섰다
9월 정부의 대우 사태 진화로
금융시장이 겨우 안정을 찾자
코스닥은 본격적인 광기에 휩싸였다
8월 말 상장한 새롬기술이
무료 국제전화 서비스를 무기로
폭등 랠리를 시작했다
기업 이름 뒤에 닷컴이나 테크 및
정보통신만 붙으면
기본 10거래일 연속 상한가를 치는
기이한 테마주 장세가 연출되었다
10월 힌글과컴퓨터 주가가 폭발하기 시작했다
연초 2천 원대였던 주가는
몇 달 만에 수십 배로 뛰었다
주식 시장은
전통적인 기업 가치를 완전히 무시했다
오직 미래의 잠재력과 가입자 수 라는
모호한 개념만으로 시가총액 수조 원짜리 기업들이
며칠 만에 뚝딱 만들어졌다
11월 26일 코스닥 시장의 하루 거래대금이
역사상 처음으로 2조 원을 돌파했다
급기야 코스피 시장의
거래대금을 추월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증권사 HTS는 주문 폭주로
연일 서버가 다운되었고 매매 체결이
몇 시간씩 늦어지는 대혼란이 이어졌다
12월 28일 코스닥 지수는 연초 대비
수배 이상 폭등한 상태로 화려하게 폐장했다
새롬기술은 단 6개월 만에
150배 급등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겼고 한글과컴퓨터는
연초 대비 124배 상승이라는 기적을 썼다
시가총액이 2년 만에 5배로 불어나며
전 국민이 부자가 된 듯한 환상 속에
1999년이 저물었다
새롬 기술은 상장 직후 주가를
끌어 올릴때 요즘 시장처럼
거래량이 폭주한게 아니라
딱 1주 매도 주문이 있었고
상한가에 체결 하는 방법으로 연일 상한가 뒤
수량이 시장에 풀리며
개미들이 미쳐 날 뛰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화려한 유동성의 파티는
정확히 3달 뒤인 2000년 3월
나스닥의 폭락과 함께
역사상 가장 잔혹한 닷컴 버블 붕괴의
서막으로 이어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