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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

작성자korea|작성시간26.06.12|조회수41 목록 댓글 0

1999년의 화려했던 유동성 파티는
2000년 새해를 맞이하자마자
역사상 가장 참혹하고 파괴적인
닷컴 버블 붕괴의 도살장으로 돌변했다

1월 새해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했던
컴퓨터 인식 오류 Y2K사태가
찻잔 속의 태풍으로 조용히 지나갔다
투자자들은 안도했고
시장은 여전히 테크주 중심의 상승 랠리를 이어갔다
하지만 이면에서는 서서히 경고음이 울리고 있었다
웅장한 기세로 출범한
닷컴 기업들의 속살을 들여다보니
대부분 막대한 영업적자에 허덕이고 있었고
주가를 떠받칠 자금의 연료가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2월 초 코스닥 시장의 하루 거래대금이
사상 처음으로 코스피 시장을
완전히 추월하며 광기의 정점을 찍었다
2월 7일에는 코스닥 지수가
사상 최대 폭인 10.0% 폭등하며
객장을 환호성으로 가득 채웠다
전국에 수많은 주식 중독자를 양산했던
이 날의 폭등은 역설적이게도
버블이 꺼지기 직전
가장 화려하게 타오른 마지막 불꽃이었다

3월 10일 미국 나스닥 지수가
5,048.62포인트를 찍으며
역사적 고점을 기록한 후 급격히 꺾이기 시작했다
전 세계적인 기술주 투매 폭풍이
한국 시장을 그대로 덮쳤다
3월 중순을 지나며 코스닥의 철옹성 같았던
심리적 지지선들이 차례로 붕괴되었다
IT의 미래는 사기였다는
공포가 객장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4월 17일 코스닥 시장은
하루 만에 11.4%가 폭락하는
전무후무한 대폭락을 맞이했다
시장에 등록된 수많은 벤처기업들이
단체로 하한가에 진입하며
주식 창은 온통 파란 불빛으로 뒤덮였다
뒤늦게 거품을 인지한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금리를 연 6.5%까지 거칠게 끌어올리자
시중의 자금줄이 완전히 막혀버렸다
잔혹한 버블 붕괴의 공식적인 신호탄이었다

5월 분기 실적 발표 시즌이 다가오자
시장은 철저하게 냉혹해졌다
투자자들은 더 이상 가입자 수나
미래의 꿈 같은 모호한 수식어에 속지 않았다
실질적인 매출과 영업이익을
증명하지 못하는 닷컴 기업들의 주가는
매일 반토막이 났다
1999년의 신화였던 새롬기술과
한글과컴퓨터의 주가도 고점 대비
가파르게 추락하며 개미들의 비명이 커졌다

6월 벤처기업에 돈을 대던
벤처 캐피탈들이 투자금 회수를 위해
보유 주식을 시장에 대거 집어던지기 사작했다
기업 공개를 통해 유통된
주식 공급 과잉과 기관들의 외면으로
수급 밸런스가 완전히 무너졌다
돈을 더 이상 조달하지 못한
중소 닷컴 기업들이 임금을 체불하거나
하나둘씩 문을 닫는 벤처 잔혹사가 본격화되었다

7월 주가가 반의 반 토막이 나자
빚을 내서 주식을 샀던
개인 투자자들의 계좌에 마진콜이 쏟아졌다
증권사들은 돈을 채워 넣지 못한
개미들의 주식을 다음 날
아침 시장가로 강제 처분하는 반대매매를 감행했다
반대매매가 주가 폭락을 부르고
그 폭락이 다시 또 다른 반대매매를 부르는
잔인한 파멸의 굴레가 이어졌다

8월 코스닥의 비극은 코스피시장으로도 전염되었다
대한민국 경제의 축이었던
현대그룹의 왕자의 난과
유동성 위기설이 극에 달하며
현대건설 등 주요 계열사 주가가 동반 폭락했다
대우 사태의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찾아온 대기업의 흔들림에
종합주가지수마저 웅덩이 속으로 깊게 빠져들었다

9월 한때 수조 원의 시가총액을 자랑하던
대형 인터넷 포털과 커뮤니티 기업들의
비즈니스 모델이 한계를 드러냈다
배너 광고 수익 외에 뚜렷한 수익원이 없던
기업들의 현금이 바닥나기 시작한 것이다
시장은 이들을 냉정하게 거부했고
공모가 대비 수십 배 올랐던 주가들은
본래의 가치 혹은 그 이하로 회귀하며
거품이 깨끗하게 증발했다

10월 거품이 걷힌 자리에
추악한 금융 범죄의 실체가 드러났다
동방금고 불법대출 및 주가조작 사건인
정현준 게이트가 터지며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벤처기업가와 금융권 그리고 권력층이 결탁해
개미들의 돈을 가로챈 사기극에 시장은 경악했고
벤처기업 전체에 대한 신뢰도는
회복 불가능한 타격을 입었다

정현준 게이트의 충격이 가시기 전인 11월
또 다른 거물급 주가조작 사건인
진승현 게이트가 연이어 폭발했다
수천억 원대 불법 대출과
거액의 로비 자금 살포 사실이 드러나며
코스닥 시장은 완전히 사기꾼들의 노름판이라는
오명을 쓰게 되었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연 5.25%까지 올리며
시장의 숨통을 마지막으로 조였다

12월 26일 2000년의 주식시장은
역사상 가장 참혹한 성적표를 남긴 채 문을 닫았다
거래소 종합주가지수는 연초 대비 52% 폭락했고
개미들의 유토피아였던 코스닥 지수는
최고점 대비 무려 81%가 증발하는
괴멸적인 폭락을 기록했다
1999년의 영웅이었던 새롬기술은
고점 대비 90% 이상 폭락해 휴지조각이 되었다
빚더미에 앉은 수많은 개인 투자자들이
한강으로 발길을 옮겨야 했던
한국 자본시장 역사상
가장 슬프고 잔인한 잔혹극의 결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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