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지식 더하기

2001

작성자korea|작성시간26.06.12|조회수23 목록 댓글 0

1월 새해 아침
벼랑 끝에 섰던 개미들에게
기적 같은 소식이 날아들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기습적으로
금리를 전격 인하한 것이다
시장은 환호했고 단 한 달 만에 종합주가지수는
20%가 넘게 폭등하며 630선을 뚫어냈다
한강 변을 서성이던 투자자들은
드디어 살았다며 다시 집을 담보 잡혀
객장으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가장 잔인한
희망고문의 시작일 뿐이었다

2월 축제는 한 달을 가지 못했다
화려했던 1월의 불꽃이 꺼지자
전 세계 IT 경기의 숨통이 막혀온다는
차가운 침체의 신호들이 잡히기 시작했다
바다 건너 미국 나스닥이 다시 힘없이 무너지자
한국의 코스닥도 피할 도리 없이 동반 추락했다
개미들의 가슴속에 서서히 불길한 예감이 엄습했다

3월 겨울시장의 대들보였던
반도체 가격이 전 세계적으로 폭락하며
삼성전자와 현대전자가 직격탄을 맞았다
국가 경제의 심장이 흔들리자
지수는 순식간에 500선 초반까지 밀려났다
객장 전광판은 다시 파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고
투자자들의 입에서는 깊은 한숨이 터져 나왔다

4월 10일 심리적 마지노선이던
종합주가지수 500선이 처참하게 깨지며
491.21까지 추락했다
객장은 비명과 절망으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정말 끝장났다는 통곡이 울려 퍼질 때쯤
바닥을 친 주가를 노린 일부 저가 매수세가
유입되며 시장은 간신히 숨줄만 붙여놓았다

5월 정부의 기업 구조조정이
성과를 낼 것이라는 장밋빛 소문이 돌자
지수는 다시 630선까지 솟구쳤다
시장 전문가들은 일제히
이번에야말로 진짜 대세 상승기라며
확신에 찬 목소리를 냈다
수많은 이들이 마지막 남은 재산을 털어
그 달콤한 유혹에 몸을 던졌다

6월 그 낙관론을 비웃듯 주식시장의 뒤편에서
곪아 터진 고름이 뿜어져 나왔다
이른바 이용호 게이트로 불리는
거물급 벤처 비리 의혹이 터진 것이다
돈과 권력이 얽힌 추악한 로비 행태가 드러나며
코스닥은 또다시
사기꾼들의 야바위판이라는
낙인이 찍힌 채 피를 흘렸다
신뢰를 잃은 시장에서
상승 동력은 허무하게 증발했다

7월 시장은 기력을 완전히 잃었다
거래량은 바닥을 기었고
객장은 유령도시처럼 썰렁해졌다
수없이 속았던 개인 투자자들은 피눈물을 흘리며
손실을 확정 짓고 주식시장을 등졌다
살아남은 자들도
그저 멍하니 전광판을 바라볼 뿐이었다

8월 긴 장마처럼 지루한 경기 침체가 이어졌다
종합주가지수는 500선을 지키기 위해
처절한 진흙탕 싸움을 벌였다
악재만 가득했고 둘러봐도 희망의 빛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숨 막히는 침묵의 계절이었다

그리고 운명의 9월 11일 전 세계가 얼어붙었다
미국 뉴욕의 세계무역센터가
화염에 휩싸이며 무너져 내리는
전대미문의 대테러 사태가 터진 것이다
인류가 처음 목도한 공포 앞에
전 세계 자본시장은 완전히 마비됐다
9월 17일 한국 증시는
연중 최저치인 468.76까지 주저앉았고
코스닥은 46선까지 밀려나며 말 그대로
시체들의 산이 되었다
주식창은 온통 파란색 하한가로 도배되었고
객장 바닥에는 주저앉아
통곡하는 이들의 절규만 가득했다

10월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한 그 파국 속에서
믿을 수 없는 반전의 서막이 올랐다
전쟁의 공포를 잠재우기 위해
미국이 미친 듯이 돈을 풀며
초저금리 정책을 펼치기 시작한 것이다
시장에 풀린 거대한 유동성의 달러 뭉칫돈이
갈 곳을 찾아 한국 시장으로 밀려들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바닥에 굴러다니던
한국 기업들의 주식을
무차별적으로 쓸어 담기 시작했다

11월 외국인이 쏘아 올린 신호탄에
증시는 미친 듯한 랠리를 펼쳤다
반도체 경기가 최악을 지나 바닥을 쳤다는
소식까지 더해지며 시장은 폭발했다
무너졌던 500선과 600선이
단숨에 고속도로처럼 뚫렸다
과거 투기꾼들이 장악했던
유령 같던 IT 벤처 주식들 대신
농심이나 신세계처럼 묵묵히 제 갈 길을 가던
가치주와 내수주들이
시장의 새로운 영웅으로 우뚝 섰다

12월 7일 마침내 종합주가지수는 704.50을 찍었다
9월의 지옥 같은 최저점에서
불과 석 달 만에 50%가 폭등하며 16개월 만에
700선을 탈환하는 기적을 연출한 것이다
12월 28일 폐장
전반기는 피와 비명으로 가득한 잔혹극이었으나
후반기는 신기루 같은
유동성이 만들어낸 기적의 역전극이었다
상처투성이가 된 개미들은
서로의 손을 맞잡은 채
다가올 2002년 월드컵의 해를 바라보며
마침내 뜨거운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IMF 및 닷컴버블에서 살아남았던 개미들은
이른바 2001년 순환매를 거치며
시장에서 사라져 버렸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