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새해의 아침이 밝았지만
추위보다 더 지독한 공포가 휘몰아쳤다
북한의 NPT전격 탈퇴 선언으로
한반도는 순식간에 전쟁의 전운에 휩싸였다
바다 건너 미국은 이라크 침공을 눈앞에 두고
전 세계 자본의 숨통을 조여왔다
700선에서 출발했던 종합주가지수는
사방에서 터지는 지정학적 리스크의 폭탄을 맞고
630선까지 수직 낙하했다
설 연휴의 잔상이 채 가시기도 전인
2월 18일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라는 전대미문의
비극이 대한민국을 슬픔과 충격에 빠뜨렸다
미국의 이라크 전쟁 개시 임박설로
국제 유가는 폭등했고
한국의 무역수지는 적자로 돌아섰으며
지수는 600선마저 위태롭게 흔들렸다
3월 마침내 대한민국 금융 역사상
가장 잔혹한 잔혹극의 서막이 올랐다
SK글로벌(SK네트웍스)의
1조 5,000억 원대 대규모 분식회계 사태가 터졌다
시장의 신뢰는 단숨에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렸고
채권시장이 마비되면서
투신사들로 환매 사태가 도미노처럼 번졌다
설상가상으로 이라크 전쟁이 발발하자
3월 17일 종합주가지수는
연중 최저치인 515.24까지 폭락했다
4월 잔인한 전쟁 랠리가 시작됐다
미군의 바그다드 함락 소식과 함께
불확실성이 해소되자
지수는 극적인 반등을 시도했다
하지만 개미들이 미처 안도의 한숨을 쉬기도 전에
동아시아 전체를 공포로 몰아넣은
사스라는 감염병이 퍼졌다
경기 회복의 싹이 돋아나려 할 때마다
초대형 악재가 터졌다
5월 벼랑 끝에 섰던 한국 경제에
또 하나의 시한폭탄이 결국 터졌다
이른바 카드 대란
무분별하게 발급된 신용카드가 곪아 터지며
수백만 명의 신용불량자가 양산되었고
소비는 완전히 실종됐다
내수 경기가 차갑게 식어가는 와중에도
시장은 아이러니하게 움직였다
최악의 악재들이 선반영되었다는 인식 속에
종합주가지수는 간신히 600선을 회복
6월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기적이
바다 건너 뉴욕에서 날아들었다
미 연준이 금리를 1.0%라는
역사상 최저 수준으로 인하하며
전 세계 시장에 무차별적인
달러 유동성을 공급하기 시작한 것
바닥은 지났다는 신호가 떨어지자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 증시로 유입
삼성전자와 현대차 등
수출 대형주를 중심으로 거침없는 매수세가
유입되며 지수는 순식간에 660선을 돌파했다
7월 한반도를 뒤흔든 카드 대란의 공포와
내수 침체의 늪은 여전했지만
외국인들의 묻지마 매수세는 멈추지 않았다
그들은 한국의 알짜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 비해 터무니없이
헐값에 거래되고 있다는 점을 노렸다
매일같이 쏟아지는
외국인의 수천억 원대 사자 주문에
지수는 드디어 심리적 저항선이던 700선을 탈환
8월 지루한 한여름의 더위 속에서도
증시는 뜨겁게 불타올랐다
미국의 경기 지표들이
일제히 호전되면서 IT 경기의 부활을 알렸다
대한민국 경제의 심장인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수출이 폭발적으로 늘어나자
종합주가지수는 750선 고지까지 단숨에 밟았다
9월 한반도 사상 최악의 태풍 매미가
남부 지방을 강타하며 엄청난 재산 피해를 냈다
설상가상으로 국내 정치권의
비자금 의혹까지 터지며 시장은 잠시 주춤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외국인들이 한 달 동안에만
무려 3조 원이 넘는 주식을 쓸어 담으며
한국 증시의 하방을 단단히 받쳐주었다
지수는 무너지지 않고
700선 중반에서 굳건히 버텨냈다
10월 가을바람과 함께 종합주가지수는
2002년의 최고점 부근이던
800선 고지를 마침내 돌파했다
카드 사태로 만신창이가 되었던
금융주들도 정부의 지원과 구조조정 속에
간신히 안정을 찾아갔다
11월 시장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뀌었다
과거 닷컴 버블 시절의
허황된 벤처 주식들 대신
실적이 뒷받침되는 중국 특수 수혜주들이
새로운 영웅으로 등판했다
중국의 폭발적인 경제 성장과 맞물려
조선 철강 화학 등 가치주들이
미친 듯한 랠리를 펼쳤다
포스코와 현대중공업 등이
시장을 견인하며 증시는 거칠 것 없이 질주했다
12월 30일 폐장일 종합주가지수는
810.71로 막을 내렸다
3월의 지옥 같던 510선 최저점에서
불과 9개월 만에 60% 가깝게 폭등하는 반전
상반기는 전쟁과 사스 그리고 분식회계와
카드 대란으로 얼룩진 늪을지나
후반기는 글로벌 유동성과
수출 호조가 만들어낸 시장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