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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강해 설교

< 제 32강 > 금식에 대하여(마 9:14-17)

작성자하늘 군대|작성시간08.05.14|조회수930 목록 댓글 0
< 제 32강 > 금식에 대하여(마 9:14-17)

“그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뇨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이는 기운 것이 그 옷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됨이요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 (마 9:14-17)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나아와서 왜 자기들도 금식하고 바리새인들도 금식하고 다 금식하는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금식을 하지 않느냐고 질문을 했을 때 예수님께서 비유를 들어 설명하신 내용입니다. 이 비유는 결혼식 비유입니다. 그 당시 아무리 금식을 해야 할 금식기간이라고 할지라도 금식보다 더 우선하는 것이 결혼식입니다. 사실 금식의 가장 중요한 것은 슬퍼하는 것에 있고, 결혼식의 가장 중요한 것은 기뻐하는데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금식기간이라고 할지라도 이 결혼식이 우선하기 때문에 두 가지가 겹칠 때에는 금식보다는 결혼식이 우선하여 저들은 기쁨을 나누기 위해서 음식을 먹었습니다.

바로 그 예를 예수님이 들어주셨고 또 하나는 그 당시에 사용했던 포도주통이 가죽으로 만든 통입니다. 그런데 그 낡은 가죽부대에 새 술을 집어 넣으면, 쉽게 말씀드리면 아직 발효가 끝나지 아니한 새술을 집어 넣으면 부대가 터질 위험이 있다는 것입니다. 병속에도 조금 덜 발효가 된 포도주나 술을 집어 넣으면 이것이 터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물며 가죽부대는 두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 예를 드시면서 새 술은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새 술은 기독교를, 복음을 말합니다. 그리고 낡은 부대는 유대교의 형식을 말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 기독교는 완전히 새로운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낡은 유대교라는 형식에 집어 넣어서는 안된다는 교훈입니다. 이 시간에는 이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금식에 대해서 몇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최근에 이 금식에 관한 두 가지 극단주의가 있는데 우리는 이 극단주의는 피해야 합니다. 하나는 금식만능주의자들입니다. 자기의 어떤 소원이 있을 때 마치 어린애들이 부모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사주지 않으면 ‘엄마 나 밥 안먹어’ 하듯이 하나님을 굴복시키려고, 금식을 무슨 만능적인 방법으로 사용하는 자들입니다. 또 하나는 정반대로 금식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 이 복음주의 시대에 무슨 금식이 필요하느냐 하면서 금식무용론을 주장하는 극단적인 사고가 있습니다. 이것은 둘 다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금식이란 무엇이며 금식은 어떤 경우에 행했는가를 성경을 통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금식의 뜻
금식이라는 것은 물론 음식을 먹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금식은 그냥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자발적으로 먹지 말아야 합니다. 음식이 없어서 먹지 않는 것을 금식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개인적인 경건을 위해서 자발적으로 일정기간 동안 음식을 먹지 않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한끼, 어떤 사람은 하루, 어떤 사람은 사흘, 어떤 사람은 일주일, 어떤 사람은 사십일 이렇게 일정 기간동안 개인의 경건을 위해서 자발적으로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을 금식이라고 말합니다. 어떤 여집사님이 ‘목사님 우리는 매일 하루에 한끼씩 금식을 합니다’ ‘아, 그래요? 언제 금식을 하십니까?’ ‘예, 아침에 금식을 합니다’ ‘그것 참 좋네요.

그렇게 열심히 금식을 하시니 좋겠네요’ ‘아휴 목사님 저 김집사님은요. 점심때가 되면 다른 사람의 두 배 세 배 먹어요. 그래서 금식을 해도 살이 안 빠져요’ 요즘 이런 금식을 하시는 분들이 꽤 있는데, 살 안찌기 위해서 다이어트식으로 하는 것은 금식이 아닙니다. 반드시 이 금식은 경건을 위해서 할 때에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2. 성경에 나타난 금식의 경우
첫번째 경우로 사무엘상 7장 6절에 보면 법궤를 빼앗겼을 때 금식기도를 했습니다.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이 법궤를 가지고 블레셋과 싸우려고 나갔다가 그만 법궤를 블레셋 사람들에게 빼앗겼습니다. 그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식을 했습니다. 사무엘은 미스바 성회로 모이기로 하고 바로 그때에 금식기도를 했습니다. 그때는 저들에게 있어서는 가장 큰 재난이기 때문에 금식을 했습니다.


두번째는 느헤미야 1장 4절에 보면 예루살렘성이 훼파되었을 때, 예루살렘성이 적의 수중에 들어가게 되고 나라를 잃고 성전은 완전히 무너지게 되었을 때에 그들은 금식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종교적인 위기에 처했을 때입니다. 그때에 이들이 금식을 했습니다.

세번째는 신약에 나오는 경우입니다. 고넬료가 금식을 했습니다. 고넬료는 최초의 이방신자였는데 그가 금식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 베드로를 보내주셨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이방선교의 문이 활짝 열려졌습니다.

네번째로 안디옥 교회가 금식을 했습니다. 이들은 선교를 해야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를 결정하기 위해서, 선교사를 뽑기 위해서 금식기도를 했고, 마침내 바울과 바나바를 뽑아서 파송했습니다. 사실 우리가 선교사를 파송할 때에 금식기도를 해야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너무너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금식기도 안하고 파송하니까 가서 다른 길로 이탈하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합니다. 금식은 바로 이렇게 선교하기 위해서 정말 중요한 때에 해야하는 것입니다.

그 밖에도 바울 사도는 자주 금식을 했습니다. 또 모세와 엘리야와 예수님도 금식을 했는데 40일씩 금식을 하셨습니다. 의학적으로 사람은 음식을 먹지 않고 90일까지 살 수 있답니다. 그렇기 때문에 40일 금식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그러나 저는 될 수 있으면 40일 금식보다는 적은 날수를 금식하라고 권면합니다.

왜냐하면 40일 금식하는 분들을 보니까 ‘나는 40일 금식했다’라고 가는 곳마다 자랑을 합니다. 금식기도는 자랑할 것이 못됩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나와의 단독면담이고 정말 하나님 앞에 통회자복하면서 기도하는 것이기 때문에 금식기도는 사람들에게 자랑을 한다든지, 사람들에게 알린다는 것은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3. 금식의 목적

(1) 겸비하게 회개하기 위해서
금식의 목적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특히 하나님 앞에 겸비해져서 회개하기 위하여 금식을 합니다. 열왕기상 21장 27-29절까지를 보면 아합의 금식이 나옵니다. “아합이 이 모든 말씀을 들을 때에 그 옷을 찢고 굵은 베로 몸을 동이고 금식하고 굵은 베에 누우며 행보도 천천히 한지라 여호와의 말씀이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합이 내 앞에서 겸비함을 네가 보느냐 저가 내 앞에서 겸비함을 인하여 내가 재앙을 저의 시대에 내리지 아니하고 그 아들의 시대에야 그 집에 재앙을 내리리라 하셨더라”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이 아합이 어떤 사람입니까? 아합은 그의 부인 때문에 더욱 유명합니다. 아합의 부인이 바로 저 악면 높은 이세벨입니다. 이세벨의 아버지는 이방신을 섬겼던 이방신의 제사장입니다. 바로 그 이방신 제사장의 딸입니다. 그래서 그는 아합왕에게 시집와서도 계속해서 바알신을 섬기고 그것을 이스라엘에 자꾸 보급했습니다. 아합은 자기 아내의 영향을 받아서 바로 이러한 우상숭배에 빠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아합에게 재앙을 내리시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아합이 어떻게 했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금식하면서 겸비해져서 통회자복을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의 심판을 유보햇습니다.


(2) 하나님의 사역 수행, 혹은 응답을 구할 때
사도행전 10장 30절, 13장 3절에 보면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 금식했습니다. ‘우리의 힘 가지고, 우리의 지혜 가지고 할 수는 없으니 하나님 우리에게 지혜를 주옵소서, 우리에게 능력을 주옵소서’ 하면서 그의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서 금식을 합니다. 그리고 어떤 문제를 가지고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 분별할 수 없을 때 ‘하나님, 우리에게 응답해 주옵소서’ 하면서 금식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금식의 목적입니다.


(3) 더 큰 능력과 믿음을 위해서
한걸음 더 나아가서 더 큰 능력과 굳건한 믿음을 위해서 금식을 합니다. 왜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4장에서 금식을 했을까요? 그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능력이 있으신 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메시야로서의 공생애를 시작할 때에 금식을 했습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가 주님의 일을 하면서 금식을 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4. 금식할 때 주의할 것
금식은 이렇게 굉장히 중요한 것이면서 한편으론 조심조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조심해야 합니까? 크게 두 가지를 조심해야 합니다.
첫째는 신앙을 과시하기 위해서 금식하면 안됩니다(마 6:16). ‘나는 40일 금식했다’ ‘나는 40일 금식을 몇번 했다’ 하고 과시하는 분들이 가끔 있습니다. 교인들에게 ‘우리 목사님은 신령한 분이다. 그 분은 40일 금식을 몇번이나 했다’ 이렇게 일종의 자기를 과시하기 위해서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것은 잘못된 금식입니다. 둘째로 형식에 치우쳐서 형식주의로 금식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눅 18:12). 이것도 잘못된 금식입니다.

우리가 금식할 때에 조심해야 할 것 다섯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사람에게 보일려고 하면 안됩니다. 금식은 하나님에게 보이는 것입니다. 금식할 때는 세수도하고 머리에 기름도 바르면서 다른 사람이 볼 때는 금식하는지 안하는지 모를 정도로 그렇게 해야 합니다. 두번째는 금식할 때에 하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나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세번째는 금식할 때에 애통해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금식은 하나님 앞에 생명을 내걸고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네번째는 겸손한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금식하는 사람이 교만하면 안됩니다. 다섯번째는 금식할 때에 왜 금식을 하느냐 하는 그 진정한 의미를 깨달아야 합니다. 심심하면 금식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금식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고 그 의미를 깨달아야 합니다.


5. 당시 금식의 관례
본문에 보면 세 가지가 나오는데 첫째는 세례 요한의 제자들입니다. 그들은 스승의 금욕주의적인 습관을 따라서 그들도 열심히 금식을 했습니다.


두번째로 바리새인들은 월요일과 목요일에 한주일에 두 번씩 금식을 했는데 이들은 민족을 위해서 금식을 했습니다. 또 언제 금식을 했는가 하면 특별히 속죄일에 금식했습니다. 1년에 한번씩 속죄일이 되면 대제사장이 저들을 위해서 번제를 드리기 위해서 지성소로 들어가는데 그날은 모두가 함께 의무적으로 금식기도를 했습니다.

왜냐하면 대제사장만 들어가서 양을 바친다든지 소를 바치는 것만 가지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은 모두가 다 금식을 하면서 하나님 앞에 통회자복을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바리새인들은 저들에게 위기가 다가온다든지 하는 특별한 경우에 금식기도를 했습니다. 바리새인들에게는 금식기도가 좋은 모델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은 자신의 신앙을 과시하기 위해서 형식적이고 위선적으로,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했기 때문에 예수님 앞에서 책망을 받았던 것입니다.


셋째로 예수님의 제자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예수님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않았습니다. 금식하지 아니한 이유를 예수님은 결혼식의 비유를 들어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신랑이요, 교회는 신부입니다. 제자들은 신부와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메시야가 머지 않아서 저들의 곁을 떠나게 될 것입니다. 그때에는 저들이 금식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주님과 함께 천국이 임한 것을, 메시야 왕국이 저들에게 임한 것을 저들이 기뻐하면서 즐거워하는 것에 강조점이 있고 주안점이 있기 때문에 이들은 금식하지 아니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후에 보면 초대교회가 많이 금식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는 예수님의 답변 가운데서 중요한 것을 상고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세례 요한의 제자들의 질문에 대해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뇨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여기에서 신랑은 바로 예수님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제자들이 신랑대신 예수님과 함께 했을 때 저들은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그러나 머지 않아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게 될 때에, 저들에게서 빼앗기는 그 날이 올 때에 이때는 금식을 해야합니다. 금식할 날이 올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 예수님께서 답변을 하셨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마치 물과 불은 둘 중에 하나가 없어집니다. 물이 불을 끄든지 불이 물을 말려 버리든지 합니다. 또 금과 납은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또 참과 거짓은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섞일 수 없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유대교의 잘못된 형식에다가 기독교라고 하는 내용, 이 복음을 함께 섞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유대교적인 형식주의를 배척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새 부대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면 복음주의적인 삶을 살려고 할 때에 옛날의 유대교라고 하는 잘못된 그 형식속에다가 이것을 담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유대교의 그 낡은 관습, 잘못된 관습, 형식주의적인 관습을 지키지 않았고 또 제자들에게 가르치시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제 저들에게 필요한 것은 중생입니다.

요한복음 3장 6절에 뭐라고 나옵니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고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결국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서 새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형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이 형식이 필요 없다 하신 것은 아닙니다. 내용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형식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내용을 바르게 표현할 수 없는 유대교적인 형식을 필요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지금 예배드릴 때 무슨 소를 잡는다든지, 염소를 잡는다든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의 말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그리스도 안에 거해야 합니다.


6. 결론

첫째로 예수님은 신랑이 되시고 교회는 신부가 됩니다. 이제 결혼예식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천국잔치가 벌어지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지금 우리는 천국잔치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제 머지 않아서 우리 주님 재림하실 그때에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 참여하기 위해서 우리는 벌써 우리에게 임한, 우리에게 다가온 이 메시야 왕국을 기뻐하면서 함께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이 예식에 참여하려면 예복을 입어야 합니다. 결혼예식에 참여하려면 반드시 예복을 입어야 합니다. 아무 노동복이나 입고 함부로 참여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실례입니다. 들어가지도 못합니다. 그러면 그 예복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받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예복입니다.

바로 그 예복을 우리는 입어야 합니다. 세마포 옷을 입어야 하는 것입니다. 내 육적인 옷, 내 지식적인 옷, 내 세상적인 옷은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새로운 패션으로 명동에 가서 아무리 맞춰입는다 할지라도 그것을 입고는 천국에 못갑니다. 예수님을 내 구주로 영접하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받는 바로 이 새 세마포 옷을, 흰 세마포 옷을 입어야 합니다.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우리 모두가 입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셋째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능력입니다. 더군다나 오늘날과 같은 암울한 세상의 부조화 속에서 사는 이때에 우리들에게는 더욱 새로운 능력이 필요합니다. 새로운 능력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께 간절히 매어달리면서 기도하는 것 밖에 없습니다. 기도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기도 외에 다른 유를 통해서는오늘날의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기도중에 가장 심각한 기도, 하나님 앞에 간절한 기도가 바로 금식기도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장로님으로 피택되신 분들은 반드시 금식기도로 시작하도록 가르치고 있습니다. 지난번 새로 장로되신 분들 다 금식기도를 했습니다.

또 우리 교역자들도 지난해에 두 번 함께 금식기도를 했습니다. 얼마나 은혜가 되고 좋은지 모릅니다. 우리 성도님들도 금식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넷째로 적절한 금식은 큰 힘입니다. 우리가 정말 능력을 받기 위한 금식기도를 하게 되면 어떤 결과가 오게 됩니까?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저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어떤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인간의 뜻인지 도무지 분별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에 금식하면서 하나님께 매어 달리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해답을 주실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우리에게 시험이 다가왔을 때, 유혹이 다가왔을 때 이것을 물리치려면 금식기도를 해야합니다.


다섯째로 이러한 금식기도를 할 때 꼭 수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금식기도 할 때에는 밥을 안먹는 것만 가지고는 부족합니다. 다섯 가지가 꼭 따라가야 합니다. 첫째 기도가 따라가야 합니다. 밥만 먹고 가만히 누워 있으면 그것은 금식기도가 아닙니다.

반드시 기도를 해야합니다. 그래서 금식기도라는 말을 쓰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죄의 자복이 있어야 합니다. 자기가 물론 지금까지 회개의 생활을 했지만 정말 주님 앞에서 자기의 죄를 하나하나 쏟아 내야합니다.

세번째는 애통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하는 그것만 가지고는 안됩니다. 정말 애통해하는 눈물과 함께 금식기도하는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네번째는 겸손해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금식은 바로 겸비케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금식자체가 바로 자기 자신을 겸손하게 만듭니다. 금식을 해보면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지를 깨닫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금식기도에 꼭 있어야 할 것이 있는데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금식할 때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서 금식기도해야 합니다. 어떤 분들은 말씀을 읽지 않고 금식기도를 합니다. 그러다가 보니까 정신이 몽롱해집니다. 몽롱해진 가운데 이상한 꿈을 꾸고는 계시받았다고 하면서 이단종교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잘못된 것입니다. 금식기도를 할 때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에 이 금식기도 패턴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느냐, 우리 교회에서는 사흘을 패턴으로 하고 있습니다.

사흘동안 금식기도를 하는데 그 동안에 신약성경을 1독 하게 합니다. 그리고 찬송가 15개를 반드시 외우게 하고, 외워서 찬양하게 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 애통하면서 통성으로 기도하는 이 세 가지를 꼭 하게 합니다. 얼마나 은혜가 되는지 모릅니다. 어쨌든 금식기도에서 없어서는 안될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적절한 금식은 우리에게 큰 힘이 됩니다.

지금이야 말로 금식기도해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금식에 대한 바른 지식과 자세로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체험하고 모든 문제를 해결받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오늘 주신 말씀을 적용해 보면서 우리 자신이 정말 하나님 앞에 애통하면서, 주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고 간절하게 기도함으로 복음화가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되고, 정말 하나님의 영광이 높히 나타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 기도 제목 >>

(1) 하나님, 우리가 다른 사람의 잘못에 대해서는 돌을 던지기까지 했지만 내 자신에 대해서는 너무나 관용했습니다. 우리 자신을 회개하오니 용서하옵시고 진정으로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2) 온 교회와 온 성도가 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날마다 기도하게 하시고, 심지어 저희들 가운데 금식기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져서 이 어려운 때에 주님의 뜻을 이루어드릴 수 있는 저희들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 교회가 기도하는 일에 앞장서게 하옵소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식기도하면서 하나님 앞에 매어달렸던 것처럼 저희들도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는, 간절히 간구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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