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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어보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고ㅡ 열어보면 두 사람이 죽는다

작성자압록강|작성시간26.06.17|조회수71 목록 댓글 0

경주평야의 주위에는 서쪽에 선도산, 동쪽에 낭산과 명활산, 북쪽에 금강산 등 많은 산들이

 

성벽처럼 둘러서 있는데 그중에 크고 높은 산이 남산으로

 

보리사 .탑골마애불. 감실석불. 서출지. 남산리동서탑. 칠불암이 있는 완만한 동남산과

 

나정 .창림사지 . 포석정 .배리삼존불 .삼릉 등 골이 깊고 가파른  서남산으로 나누어 진다

 

동남산쪽엔 권력이나 부가 아니면 세우기 어려웠을 제법 세련된 작품이 비교적 많아

 

 귀족들이 많이 드나들던 곳으로 보고 있는 반면에 서남산은 민초들이 즐겨 찿았던 산으로 보고 있다

서출지(사적 제138호)

 

<경주 서출지 설화>

 

 서출지(書出池) 서출지는 이름 그대로 글[書]이 나온[出] 연못[池]이다.

 

삼국유사 사금갑편에 보면 

 

제 21대 비처왕(소지왕)이 즉위 10년인 무진년에 천천정에 행차할  때에 까마귀와

 

쥐가 와서 우는 일이 있었다. 쥐가 사람소리를 내어 이르기를 “이 까마귀가 가는 곳을 찾아가 보십시오”

 

  왕이 장수에게 명하여 추격케 하여 남쪽으로 피촌에 이르니 두 마리의 돼지가 서로 싸웠다. 머물러

 

 그것을 보다가 문득 까마귀가 있는 곳을 잃어버려 길가에서 배회하였더니 이때 어떤 노인이

 

연못 속으로부터 나와서 봉투을 바쳤다.

不開一人死'(불개 일인사)

 

 開見二人死(개견이인사)

 

“열어보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고 열어보면  두 사람이 죽는다” 

 

소지왕이 두 명이 죽는것 보다 한 명이 죽는것이 낫다며 열어 보지 않자 신하들이 한 명의 죽음이

 

 왕을 뜻한다는 신하의 권유에 따라 열어보니 글속에 이르기를 “

 

”거문고 갑(琴匣)을 쏴라." 

 

 왕이 궁에 들어가서 거문고 상자를 보고 활을 쏘니 마침 내전에서 향을 올리는 승려와 궁녀가

 

    몰래 내통하고 있었더라 왕은 두 사람을 주사를 하였다. 그래서 정월 보름날은 오기일(烏忌日)

 

이라 하여 찰밥을 준비해 까마귀에게 제사지내는 풍속이 생겨났다고 한다

서출지 설화에서 승려와 궁녀가 몰래 내통하고 있었더라는  대목에서 볼 수 있듯이 신라 불교는

 

 527년 이차돈 순교로 불교가 공인되기 전 이미 신라 눌지왕 때 고구려 묵호자(아도}가

 

국경지대였던 경북 선산 모레의 집에서 전교한 것으로 나타난다

산수당

 

풍천 임씨 시조 {온}의 19세손 임극이 경주 배반동 능지촌의 송암정을 아버지로부터 물려 받아

 

산수정이라 하였다 그 후 1901년 주손 태순이 남산 기슭 이요당  서쪽에 이건하였다가  건물이 낡아

 

 1940년경 이곳 양피지 둔덕으로  자리를 옮겨 중건하였다 2007년에 다시 중건하였다

산수당

 

인자요산 지자요수(‘仁者樂山 智者樂水)요산요수의 요를 따서 형 임적이 이요당이라 하고

 

요산요수의 산과 수를 따서 아우 임극이 산수당이라 하였다''사실 여기를 서출지로 보는 견해도 있다

 

상세한 내용은 현장 답사지에서 ㅡ

소지왕의 신하들이 까마귀를 놓친 바로 그 양피사 자리이다.

남산동 동서 삼층석탑 옛모습

동탑

 

9세기 작품인 남산동 쌍탑은 동탑과 서탑이 서로 양식이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동탑은 7,4m로 벽돌을 쌓은 듯한 모전석탑의 면모를 보여주고, 지대석 위에 여덟 개의 돌로

 

어긋 물리게 기단을 쌓고 탑신석과 옥개석 각각 한 개의 돌로 만들었다 옥개석은 벽돌을 쌓아

 

 만든 것처럼 되었고 층급받침은 5단이다

서탑

 

이중 기단 위에 일반적인 3층탑이다

팔부신중은 불법을 수호하는 신장들을 가리키는데, 머리가 셋에 팔이 여덟인 아수라상,

 

뱀관을 쓰고 있는 마후라가상 등 모두 여덟 명이다. 그러므로 서탑에는 팔부신중이 각 면마다

 

둘씩 새겨져 있다 팔부신중은 신라 중대 이후에 등장하는 것으로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탑을 부처님의 세계인 수미산으로 나타내려는 신앙의 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대통령 순시 때문에 이사 다니는 00ㅡ아는 만큼 보인다

전 염불사지 삼층석탑'(사적 311호)

 

삼국유사 염불조에는 경주 남산 중턱 기슭에 “피리사”라는 절에 스님이 항상

 

아미타불을 염송했는데 그 소리가 360방 17만호

 

(5인 가족으로 보았을 때 인구 100만)까지 들려 사람들이 스님을 공경하였다고 한다

 

스님이 돌아가신 후 피리사를 염불사지로 고쳐 불렸다

 

염불사지는 1960년대 까지만 해도 “남리사지”라 불렸다

동탑

 

1960년대까지 절은 흔적없이 사라지고 동탑과 서탑은 거의 허물어져 절터에 남아 있었다

 

1973년 박정희 대통령이 경주를 순시하게 되자 당시 관료들이 무언가 보여줄 것을 궁리하게

 

되었고 주인없는 염불사지 동탑을 1층 옥개석과 기단부 일부 부재가 사라져 온전치 않았지

도지동 ㅡ 이거사지

이거사지 1층 옥개석

 

폐사지인 도지동 이거사지터에 방치된 1층 옥개석으로 짜맞추기식으로 맞추어

 

불국사 삼거리에 옮겨 세웠다 불국사역 쪽이 구정동이다 보니 구정동삼층석탑이라 불리웠다

불국사역 광장에 염불사지 동탑과 이거사지 탑이 짜맞추어

 

구정동 삼층석탑으로 불리며 세워져 있던 모습

2008년 이 석탑을 원래 자리로 옮겨야 된다는 여론에 따라 해제하여 염불사지로 옮기려하자

 

불국사 인근 상인들이 상징물이 없어진다며 중장비 진입을 막는 등 반대에 나서자 다른 조형물을

 

세워 주기로 하고 2009년 1월에 이전 복원하였다  다행히 경주문화재 연구소에서 동탑 조성시  동탑 1층

 

옥개석이 발견되어 원래대로 복원하였다 스리랑카에서 모셔온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셨다

 

그러면 이거사지 1층 옥개석은 ?

褪於日光則爲歷史,(퇴어일광즉위역사),

 

 햇빛에 빛바라면 역사가 되고

 

染於月色則爲神話. (염어월색즉위신화)

 

 달빛에 젖으면 신화가 된다

  

                                       이병주 山河' 序文에서

염불사지에 남아있는 이거사지 1층 옥개석

 

저  깨어진  이거사지 1층 옥개석을 언제까지 방치해 두고 있을 것인지

 

12년이 지나도록 경주시의 무관심에 그저 한숨이 나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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