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원 신윤복 ㅡ월하정인도 (月下情人圖),
왼쪽 담에는
.(月沈沈夜三更 兩人心事兩人知)."
'달도 기운 야삼경 두 사람 속은 두 사람만 알지
한국 그림이 서양화와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는 공간의 활용에 있다. 바로 ‘백면(白面)’이다.
“선인들은 크고 위대한 사물, 즉 하늘과 물을 여백으로 남겨두었다.” 즉 서양화는 하늘과 강이나
바다에 색칠을 하지만, 한국 그림에서는 그냥 화폭을 비어 놓는 공간의 미학을 살렸다
삼경은 현재 11시에서 새벽 1시 사이를 말하는 것으로 장옷을 둘러쓴 여인이 담장밖으로 나와
왠 남정네와 밀애를 즐기도 있는 장면을 그린 그림인데 신발의 모습을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남녀의 오른발과 왼쪽발의 신발 방향이 각각 같은 방향이다 남자의 두발의 방향이나 초롱을 든 손의
움직임으로 보아 여인을 어디론가 유혹해 가려고 재촉하는 듯한데 여인은 자신의 마음을 선뜻
정하지 못하고 있는 듯 고개를 숙이고 부끄러운 표정만 짓고 있다 그러나 여인의 두 신발의 방향은
남정네의 방향으로 향해 있고 장옷을 가다듬은 작은 손에는 교태가 흐른다
유교적 전통의 껍질을 쓰고 있었던 조선이라는 사회에서 남녀간의 사랑은 아름다운 것이기는 하지만
보는 관점에 따라서 속된 것으로 비춰 질 수도 있다 신윤복이 <월하정인>과 같은 내용의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것은 실제로 그가 기생이나 한량들과 어울리면서 사랑과 풍류 생활의 멋과 해학
그리고 인간의ㅡ 원초적 감정의 진실을 몸으로 체득했기 때문이라 생각든다
그러면 두 사람은 어떤 관계일까?
옛말에 ‘늙어 기첩(妓妾)을 두면 반드시 뒷문으로 들어오는 사람이 있다’고 하였다.
임진왜란 때 정승을 지낸 김명원이 젊어서 화류계에서 놀기를 좋아했는데, 그만 사랑하는 기생이
권문세가의 첩이 되고 말았다. 그녀를 잊지 못한 명원이 어느 날 밤 담을 넘다가 주인에게 붙잡혀
크게 경을 치게 되었다. 때마침 형 경원이 급히 달려와 소리를 쳤다. “내 아우가 기운이 호탕하고
몸가짐은 거칠어 공께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아우는 평소 재주와 학문이 뛰어나 뒷날 크게
쓰일 인물입니다. 공께서는 아녀자 일로 나라의 인재를 정녕 죽이시렵니까?” 그러자 주인은 결박을
풀고 후히 술을 대접해 돌려보냈다고 한다.그림 속 주인공이 누군지 모르는데 김명원을 끌어댄 것은,
화제로 쓴 시구가 들어 있는 한시를 그가 지었기 때문이다.
窓外三更細雨時
‘창 밖은 야삼경 보슬비 내리는데
兩人心事兩人知
두 사람 속은 두 사람만 알리라
歡情未洽天將曉
나눈 정 미흡해서 날 먼저 새려 하니
更把羅衫問後期
나삼(羅衫) 자락 부여잡고 뒷기약만 묻네’
ㅡ월하정인도(月下情人圖)에 들어가 보니 ㅡ
<허영둘>
처마 끝에 달 기울어 물속처럼 밤이 깊다
이따금 물방울 튀기듯 풀벌레 우니
석류 익는 담장 너머로 파문이 청량하다
담 모퉁이는 비밀을 키우기 좋은 장소
초롱불을 들었으나 갸륵한 불빛은
두 사람의 밀회를 전부 들추지 않는다
지상은 혼곤한 잠 속에 들고 먼 하늘에 별들 아련한데
스치듯 비껴가는 여인과 나의 눈길
먼지 낀 세월 사이로 별이 쏟아진다
물빛 쓰개치마 쓰다듬던 달빛이
여인의 눈꼬리 근처에서 교태를 더하니
사내의 도포 자락이 바람도 없이 흔들린다
묶어 올린 치마폭은 연심으로 부풀고
보얀 속곳과 오이씨 버선 위에서
화원의 은밀한 떨림도 만난다
밤은 애틋하게 익어가고
연정은 어스름 달빛에 녹아
사위가 몽롱하다
아득한 세월의 봉인을 열어 그들과 조우했으나 내가 읽은 것은 담벼락에
담긴 몇 줄 글귀뿐, 두 사람의 비밀한 내력 한 자락 읽지 못했다
어디로 향하는 걸음인지 사내의 가죽신은
어느새 마음 이끄는 곳으로 향하는데
따를 듯 말 듯 몸을 튼 여인의 자태가 야릇하다
달은 두 사람을 비추는 일로 은근하고
나는 저무는 달이 위태로운데
적막 속 스며든 안개만이 무심하다
-2012년 신춘문예 당선시집 수록 <문학세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