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에서 4.3 사건을 다루기 전까지
함부로 올릴 수 없었으나 이제서야 마음 놓고 글을 올릴 수 있음에 감사 드립니다
아울러 제주 4.3 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진심으로 축하 드립니다
왜 죽어야 하는지도 모르고
죽은 억울한 영령들을 명복을 빕니다
제주섬 동백꽃
생긴대로 붉은데
어이하여 붉다고
무참히 짓밟나
4. 3 백비
태평양 전쟁 말기 일제는 제주도에 일본군 6만 명을 주둔시키고 비행장과 격납고를 만드는 등
섬 전체를 요새화하는데 진력했다. 당시 제주도 인구는 20여 만명에 불과했는데, 이들은
비행장 건설, 동굴 파기 등에 동원되어 갖은 고초를 겪었다
1947년 3 ・ 1절 기념식에 이은 가두시위에서 기마경관의 말발굽에 어린아이가 치였는데,
해당 경관이 아이를 그대로 내버려두고 가는 일이 벌어졌다 이를 본 시위군중들은 기마경관에게
돌을 던지고 경찰서까지 쫓아갔다.그러자 경찰이 군중들에게 총을 발사함으로써 민간인 6명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이에 남로당 제주도당은 조직적인 반경찰 활동을 전개했고, 제주도 전체
95% 이상이 참여한 대규모 민·관 총파업이 이어졌다. 미군정은 경찰의 발포보다는 남로당의
선동에 비중을 두고 강공정책을 추진했다
제주 4·3 사건은 남한 단독정부 수립 반대를 계기로 제주에서 무장봉기가 시작되자 이승만 정권이
이를 '북한의 사주를 받은 폭동'이라며 무자비한 토벌을 벌인 사건이다. 이는 한국 근현대사에서
6·25 전쟁 다음으로 인명피해가 컸던 비극적 사건으로 기록됐다
4 ・ 3사건은 미군정기에 발생해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 이르기까지
7년 여에 걸쳐 2만5000~3만 여명의 제주도 주민들의 희생당한 사건이다
이승만 정부는 1948년 10월 제주도 경비사령부를 설치하고 타 지역의 군 병력을 제주에 증파시키며
본격적인 진압 작전에 나섰다. 이때 제주에 파견하려던 여수 주둔 국방경비대 14연대가 파견명령에
반발해 봉기했다. 이들이 정부 진압군과 맞서는 과정에서 민간인 수천명이 학살 피해를 당하는
여순사건이 벌어졌다
5.16쿠데타 이후 군사정권 시절 4 ・ 3사건은 '북한의 사주에 의한 폭동'으로 규정되어 금기시됐다.
전두환 정부때 4차 교과서는 4 ・ 3사건을 '제주도 폭동사건'으로 지칭하며 "공산 무장 폭도가 봉기하여
국정을 위협하고 질서를 무너뜨렸던 남한 교란 작전 중의 하나라고 서술했다
특히 희생자의 유가족들은 가족이 군경 토벌대에 의해 죽임을 당하거나 사법처리를 받았다는 이유로
반공법•국가보안법과 연좌제에 의해 감시당하고 사회생활에 제약을 받아야 했다. 1978년 작가
현기영은 4 ・ 3사건을 다룬 소설 '순이삼촌'을 냈으나, 정보기관에 연행되어 고초를 겪어야 했다
진상보고서는 4 ・ 3사건을 '무장대와 토벌대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으로 규정하고, 집단 살상의 책임은 당시 군 통수권자인 이승만 대통령과 한국군의
작전통제권을 쥐고 있던 미군에게 있다고 밝혔다
1960년 4 ・ 19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이 몰락하자 국회에서 4 ・ 3에 대한 공개적인 논의가 시작됐다.
제주 출신 국회의원들의 발의로 양민학살 진상규명 조사단이 꾸려지고 학살 피해 접수가 잠시 이뤄졌
다. 그러나 이듬해 5 ・ 16군사정변이 일어나면서 진상규명은 중단됐고 진상규명에 앞장섰던 이들이나
유가족이 경찰에 연행되어 고초를 겪었다
1948년 4월 3일 무장 봉기한 남로당과 시위대의 진압 과정 및 한국전쟁 이후의 토벌 작전을 통해
3만 여 명의 도민이 학살당했다. 이 사건은 종결 이후 금기시 되다가, 1990년대에야 역사적으로
재조명되어 2000~2007년 진상 조사와 피해자 파악이 실시되었다
제주의 눈물
제주인들에게는 말이나 키우는 변방의 섬,
대역죄인들의 귀양과 유배의 섬
천대와 괄시의 섬
100년 동안 출륙금지령으로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는 섬
4,3의 상처가 생선가시처럼 목구멍에 걸려 있는 섬
누가 제주의 눈물을 닦아줄 것인가?
움직이는 것은 모두 우리의 적이었지만
동시에 그들의 적이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보고 쏘았지만
그들은 보지 않고 쏘았다
학살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 날
하늘에서는 정찰기가 살인예고장을 살포하고
바다에서는 함대가 경적을 울리고
육지에서는 기마대가 총칼을 휘두르며
모든 처형장을 진두 지휘하고 있었던 그 날
빨갱이마을이라 하여 80여 남녀중학생들을
금악벌판으로 몰고 가 집단 몰살하고 수장한 데이어
정방폭포에서는 발가벗긴 빨치산의 젊은 안해와 딸들을
나무기둥에 묶어 두고 표창연습으로 삼다가
마침내 젖가슴을 도려내 폭포 속으로 던져 버린 그 날
한 무리의 정치깡패단이 열일곱도 안 된
한 여고생을 윤간한 뒤 생매장해 버린 그 가을 숲
서귀포 임시감옥 속에서는 게릴라들의 손톱과
발톱 밑에 못을 박고
몽키 스패너로 혓바닥까지 뽑아 버리던 그 날,바로 그 날
관덕정 인민광장 앞에는 사지가 갈갈이 찢어져
목이 짤린 얼굴은 얼굴대로
팔은 팔대로
다리는 다리대로
몸통은 몸통대로
전봇대에 전시되어 있었다
"이것이 바로 빨갱이다!"
"빨갱이의 종말은 이렇다!"
광장을 가득 메운 도민들에게 허수아비의 졸개들이
이미 죽은 시체들을 대검으로 쿡쿡 쑤시며 소리쳤다
처참하게 찢어져 형체도 알아 볼 수 없었지만 도민들은
저 건 이덕구,저 건 김운민,저 건 김병남,남진,박남해……
속으로 속으로만 어림잡았다
통곡도 오열도 없었다
도대체 사람이어야 통곡이라도 하지
그것은 사람이 아니었다
결코 죽은 사람도 아니었다
그것은 푸주간에 걸린 짐승일 뿐이었다
한 개의 총알이 심장을 뚫고 간 것은
차라리 행복한 죽음이었다
해안에서 불어 오는 모랫바람이 한라산을 미친듯이
뒤흔들고 있었다
- 이산하 장편연작 서사시 '한라산' 중에서
제주 4.3과
5.18 광주 민주항쟁
억울하게 죽어간 영령들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