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문 동굴에서 나온 한국인의 조상?" 지금의 한국인은 언제부터 한반도에 살았을까?|한반도 인류의 역사|한국인의 기원|기후 변화|취미는 과학|#골라듄다큐
악마문 동굴이란...
1970년대 블라디보스톡 근처에서 발견된 동굴의 이름이며, 여기서 7명 분의 고 인간의 뼈가 발견된 사건입니다.
대략 2~3만년 전 까지의 뼈는 화석화까지 될 정도는 아니어서
뼈에 남은 성분들이 워낙 소량이긴 하지만 단백질 성분 DNA 채취가 가능하고
이것을 증폭시켜서 (현대인의 생체, 사체의 유전자 분석을 하듯이) 유전자 분석도 가능하다 하네요.
러시아 학자들이 악마문동굴에서 나온 7천여년 전 인간들의 뼈로 유전자 증폭 검사를 했는데, 이들이 현재 한국인들과 유사하게 나왔다 해서 학계의 주목을 받았던 사건입니다.
물론 악마문 동굴의 고대인이 한국인들과만 유사하게 나온 건 아니고,
울치족(퉁구스 계통, 여진/말갈족과 비슷) 나나이족(역시 퉁구스, 흑수말갈, 흑룡강(아무르강)에 살던 사람들)과도 비슷하고 일부 유전자는 순다랜드(말레이,인도네시아) 남방계의 유전자도 섞여 있었다 하네요.
보통 한국인의 기원을 얘기할 때 꼭 나오는 사례 중 하나가 악마문 동굴 인골입니다.
옛날에나 한국인의 기원을 말 할 때 단군신화 같은 얘기가 맨 앞에 나와서 알쏭달쏭하게 설명하곤 했지만
요즘은 고고학 발굴 텍스트(데이터베이스 개념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와 유전학의 발전으로 인해 상당한 증거 및 근거를 제시하면서 설명하는 추세 입니다.
사람들이 살던 곳에는 꼭 불을 피운 흔적이 나오는데, 이것을 이용해서 탄소연대 측정을 하는 등 상당히 과학적으로 변하고 있지요.
한국인의 기원을 말할 때 꼭 한반도 내부인들으로 규정 할 필요도 없긴 할 겁니다.
애초 고조선이란 국가 자체가 하나의 통일성을 갖춘 전제왕조 같은 세력이라기 보단 여러 부족이 내부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다소 느슨한 연합체적인 성격이었으며,
고조선이 쇠락해 가며 새롭게 힘을 재편해간 부여 역시도 여러 부족의 다소 느슨한 연합체였습니다.
멀리는 기원전 20세기쯤 부터 너무나 오랜 세월을 유지해 온 고조선이니 고인 물은 썩은거고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이르러 중국에 인구, 군사력, 문화적으로 까지 밀리기 시작하고 고조선 사회 내부적으로도 통제가 안돼 붕괴되기 시작하니, 고조선 휘하의 부족들중 메인들이 떨어져 나가 기원전 4세기에 이르러 (북)부여로 재편한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 상나라(은나라) 때까지만 해도 지금의 산둥지방은 물론 장강(양자강)에 이르는 유역까지 동이족들에게 뺐겼다는 기록(기원전 12세기 이전)이 있을 정도로 당시 중원 사람들과 동이족이 엎치락 뒤치락 했으나
주나라 이후 이미 수백년을 전쟁만 하고 무기와 전술 개편만 해온 춘추전국시대에 이르러 중국에게 고조선이 구리 생산량에서 압도적으로 밀리기 시작하고 나중에는 철기 무기체계에까지 밀리는 증거들이 곳곳에서 보입니다.
후기 청동기시대는 곧 초기 철기시대입니다.
철기도 탄소강이 아니면 휘어지고 약하기만 할 뿐이라서 청동기에 비해 그다지 이점이 없지만
청동기의 문제는 너무 비싼 것에 있습니다.
왜 그러냐면 구리는 곧 귀금속입니다. 고대에 일반인은 못 구할 정도로 비싸죠.
기원전 4~5세기 중국 춘추시대에는 초기철기(무기의 상당수는 여전히 청동기)임에도 그 모양은 청동기 시대와 다른게 없는 것이 출토됩니다. 이 시대는 본격적인 탄소강이 있던 시대가 아니었으니 철이 물렀죠. 진나라, 한나라때에 조차 창, 칼 무기들의 모양은 아직 청동기시대의 때를 못 벗은 게 많지요~
이 시기 한반도에서는 일반적인 무기들 중~ 일부 세형동검과 청동도끼 외에는 청동기는 커녕 마제 돌 화살촉이 나옵니다. 청동기는 곧 구리합금이니 가격이 비싸고 철(탄소강) 생산(고대 한국에 철이 없었다고 단정 할 수는 없으나 철의 대량생산 기술의 부족으로 봐야겠죠)이 대중화 될 정도까지는 아니니, 철기나 청동기 가공 보다는 돌을 갈아서 활촉으로 썼던 건데요.
한반도와 만주 지역에서 생상되는 구리가 중원에 비해 생산량이 훨씬 적었던 것을 후기 청동기 시대에 이르러서는 극복하지 못한 결과 입니다(인구 수에도 중원에 밀리니 군사력의 열세는 아무래도 뒤집기 힘든 것이 사실.)
인구의 차이에 더해 이런 무기 혁신의 차이가 근본적으로는 고조선이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국가들에게 밀리는 결과를 초래하고 맙니다.
반면, 삼국시대에 이르러서는 고구려가 요하를 점령하면서 이 지역의 노천 철광으로 인해 중국 왕조들 보다 면적 당 철 생산량이 월등해지게 됩니다. 이땐 고구려가 오히려 중원에 비해 적은 군사로도 무기 혁신을 하게 되지요.
(출처 : 신채호 조선상고사의 내용을 일부 인용)
(사마천 사기 및 여러 고서에서도 메인 얘기로 나오지요. 오월동주, 와신상담의 배경 고사로 유명한 월나라 왕 구천의 검입니다. 실제로 출토된 유물이지요. 2,500년 된 청동검인데도 녹슨 곳 없이 원형 그대로인 검, 종이가 베일 정도로 날이 서 있었다 합니다.)
과거 국사 교과서에 나왔던 동이족 분포지역입니다. 인터넷에 떠도는 가공된 자료가 아니라 국사 교과서(역사부도) 자료였죠.
연배 있으신 분들 중에는 저걸 기억하고들 계실 겁니다.
그런데 저 그림의 출처가 중국 사료들이니 골 때리죠.
산동지방이 중국땅이 아니라 동이족이 점령한 땅이란게 많은 분들께는 생소할 겁니다(대륙백제나 대륙신라설이 아니니 이상하게 생각하시진 않으셔도 되십니다. 기원전 1천년에 이를 정도로 예전의 기록(주나라 이전)과 함께 비파형 동검 등 출토 유물들을 근거로 한 지도니까요. 춘추전국시대에 산둥지방을 차지한 나라는 제나라인데, 제나라의 왕성(씨)이 강씨입니다. 제나라 강씨들은 상나라를 뒤엎은 주나라의 공신 강태공의 후손들입니다.
(제나라 땅 1대 봉분된 제후가 강태공입니다. 전국시대에 와서야 전씨들의 반란으로 제나라 왕성이 전씨로 바뀌죠(원래는 제후라 공 이지만 이해를 위해 왕의 성씨~ 왕성(씨)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런데 강태공이 동이족입니다. 애초 주나라가 반란으로 뒤 엎기 전인 상나라(교과서에서는 은나라라고 배우셨을 겁니다)가 동이족이 세운 나라죠. 이건 중국 학자들도 인정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문제는... 동이족의 조상이 지네들 선조인 황제 헌원이라 우겨서 문제인 거죠.)
산둥지방을 차지한 동이족들의 정체가 고조선이건 고조선이 아니건 그 기원은 요하에서 출발한 세력들이 맞을 수 밖에 없고
청나라 당시 프랑스 출신의 레지신부의 프랑스 정부 보고용 문서인 레지 기록과도 일치하는 내용이죠(레지 기록에서 굳이 고조선을 언급히기 때문입니다) 이건 기원전 10세기나 그 훨씬 이전의 얘기긴 하죠.
기원전 3~4세기에 이르러 고조선은 연(나라)에게 요서를 통째로 빼앗긴 사건이 고조선 연합체 몰락의 시작인 셈이고 이 시기가 공교롭게도 부여의 건국 시기와 대체로 일치합니다.
고조선 내부의 여러 부족들이 각자 독립성을 갖고 연대, 연합 혹은 내부 경쟁도 하면서 각자 존재하니 고조선이란 큰 틀이 무너졌을 때
각자 다른 세력이 되어 동만주쪽, 혹은 한반도 남부에 이르기까지 독립적으로 이동한 것이 됩니다.
이런 상황을 윤내현 교수님은 열국시대 라고 규정하고 있더군요.
중국 기록에 고대 한국을 두고 삼한과 더불어 예, 맥, 한(진)으로 구분, 그리고 여러 소국들을 언급한 시기가 이때입니다.
열국시대란 것을 한국사 교과서에서 제외하니 왜 비슷한 시기에 고구려, 백제,신라,가야의 건국이 난립했던 사실과 옥저와 동예(동쪽에 있는 예족의 나라라는 뜻입니다)의 존재란건 또 뭔지가 이해도 안되는 상태인데다가
고조선과 부여는 무슨 상관이며, 이들 이후의 각 국가간 성립의 연결이 이해가 안되면서 한국 고대사 2천여년이 한번에 날아가 버린 것이죠.
부여의 성립 이후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뭔가가 계속 혼란스럽게 쪼개져 나가는 걸 교과서를 통해서도 보셨을 겁니다.
해모수의 북부여 외에도 금와왕의 동부여, 고주몽의 고구려, 소서노가 갈라져 나와서는 온조의 백제와 비류국, 남쪽에서는 마한의 소국(특히 고조선 준왕이 세뤘다는 건마국, 위치는 현 전북 익산이란 설이 있음.)들과 가야의 김수로, 신라의 박혁거세까지...
고조선이 느슨한 부족 연합체 국가라야 이런 열국시대란 현상이 가능한 것입니다..
한국의 성씨로는....
부여계는 빼놓더라도 현재 성씨들 중 대표적으론,
기씨와 한씨의 조상이 고조선계,
마한 중 (현재 전북 익산에 있었다는) 건마국이 고조선 준왕이 세웠다는 말이 있죠.
애초 신라 박씨, 어쩌면 신라 6두품 중 일부, 혹은 대다수도 조상들도 고조선계
(이씨, 정씨, 배씨, 설씨,최씨,손씨 신라 6성씨가 고조선이 남하한 세력이란 말이 있죠. 출처는 삼국사기입니다.)
가야는 부여가 흉노의 침략을 받을 때 부여 내부의 유목계열이 떨어져 나와 남으로 이동해 김해까지 온 것으로 추정되고 있고,
말이 많긴 하지만 경주 김씨는 흉노계,
진주 강씨 시조가 고구려 강이식 장군이고,
태씨가 원래 발해 왕성인 대씨 이듯이
한반도 이북에서 부터 고조선계, 부여계, 예족,맥족,남부의 한(진)에다가 퉁그스계 말갈, 일부 거란족(13세기 경 몽골에 통합되기를 거부한 일부 거란족들이 쫒겨 와 고려 국경까지 침략했다가 고려,몽골 연합군에 포로가 됨. 이 사람들 중 10~20% 정도의 거란인들을 고려가 수용, 거란족 천민 마을을 이룸. 이들의 후손들과 고려에 흡수된 돌궐(투르크)족, 여진족들의 후손들이 섞여서 조선시대에 백정이 되었다는 얘기가 있음)에 이르기까지...
이리저리 섞여서 만들어진게 한국인이니까요.
((특이하게는 북한 함경북도 끝자락에 한국 내 마지막 소수민족인 재가승(청나라 만주족으로 편입되지 못한 여진족의 일부라 여겨집니다)
이라고 불렸던 사람들이 1960~70년대까지도 존재했었다고 하는 기록도 있습니다. 승려가 아닌데도 남자들이 머리를 빡빡 깍고 다니는 풍습이 있어서 '승' 자 를 붙였다네요.
재가승들은 조선인들과는 언어도 다르고 제사도 안지내며 워낙 척박한 곳에서 농사도 거의 못 짓고 살다보니 생계는 무당, 혹은 수공업이나 일부 여자들이 몸 까지도 팔아서 식구들을 먹여 살렸나 본데... 조선사람들이 이들을 천하게 차별한 기록들이 나오기도 합니다. 분단 후 공산주의 정책으로 재가승들은 북한사람들과 통합되어 점차 사라진 듯이 보입니다. 북한 땅이니 그들의 언어(함경도 방언과는 아예 다른 말을 썼다고도 함)를 포함, 자세한 내용까지는 알 수 없지만요.))
한국사를 볼 때 반도사의 개념인식으로는 편견이 많이 생길 수 밖에 없긴 합니다. 이게 팩트를 팩트로 인식 못하게 만들기도 하는데요.
좀 다소 편견을 깨는 쇼킹할 수 있는 말씀을 드리자면~
고구려, 수나라 전쟁 당시
수나라는 소수의 선비족(현재 내몽골 근처의 선비산에서 유래한 부족이라 해서 이름이 선비족인 유목민들입니다)이
다수의 한족들을 지배하면서 만들어진 나라인데요.
고구려인들과 중국(한족)인들은 말이 안통해도 고구려와 선비족은 말이 통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 이전 모용선비(전연, 후연)와 고구려가 원수지간 임에도 말이 통해 서로 대화에 무리가 없었다 하니....
어쩌면.....
고구려 을지문덕과 수양제
혹은
고구려 연개소문과 당나라 태종 이세민(이세민은 선비족과 한족의 혼혈이지요)은
서로 말귀 다 알아 들으면서 전쟁 했을지도 모를 일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