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조에 찬 물이 늘어나는지 줄어드는지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수도꼭지’와 ‘수문’을 함께 보아야 한다. 전체를 보지 않으면 물의 양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운 것이다. 공개시장운영[1]도 마찬가지다. 한국은행의 RP매입[2]은 수조에 물을 공급하는 ‘수도꼭지’와 같은 수단이며, 반대로 통화안정증권, RP매각 등은 물을 빼내는 거대한 ‘수문’과 같은 수단이다. 최근 일각에서 RP매입 규모를 단순합산하여 한국은행이 과도한 유동성을 공급한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는데, 이는 자그마한 ‘수도꼭지’만 보고 거대한 ‘수문’은 간과한 것과 같다. 이하에서는 한국은행의 공개시장운영이 어떠한 방향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살펴보고 RP매입 관련 오류를 바로잡고자 한다.
그림 1. 공개시장운영을 통한 지급준비금 흡수 및 공급
공개시장운영의 핵심: 지급준비금 조절을 통한 초단기금리 관리
은행들은 예금인출이나 결제자금 수요에 대비해 일정 규모의 지급준비금(이하 ‘지준’)을 한국은행에 예치할 의무가 있다(필요 지급준비금, 이하 ‘필요지준’). 다만 은행들이 실제로 한국은행에 예치하는 지준 잔액은 정부 세출입, 한국은행의 외환거래에 따른 원화 공급규모, 화폐발행액 등에 따라 수시로 변동한다. 지준 잔액이 필요지준보다 부족하면 은행들이 자금 차입 경쟁에 나서게 되어 콜금리[3]가 상승압력을 받게 되며, 반대로 지준 잔액이 필요지준 규모를 상회하면 은행들이 남는 자금을 대여하고자 하여 콜금리가 하락압력을 받게 된다. 한국은행은 공개시장운영을 통해 금융기관의 지준 총액을 필요지준 수준으로 조절함으로써 콜금리가 금융통화위원회가 정한 기준금리 수준에서 안정적으로 형성되도록 유도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형성된 콜금리는 금융시장에서의 거래를 통해 다른 금리로 퍼져나간다. 한국은행은 이와 같은 공개시장운영을 통해 통화정책이 금융시장 전반으로 파급되도록 한다.[금리중심의 통화정책 운영체계]
그림 2. 기준금리와 콜금리
- 자료 :한국은행
그림 3. 공개시장운영을 통한 지급준비금 수요·공급의 균형 달성
통화안정증권부터 RP매매까지, 다양한 수단을 활용하여 지준 총액을 조절
한국은행은 통화안정증권 발행, RP매매, 통화안정계정 예치 등 다양한 수단을 활용하여 지준 총액을 조절한다. 통화안정증권 발행, RP매각, 통화안정계정 예치는 지준을 흡수하는 수단이며, RP매입은 지준을 공급하는 수단이다. 한국은행은 구조적 요인 등으로 초과 공급된 지준은 비교적 만기가 긴 통화안정증권을 발행하여 흡수하며 일시적인 지준 규모의 불균형은 만기가 짧은 RP매매를 통해 흡수(RP매각) 또는 공급(RP매입)하고 있다.
표 1. 공개시장운영 수단의 종류 및 만기
- 주 : 1)26.1월 현재 정례입찰에서 적용되는 통상적인 만기 기준
RP매입 규모는 ‘누적 합산’이 아닌 ‘평균 잔액’을 봐야
최근 일각에서 “한국은행이 지난해 RP매입을 통해 488조원 규모의 막대한 유동성을 공급했다”라고 주장한 바 있다. 하지만 이는 RP매입액을 단순히 누적 합산함으로써 지준공급 효과를 크게 과장한 것으로, RP거래의 메커니즘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오해이다. RP매입의 만기는 2주에 불과하며, 만기가 지나면 자동으로 반대거래가 일어나 자금이 회수된다. 따라서 만기가 짧은 RP매입 거래의 건별 금액을 단순 합산하면 지준 총액에 미치는 효과가 실제보다 훨씬 크게 계상된다. 일례로 10만원씩 일주일 만기로 대출을 받았다가 상환하는 일을 1년 동안 반복한 경우 지갑에는 520만원(10만원×52주)이 아니라 10만원이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다. 따라서 한국은행의 RP매입 규모는 거래액을 단순누적한 금액이 아니라 평균 잔액으로 평가하는 것이 타당하며, 지난해 RP매입 평균 잔액은 15.9조원에 불과하다. 이처럼 잘못된 접근으로 지준 공급규모를 과대 계상할 경우, 유동성 공급이 과도하다는 오해를 유발하여 시장에 불필요한 불안심리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림 4. 환매조건부 증권매매 거래 흐름
한국은행의 공개시장운영 방향은, 지급준비금의 ‘흡수’ 기조
다른 수단들의 운용규모(평잔)를 보면, 지난해 한국은행은 통화안정증권 발행 105.7조원, RP매각 1.8조원, 통화안정계정 예치 0.5조원으로 총 107.9조원의 지준을 흡수하였다. 즉, 수문을 통해 수조 밖으로 내보낸 물의 양이 수도꼭지를 통해 들여보낸 물의 양보다 훨씬 많은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외환보유액을 보유·운용하는 과정에서 지준 총액이 필요지준 규모를 초과하는 상태가 기조적으로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공개시장운영은 이러한 초과 부분을 흡수하여 콜금리가 기준금리를 하회하지 않도록 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한편 지난해 RP매입 규모가 늘어난 것은 지준의 단기적인 변동성 확대에 대응하여 양방향 RP매매를 도입[4]한 데 주로 기인한다[5]. 한국은행은 기조적으로 지준을 흡수하는 가운데 일시적인 지준 변동에 탄력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RP매입을 정례화하였다. RP매입 규모의 증가는 이 같은 제도 개편을 바탕으로 지준규모를 미세조정(Fine-tuning)한 결과이며, 이로 인해 기조적인 흡수흐름이 바뀐 것은 아니다.
그림 5. 공개시장운영을 통한 지급준비금 흡수 및 공급 규모1)
- 주 : 1)2025년 평균 잔액 기준
- 자료 :한국은행
RP매입액을 단순 합산하여 "한국은행이 과도한 유동성을 공급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부적절
한국은행은 지준 총액의 변동요인과 자금시장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여러 수단을 조합하여 운영하고 있으며, 전체적인 정책효과는 이들 수단들이 함께 작동한 결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점에서 전체적인 공개시장운영이 흡수 기조라는 사실을 외면하고, RP매입이라는 특정 수단의 과대 계상된 수치를 바탕으로 한국은행이 과도한 유동성을 공급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사실을 왜곡한 것이다. 이러한 비합리적인 주장은 통화정책에 대한 신뢰를 저하시킬 뿐 아니라, 환율 등과 관련하여 과도한 불안심리를 자극하는 등 부정적 영향이 크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공개시장운영은 물(지준 총액)의 수위를 적정 수준보다 높이거나 낮추는 것이 아니라, 적정 수준의 수위를 유지해 나가는 과정이다. RP매입은 이 과정에서 일시적인 금융시장의 변동성 확대에 대응하여 수위를 적절히 관리하기 위해 '수도꼭지'를 유연하게 조절한 것일 뿐, 결코 물을 넘치게 채우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