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인생 조언들

작성자도봉박홍기|작성시간25.07.18|조회수740 목록 댓글 74

끝까지 살아남는 자만이 진짜를 본다 – 생존과 지혜에 관한 이야기

 

인생은 흔히 전쟁터나 정글에 비유됩니다. 예측할 수 없는 시련과 경쟁 속에서 살아남는 것 자체가 하나의 성취이자 예술이라 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운이 좋아서, 누군가는 남다른 재능으로 살아남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그 이면에는 보이지 않는 노력과 지혜, 판단의 연속이 있습니다. 여기, 삶이라는 거친 들판을 끝까지 걸어 나오기 위해 우리가 마음에 새겨야 할 지혜들을 이야기 형식으로 풀어보려 합니다. 때로는 한 인생의 선배가, 때로는 당신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가 들려주는 충고라 생각하고 마음을 열어 주세요. 이 글에 담긴 깨달음들이 당신의 심장을 두드리고, 멈추었던 열정을 다시 뛰게 하기를 바랍니다.

 

기회는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내는 것이다

 

젊은 시절, 저는 막연히 기회가 오기를 기다리며 시간을 보낸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풍파 속에서 깨달은 것은, 생존자는 결코 기회를 가만히 기다리고만 있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원하는 바가 있다면 스스로 판을 짜고 움직여야 했습니다. 미국의 코미디언 밀튼 버를의 말처럼 *“기회가 찾아오지 않는다면, 문을 만들어 두드려라”*는 자세가 필요했습니다. 성공한 사람들의 발자취를 돌아보면 우연한 행운처럼 보이는 순간조차도 사실은 오랜 준비와 계산, 그리고 행동이 만들어낸 결과물입니다. 기회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행운이 아니라, 우리가 직접 설계하고 움직일 때 비로소 내 것이 된다는 진리를 기억하세요.

 

절망은 감정이고 생존은 판단이다

 

한때 저는 크나큰 절망에 빠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에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여기서 주저앉을 것인가, 아니면 계속 나아갈 것인가?’ 깨닫게 된 것은 절망은 그저 하나의 감정일 뿐이라는 사실입니다. 감정은 인간적이지만, 그 감정에 압도되어 머물러 버린다면 우리는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합니다. 생존은 판단의 문제입니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기로 결단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눈물을 흘릴 수는 있어도 발을 멈춰서는 안 됩니다. 결국 삶을 계속 이어가는 사람은 *“절망을 딛고 일어서기로 판단한 사람”*입니다. 칠흑 같은 밤에도 동트는 새벽을 믿고 걸을 수 있어야 내일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상처를 핑계가 아닌 무기로 삼아라

 

살아가다 보면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기도 합니다. 배신당하고 실패하고, 그 상흔을 핑계 삼아 주저앉고 싶어질 때가 있죠. 하지만 상처를 변명으로 소비하는 사람에게 남는 것은 쓰라린 기억뿐이었습니다. 저는 오히려 그 상처를 무기로 바꾸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과거에 저를 아프게 한 말이나 좌절했던 순간들을 곱씹으며 다짐했죠. “두고 보자. 이 상처를 힘으로 바꾸어 반드시 극복해 내리라.” 아픔을 되새기며 스스로를 채찍질하자 이상하게도 눈물만 흘리던 때보다 더 큰 용기와 추진력이 솟구쳤습니다. 상처를 말로만 떠안고 있으면 자신을 소비하지만, 이를 연료 삼아 움직이면 반격의 힘을 얻습니다. 상처 입은 사자가 더 강하게 포효하듯, 우리의 상처도 성장의 밑거름으로 승화시킬 수 있습니다.

 

 

게으름은 빈곤보다 위험하다

 

나태함에 빠져 지낸 나날이 한때 있었습니다. 해야 할 일은 미루고, “언젠가 때가 오겠지” 하며 안일하게 지낸 적이 있지요.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런 게으름이야말로 눈에 보이는 가난보다도 더 큰 위험이었습니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게으름은 너무 느릿느릿 가기 때문에 가난이 금방 따라잡는다”*고 했습니다. 눈앞에 큰 실패나 빈곤이 없더라도, 꾸준히 나태함에 젖어있으면 서서히 삶의 기반 자체가 무너져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합니다. 게으름은 우리 삶의 탈출구와 가능성마저 지워버리는 무서운 함정입니다. 결국 스스로를 나태함에 내맡긴 사람은 기회는커녕 위기를 맞게 되더군요.

한편으로 행동하지 않음을 그럴듯한 이유로 합리화했던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럴싸한 이유를 대어봐도 결국 움직이지 않은 것에 대한 책임은 자기 자신에게 돌아왔습니다. 미국 대통령이었던 시어도어 루즈벨트는 *“어떤 결정을 해야 할 때 최악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일갈했습니다. 가만히 손 놓고 기회를 흘려보내는 행위만큼 나쁜 선택은 없다는 뜻이겠지요. 게으름과 나태를 경계하십시오. 오늘의 안일함이 모여 내일의 커다란 실패가 될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도 다시 오지 않는 소중한 시간임을 기억하고, 작은 일이라도 붙잡고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인내는 감정이 아니라 최고의 전략이다

살아보니, 인내란 단순히 참고 견디는 감정적 미덕이 아니라 매우 능동적인 생존 전략이었습니다. 힘들다고 쉽게 포기해버리는 사람은 결코 먼 길을 갈 수 없습니다. 반면에 버티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다음 기회가 찾아오더군요. 한때 제가 사업에 실패하여 힘든 시절을 보낼 때, 매일매일이 버거웠지만 “조금만 더 버텨보자” 스스로를 달래며 하루를 견뎠습니다. 놀라운 것은, 버티고 나니 상황이 호전될 변곡점이 반드시 찾아왔다는 점입니다. 포기해버렸다면 절대 보지 못했을 희망의 순간이었지요.

 

무엇보다 버틴다는 것만으로도 절반의 승리를 거둔 것과 같았습니다. 프랑스의 황제 나폴레옹도 *“승리는 가장 끈기 있는 자에게 돌아간다”*고 말했을 정도입니다. 끝까지 남아 있는 자가 결국 게임의 승자가 됩니다. 마라톤에서 완주한 사람만이 결승선을 밟을 수 있듯이, 인생도 포기하지 않고 버틴 사람만이 마지막에 웃을 수 있는 법입니다. 물론 무작정 참고 견디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호흡을 가다듬고 때를 기다리는 계산된 인내가 필요합니다. 인내심은 우리의 자산입니다. 그것이 있는 사람은 어떤 역경에서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 내적 근력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니까요. 힘들 때면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해보세요. “조금만 더 버티자. 이겨내면 분명 길이 열린다.” 그 한 걸음의 인내가 당신을 패배자에서 생존자로 만들어 줄 것입니다.

 

 

의심하고 경계하라, 맹신은 금물이다

 

사회 생활을 하면서 *“너무 사람을 좋게만 보면 안 된다”*는 말을 종종 들었습니다. 살아남기 위해선 세상 일에 약간의 의심이 필요하다는 진리였습니다. 순진하게 모든 일을 그대로 믿다가는 큰 코 다치는 경우를 여러 번 목격했습니다. 의심은 생존의 출발입니다. 이것은 무조건 사람을 의심하고 살라는 의미가 아니라, 세상의 일들을 냉철하게 검토하고 질문하는 태도를 가지라는 뜻이지요. 의심 없는 믿음은 때로 맹신이 되고, 맹신은 곧 사기의 시작이 되기 쉽습니다. 나自身과 가족을 지키려면 눈앞의 달콤한 말이나 쉬운 길일수록 한 번 더 따져보고 확인하는 신중함이 필요합니다.

 

또 한 가지,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 것도 중요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위험한 순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쉴 때 찾아오곤 했습니다. 일이 잘 풀릴 때 찾아오는 “이 정도면 됐겠지” 하는 방심은 성공을 파괴하는 지름길이었습니다. 승리의 순간에 방심하다가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은 사람들을 우리는 역사에서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항상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합니다. 작은 승리에 취해 자만하거나, 현실에 안주해 자기계발을 게을리하지 않는 경계심이 곧 생존자의 자세입니다.

 

아울러 너무 착하기만 한 태도도 경계해야 합니다. 착한 것은 미덕이지만, 약삭빠르게 굴지 못하고 순박하게만 행동하면 거친 구조 속에서 제일 먼저 이용당하는 대상이 되기 십상입니다. 세상은 선의만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자신의 선의를 지키면서도 현실의 냉혹함을 인식해야 합니다. 착한 마음을 잃지 말되, 그 마음이 스스로를 해치는 일은 없도록 눈을 뜨고 귀를 기울이세요.

 

끝으로, 말과 침묵의 균형을 기억하십시오. 때로는 침묵이 최고의 전략이 됩니다. 감정이 북받친다고 해서, 혹은 자신 있다고 해서 마구 말을 쏟아내다 보면 오히려 그 말이 약점이 되어 돌아올 수 있습니다. 격언에도 *“입을 다물고 있으면 바보일까 의심받지만, 입을 열면 그 의심을 확신으로 바꾸게 된다”*는 말이 있지요. 불필요한 말로 내 속마음을 모두 드러내기보다는, 필요한 때에만 필요한 말을 하는 지혜가 생존에는 중요합니다. 말을 아낀다고 해서 꼭 비겁한 것이 아닙니다. 전략적으로 침묵할 줄 아는 사람은 정보를 쥐고 상황을 주도할 수 있습니다. 의심하고, 경계하고, 때로는 침묵하는 것, 이것이 거친 세상을 건너는 지혜로운 생존자의 모습입니다.

 

 

 

과감하게 끊고, 남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져라

 

오랫동안 가져온 습관이나 관계를 끊어낸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때로는 새로운 생존을 위해 과감한 결단이 필요합니다. 제가 한창 방황하던 시절, 몇몇 인간관계는 제게 상처만 주고 있었고 삶을 오히려 불행하게 만들었지요. 그때 큰맘 먹고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낸 적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외롭고 불안했지만, 잘라낼 것은 단호하게 절단하고 나니 비로소 제 인생에 새 출발의 문이 열리더군요. 모든 생존은 이렇게 불필요한 것, 유해한 것과의 결별에서 시작됩니다. 가지를 쳐야 나무가 더 튼튼해지듯, 우리의 삶도 때로는 과감히 버릴 것은 버릴 줄 알아야 합니다.

 

또 하나, 남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진정으로 살아남는 자의 필수 조건임을 깨달았습니다. 사회적 인정과 시선에 저도 한때 목매었던 적이 있습니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를 지나치게 의식하면 정작 내 삶의 방향키를 남에게 맡겨버리는 격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인정 욕구에 자신을 묶어두면 내 삶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집니다. 남들이 손가락질할까 두려워 도전하지 못하고, 체면 때문에 해야 할 말을 못 하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내 인생의 주인은 타인의 평가가 되어버리지요. 저는 그런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부러 남들의 시선을 거스르는 선택도 해보았습니다. 그리고 알게 되었습니다. 결국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만이 끝까지 살아남는다. 살아남는 자는 타인의 시선을 떨쳐버린 사람입니다. 남들이 뭐라든 내가 옳다고 믿는 길, 내가 가치 있다고 여기는 삶을 걸을 때 비로소 진정한 생존과 성공에 다가설 수 있습니다.

 

물론 고독은 이 과정의 뗄 수 없는 동반자일 것입니다. 남들과 다르게 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감수한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때로는 이해자 하나 없이 홀로 걸어가야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외로움은 선택받은 자의 몫입니다. 큰일을 이루는 사람, 끝까지 살아남는 사람은 그 길 위에서의 고립조차 담담히 견디며 앞으로 나아갑니다. 자신의 신념과 꿈을 위해 기꺼이 외로운 길을 택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보상이 있는 법이지요. 남들이 모두 등을 돌리는 순간에도 내가 가야 할 바를 안다면 묵묵히 가십시오. 그 길 끝에서 당신은 결국 환한 빛을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구조를 알고 대응 하세요 

 

사회는 복잡한 구조로 돌아갑니다. 겉만 보아서는 알 수 없는 흐름과 룰이 그 안에 숨어 있지요. 살아남으려면 이 판의 이면을 읽을 줄 알아야 합니다.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사람은 언제나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반대로 구조를 읽을 수 있게 되면 사람의 속내가 보이고, 돈의 흐름이 보입니다. 저 역시 사회 초년생 때는 세상의 작동 방식을 전혀 몰라 여러 번 실수도 하고 손해도 봤습니다. 그러나 경험과 독서를 통해 조금씩 세상의 규칙을 배우고 난 뒤부터는 위험을 예측하고 피할 수 있게 되었고, 어디서 기회가 생길지도 가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세상의 큰 판을 읽는 눈을 가지려면 꾸준한 공부와 관찰이 필요합니다. 경제든 인간관계든 보이지 않는 질서를 파악하려 애쓰세요. 생존의 무대에서 판을 읽는 자가 결국 유리한 위치에 서게 마련입니다.

 

또한 정보는 무기입니다. 정보가 없는 사람은 감정으로 선택하고 투자를 하다가 무너지지만, 정보가 풍부한 사람은 한 발 앞서 대비할 수 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정보력이 곧 생존력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 부지런히 배우고 듣고 눈을 넓히는 일을 게을리하지 마십시오. 모르는 것이 약이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무지는 생존을 방해하는 가장 잔인한 요소가 됩니다. 모르는 사이에 기회를 놓치고, 모르는 사이에 불이익을 당하고, 모르는 탓에 잘못된 결정을 내리기 일쑤입니다. 아는 것이 힘이라는 옛말은 오늘날 더 절실히 와 닿습니다. 영국의 철학자 베이컨의 말처럼 *“아는 것이 힘”*인 것입니다. 부족한 지식이 있다면 채우고, 물어보고, 배워야 합니다. 그래야만 이 변화무쌍한 세상에서 내 자리 하나를 지켜낼 수 있습니다.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 – 전략을 가지고 계산하라

한때 저는 “열심히 하면 되겠지”라는 막연한 신념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쓰디쓴 실패를 몇 번 겪고 나서야 깨달았습니다. 생존은 의지나 노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며, 철저한 계산과 전략의 싸움이라는 사실을요. 무모한 열정으로 달려들었다가 준비와 전략이 없어 좌절한 적이 얼마나 많던지요. 그 이후 저는 노력 이전에 전략을 세우는 일에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언제 할 것인지 치밀하게 계획하고 나서 온 힘을 쏟았습니다. 결과는 확연히 달랐습니다. 방향 없이 제자리만 맴돌던 과거와 달리, 계산된 노력은 탄탄한 성과로 이어졌습니다.

열정과 의지는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전략 없는 노력은 허망할 뿐입니다. 뛰기 전에 지도를 살피고, 싸우기 전에 전술을 짜야 하듯이, 인생의 큰 승부처마다 우리는 계획하고 계산하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앞서 말한 정보지식, 그리고 통찰력이 필수적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지식만 쌓으면 된다고 오해하지만, 사실 나를 지켜주는 것은 방대한 지식 그 자체가 아니라 올바른 판단력입니다. 가지고 있는 지식을 어떻게 활용하고, 상황에 맞게 어떤 결정을 내리는지가 생존을 가릅니다. 뛰어난 두뇌를 가졌어도 잘못 판단하면 무용지물이고, 적은 지식이라도 정확히 판단하여 쓰면 큰 힘이 됩니다. 판단력이야말로 생존의 기준임을 기억하십시오. 순간순간 주어진 정보를 토대로 최선의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의 결과를 다시 배우고 수정해 나가는 지혜로운 전략가가 되십시오. 노력은 그다음에 해도 늦지 않습니다.

 

 

 

슬픔은 통과하는 것이지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살다 보면 가슴 깊이 슬픈 순간들을 맞닥뜨립니다. 사랑하는 이를 잃거나, 큰 실패로 좌절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슬픔의 무게를 압니다. 저도 크고 작은 슬픔에 잠식되어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 않던 시기가 있었지요. 하지만 결국 시간이 흐르며 알게 되었습니다. 슬픔이란 소비하는 감정이 아니라, 극복해야 하는 과정이라는 것을요. 슬픔 속에 영원히 머물 수는 없습니다. 슬픔은 통과해야 할 터널과 같습니다. 그 어둠을 억지로 피하려 하지 말고 차라리 정면으로 겪어내고 흘려보내야 합니다.

눈물의 강을 건너고 나면 어느새 고통은 지나가고 감정은 조율되어 있음을 느낍니다. 힘든 일을 겪을 때 우리는 흔히 그 슬픔을 외면하거나 억누르려 하지만, 그러면 오히려 상처로 응어리진 채 남습니다. 충분히 아파하고, 충분히 애도하되 그 자리에 머물지 않는 것, 그것이 중요합니다. 슬픔을 통해 우리는 삶의 소중함을 깨닫고, 다른 이의 아픔에 공감하는 법을 배우기도 합니다. 그러니 슬픔 자체를 두려워하지 마세요. 대신 슬픔에 잠식당하지 않을 용기를 가지세요. 고통스러운 기억은 기억하되 그 속에 머무르지 말아야 합니다. “고통은 나의 일부일 뿐 전부가 아니다.” 이렇게 마음먹고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다 보면, 어느새 그 슬픔의 터널을 지나 밝은 빛 속에 서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다스리는 사람이 돼는 어려워도. 복수한다거나. 다음에도 이런 고라지 안당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으면 견디기가 한결 쉽다.

 

인생의 수많은 함정은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내부의 감정에서 비롯됩니다. 분노, 탐욕, 두려움 같은 감정이 앞설 때 우리는 종종 이성적 판단을 그르치곤 합니다. 저는 투자 업무를 하면서 감정에 휘둘린 결정이 얼마나 위험한지 뼈저리게 배웠습니다. 어떤 때는 욕심에 눈이 멀어 냉정하게 따졌으면 피할 수 있었던 실패를 자초했고, 또 어떤 때는 분노에 사로잡혀 불필요한 갈등을 만든 적도 있었습니다. 그 후로 크게 깨달은 바가 있습니다. 절제하지 못한 감정은 생존을 위협하는 적이라는 사실입니다. 반면에 스스로 감정을 다스릴 수 있게 되면 그 감정은 오히려 강력한 무기가 되어주기도 했습니다. 분노를 긍정적 에너지로 승화시켜 불의를 참지 않는 행동력으로 바꾸고, 욕망을 목표를 이루는 추진력으로 방향만 잘 틀어준다면 감정은 더 이상 나를 잡아끄는 굴레가 아니라 앞으로 밀어주는 동력이 됩니다.

 

특히 탐욕은 경계해야 할 감정 중 하나입니다.

 

욕심이 과하면 판단이 흐려지고, 결국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됩니다. 투자의 세계에서도 탐욕과 공포라는 두 감정이 가장 큰 적이라 하지요. 저 역시 욕심에 눈이 멀었을 때 번번이 실패했습니다. 욕심이 앞서는 순간 우리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며 객관적인 판단력을 잃어버립니다. 그렇게 내린 결정은 십중팔구 실패로 돌아오더군요. 결국 감정을 앞세운 투자자는 무너진다는 진리가 남습니다. 우리의 마음속에서 끓어오르는 감정을 한 걸음 떨어져서 바라보고 다스리는 연습을 해보세요. 깊이 호흡을 하고 숫자를 세거나, 하룻밤 자고 일어난 뒤에 결정하는 식으로 감정의 파도를 잠잠하게 만든 후에 판단해도 늦지 않습니다. 절제된 감정은 훌륭한 연료지만, 절제되지 않은 감정은 폭주하는 차량과 같습니다. 내 안의 감정의 고삐를 쥐고 놓치지 않는 사람이 끝까지 살아남는 자입니다.

 

 

 

반복된 실수는 더 이상 실수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을 인정하고 다른 협조자를 구하면 된다.

 

인생을 돌아보면 누구나 실수를 합니다. 저도 시행착오를 수없이 겪었습니다. 처음 한두 번의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는 배움의 과정일 것입니다. 그러나 같은 실수를 세 번째, 네 번째도 반복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실수가 아니요 나의 선택입니다. 아주 젊은 시절에 저는 비슷한 잘못을 계속 반복하면서도 그때마다 “어쩔 수 없었어” 라고 자기 합리화를 했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변하지 않는 한 똑같은 결과가 돌아올 뿐이었습니다. 그제야 깨달았지요. 반복된 실수는 내 안의 어떤 구조가 잘못되었음을 의미한다는 것을요.

우리는 가끔 불운을 탓하고, 주위 환경을 탓하지만 냉정히 말해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과거로부터 배우지 못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실수를 실수로 남겨두지 않으려면, 같은 상황이 오지 않도록 나 자신을 바꾸어야 했습니다. 저는 제 실수를 적어보고 그 원인을 분석하는 습관을 들였습니다. 그리고 다음번에는 다른 선택을 해보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했습니다. 쉽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하나씩 패턴을 바꾸자 삶이 달라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만약 지금도 삶에서 똑같은 장애물에 걸려 넘어지고 있다면 잠시 멈춰 돌아보세요. 그리고 자문해보세요. “내가 바뀌지 않은 건 아닐까?” 바꾸지 않으면 그저 반복일 뿐입니다. 변화는 어렵지만 변화 없이는 성장도 없다는 진리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쓰디쓴 실수들을 그냥 흘려보내지 말고, 그때그때 나를 조정하고 개선해 나간다면 더 이상 같은 실수는 찾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도 안되면 다른 불안과 실수를 보완할 사람 물건으로 빠르게 대체 하면 됩니다. 다들 불안하게 살아가고 자신들의 나약함을 숨기고 살아가는 것이 대 부분의 인생들입니다.

 

 

 

 

때가 아니면 조급해하지 말고, 기회의 신호를 읽으면서 기다림을 즐기세요.

 

인생의 타이밍은 참 신비합니다. 어떤 때는 모든 일이 잘 풀리는가 하면, 어떤 때는 아무리 애써도 진전이 없지요. 중요한 것은 준비된 자는 그 흐름을 읽지만, 조급한 자는 그 흐름을 놓친다는 점입니다. 지나고 나서야 깨닫는 때가 많지만, 분명 일이 풀리는 순리의 시기가 있고 잠시 멈춤이 필요한 휴지기의 시기가 존재했습니다. 제가 한창 조급하던 시절, 성과를 빨리 내고 싶어 안달복달했지만 오히려 실수만 늘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 현명한 선배 한 분이 제게 이런 조언을 주셨습니다. “밀어도 안 될 때가 있는 법이야. 대신 때가 되면 스르륵 문이 열릴 테니 그날을 위해 실력을 갈고닦아.” 그 말을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 후로 조급함이 엄습할 때면 호흡을 고르고 때를 기다리자 다짐했습니다.

생존에는 타이밍이 있습니다. 억지로 안 되는 일을 붙잡고 늘어지느라 진을 빼기보다는, 될 일과 안 될 일을 가늠하고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지혜를 갖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준비된 사람은 흐름을 탈 줄 알지만, 준비 없이 성급한 사람은 눈앞의 기회를 보고도 놓치기 마련입니다. 천둥이 울리기 전에 번개가 먼저 치듯, 기회에도 전조와 사인이 있기 마련입니다. 마음의 눈을 크게 뜨고 그 신호를 포착하세요. 그리고 그 순간이 오면 과감하게 뛰어들 준비를 해두세요. 조급함은 금물입니다. 오늘 준비된 사람에게만 내일 운명의 여신이 손짓할 것입니다.  가장 적당하고 유리한 시기까지 기다리기가 죽기보다 싫은 시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가장 유리한 시점에 복수하거나 승리하거나 과거를 청산하는 기회를 날린다고 생각해 보면. 한결 기다기는 쉬워 집니다.

 

 

 

 

 

끝까지 살아남아야 진짜를 본다, 그것이 대부분은 허무이지만.

 

삶을 달려오는 동안 수없이 쓰러지고 싶었던 순간들이 떠오릅니다. 하지만 저는 그때마다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포기하지만 않으면 언젠가 내 차례가 올 거야.” 인생은 탈락지만 않으면 언젠가 순위에 오르는 마라톤과 같습니다. 결국 끝까지 완주한 사람이 승리를 거머쥡니다. 끝까지 살아남은 자만이 진짜를 본다는 말처럼, 중도에 포기해버리면 그동안의 노력도, 고통도 아무 의미가 없게 됩니다.

발을 멈추고 싶은 유혹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하지만 한 발짝이라도 더 내디뎌야 합니다. 포기하고 나서야 코앞에 성공이 와 있었다는 걸 깨달은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발명왕 에디슨은 *“인생의 많은 실패자들은 성공에 얼마나 가까이 있었는지도 모르고 포기한 사람들이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이 말을 가슴에 새겨두었습니다. 나는 과연 얼마만큼 왔고, 성공은 얼마나 남았을까? 포기해버리면 그 답을 영영 알 수 없습니다. 그러니 인생의 마지막 장면까지 꼭 지켜보겠다는 마음으로 버티고 또 버티십시오.

살아남는 자가 진짜 승리자입니다. 마지막에 웃는 사람이 진정한 승자라는 평범한 진리가 우리 삶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눈물 나는 실패도 겪고, 버려지고, 넘어져도 좋습니다. 다만 포기하지 않고 일어서기만 하면 게임은 계속되는 법입니다. 그러면 언젠가 반드시 행운의 문이 열리고, 그 문 너머에 기다리던 보상이 나타날 것입니다.

당신의 삶에도 분명 힘겨운 밤이 있겠지요. 하지만 밤이 깊을수록 새벽이 가까워오고 있음을 잊지 마세요. 끝까지 버티며 걸어가는 당신의 등 뒤로, 어느새 여명이 밝아올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붉은 태양이 떠올라 세상을 환히 비출 때, 당신은 비로소 진짜 삶의 의미와 아름다움을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도 버티는 당신에게 경의를 표하며, 이 글을 맺습니다. 부디 끝까지 살아남아 당신만의 진짜를 눈에 담기를 바랍니다.

음지에서 묵묵히 제 길을 가는 모든 생존자들에게 이 글을 바칩니다. 힘내십시오. 생존자는 기회를 기다리지 않고 만들며, 끝끝내 버텨 결국 해내는 사람이니까요. 당신도 그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생각하는 것보다 더 강인한 존재입니다. 오늘의 눈물이 내일의 무기가 되고, 오늘의 인내가 내일의 이 될 것을 믿습니다. 살아남는 자에게 찬란한 내일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힘겨운 발걸음이 모여 길이 되고, 그 길 끝에서 마침내 환한 진실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살아남으세요. 그래야 알고 싶은 것을 알게 됩니다.  그것이 허무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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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도원 | 작성시간 25.12.27 감사합니다
  • 작성자김규탁 | 작성시간 26.01.01 감사합니다
  • 작성자우승파파 | 작성시간 26.01.18 감사합니다
  • 작성자땡이 | 작성시간 26.03.14 "생존자" 라는 말이 이 나이 되니 실감납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 작성자seamanG | 작성시간 26.05.16 새겨야 할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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