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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자 작품방

시장이 반찬

작성자김국자안젤라|작성시간26.06.21|조회수20 목록 댓글 0

시장이 반찬

 

김 국 자

흘러간 추억이 그리울 때마다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70여 년 전 고향 대천에서 초등학교 5학년 때 일이다. 어느 날, 하교 시간에 옆자리에 앉았던 짝꿍 순영이가 오늘 우리 집에 놀러 가지 않을래?” 하고 물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순영이네 집에 가고 싶은 마음에 집에는 들르지도 않은 채 순영이를 따라갔다. 동네 사이로 흐르는 개울을 건너고 논둑을 지나 꼬불꼬불 산등성이를 넘었다.

거의 한 시간 동안을 걸어가다가 너희 집 어딘데? 아직 멀었어?”하고 물으면 아니~ 거의 다 왔어. 조금만 더 가면 돼.” 순영이의 대답을 들으며 순영이네 집에 도착했다.

조그마한 사립문이 달린 초가집에 순영이 어머니와 같은 학교에 다니는 6학년생 오빠와 아직 학교에 다니지 않는 여동생이 하나 있었다. 순영이 오빠와 공놀이도 하고 숨바꼭질을 하며 재미있게 놀았다.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다 보니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우리 어머니는 친구들이 놀러 오면 고구마를 삶아주고 부침개도 부쳐주셨는데, 순영이네는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너무 배가 고프고 기운이 없어 집에 가려는데, 순영이 어머니가 얘들아! 들어와서 이것 먹어라하고 부르셨다. 그들을 따라 방으로 들어갔는데, 둥그런 두레반에 커다란 냄비가 하나 올려있었다. 덜어 먹는 그릇도 없이 함께 수저로 떠먹는 음식인데, 달착지근하고 맛이 있었다. 처음 먹어보는 그 음식의 이름은 술지게미 죽이었다. 막걸리 만드는 양조장에서 술을 거르고 버리는 지게미로 끓인 죽. 순영이 어머니가 읍내 양조장에서 얻어 온 것이라고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데, 다리가 휘청거렸다. 꼬부랑 산길을 지나고 논둑도 무사히 지났다. 조심조심 징검다리를 건너다가 미끄러지며 개울물에 쓰러졌다. 어깨를 다쳤는지 팔뚝을 다쳤는지 모를 정도로 여기저기 욱신거렸다. 통증이 심한 팔뚝을 주무르며 집에 도착했을 때, 부모님의 꾸지람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사내아이도 아니고 계집애가 젖은 옷에 술 냄새까지 풍겼으니 꾸지람은 당연하다.

아버지를 따라 읍내에 있는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았다. 다음날 깁스를 한 채 학교에 갔을 때, 선생님과 친구들이 이구동성으로 어쩌다가 이렇게 다쳤느냐?”고 물었다. 원인은 술지게미 죽을 먹은 탓이었지만, 순영이 마음을 아프게 할 수 없어 우리 우물가에서 미끄러졌다고 했다.

세월이 흘러 잊힐 때도 되었건만, 가끔 떠오르는 장면은 순영이네 집에 갔을 때 일이다. 모처럼 놀러 온 딸 친구에게 대접할 것 없어 미안해하던 순영이 어머니의 얼굴이 떠오른다.

먹거리가 풍부한 지금은 그까짓 술지게미 죽이 무슨 맛이 있겠나? 하겠지만, 그땐 정말 꿀맛이었다. 신세대 젊은이들이 보릿고개를 모르듯이 쌀이 없어 굶주린 이야기를 이해 못 하는 사람들이 많다. “왜 밥을 굶어요? 쌀이 없으면 라면 끓여 먹으면 되잖아요?” 말하는 신세대들이 시장이 반찬이라는 말은 이해할 수 있을까? 그 해답은 굶어 보아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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