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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덕 작품방

딱 1잔

작성자초원/이경덕|작성시간26.06.12|조회수17 목록 댓글 0

1/ 초원 이경덕

소시적에는

그저 한 주에 한 번, 좋은 사람들과 잔을 부딪치는 것이 삶의 당연한 도리인 줄 알았습니다. 연구개발 단체에서 연구비를 책정 받아 분주하게 움직이던 친구들과 퇴근 시간에 그저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어깨가 으쓱하고 신이 나던, 참으로 그리운 시절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삶의 속도를 늦추어 낙향(落鄕)이라 해야 할지, 은퇴라 해야 할지 모를 고요한 길을 걷고 있습니다. 경기도의 한 중소병원에서 재능기부라는 이름으로 하루를 채우며, "그저 왔다 갔다 하는 것뿐"이라고 담담히 미소 지어 보지만, 문득 삶이 힘들고 가슴이 답답해질 때가 왜 없겠습니까.

 

그럴 때면

가끔 집에서 아내와 마주 앉아 가만히 잔을 채우곤 합니다.

"이럴 때는 딱 한 잔이 보약이지."속으로 다짐하며 딱 한 잔만 마시겠다고 시작하지만,

어느새 마주 잡은 온기에 취해 딱 두 잔을 비우고서야 슬며시 잔을 내려놓습니다.

바로 어제의 저녁 식탁 풍경이 그러했듯이 말입니다.

 

평생을 평화주의자로, 살아온 길.

남들에게는 늘 온화하고 평온한 모습이었으나, 정작 내 자신은 속으로 타들어 가며 삭여내야 했던 숱한 날들이 있었습니다.

어쩌면 그 인내와 묵묵함이야말로 거부할 수 없는 나의 근본이자 숙명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문득

차를 끓이다가 어느 시인의 구절을 가만히 읊조려 봅니다. 그래, 세상이 뭐라 한들 또 그렇게, 그렇게 흘러가듯 살면 되는 것이겠지요.

 

풀잎처럼 살라 한다.

풀잎처럼 가볍게 먹고 풀잎처럼 가볍게 지니라 한다.

그래야만 작은 바람결에도 풀잎처럼 춤을 출 수 있다 한다.

 

버들강아지처럼 웃으며 살라 한다.

한 세상 사는 일이 힘들고 버거워도

저 시냇가의 버들강아지처럼 깔깔깔 웃으라 한다.

웃다 보면 웬만한 것도 다 노래가 될 수 있단다.

 

갈대처럼 살라 한다.

억센 바람 앞에서도 넘어지지 않는 갈대처럼 살라 한다.

서로 손 꼭 잡아주고 서로 일으켜 주고서로서로 등받이가 돼라 한다.

 

— 윤수천, '차를 끓이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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