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고향을 찾아서/靑石 전성훈
누구에게나 꿈에서도 잊을 수 없는 또는 기억조차 잊고 싶은 혹은 갈 수 없는 잃어버린 고향이 있다. 그곳은 자신이 태어나 한동안 자란 어린 시절의 애틋하거나 혹은 애잔한 추억이 덩어리가 되어 깃들은 정든 곳일 수도 있고, 조상 대대로의 삶의 터전일 수도 있다. 어린 시절과는 전혀 다르게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해버린 고향의 모습에 어안이 벙벙하다. 게다가 친척은 물론 아는 이 하나도 없는 텅 빈 낯선 고장 같은 쓸쓸하고 서먹하기 그지없는 고향을 보면 억장이 무너진다. 황량한 고향보다는 태어남과 소멸을 떠나 영혼이 갈구하는 마음의 고향이 그리울 때가 있다. 봄날의 끝자락에 청승맞게 하염없이 내리는 비를 맞으며 마음의 고향을 향하여 길을 떠난다.
첫째 날(5월 20일), 오전 7시 30분 동갑내기 친구 4명이 창동에 모여서 출발한다. 아침 출근길과 맞물린 도로가 상당히 복잡하다. 불암산터널을 거쳐 남양주 톨게이트를 빠져나올 때까지 길이 꽉 막힌다. 동서울 톨게이트를 지나니 자동차가 제법 달리기 시작한다. 마장휴게소에 들러서 유부우동으로 늦은 아침을 먹는다. 행선지는 경상남도 산청 허준 선생을 기리는 동의보감촌이다. 비가 내리는 탓에 친구가 조심스럽게 자동차를 운전한다.
12시 조금 지나 산청 동의보감촌에 도착하여 점심을 먹는다. ‘약초와 버섯골’이라는 음식점에서 버섯 샤부샤부를 주문한다. 처음 보는 노루궁뎅이버섯을 참기름 소금장에 찍어서 먹으며 식감을 음미한다. 버섯의 식감이 ‘보드라운 아기 볼기 같기도 하고 중년 여인의 엉덩이 감촉’ 같다고 한마디하니 주위에 웃음꽃이 핀다. 글쟁이라서 재미있게 표현한다고 친구들이 말한다. 산청 막걸리 한잔 걸치며 기분 좋게 식사를 마치고 동의보감촌을 둘러본다. 빗속에 우산을 쓰고 박물관을 비롯하여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구경하고, 쌍화차를 마시며 수다를 떤다.
산청을 떠나 통영에 도착할 때까지 하염없이 비가 내린다. 간간이 빗줄기가 작아졌다가 세차게 퍼붓기도 한다. 자동차 앞유리창에 빗물이 부딪치면서 산산이 부서진다. 통영 이마트에 들려서 찬거리와 음료수, 맥주와 소주 그리고 수육용 고기를 사서 금호 마리나리조트 숙소에 들어서니 오후 6시가 넘는다. 방 안에서 요트정박장을 비롯하여 바다가 잘 보인다. 요리사처럼 음식을 다루는 솜씨 좋은 친구가 저녁 만찬을 준비하느라고 여념이 없다. 푹 삶은 두툼한 돼지고기에 소금, 강된장, 새우젓 등 입맛대로 찍고 깻잎이나 상추를 곁들여 제각기 한 입씩 싸 먹는다. 소주를 마시며 고기를 씹으니까 세상 모두를 가진 듯한 기분이다. 여우 같은 아내의 감시와 통제를 벗어난 늙은이의 이야기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늦은 밤, TV 뉴스에서 삼성전자 노사 잠정 합의라는 보도에 정도를 한참 넘은 노조의 욕망에 대하여 성토가 이어진다. 술기운이 오르고 스르르 눈이 감기어 샤워하고 잠자리에 든다.
둘째 날(5월 21일), 배꼽시계 알람 소리에 눈이 떠져 창밖을 내다보니 비가 그친 모양이다. 잔잔한 물결이 일렁거리는 바다 모습이 평화로워 보인다. 욕지도행 11시 여객선이 출항하는지 터미널에 확인하니, 탑승객이 적으면 배편이 취소될 수 있으며 가는 데 40분 걸리고 돌아오는 배 시간이 오후 1시라서 욕지도 방문은 그만두기로 한다. 꿩 대신 닭이라고 세병관洗兵館으로 향한다. 세병관은 삼도수군통제사의 객사客舍로, 외국 사신이나 다른 곳에서 온 관리를 대접하고 묵게 하는 숙소이다. 은하수를 끌어와 병기를 씻는다는 의미인 만하세병挽河洗兵에서 따온 이름으로 전쟁을 끝내고 평화를 누리길 바라는 뜻이 담겨있다고 한다. 세병관 개장 시간이 오전 9시인데 20분 정도 일찍 도착하여 매표소 담당자를 기다린다. 노인 무료입장권을 받으면서 여직원한테서 일찍 오지 말라고 주의를 듣는다. 세병관을 둘러보고 서피랑으로 가서 산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바다와 통영 시내 경치를 바라본다. 서피랑을 떠나 이순신공원으로 간다. 탁 트인 시야에 다도해를 바라보면서 이순신이라는 우리나라 역사상 최고의 영웅을 기리며 생각하는 시간을 잠시 갖는다.
통영을 떠나서 거제도로 향한다. 바람의 언덕, 신선대, 몽돌해변을 둘러본다. 평일이라서 그런지 사람이 별로 없다. 우연히 수학여행 온 서울 양정중학교 학생들의 발랄한 모습을 본다. 오전에는 흐린 날씨였는데 오후 들어서 햇볕이 반짝반짝 빛나서 구경하기에는 그만이다. 욕지도에 가지 못하여 서운했지만, 그 대신 다른 곳을 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통영 중앙시장에서 광어, 돌멍게, 해삼, 갑오징어 등 횟감을 떠서 멋진 저녁을 즐긴다.
마지막 날(5월 22일), 아침에 숙소를 출발하여 진주로 향한다. 진주 촉석루矗石樓를 둘러본다. 느긋한 발걸음으로 돌아다니다가 시원한 강바람을 쐬며 야외에서 커피 한잔한다. 촉석루에 올라서 현판을 바라보니 재미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남강에서 누각을 올려다볼 때는 촉석루라는 현판이, 누각에서 남강을 내려다볼 때는 남장대南將臺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동일한 건물 앞뒤 현판 명칭이 다르다. 일반적으로 건물 밑에서 위를 쳐다볼 때는 루樓, 위에서 밑을 내려다볼 때는 대臺라고 부른다고 한다.
촉석루를 벗어나며 주차장 관리인에게 진주 냉면집을 소개해달라고 하자, 맛집으로 알려진 곳 대신에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다는 음식점을 알려준다. 육전과 물냉면과 비빔냉면을 주문하여 맛을 보니 친구들이 이구동성으로 맛있다고 한다. 커다란 놋그릇에 냉면이 가득하여 혼자서 먹기에 벅찰 정도다. 게다가 가격도 저렴하여 물냉면 만원, 비빔냉면 만 천 원이다. 매년 봄이나 가을에 친구들과 여행할 수 있어서 정말 감사하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앞으로도 여행을 함께하기로 약속하며 웃음을 짓는다. (2026년 6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