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문화사적인 이슈이므로 더 깊은 연구가 필요 합니다만 문화인류학적으로 세계최초를 찾아서 글을 쓰면 중국 혹은 지나족이 최초라는 이름이 아니 나오면 어거지를 쓰는 중화쇼비니즘을 생각해 봅니다 운영자는 몇년전 기록에 의한 종이의 발명이 지나인들이 아닌 고조선영역(상건하 지역)에서 시작되었을것 이라는 글을 썼다가 무지한 내국인 중국인들로 부터 13만건이라는 클릭과 수백건에 이르는 악플도 받아 보았습니다.(운영자) .
백제의 수저 유물이 나왔다면 고구려,신라유물이 존재 할 것임은 당연하고 백제의 무령왕릉에서 발굴된 수저는 그 문화적 근간인 부여의 수저유물이 출토되어야 마땅하고 부여의 문화적 근간인 선대 고조선까지 수저문화가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이라는 운영자의 생각입니다. 문화라는것은 돌연변이가 없으니까요.
인디언의 동물 뿔로 만든 뼈숟갈
이누이트가 만든 맘모스 상아로 만든 숟갈
한국에서는 한양대 고고인류학자 김병모 교수의 글중에 " 바이칼로 돌아가자. 레나 강변 일가(ilga) 지방의 청동기 시대 유물 중에 청동제 낚시바늘과 함께 사슴 이빨로 만든 목걸이 장식이 있어서 어로와 사냥이 당시 그곳 주민의 생활수단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와 함께 동물 뼈로 만든 숟가락이 나의 눈길을 끌었다.
시베리아 주민들은 先史時代부터 숟가락을 사용하였다. 돌로 만든 숟가락은 「西 시베리아 先史文化」라는 책에 소개된 적이 있어서 놀라운 일은 전혀 아니지만, 그런데 이번에는 뼈로 만든 숟가락이었다. 정교하게 갈아 만들어 예술적 가치가 있는 작품이었다. 일상 생활용의 수준을 넘는 儀禮用品(의례용품) 같아 보였다. "라는 고고학 탐사자료 내용이 있고
외국의 문서를 보면 첫번째로 젓가락이 발굴된 곳은 중국으로 고대 商王朝시대에 청동으로 만들어진 한쌍의 젓가락 유물이 하남성 은허유적에서 발굴 되었는데 기원전 약1200년전 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Evidence of the use of chopsticks is found as far back as the ancient Shang Dynasty (1766-1122 BC). A pair of bronze chopsticks were excavated from Tin Ruin's Tomb 1005, at Houjiazhuang, dating back to approximately 1200 BC. )
따라서 문화사적으로 보았을때 아시아 최고의 문명인 홍산문화의 직접적 계승자인 고조선보다 앞선 왕국이 없었고 고조선의 영지는 동아시아에서 가장 기름진 땅과 곡창지대인 동북평원과 화북평원을 경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문화에 영향을 받은 동이족국가 상나라가 젓가락의 유물이 최초로 발굴되었다면 당연히 古朝鮮도 상나라보다 이전에 젓가락 문화를 향유하고 있었으리라 보는것이다.
그 증거로, 기본적으로 수저는 숟가락과 젓가락으로 한 벌을 이루며.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된 숟가락은 청동기시대(서기전 1000년경)의 유적인 함경북도 羅津 초도패총에서 출토된 骨製品이므로 시베리아와 그 맥을 같이하고 시기적으로도 최소 고조선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보아야할것이다. 젓가락은 한반도에서는 공주 무령왕릉(500년대)에서 출토되었고, 중국에서도 춘추전국시대(서기전 403년~서기전 221년)에 비로소 기록이 나오므로 숟가락에 비하여 늦게 발달한 것으로 추측된다.
6세기 무령왕릉 출토유물
고려시대 수저 (이상 coo2.net사진)
좌측부터 고려시대,가운데 조선시대,우측 현대의 숟갈.
1.동양의 여러 나라 중에서 오직 우리 한국만이 수저를 모두 이용하고 있다. 중국이나 일본은 숟가락은 거의 사용하지 않고 주로 젓가락만 쓴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독보적인 한국의 수저문화에 대해서만 다루도록 하겠다.
우리나라에서 수저를 병용한 것은 삼국시대였으며 중국, 일본에서도 시기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수저를 병용하였다. 그러다가 중국, 일본,베트남에서는 점차 숟가락의 이용이 줄어들고 젓가락이 주를 이루게 되었으며, 숟가락과 젓가락을 병용하는 관습은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관습으로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이와 같이 숟가락과 젓가락을 함께 쓰면서 식사하는 관습이 전통을 이루게 된 것은 우리 일상식의 내용이 국물 음식과 국물이 없는 음식이 항상 같이 나오게끔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2.수저는 동양에서만 사용하는 것으로 중국에서는 밥을 주식으로 하는 지방과, 한국에서는 전국 각지에서 밥을 떠 먹기 위한 도구로 숟가락을 사용하고, 젓가락은 반찬을 집어먹기 위하여 사용한다. 상차림에서는 반드시 이 2가지를 함께 상에 놓도록 되어 있다.
일본에서는 헤이안[平安]시대까지는 숟가락이 젓가락과 함께 사용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그 후부터는 용도가 달라져 숟가락은 밥을 뜨는 용기라기보다 차를 끓일 때 엽차를 뜨는 목적으로 사용되어 현재는 식사시에 젓가락만 사용하고 숟가락은 사용하지 않는다.
초기에는 조개껍데기나 나무를 깎아서 사용했다. 주철물의 생산이 가능하게 된 후부터는 백통 ·놋쇠 ·금 ·은 ·스테인리스강 등이 수저의 재료로 많이 사용되었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숟가락을 사기로 만들기도 하고 일본에서는 젓가락을 대를 깎아서 만들기도 한다.
중국 숟가락은 끝이 더 넓고 둥글고 우묵하며, 음식을 뜨는 부분과 자루의 구분이 잘 되어 있지 않다. 한국 숟가락의 모양은 타원형이며 약간 우묵하게 들어간 것에 자루가 달려 있다. 나뭇잎같이 생겼다 하여 잎사시라고도 하며, 식혜나 수정과를 떠먹는 것에 사기로 만든 사시라는 숟가락이 있다. 젓가락은 한국의 것이 가장 가늘고 짧으며 일본 것이 약간 더 크고, 중국 것이 가장 굵고 길다 ( 네이버에서)
동월의 조선부(1490)
다섯 가지 금(金)에 있어서는 그 캐는 곳을 자세히는 모르나 가장 많은 것은 구리이다. 땅에서 캐는 구리가 가장 단단하고 또 빛이 붉다. 밥그릇과 수저는 다 이것으로 만드니, 즉 중국에서 이르는 고려동(高麗銅)이 그것이다. 다섯 가지 빛깔에 있어서는 각각 그 쓰이는 바를 따르는데, 금하는 것은 붉은 빛이다. 왕이 입는 옷이 모두 붉기 때문에 그것을 금하는 것이다.
위의 수저론에서 국물이 많은 음식문화이기에 숟갈이 발달했다는 일반적 통론은 문제가 있다고 보여집니다.삼국시대나 고려시대에 국물이 많은 음식에 대한 문헌적 증거나 유물로 증명되어야 함에도 조선의 유교식 상차림새를 미루어 추정하는것은 모순이 있습니다.왜냐하면 어이없게도 1500년동안 사라졌던 공자의 유교가 주자학이라는 미명하에 극성이었던 나라가 바로 宋이고 송의 유교를 받아들였던 옆나라 고려,려말과 선초의 사대부에 의해 전파된 주자학은 이성계의 조선에서 국시로 굳어지고 ...그렇다면 중국음식도 국물이 많을것이라는 논지가 성립되어야 합니다.
운영자 심제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