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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朝鮮

고조선 건국 紀年과 최초 국명

작성자心濟|작성시간14.07.26|조회수1,461 목록 댓글 8

 

고조선관련 국내및 중국기록을 총정리하여 그 개국 기원과 멸망년도 그리고 위치등을 정리합니다. (고조선이 중동에 있었다는 허언은 그만!)


1.고조선은 기원전 2546년경 개국.

 

三國遺事 卷第一 紀異第一 (고려)

魏書 云乃徃二千載有壇君 王倹 立都 阿斯逹 経云 無葉山 亦云 白岳 在 白州 地或云在 開城 東今 白岳 宮是 開國號 朝鮮 與髙同時.

 

위서(魏書)에 이르기를,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에 단군 왕검이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고 새로 나라를 세워 조선이라 불렀는데 중국의 요() 임금과 같은 시기였다.

> 與高同時가 아니라 원래는 與堯同時가 맞다. 고려의 정종(王堯)을 피휘(避諱)하기 위해 고친 것이다.

 

古記云昔有 桓國謂 帝釋 也. 庻子桓雄數意天下貪求人世父知子意下視三危太伯可以弘益人間乃授天符印三箇遣徃理之雄.率徒三千降於 太伯 山頂 即 太伯 今 妙香山 神壇樹下謂之神市 是謂桓雄天王也. 將風伯雨師雲師而主糓主命主病主刑主善惡凡主人間三百六十餘事在世理化.

 

고기(古記)에 이르기를, 옛날에 환인(桓因)-제석을 말한다.-의 서자 환웅이 있었는데 [환웅은] 항상 천하에 뜻을 두고, 인간 세상을 탐내어 [다스리기를 원했다]. 아버지는 아들의 뜻을 알고, 삼위산()과 태백산()을 내려다보니, 인간 세계를 널리 이롭게 할 만한 곳이었다. 이에 천부인 세 개를 주어, 내려가서 세상 사람을 다스리게 했다. 환웅은 무리 3천명을 거느리고 태백산 꼭대기-태백은 곧 묘향산이다-의 신단수 아래에 내려와서 이 곳을 신시라 불렀다. 이분을 환웅천왕이라 한다. 그는 풍백 · 우사 · 운사를 거느리고 곡식 · 생명 · 질병 · 형벌 · 선악을 주관하고 무릇 인간의 360여 가지의 일을 주관하여 인간 세계를 다스려 교화시켰다.

 

雄乃假化而㛰之孕生子號曰壇君 王倹以唐髙即位五十年庚寅唐堯即位元年戊辰則五十年丁巳非庚寅也疑其未實都平壤城今西亰始稱朝鮮又移都於白岳山阿斯逹又名弓一作方忽山又今旀逹御國一千五百年.周虎王即位己卯封箕子於朝鮮壇君乃移於藏唐亰後還隠於阿斯逹爲山神壽一千九百八歳.

 

웅녀는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다. 이가 곧 단군 왕검이다.그는 당고(唐高)가 왕위에 오른 지 50년이 되는 경인(庚寅)- 당의 요()임금 즉위 원년은 무진(戊辰)인즉 50년은 정사(丁巳)요 경인이 아니다. 사실이 아닐까 의심스럽다.-에 평양성(平壤城),지금의 서경이다.에 도읍을 정하고 비로소 국호를 조선이라 불렀다. 다시 도읍을 백악산 아사달로 옮겼다. 그 곳을 궁홀산(弓忽山), -혹은 방홀산(方忽山)- 또는 금미달(今彌達)이라 불렀다. 그는 여기서 15백 년 동안 나라를 다스렸다. 주나라 무왕(武王)이 왕위에 오른 기묘년에 무왕이 기자(箕子)를 조선에 봉()하니, 단군은 이에 장당경(藏唐京)으로 옮겨갔다가, 후에 돌아와 아사달에 숨어서 산신(山神)이 되었는데, 이때 나이가 1908세였다.

 

唐裵矩傳云-高麗本孤竹國今海州周以封箕子爲朝鮮漢分置三郡謂玄莬樂浪帶方北帶方通典亦同此說漢書則真臨樂玄四郡今云三郡名又不同何耶.

 

당나라배구전(裵矩傳)에 이런 말이 있다. 고구려는 본디 고죽국(孤竹國)이었는데 주()나라에서 기자(箕子)에게 봉함으로써 조선이라 부르게 되었다. ()나라가 이를 삼군(三郡)으로 나누어 다스렸는데, 이 삼군이 현도(玄菟낙랑(樂浪대방(帶方) 이다. 통전(通典)에는 또 이런 말이 있다. 한서(漢書)에는 진번(眞番임둔(臨屯낙랑(樂浪현도(玄菟)의 사군(四郡)으로 되어 있는데, 여기에서는 삼군으로 되어 있다고 하고 이름도 같지 않으니 무슨 까닭인가?

 

【 고조선 개국년도】

 

고조선이 개국한지 1500년후인 주무왕 원년에 기자를 조선에 봉했다는 기록을 근거로 역년을 산출하면 ;

 

1) 주무왕 원년은 BC 1046년경이 된다.

2) 고조선이 개국한지 1500년 되었을 때가 BC1046년경이 된다. 

3) 따라서, 역산하면 고조선 개국은 적어도 BC 2546년이 되므로 우리가 알고 있는 BC 2333년과는 무려 213 차이가 난다.

 

4) 적어도 고조선의 개국 년도가  은나라의 개국 년도 보다 오래 되었기 때문에 삼국유사에는

 

  庚寅唐堯即位元年戊辰則五十年丁巳非庚寅也疑其未實  (당의 요()임금 즉위 원년은 무진(戊辰)인즉 50년은 정사(丁巳)요 경인이 아니다. 사실이 아닐까 의심스럽다.) 라는 코멘트를 적어 놓았다. 

 

기존의 개국년도 기원전 2333년을 기준으로 계산한다면, 고조선이 개국한지 1500년이 되어서 기자를 조선에 봉했다면 

 

1) BC 2333-1500 즉,BC 833년에 기자를 조선에 보낸것이 되는데 

2) 이는 주무왕이 은을 멸망시킨 1046년보다 213년후에 즉 죽은 무왕이 기자를 조선에 보낸것이된다. 

3) 따라서 조선의 개국은 기원전 2333년 보다 더 오랜시기에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고조선의 개국은 은(당요) 보다 50년 이후에 이루어진 것이 아닌 163년 먼저 건국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고조선 멸망년도】 

 

위에서 계산한 바와 같이 고조선의 개국 기년을 BC 2546년이라고 정의한바 있다.

고조선의 단군이 1908세에 신선이 되었다 하므로 이내용을 고조선 왕조의 멸망으로 볼수있고 개국년도에서 멸망년도를 빼면 BC 638년에 멸망한것이 되고 실제 부여의 전신인 프리기아의 동방탈출이 BC 12-6C사이에 이루어졌다고 서방학자들이 추정하므로 위만조선과 부여의 연대적 연속성이 합리적으로 들어맞는다. 

 

왜냐하면 고구려의 개국년대가 구당서에 언급된 AD668년 근간에 900년이 되었다 한다면 고구려는 부여에 이어 기원전3세기에 개국한것이 합리적으로 설명되어진다.

 

또한 삼국유사 작성당시에 피휘를 위해 당요(唐堯)대신에 당고(唐高)로 대체하게된 이유로는 고려 정종(923-949)의 이름이 요(堯)로서 왕의 성명을 피하기위한 전통으로서 삼국유사는 적어도 이른시기인 정종이후인 10세기 초에 쓰여진것으로 추정이 가능하다. 

 

삼국유사는 16세기에 다시 중간되었는데 이때 고조선의 건국과 관련된 내용이 개작되었을수도 있다고 조심스럽게 추정한다.왜냐하면 고려시기에 조선이라는 민족의 시원국가를 고조선이라고 별칭할 이유가 없고 고려이후 조선조에서 조선과 고대국가 조선을 구분하기 위해 고(古)를 첨가하였을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2. 숙신(肅愼)=산융(山戎)⇒조선(朝鮮)=동호(東胡)다. 

청나라 <만주원류고>기록에도 주대 이전에 만주지역에 숙신이라하였다는 기록을 근거로 보면 주나라 무왕시대인 bc1046년경에 이미 숙신국이 은(상)과 같이 존재했다는 결론에 이르고 전국책이나 춘추좌전 등에도 노나라 북쪽에 연과 숙신이 연나라의 동쪽에 동호가 존재한다는 기록으로 춘추전국시기에 숙신과 동호는 이미 그들나라의 동북에 위치하였음을 이해 할 수 있다.   

 

숙신은 현 중국음으로 수션으로 고대음가가 바뀌어 현재의 중국음 챠오셴(조선)에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본다. 

숙신은 기원전 24세기(실제 3세기 발굴 죽편), 조선에 대한 기록은 기원전 6세기에 처음으로 나타난다.

 

竹書紀年

帝舜有虞氏

十五年息慎氏來朝貢弓矢.

25년 식신씨가 내조하여 활과 화살을 올렸다

 

武王

十五年肅慎氏來

15년 숙신씨가 손님으로 왔다.

 

周 成王

九年春正月 肅慎氏來朝王使榮伯錫肅慎氏命.

9년 정월 숙신씨가 래조했다.왕이 영백을 시켜 숙신씨에게 명을 주다.

 

尙書

成王旣伐東夷,肅愼來賀.

성왕이 이미 동이를 정벌했으므로 숙신이 와서 축하했다.

 

조선에 대한 기록은 기원전 6세기에 처음으로 나타난다. 

 

管子-管仲(BC6c)

揆度 78 (환공과의 문답)

管子對曰: 發朝鮮不朝請文皮毤服而以為幣乎.

조선이 조공을 하지 않으므로 청하건데 표범가죽을 화폐로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輕重甲 80

一豹之皮容金而金也然後八千里之發朝鮮可得而朝也.

한 마리의 표범가죽은 금보다 귀하므로 이것을 돈으로 하면 8천리 밖의 조선이 조공을 올 것입니다.

 

史記 卷6

秦始皇本紀

地東至暨朝鮮,西至臨洮羌中,南至北向戶,北據河為塞,並陰山至遼.

땅은 동쪽으로 바다와 조선에 이르며, 서로는 임조와 강의 중간,남으로는 북으로 호에, 북에는 황하에 걸쳐진 요새,음산과 요동에 이른다. 

 

이 기록에 대한 신동준의 설명을 본다. 

춘추전국시대에 나온 經史書 에는 숙신조선이 함께 나오지 않고 반드시 發과 함께 등장한다. BC 6세기 관중의 저서 <관자>처음 조선이 등장한다.<관자><춘추좌전>보다 먼저 나왔을 경우 조선이 숙신 보다 먼저 등장한 셈이 된다. 그러나 전한 말까지 수정과 보완이 이루어진 관자가 반드시 춘추좌전보다 먼저 나왔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따라서 숙신조선보다 먼저 나왔다고 볼 수 있다.   신동준 ,발과 조선 및 숙신의 선후관계, 동북아역사재단 ,2014.5.13

 

▶춘추좌전 노소공

 

昭公九年(기원전 533, 2)

王使詹桓伯辭於晉曰:「我自夏以後稷吾西土也.及武王克商蒲姑商奄吾東土也吾南土也肅慎吾北土也.

숙신과 연,호는 우리의 북쪽 땅이다.

 

 

사기 오제본기 舜  

 

五千里至于荒服.南撫交阯,北發西戎,析枝,渠廋,,北山戎,,息愼東長,鳥夷四海之內咸戴帝舜之功.於是禹乃興九招之樂致異物鳳皇來翔.天下明德皆自虞帝始.

황복에 이르고 남으로 교지를 위무하고 사방 오천리 영토를 얻었다. ,서융,근지,거유,,. 북으로 산융,,식신,동장,조이 등을 포함하였으니 순 임금의 공이었다

 

.1> ()은 파,프 등으로 발음되어 <프리기아>로 추정한다.

 

프리기아는 기원전 12-6c 스키타이의 공격으로 동방으로 망명한 킴메르와 그 영토를 같이하며 이란계 선주민이다. -정형진,고깔모자를 쓴 단군,2003.

 

,2> 식신은 숙신의 다른 표현이다. 배구,사기집해, 정현의 . 

 

山海經 18

 

君子國在其北 衣冠帶劍 食獸 使二大虎在旁 其人好讓不爭 有薰華草 朝生夕死 一曰在肝楡之尸北. [山海經,海外東經]

군자국이 그 북쪽에 있는데,의관을 하고 칼을 찬다. 짐승을 잡아 먹고 두 마리 큰 호랑이를 부려 옆에둔다. 그 사람들은 양보하기를 좋아하고 다투지 않는다. 훈화초가 있는데 아침에 생겼다가 저녁에 죽는다.

 

朝鮮在列陽東 海北山南 列陽屬燕. [海內北經]

조선이 열양의 동쪽에, 바다의 북쪽, 산의 남쪽에 있다. 열양은 연나라에 속한다.

 

東海之內 北海之隅 有國名曰朝鮮 天毒 其人水居 畏人愛之 [海內經]

동해의 안쪽, 북해의 모퉁이에 나라가 있어 이르기를 조선 천독이라 한다. 그 사람들은 물가에 살고 사람을 공경하며 사랑한다.

 

 

3.상서대전의 천자(天子)변조.

 

 

歲二月東巡守至于垈宗柴望秩于山川 肆覲東后 協時月正日 同律度量衡.

세이월동순수지우대종시망질우산천사근동후협시월정일 동률도량형.

 

순임금이 이해 이월에 동쪽을 순행하여 태산에 이르러 제사를 지내고 동쪽의 제후를 알현하고,철과 달을 맞추고 날짜를 바로 잡았으며 악률과 도량형을 일치시키고..

 

脩五禮五玉三帛二生一死贄 如五器卒乃復.

소오례오옥삼백이생일사지 여오기졸내복.

오례와 오옥 (,,종 등...) 세가지 비단, 두가지 산 짐승, 한가지 죽은 짐승 및 예물을 정리하였다. 다섯가지 옥기는 예가 끝난 후 돌려 드렸다.

 

肆覲東后(사근동후).

귀절을 변조한 것으로 보이는데 天子로 해야 맞는 것이다. 글 그대로라면 순임금이 동쪽을 순행하여 보다 낮은 에게 했다(뵈었다)라는 말은 성립될 수 없다.

 

 

4. 고조선, 위만조선의 위치

 

 

 

戰國策 권 제29 1 (고조선)

蘇秦將爲從 北說燕文候曰 燕東有朝鮮遼東 北有林胡樓煩 西有雲中九原 南有呼易水 地方二千餘里. 帶甲數十萬 車七百乘 騎六千疋 粟支十年 南有碣石雁門之饒 北有棗栗之利 民雖不由田作 棗栗之實 足食於民矣 此所謂天府也.

소진이 장래 합종을 하기 위해 북쪽으로 가서 연나라 문후에게 말하기를, 연나라는 동쪽으로 조선요동이 있고, 북쪽으로는 임호 누번이 있으며, 서쪽으로는 운중 구원이 있고, 남쪽으로는 호타 역수가 있어 땅이 사방 2천리입니다.

 

史記 110 匈奴列傳 50

其後燕有賢將秦開 爲質於胡 胡甚信之 歸而襲破走東胡 東胡千餘里 與荊軻刺秦王秦舞陽者 開之孫也 燕亦築長城 自 造陽之襄平 置上谷·漁陽·右北平·遼西·遼東郡以拒胡.

연나라는 또 조양으로부터 양평까지 장성을 쌓고, 상곡, 어양, 우북평, 요서, 요동을 설치하여...

 

 

史記集解 (고조선)

晏曰:「朝鮮有濕水,洌水,汕水,三水合爲洌水疑樂浪,朝鮮取名於此也.索隱案朝音潮直驕反.鮮音仙.以有汕水故名也.汕一音訕.

장안 왈 조선에는 습수,열수,산수가 있는데 세 물이 합쳐져 낙랑에서 열수가 된다. 조선이란 이름은 여기에서 취한 것이다.

 

漢書 (위만조선)

一下 高帝紀第一下

11, 陳豨降將言豨反時燕王盧綰使人之豨所陰謀.上使辟陽侯審食其迎綰綰稱疾食其言綰反有端.春二月使樊噲周勃將兵擊綰.詔曰:「燕王綰與吾有故愛之如子聞與陳豨有謀,吾以為亡有故使人迎綰綰稱疾不來謀反明矣.燕吏民非有罪也賜其吏六百石以上爵各一級.與綰居去來歸者赦之加爵亦一級.

12,盧綰與數千人居塞下候伺幸上疾愈自入謝.夏四月甲辰帝崩於長樂宮.盧綰聞之遂亡入匈奴.

 

 

4.1.험독과 패수

 

三國志 115

朝鮮列傳 第五十五集解徐廣曰:「昌黎有險瀆縣.索隱韋昭云古邑名.徐廣曰昌黎有險瀆縣.應劭注地理志遼東險瀆縣朝鮮王舊都.臣瓚云王險城在樂浪郡浿水之東.

서광 왈 창려에는 험독이 있다. 위소 왈 옛 읍 이름 이다.

응소 주 요동에 험독현이 있고 조선 왕의 옛 도읍이다. 신찬 왈 왕검성은 낙랑군 패수의 동쪽에 있다.

 

書 卷二十八

地理志 第八下險瀆

應劭曰 朝鮮王滿都也. 依水險 故曰 險瀆 .

臣瓚曰 王險城在樂浪郡浿水之東 此自是險瀆也.

師古曰 瓚說是也. 浿音普大反.

응소 왈 조선왕 위만 도읍이다. 험수에 의지해서 험독이라 한다신찬 왈 왕검성은 낙량군 패수의 동쪽에 있다 이로서 험독이라 한다신찬의 말이 맞다.

 

 

4-2.위만이 넘어온 추수

 

三國志 魏志

魏略

漢以盧燕王 朝鮮與燕界於溴水及反入匈奴 燕人衛滿亡命胡服東渡水.

한이로연왕 조선여연계어추수 급반입흉노 연인위만망명호복동도수

 

()에서 노관을 연왕으로 삼았다. 조선과 연()은 추수(溴水)를 경계로 삼았다. 노관이 배반하고 흉노로 갔다. 연나라 사람 위만이 호복(胡服)을 입고 동쪽으로 추수(溴水)를 건너 망명하였다.

 

明一統志

溴水濟源縣 其源有三 一出琮山俗呼白澗水春秋公諸侯于梁此 一出縣西二十里曲陽城西南山一出陽城南溪俱東南流與瀧水合又東南至溫縣入于黃河.

추수재제원현 기원유삼 일출종산속호백간수춘추공제후우량차 일출현서이십리곡양성서남산 일출양성남계구동남류여롱수합우동남지온현입우황하.

 

추수는 제원현에 있다.그곳에는 3가지의 시작점이 있는데 그 하나는 종산 일명 백간수이며, 하나는 현의 서쪽이십리 곡양성 서남산에서 이고 마지막 하나는 양성 남계 동남류가 롱수와 합해져 온현에 다다라 황하로 들어가는 곳이다.

 

 

4-3.추수(조선패수)의 위치

 

사기 권115 조선열전 55 ,한서28 지리지 8

臣瓚曰 王險城在樂浪郡浿水之東 此自是險瀆也

신찬 왈 왕검성은 낙량군 패수의 동쪽에 있다 이로서 험독이라 한다.

 

삼국지 위지(魏志) - 위략

漢以盧燕王 朝鮮與燕界於溴水 及反入匈奴 燕人衛滿亡命胡服東渡水.

조선과 연()은 추수(溴水)를 경계로 삼았다.

 

명일통지(明一統志)-추수(溴水)

溴水在濟源縣 其源有三 一出琮山俗呼白澗水春秋公諸侯于梁此 一出縣西二十里曲陽城西南山

一出陽城南溪俱東南流與瀧水合又東南至溫縣入于黃河

추수는 제원현에 있고 그 근원이 세 곳이다. (중략) 마지막 하나는 양성 남쪽 계곡에서 동남으로 흘러 롱수와 합쳐져 온현에 이르러 황하로 들어간다. \

 

심제 글.

 

주)1. 고조선은 실제 bc6-4c경에 멸망한것으로 추정된다.

     2. 부여는 bc 4c경  고조선 실지를 차지한것으로 추정된다.

     3. 고구려는 bc 3c경 부여의 뒤를 이어 고조선지에서 개국한것으로 추정된다.

     4. 중국사학계에서는 고조선의 도읍지 창려(昌黎)를 <요사> 근거 하북성 한단시으로 추정한다.

 

참고문헌

 

v春秋左傳
v山海經 18.
v尙書 虞書舜典.
v漢書 28地理志 第八上.
v正義括地志.
v管子 揆度78, 輕重甲80.
v史記 卷6 秦始皇本.
v史記 38 宋微子世家.
v史記 卷115 鮮列傳 第55.
v漢書 1高帝紀1.
v漢書 28理志 第八.
v一統志  山西.
v三國志 卷三十 魏書三十烏丸鮮卑東夷傳第三.
v晉書 第四 地理.
v遼史卷49 志第18 禮志1.
v欽定大一統志卷121.
v山海經18.
v山西志輯要 遼州 淸, 雅德.
v단군세기 25대 단군 솔나조.
v水經注23.
v大淸一統志172.
v史記卷 30 平准書 第八.
v우리가 배운 고조선은 가짜다.김운회,역사의 아침,2012.
v고조선도읍지,건국년도,국호등에 관한고찰.김진경,선도문화 제16,2014.
v고깔모자를 쓴 단군,정형진,백산자료원.2003.

v발과 조선 및 숙신의 선후관계,신동준, 동북아역사재단보 ,2014.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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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청송 | 작성시간 14.07.31 심제님...
    사기조선열전의 문장과 사기집해장안왈...이라 하여 쓰여진 문장들은
    본시의 조선에 대한 기록이 아니고 대부분 시절을 지금의 산서성 동남부지역에 국한되었던 위만조선에 대한 얘기일
    것으로 보입니다...
    위의 기록에 나타나는 洌水가 대청광여도에 涅水로 나타나는 그것 아닐른지요?
    해야 浿水로 둔갑된 溴水의 위치와 맞아떨어질 것으로 봅니다만...
    그럼... 위만의 손자 우거의 위치는 대력 지금의 산서성 遼中일원으로, 그곳의 일부가 (최숭)낙랑이었고(일부는 동쪽으로 도주하여 천진지경인 남옥저고지로 피하였고...)
    그곳에 저들의 낙랑군이 있었고...후세에 이 낙랑의 屯留(屯有)以南이 帶方 땅이 되기도 하였
  • 작성자心濟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4.07.31 실제 고조선은 산서 동북부에서 하북북부 요녕 만주 한반도로 정리되어야 할것 같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청송 | 작성시간 14.08.04 심제 선생님,
    東夷國으로 기록되어 남아있는 大漢國 扶桑國 女國 文身國 들도 역시 옛朝鮮의 侯國들로 보시는지요?
  • 답댓글 작성자心濟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4.08.04 청송 제가 직접적으로 거론하는 동이국과 위치는 협의의 동이입니다.
  • 작성자유곡가인 | 작성시간 15.12.07 잘 정리된 글 다시 정독하며 공부하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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