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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朝鮮

기자국의 위치 (路史 근거)

작성자心濟|작성시간17.11.10|조회수1,235 목록 댓글 2





춘추전국시대 기자족의 봉지 및 금나라 아골타가 산서성 유사 동남쪽 30리 기성에 도읍을 하였다.

기자는 이후에 낙랑 즉 노룡현에 도읍을 세웠는데 조선성이라고 하였다. 당나라 고조 무덕8년(625)에 요를 기주라고 하였고 평주 노룡인데 고구려도 이곳에 도읍을 하였다. (해석)  


춘추시대 기록사서를 종합할때 고조선이 산서성 해현에 있었다는 사실을 기초로 한다면 중국사서에 기자가 고조선 동북쪽인 遼山 근처에 있었다는 기록은 역사적으로 신빙성이 있다. 우리는 고고학자 이형구등의 '기후방정 관련 논문'등을 보고 지금의 하북북부와 요서지역에서 기자고조선이 있었는줄 알고 있다. 그러나 기후방정이 요녕에서만 발굴되었다는 아니라는 증거를 운영자가 저서에서 밝혔다. 


스모킹건은 우리나라에서 이름께나 알린다는 이형구나 기타 고고학자들이 詩經 및 國語 등에 기록된 진솔한 우리역사를 해석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록들을 정확하게 해석하면 한민족이 어떻게 이동했는지 알 수 있고 당시 先人들이 남겨놓은 유물을 해석할 수 있다고 본다.    


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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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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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史穿 | 작성시간 18.02.28 하북성 동단지경의 노룡은 산서성동남부지경에서 옮겨진 것이겠지요?.....
  • 작성자史穿 | 작성시간 18.04.26 楡社 남쪽에 潞城이 있고, 이 潞城(市) 동변에 微子鎭이 있답니다.
    허니, 소위 箕子의 朝鮮은 바로 산서성 동남부이었고, 그 기자의 (기자)朝鮮城은 작금 한반도의 李朝 平壤이 될 수가 없다는 말이 되는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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