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0 -3000년전 : 현재보다 3~5도
높았으며 이 시기에 西遼河 지역은 가장 살기 좋은 환경이 이루어짐. ( 출처-조빈복,중국동북신석기문화,1999,p275)
전지구적 기후변화로 인한 동북지역 홍산문명을 이룬 사람들이 사막건조화를 피하여 남쪽으로 이동했다.
이시기 홍산인들은 고원지대를 지나 산서성 太行 산맥을 따라 汾河 지역으로 내려왔다. ★
이러한 가정의 결과는 태행산택의 골짜기에 따라 이시기에 사람이 정주하다가 이동한 고고학적 유적이 많이 발굴되어 증명되었다.
이집단이 산서성 해현지역에 모여 금속문명을 이루기 시작함. 해(解)는 해, 태양을 뜻하며 한자로 한글을 차용한 것이다. 이집단이 바로 고조선이다. -이돈성, 고조선찾기, 2017 -
《河東鹽法備覽,鹽池門勝跡》
"軒轅氏誅蚩尤于涿鹿之野,血入池化鹵,今池南有蚩尤城,相傳是其喪處"
해주, 안읍 지역에 위치한 염지가 전투지이고 염지의 남쪽에 치우성(蚩尤城)이 있음.
《雲州七簽》軒轅本紀
"黃帝殺蚩尤于"黎山之丘",其實"黎山"正是中條山的別名,距解鎭十五里,其是黃帝殺蚩尤于"解"的又一證據“
황제가
치우를 죽인 곳은 여산의
언덕이고 사실 여산은
중조산(中條山)의
다른 이름으로 해진(解鎭)에서
십 오리에 있어,
치우가
해주에서 죽은 하나의 증거가 된다.
이지역에 먼저 정착해 농경과 어로를 관장하던 공공족(共工)이 있었고 ,이 집단을 배달국으로 부를수 있는데 중국기록에는 공공으로 기록되어 있다.
《管子》規度
齊桓公問於管子曰:「自燧人以來,其大會可得而聞乎?」管子對曰:「燧人以來未有不以輕重為天下也.共工之王,水處什之七,陸處什之三,乘天勢以隘制天下.
관자 답하길, 수인씨 이래 천하를 위해 무겁고 중하지 않은 것은 없습니다. 공공은 왕으로서 물가사람이 7할이요 뭍에 사는 사람이 3할로 하늘의 기세를 타고 천하를 제압했습니다.
《史記》五帝本紀
堯曰:「誰可順此事?」放齊曰:「嗣子丹朱開明.」堯曰:「吁!頑凶,不用.」堯又曰:「誰可者?」讙兜曰:「共工旁聚布功,可用.」堯曰:「共工善言,其用僻,似恭漫天,不可.」堯又曰:「嗟,四嶽,湯湯洪水滔天,浩浩懷山襄陵,下民其憂,有能使治者?」皆曰鯀可. 堯曰:「鯀負命毀族,不可」嶽曰:「異哉,試不可用而已.」堯於是聽嶽用鯀。九歲,功用不成..
堯가 다음 왕위 적임자에 대해 물어보나 공공이 천하를 통솔할 능력이 있음으로 추천하자 “공공이 말은 잘하나 간교하고 하늘을 공경하지 않으므로 불가하다”라는 말로 공공을 경쟁자로 생각하고 추방하다.
이로서 공공족은 요순이전에 이미 선서성과 하남까지 진출하여 치수와 농업을 담당하던 부족으로 이지역에 들어론 새로운 진입자 堯, 舜 그리고 이들에 이은 禹에 의해서 쫒겨나게 되고 동북쪽으로 밀려나게 된다.
《尙書 》舜典
流共工于幽州,放驩兜于崇山,窜三苗于三危,殛鲧于羽山,四罪而天下咸服.
공공을 유주로 유배하고, 환두를 숭산에 놓아주고, 삼묘를 삼위로 내쫒고, 우의 아비 곤을 우산에서 죽이니 천하가 복속했다.
중국기록에서는 요순과 우를 중국의 시조로 기록하였으나 최근들어서 황제를 중국인의 조상으로 여기는 추세이고 심지어는 有熊씨가 단군의 조상이라고 견강부회하고 있으나 실제는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括地志》
”故龚城在檀州燕乐县界,故老传云舜流共工幽州,居此城.”
옛 기성에 단주가 있는데 연락현 경계에 있다. 옛날부터 전하길 순이 공공을 유주에 유배시켰는데 그 성에서 살았다.(唐 檀州 = 북경)
《삼국유사》
왕검이 唐高(요)가 즉위한지 50년에 평양에 도읍을 하였다.
여기서 잘 보아야 할 것은 요가 즉위한지 50년후이란 점과 평양이 도읍이라는 점이다.요가 즉위한지 50년후일경우 禹시대에 해당하고 그가 황하치수에 성공한 사람이면서 그의 아버지 곤을 요순이 죽여서 쫒아냈다는것은 우가 요순과 적대 관계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두번째로 왕검이 도읍한 평양은 어디쯤일까 하는것이다.
평양은 '피양'으로도 발음되고 동일한 글자를 바꾸었기때문에 우리가 알고 있는 平壤이 아사달로 해가 뜨는 벌판의 의미인 平陽으로도 해석이 된다. 동일한 지명 발음을 비슷한 한자로 쓰는 예는 얼마든지 볼 수 있다.
산서통지(1685)에 기록된 평양부. 지금 분양(汾陽)으로 바뀜.
태양을 숭상하는 족속이 남긴 한자로 豕,亥,解,奚,契 로 해,태양이라는 의미로 쓰이며 동이족의 姓氏로 바뀌게 된다.
해족,거란족, 예족인 해씨등을 들 수 있다. 전부 고조선의 일파이다.
평양은 고대의 금으로 치부되는 소금이 나오는 염지 解州와 가까운 곳이며 요와 순이 이 지역에서 자리잡고 통치하다가 이지역에서 죽었다.
《韓詩外傳》卷3 孟子
離婁下: 舜生於諸馮, 遷於負夏.卒於鳴條.東夷之人也.
순은 제풍에서 태어나 부하로 이사했고,명조에서 죽었다. 동이사람이다.
마찬가지로 상나라 걸왕도 같은곳에서 죽었다.
唐京《金婁子》;
帝禹夏后氏,都平陽,惑營安邑.
하후씨가 평양에 도읍을 정했는데 안읍이라고도 한다.(안읍의 북쪽에 唐京이 있다.)
《尚書》-舜典
欽哉,欽哉,惟刑之恤哉!流共工于幽洲,放驩兜于崇山,竄三苗于三危,殛鯀于羽山,四罪而天下咸服.
咨!四岳,有能典朕三禮?」僉曰:「伯夷!」帝曰: 「俞,咨!伯,汝作秩宗.夙夜惟寅,直哉惟清.」伯拜稽首,讓于夔,龍.帝曰:「俞,往,欽哉!」
첨이 말하길 백이 이다.
여기서
첨이 바로 검(儉)으로 왕검을 말한다. – 이돈성,고조선
찾기,p66
-
왕검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왕검은 백이로서 태양을 숭상하는 동이족으로, 후에 고죽국의 왕자로 알려진 伯夷의 조상이 된다.
『삼국유사』 권1 기이1 고조선
周虎王卽位己卯 封箕子於朝鮮 壇君乃移於藏唐京 後還隱於阿斯達 爲山神 壽一千九百八歲.
“주 무왕이 왕위에 오른 기묘년에 기자를 조선에 봉하였다. 단군은 이에 장당경으로 옮겼다가 뒤에 돌아와 아사달에 숨어서 산신이 되었으니 나이가 1908세였다.
단군도 공교롭게 하나라 순과 상나라 걸왕처럼 명조에서 죽었는데 산서성 해현의 북부이며,단군이 돌아가신 장당경 역시 그들이 죽었다는 명조의 북에 있다 한다.– 이돈성,고조선 찾기,p66 -
고고학적으로 요녕성 삼좌점 등 유적을 고조선시대의 유적으로 정하고 있으나 정리할 필요가 있다. 고고인류학으로 볼때 전기고조선(bc2300~bc1300)시대의 인골은 고동북형이며 이후 고화북형으로 바뀌게 되는데 서방,서남방에서 유입된 인골들이 노노아호산에서 그 동쪽으로 확장된다.
춘추시대 기록과 비교할때 전체적인 트렌드가 일치하며 검을 서방계열인 융족(戎族)이나 적족(狄族)이 아닌 夷로 표시한 것은 중요한 의미로 볼 수 있다.
춘추시대기록으로 해석하면,
홍산지역에서 살던 인류가 지구환경변화로 인하여 태행산맥을 따라 서남행을 결심하고 (이 부분은 춘추시대 기록에 나오지 않는다,고고학 결과이다) 황하가 곡류하는 산서성 解지역에 정착하여 금속문명을 이룬다. 요순시대를 거쳐 우의 아버지인 공공을 내쫒아 죽이나 당우(唐虞)가 정권을 잡고(중국기록) 이후 검(儉)이 왕이 되어 고조선의 시조로 삼국유사에 등장한다.
운영자가 고고학 발굴 결과 즉 홍산이 몰락하면서 상족이 중원에 정착했다는 연구결과를 보면서 과연 고조선족은 서남으로 이동하지 않고 동북에 남아있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뇌리를 떠나지 않고 있었는데 춘추전국시대의 기록 즉 唐虞 ,儉, 解 관련 무수한 기록을 보면서 의구심이 풀렸다.
단, 公工의 마지막 기록인 유배지 幽州와 이후 후고조선의 개창지 하북과 어떠한 연관이 있는지 의문이지만 좀더 추적할 가치가 있는 대목이다.
고조선족(濊貊,숙신) 역시 중원으로 내려가 고조선을 일구었다는 기록이 남게되면서 주나라이후 다시 동북행을 택해 남겨진 유물들이 후대에 요녕지역을 고조선지역으로 오인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심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