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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고대 왜가 한반도 남부에도 있었다.

작성자文古里|작성시간19.05.14|조회수481 목록 댓글 0



설왕설래하며 중심을 잡고 있지 못하는 왜의 실체.

진수의 삼국지는 위략을 근거로 만들었다. 한민족의 고대역사를 위략의 기록이 매우 광범위하게 알려주는데 삼한 이전에 한반도가 진국(辰國)이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설마 왜가 한반도에 있었겠어? 그렇다면 한민족이 왜란 말이야? 라고 부정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찝찝해 한다.

본인이 말하려는 왜는 우리가 알고있는 대마도왜, 대화왜(大化倭)즉,3세기 이후의 왜를 말하려는것이 아니라 3세기 이전의 왜의 본류를 말하려고 하는것이다.

3세기 이전의 왜를 보려면 후한서와 진서,삼국지를 참고하여야 하는데 <삼국지>를 지은 진수가 3세기 사람이므로 가장 잘 보았을것이다. 
'
三國志 魏書30 烏丸鮮卑東夷傳第30 왜 
倭人在帶方東南大海之中,依山島爲國邑.舊百餘國,漢時有朝見者,今使譯所通三十國.從郡至倭,循海岸水行,歷韓國,乍南乍東,到其北岸狗邪韓國,七千餘里...(후략) 


왜인이 대방 동남쪽의 큰바다 가운데에 있다.산에 의지하여 국읍이 있는데 옛날에는 백여나라가 있었는데 후한때 조공을 보내 지금은 30여나라와 통하게 되었다. 해안을 따라 지나면 한국을 거치고 동으로 남으로 저어가면 그 북쪽해안에 구야한국이 나오며 7천리이다.(이후는 대마도 -규슈를 거쳐 히미꼬가 살고있는 내륙으로 가는 여정이다.)


발해만 서북쪽에 있던 대방에서 한반도 해안을 따라 운항하면 서해안에 한국이 나타나고 거기서 남쪽으로 동쪽으로 저어가면 구야한국의 북쪽 해안이 나오는데 여기까지 7천리라는 것이다.

구야한국은 음운적으로도 가야를 뜻한다. 가야의 북쪽 해안에 왜가 있었다고 쓰고있다.


後漢書 卷85·東夷列傳 第75 三韓
馬韓在西,有五十四國,其北與樂浪,南與倭接,辰韓在東,十有二國,其北與濊貊接.弁辰在辰韓之南,亦十有二國,其南亦與倭接.凡七十八國,伯济是其一國焉.
마한의 서쪽에 54나라가 있고 그 북쪽에는 낙랑,남으로 왜와 접한다,진한의 동쪽에 12나라가 있는데 그 북쪽에 예맥과 접한다.변진은 진한의 남쪽에 있는데 12개 나라가 있고 그 남쪽이 왜와 접한다. 무릇 78개 나라이다.


한반도의 변진 남쪽에 왜가 있어 서로 닿아 있다고 분명히 적혀있다. 이것은 한서와 삼국지의 같은 표현이다.

시기상으로 삼국지가 먼저이고 한서는 그이후 5세기에 쓰여졌다.


후한서에서는 왜와 왜노국을 정확히 표현했는데

建武中元二年,倭奴國奉貢朝賀,使人自稱大夫,倭國之極南界也.光武賜以印綬.安帝永初元年,倭國王帥升等獻生口百六十人,願請見.
후한 건무 중원2년(56) 왜노국이 조공하며 스스로 대부라는 자를 보내 축하했는데 왜국의 남쪽 끝이었다. 광무제가 인수를 하사하였다. 안제 영초원년(112) 왜국왕 수승이 생구 160명을 보냈다.

왜의 땅 끝에 왜노국이 있었다고 했다.

한반도에 왜국이 있었고 왜노국이 왜국의 끝단에 있었다는것이므로 지금의 한반도 동남단이다. 
광개토대왕비에 나타난 왜가 바로 김해 부산지역으로 남가야(굼관가야)가 있었던 지역이다.


김수로왕과 고대왜가 열도로 가다.

『三國遺事』 가락국기

開闢之後 此地未有邦國之號 亦無君臣之稱 越有我刀干,汝刀干,彼刀干,五刀干,留水干,留天干,神天干,五天干,神鬼干,等九干者 是酋長 領總百姓 凡一百戶 七萬五千人 多以自都山野 鑿井而飮 耕田而食.
개벽후 이 땅에는 나라의 호칭이 없었고 군신(君臣)의 칭호도 역시 없었는데, 이때 아도간(我刀干), 여도간(汝刀干), 피도간(彼刀干), 오도간(五刀干), 유수간(留水干), 유천간(留天干), 신천간(神天干), 오천간(五天干), 신귀간(神鬼干) 등 9간이 있어 추장(酋長)으로서 백성을 총괄해 다스렸으니 모두 100호(戶) 7만 5000명이었다. 스스로 산야에 도읍하고 우물을 파 마시고 농사를 지어 먹었다.


屬後漢世祖光武帝建武十八年壬寅三月 계浴之日 所居北龜旨[是峯巒之稱 若十朋伏之狀 故云也] 有殊常聲氣 呼喚衆庶 二三百人 集會於此 …. 始現故諱首路 或云首陵 [首陵是崩後諡也.] 國稱大駕洛 又稱伽耶國 卽六伽耶之一也 餘五人 各歸爲五伽耶主.
후한세조 광무제 건무(建武) 18년 임인 3월 계욕일에 살고 있는 북쪽 구지봉에서 수상한 소리가 있어 사람들을 부르는 것 같았으므로 2-3백명이 이곳에 모였는데, …휘를 수로라 하였는데, 혹은 수릉(首陵:수릉은 죽은 후의 시호이다)이라고도 하고, 나라를 대가락 또는 가야국이라 하니, 바로 6가야의 하나이다. 나머지 다섯 사람도 각기 돌아가 5가야의 주인이 되었다.

김수로가 구지봉에 내려와 나라를 세웠다고 했다.(지금의 구지봉은 고고학연구 결과 그 장소가 아니라는 팻말이 붙어있다.)-답사결과

가락국기에 의하면 수로왕의 수(壽)는 158세였다. 가락국기에는 수로왕이 가락국을 건국하였을 때 수로왕의 나이가 1살로 적혀 있으므로, 가락국기에 적혀 있는 수로왕의 나이는 실제 나이가 아니고 가야국을 건국한 후부터 계산한 나이이다. 따라서 수로왕의 실제 나이가 158세 였다는 뜻이 아니고 금관가야를 중심으로 한 6가야연맹의 수명이 158세였다는 뜻이다. 남(금관)가야를 중심으로한 6가야국은 3세기 초부터 새로운 왕통으로 변한 것으로 보인다.

이때 포상팔국의 난과 새로이 한반도 남부로 진입한 구수왕은 221년에 한수 남쪽에서 큰 열병식을 한다. 이뜻은 무엇인가? 중국에서는 2세기말부터 조조에 의한 큰 전란이 있었다.이를 피해 많은사람이 동북으로 이동했다. 아마 서해안을 통해서 한반도로 옮겨왔을것이고 백제도 새로운 척경을 했다.

경남 고령지방은 구석기 시대부터 신석기 시대까지 토양이 좋기로 유명해 이곳을 중심으로 가야국이 생겨났다. 이른바 고령가야이자 대가야이다. 이사람들이 일본으로 넘어가 천황가를 이루었다고 일본학계에서는 양국의 고고학발굴 결과를 근거로 믿고있다.

고대왜 지방에 건국한 남가야(금관가야) 물산이 풍부했던 고령지방에 세운 대가야가 백제가 공략하기전인 3세기초 이미 쇠퇴의 길을 걷는다. 왜일까? 그답은 김해김씨 족보에 단서가 있다.

'거등왕 원년 기묘년(199년)에 왕자 仙이 세상이 쇠하는 것을 보고 구름을 타고 떠나 버렸다(乘雲離去)'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답이 <일본서기>에 나온다.

일본 천손강림 설화가 가락국의 수로왕 탄강설화와 놀랍게도 비슷하다. 니니기가 구름을 헤치고 내린 곳은 큐슈 쓰쿠시(築紫)의 쿠지후루(혹은 소호리)인데, 그 자손이 오늘까지 이어지는 일본의 황족이다.『일본서기』에서 풍우가 심해 曾尸茂梨(소시모리=쇠머리山=우두봉)에 가기 어려우니 오늘밤만은 이곳에 머물게 해달라고 한 기록. 즉

「日本書紀」

「須那羅(수나라)」, 「素奈羅(소나라)」문구 
쇠의 나라 라는 의미다.

한반도남부 고대 왜지역에 정착했던 김수로왕계는 대륙의 어지러운 정세에 의해 서쪽과 북쪽에서 내려온 부여계열인에게 199년만에 망하여 새로운 왜나라를 만들기 위해 열도로 진출했다고 보여진다.


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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