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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임성태자가 오우치(大內)가문.

작성자文古里|작성시간20.02.16|조회수496 목록 댓글 0

학계에서 주장하는 660년 백제 한반도 멸망설은 진실인가?.

475년 개로왕이 장수왕에게 참살당한후 남겨진 유물은 일본열도에서 출토되거나 남겨진 유물에 비하면 전무한 수준이다. 당시 백제왕가는 이미 일본열도로 다 넘어가 일본이 백제중심지로 볼 수 밖에 없는 생생한 증거물들이 일본 박물관과 현지에 너무 많이 남아있다. 


1600년전의 한반도는 호랑이가 우글거리고 평지는 거의 늪지였음을 왜승의 임진왜란 종군기에서 추정해본다. 따라서 옹색하고 수량으로도 얼마 안되는 백제유물이라고 내세울게 많이 없는 한반도를 660년까지 버틴 백제국이라고 우기게 만드는 것이 무령왕릉이다.

남아있는 유골이 없는 무령왕과 달랑 어금니 하나 남은 성왕(聖王)의 어머니로 추정되는 무령왕의 계비(繼妃) 유골은 무엇을 뜻하는가?  재궁 즉 빈관을 뜻한다고 본다.

또한 무령왕릉 지석에서 발견되는 매지(買地)라는 의미를 잘 살펴보아야 할것으로 본다.


396년부터 시작된 광개토왕의 한반도 정벌이후 백제는 급히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가고 대신 한반도에 담로를 설치했다는게 기록에서 얻은 추정이다. <일본서기>에 이당시 전후사정이 기록되어 있다.  

당시 공주(고마)담로의 수장은 이때 열도로 넘어가 응신왕(오진천황)이 되는 인물로 개로왕도 일본에 있다가 담로땅에 쳐들어온 고구려와 싸우다 장수왕의 군사에게 살해당했다. 그의 아들 무령왕도 일본에서 20세에 등극하여 송사에 기록된 왜왕무로 활동하다가 한반도로 넘어왔다. (김영덕 설)


거란의 침공으로 분탕질당해 남은것이 없었을 개주 고려황실 서고에 <삼국사기>에 쓸 자료를 참고할게 없었던 김부식이 <일본서기>를 과연 보았을까?  

전공교수들도 한반도 백제설을 주장해야 핑계삼아 발굴사업도 할고 논문도 쓰고 아울러 전문가라는 명예도 유지할것 아닌가?

  

본인의 책에 이 내용을 담았다.  



타타라는 철을 다루는 제철 장인이라는뜻. 야마구치현(山口縣)에 있음.



가문의 족보에는 임성태자가 대만을 거쳐 열도에 도착한것으로 기록됨. 

 


성태자가 1400년전 착용했던 관모.(대단한 유물)

 

임성태자가 왜열도로 넘어올때 가져온 대도.(한반도에는 고을 수장에게 내려준 환두대도 부장품 밖에 없다)  




칼자루는 후대에 제작된것.(손잡이에 마름모 문양 오우치 가문의 문장)




202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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