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남산을 목멱산이라 한다하였으니 이를 근거로 고려의 남경이 지금의 서울이고 사평진이 한강이라는 비정은 맞지 않은것으로 보인다. 그 근거중에 하나로 고려 김부식이 지은 삼국사기에 저술한 그시대의 지명으로 목멱양이 나온다.
목멱양이 서경의 동쪽에 있다고 분명히 기록되어 있으니 운영자가 밝힌 고려의 서경은 지도상에서 진정으로 과거의 石門이며 지금의 石家庄으로 비정된다.
북으로 패주(고려해주) ,동으로 대성(개경)이 위치하는 곳이다.(청시대,50년대지도)
따라서 목멱양은 사평진이 있는 강가에 있는 도시이름이며 서경의 동쪽인 하북을 흐르는 호타하의 어느부분즉 하북성 문안현 북쪽 광릉으로 판단된다.
삼국사기의 신라조기록을 보면:
十三年 春二月
王遣其弟 稱臣入朝於燕 貢珍異以千數 燕王皝乃還其父尸 猶留其母爲質
秋七月 移居平壤東黃城 城在今西京東木覓山中 遣使如晉朝貢
冬十一月 雪五尺.
13년(343) 봄 2월에 왕은 그의 아우를 연(燕)나라에 보내 신하를 칭하며 조회하고,
진기한 물건 천여 점을 바쳤다. 연나라 왕 [모용]황이 이에 따라 그 아버지의 시신을 돌려주었으나,
그 어머니는 여전히 남겨두어 인질로 삼았다.
가을 7월에 [왕은] 평양 동황성(東黃城)으로 옮겨 거처하였다. 성은 지금[고려]의 서경(西京) 동쪽 목멱산(木覓山) 가운데에 있다. 진나라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였다.
겨울 11월에 눈이 다섯 자나 내렸다.
심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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