元의 정치적 간섭을 최소화하고 고려국의 정체성을 유지하려던 충선왕(瀋王)의 정치적 노력이 원나라 내부의 견제세력에 의해 좌초된것.
익제공 이제현은 주군과 의리를 지키기위해 직접 만여리길 티벳 라싸로 가서 충선왕을 뵈었다.
이제현이 출발한곳도 현 河北省 탁현이었으니 고려의 수도 반도개성은 가당치 않다.하북성 豊潤에 고려땅에 설치한 쌍성총관부가 있어 고려,원의 관리들이 公務로 수시로 兩國의 수도를 드나들었다. (혹자는 이제현이 한반도 고려개성에서 원의 북경에 파견 나가 있었다고 억지를 부린다)
사카사원은 라싸에서 서쪽으로 400Km 더 떨어진곳.
지금으로 부터 1300년에 지어져 건물구조가 1000년이상 바뀌지 않았다고한다.
충선왕의 모습을 그린것이 확실해보인다.
쿠빌라이 옹립에 공을 세운 고려 원종의 공을 인정해 고려의 전통이 그대로 유지되었다.
고려 원종의 아들(충렬왕)과 세조 쿠빌라이의 딸이 결혼으로 동맹을 맺었다.
충선왕은 결국 한국인과 몽골인의 혼혈인 셈이다.
충선왕이 아버지 충렬왕을 뛰어넘어 실권을 잡다.
일본정벌전에 려-몽연합군중 고려군이 선봉에 섰다.(그림은 대부분 고려군)
고려 정동행성을 관리하는 원의 다루가치를 폐지하였다.
원의 신뢰를 얻은 충선왕은 원에 4가지 요청을 하다 밉보여 경질된다.
충선왕의 득세를 견제하기위해 임백안고사는 조정에 충선왕을 모함한다.
북경의 석물사에 대기한 원군에 의해 충선왕이 구금되어 귀양길에 오른다.
충선왕의 귀양길에 도망간 신하들과 환관들...말기고려의 폐해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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