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학계는 고려사 기록대로 현 강화도에 고려태조 왕건의 移葬陵이 있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답해보라 !
사학계가 발굴했다고 주장하는 강화중성과 그림...그렇다면 내성은 어디이고 외성은 어디인가? 강화도에 있다는 고려왕릉6기 왕과 왕비의 무덤이 각각 2기씩이란다. 고려 23대 고종의 홍릉, 21대 희종의 석릉, 22대 강종의 비 원덕태후의 곤릉, 24대 원종의 비 순경태후의 가릉이라고 하는데 기록과 달리 고려태조와 세조의 릉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이곳이 고려의 광주도(자연도)이고 희종의 릉과 고려태조의 릉이 있는곳으로 추정된다.
고려왕릉은 한반도에 었었다는것에 대해 운영자는 고려사기록을 근거로 희종의 석릉이 자연도에 있고 이 자연도가 고려 광주이며 경기도 광주가 아니라 하북성 풍윤 남부로 근거를 들어 적시하였다. 풍윤인근에 왕건장이라는 지명이 존재한다 고려사기록에 왕건릉을 이곳으로 이장해서 붙여진 이름일지도모른다.
고려사를 읽다보니 희종은 강화도 외성에 태조와 세조의 능을 강화 개골동으로 이장하였다는 기록을 본다 여기서 강화도에 외곽에는 조선의 성인 덕진진등...이 있으나 외성은 없다.그러나 고려사에는 강화도외성에 왕릉을 쌓았다고 기록되어있는데 기록대로라면 강화도에는 고려왕릉 태조,세조,희종등 최소한 3개의 릉은 있어야 하는데 흔적이없다. 어찌된일인가?
秋八月戊子 前王薨于法天精舍多殯于樂眞宮冬十月丁酉葬碩陵諡曰 誠孝廟號貞宗後改熙宗 築江華外城 -高麗史節要)
고종 24 년(1234) 가을 8 월 戊子 전왕이 돌아가셨다.낙진궁(樂眞宮)의 법천정사(法天精舍)에 빈소를 마련하고, 겨울 10 월에 석릉(碩陵)에 장사 지냈다. 시호는 성효(誠孝), 묘호는 정종(貞宗), 후에 고쳐 희종(熙宗)이라 하고, 능을 강화 외성에 쌓았다
八月移葬世祖太祖于江華蓋骨洞 高麗史節要
高宗 30 년 8 월 太祖,世祖의 능을 江華 개골동(蓋骨洞)으로 이장했다위의 기록은 세조, 태조의 능을 강화 개골동으로 이장하고, 21 대 정종[후에 개칭, 희종]의 묘는 江華 外城에 쌓았다는 기록이다.
운영자 심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