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의 일상복이 조선조와 차이가 없었음을 보여준다.
북송의 수도 開封에는 현재에도 고려약포라는 2층 목조건물과 高麗街라는 지명이 존재한다(본 카페의 대문사진에도 있다) . 현재에는 슬금슬금 그 역사가 중국당국에 의해 의도적으로 축소되어 인터넷상에는 사진이 남아있지 않게 되어버렸다.이제와서 宋代 그림에서 900여년전 그림에서 갓쓰고 도포입은 고려인의 차림을 한 인물을 발견되었다고 호들갑 떨일이 아니다 고려에서는 시대적으로 송나라,거란 이후에 원나라는 수시로 드나드는 지역에 존재했다고 운영자는 이 카페에서 여러 사서적 근거를 들어 누누히 주장했고 그 중심지역이 하북이라고 단언했다.조선의 갓쓰고 도포입은 사대부와 선비,일상복의 문화적 근원은 갑자기 튀어나온게 아니다. 고려시대 사극에 갓쓰고 도포입은 사대부나 일반인의 등장 장면이 없었으니 자국의 역사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 무지의 소치 아닌가 싶다.
중국 북송(北宋)시대 그림 ‘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1120년)’. 북경고궁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이 그림의 끝자락에 고려복식을 한 갓쓴 고려인의 행렬이 등장한다.
중국 명청대 황실 고가구를 전문 소장하고 있는 자단(紫檀)박물관은 청명상하도를 조각한 목제 병풍에서 이 고려 상인들을 찾아냈다. 박물관 측은 중국 국가문물국(문화재청에 해당)이 편찬해 곧 발간할 예정인 『중국 박물관 소장 문물 스토리』에 이 사연을 넣었다. 고려 상인은 갓을 쓰고 한복의 두루마기 차림으로 묘사됐다. 북송 시대 고려와 빈번히 인적·물적 교류를 한 실상을 보여준다.
이 그림은 북송 말 한림학사(翰林學士) 장택단(張擇端)이 북송의 도성인 변경(卞京·현재의 하남성 개봉)의 청명절 풍경을 세밀하게 묘사한 풍속화로 중국인들이 ‘국보1호’로 여기는 고서화다. 중국에는 국보 제도가 없지만 대중과 학계 인사들은 이 그림을 주저 없이 국보 1호로 꼽는다. 가로 528.7㎝, 세로 24.8㎝짜리 두루마리 그림 속에는 변경에 드나드는 사람들의 일상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清明上河图全图的中心是由一座虹形大桥和桥头大街的街面组成。粗粗一看,人头攒动,杂乱无章;细细一瞧,这些人是不同行业的人,从事着各种活动。大桥西侧有一些摊贩和许多游客。货摊上摆有刀、剪、杂货。有卖茶水的,有看相算命的。许多游客凭着桥侧的栏杆,或指指点点,或在观看河中往来的船只。大桥中间的人行道上,是一条熙熙攘攘的人流;有坐轿的,有骑马的,有挑担的,有赶毛驴运货的,有推独轮车的……大桥南面和大街相连。街道两边是茶楼,酒馆,当铺,作坊。街道两旁的空地上还有不少张着大伞的小商贩。街道向东西两边延伸,一直延伸到城外较宁静的郊区,可是街上还是行人不断:有挑担赶路的,有驾牛车送货的,有赶着毛驴拉货车的,有驻足观赏汴河景色的。
汴河上来往船只很多,可谓千帆竞发,百舸争流。有的停泊在码头附近,有的正在河中行驶。有的大船由于负载过重,船主雇了很多纤夫在拉船行进。有只载货的大船已驶进大桥下面,很快就要穿过桥洞了。这时,这只大船上的船夫显得十分忙乱。有的站在船篷顶上,落下风帆;有的在船舷上使劲撑篙;有的用长篙顶住桥洞的洞顶,使船顺水势安全通过。这一紧张场面,引起了桥上游客和邻近船夫的关注,他们站在一旁呐喊助威。清明上河图将汴河上繁忙、紧张的运输场面,描绘得栩栩如生,更增添了画作的生活气息。
张择端具有高度的艺术概括力,使清明上河图达到了很高的艺术水准。清明上河图丰富的内容,众多的人物,规模的宏大,都是空前的。清明上河图的画面疏密相间,有条不紊,从宁静的郊区一直画到热闹的城内街市,处处引人入胜。
清明上河图全图上共有各色人物1643人,动物208头(只),比古典小说三国演义(1191人)、红楼梦(975人)、水浒传(787人)中任何一部描绘的人物都要多。
清明上河图全图可分为三个段落,展开图,首先看到的是汴京郊外的景物。中段主要描绘的是上土桥及大汴河两岸的繁忙景象。后段则描绘了汴京市区的街景。人物大不足3厘米,小者如豆粒,仔细品察,个个形神毕备,毫纤俱现,极富情趣。
据李东阳的题跋考据,清明上河图前面应还有一段绘远郊山水,并有宋徽宗瘦金体字签题和他收藏用的双龙小印印记,而今这些在画上都已不见。原因有两种,一种可能是因为此图流传年代太久,经无数人之手把玩欣赏,开头部分便坏掉了,于是后人装裱时便将其裁掉;一种可能是因宋徽宗题记及双龙小印值钱,后人将其故意裁去,作另一幅画卖掉了。
그림 감상하는곳 http://blog.lanyue.com/view/710/1541781.htm
http://www.npm.gov.tw/exh96/orientation/flash_4/
감신총의 갓쓴 기마인물도.
그러나 실제 북한에서 발굴된 4세기무렵 축조된 감신총에서는 갓(笠)을 쓰고 말을타는 인물상이 그려져있어 갓의 역사는 고구려를 훨씬 넘어서는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문화에는 돌연변이란 없기 때문이다.
갓전문 박물관 http://www.gatkorea.org/gat/hisatory.php
운영자 심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