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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三國有名未詳地分은 조선이 조작 추정.

작성자心濟| 작성시간15.02.07| 조회수276|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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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史穿(청송) 작성시간15.02.08 삼국유명미상지분(三國有名未詳地分)에
    고구리의 핵심지역(모든 도성 포함)과 백제의 핵심지역(모든 도성 포함) 지명 및 신라 핵심지명들 모조리 포함된 것이죠...
    "어찌 이들 미상지명들을 김부식이 몰랐단 말인가?" 하는 의문을 가지지 않은 이들은 우리 역사를 운운한 자질이 없는 것이라!!
    간절히 바라는 바...진짜 13세기 판본이 다행히 살아 남았다면
    이제는 세상에 진면목을 드러내게 해야 할 것입니다...
  • 작성자 한 눌 작성시간15.02.09 삼국사기가 비난 받는 근원적 이유를 보자.
    李德懋는 청장관전서 앙엽기(盎葉記)에 “하윤(河崙)ㆍ이첨(李詹)ㆍ권근(權近) 등이 삼국사기에 수정을 가하여 속된 것과 번잡스러운 것을 삭제했다.”고 폭로했다. 이후,
    徐居正은 필원잡기(筆苑雜記)에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중략) 이미 전신(傳信)할 만한 책이 아니며, 기사에 있어서도 번번히 나온 출전(出典)을 기록해 놓았으니 더욱 역사를 짓는 체재가 아니다. (중략) 동일한 사건을 삼국에 각각 중복해서 기록하였고, 문장 또한 조금도 변화가 없어 족히 취할 것이 못된다.”라 강변했다.
  • 작성자 한 눌 작성시간15.02.09 조선 이전 역사는 타국의 역사였음이다. 동족 계념에서 크게 벗어나 있음을 볼 수 있다. 역성의 당위성이다. 대륙을 지우기 위해 혈안이 되었고, 여기에 대 집단의 사대부들이 부화뇌동했다. 역사서는 불태워도 역사는 태울 수 없음이다. 아, 김부식 그를 위한 변명의 조의제문이라도 써야 하지 않을까.
  • 작성자 史穿(청송) 작성시간15.02.09 자신들의 안녕을 위해 오직 明에 사대하고 尊周하였을 뿐
    이전의 우리 역사의 계통을 계승한다는 인식이 없었으니...즉, 완전히 새로이 작출한 初有의 新生國家이었으니...
    지금의 우리가 이 李朝의 自請屬國 역사를 계승한다면, 李朝 이전의 역사는 오롯이 우리 것이 아니게 되어 심히 괴롭다.
    이 질곡에서 어찌 벗어날 수 있고...또한 오롯이 우리 옛 역사 계통을 온전히 계승할 방안이 무엇이겠는가?
  • 답댓글 작성자 history author 작성시간15.04.13 쩝 완전히 잘못 이해하고 계시군요 소서행장의 부장이 임란이후 쓴 책을 보니 선조임금의 복장이 황제의 복장과 관(통천관)을 쓰고 있었습니다. 왕건의 관과 동일한 것이지요. 세조의 어진중에 통천관을 쓴것도 본적이 있습니다. 먼가 이상하지 않나요? 그 장수의 글을 보니 조선수도를 가리켜 황성이라 하고 조선임금을 천자라고 했습니다....조선의 궁궐이 전해내려오는 이야기로는 황제의 궁으로 9개의 문이 있었다고 합니다. 선조이전 조선과 명은 형제지국으로 보입니다..신하국이 아니란 거죠. 거란과 고려는 형제지국인데 송나라는 고려를 깍아내리려고 신하국이다라고 했죠.. 태조와 태종이 명을 침공하려고 준비한 기록도 있고..
  • 답댓글 작성자 history author 작성시간15.04.13 선조때 임진왜란에서 명나라가 군량과 병력을 빌려준건 사실이죠.그래서 임란이후에는 선조가 명에게 굴종하는 자세를 취합니다. 그당시까지 대부분의 남자들은 귀고리를 하였는데 (쥬신족의 특징이죠)선조이후 금지했죠..
    선조와 인조가 조선역사를 말아먹었지만 선조이전 임금들은 적어도 황제국을 계승하고 만리의 땅에 40만이 넘는 병력을 유지한 강력한 국가였습니다. 스스로 제역사를 깍아먹는 일은 옳지 못합니다.
  • 작성자 心濟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5.02.09 전공분야에 많은 의견을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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