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 리스트
-
작성자 한 눌 작성시간15.02.09 삼국사기가 비난 받는 근원적 이유를 보자.
李德懋는 청장관전서 앙엽기(盎葉記)에 “하윤(河崙)ㆍ이첨(李詹)ㆍ권근(權近) 등이 삼국사기에 수정을 가하여 속된 것과 번잡스러운 것을 삭제했다.”고 폭로했다. 이후,
徐居正은 필원잡기(筆苑雜記)에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중략) 이미 전신(傳信)할 만한 책이 아니며, 기사에 있어서도 번번히 나온 출전(出典)을 기록해 놓았으니 더욱 역사를 짓는 체재가 아니다. (중략) 동일한 사건을 삼국에 각각 중복해서 기록하였고, 문장 또한 조금도 변화가 없어 족히 취할 것이 못된다.”라 강변했다. -
답댓글 작성자 history author 작성시간15.04.13 쩝 완전히 잘못 이해하고 계시군요 소서행장의 부장이 임란이후 쓴 책을 보니 선조임금의 복장이 황제의 복장과 관(통천관)을 쓰고 있었습니다. 왕건의 관과 동일한 것이지요. 세조의 어진중에 통천관을 쓴것도 본적이 있습니다. 먼가 이상하지 않나요? 그 장수의 글을 보니 조선수도를 가리켜 황성이라 하고 조선임금을 천자라고 했습니다....조선의 궁궐이 전해내려오는 이야기로는 황제의 궁으로 9개의 문이 있었다고 합니다. 선조이전 조선과 명은 형제지국으로 보입니다..신하국이 아니란 거죠. 거란과 고려는 형제지국인데 송나라는 고려를 깍아내리려고 신하국이다라고 했죠.. 태조와 태종이 명을 침공하려고 준비한 기록도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