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시대의 영웅은 태조왕건인가 한왕 왕건립인가?
본인이 2017년 내놓은 책의 내용중에서 고려 태조 왕건의 출신에 대해 언급한것이 있다.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최초일 것이다.
고려 인종때 몇일간 고려에 왔다가 남송으로 돌아가 고려에 대해 아주 자세한 내용을 써버린 서긍의 <고려도경>에는 태조가 고구려 대족이었다고 했다.
신오대사, 구오대사, 송사, 책부원구, 고려사,고려사절요,해동역사를 샅샅이 뒤졌다. 10세기초 같은 시대에 중국에서만 왕건이1명,왕건급이 1명,왕건립이1명 등장한다.
성도에 전촉을 세운 왕건은 918년에 죽고 40명이 넘는 자식들과 비빈들은 926년 후당에서 처형당한다. 한국에서 어느 재야사가가 이사람을 태조왕건이라고 하는 바람에 온 중국 대륙 천지가 고려가 되어버렸다.
이중 왕건과 생애가 비슷하게 전개 되었던 사람은 한왕 왕건립이다. 후당의 명종과 후진의 석경당도 이사람에게 산서성의 땅을 떼어 주어야했다. 작위를 받자 궁중에 모여든 대신들이 전국만세를 외치며 축배를 들 정도였다. 5대시기 중국대륙이 아사리판에서도 이인물 만큼은 2십년동안을 산서,하북,산동지역 절도사와 마지막엔 한왕을 끝으로 유유자적하게 정치생활을 끝내고 불교에 귀의한다.
모든 기록에 대한 추이는 고려태조 왕건이어야 하는데 973년 오대사기록과 1013년 책부원구가 내용이 다르다. 누가 맞는가?
974년에 저작된 『오대사』에서 후진 938년 기록은 ‘평로군절도사검교태위겸중서령임치왕왕건립진봉동평왕.平盧軍節度使檢校太尉兼中書令臨淄王王建立進封東平王.’으로 되어있고
북송시대 중반인 1013년에 저술된 『책부원귀』에는 ‘시월봉평로절도사왕건위임치왕이년봉동평왕오년입근진봉한왕.是月封平盧節度王建爲臨淄王二年封東平王,五年入觐進封韓王.’ 으로 되어있다.
이기록을 믿지 못해서 다른기록을 훓어봤더니 천주절도사와 권지강주사 왕봉규가 등장한다. 신라말 중국 복건성 신라천주절도사와 절강성 영파의 책임자로 있다가 경순왕과 동등하게 후당에 사절을 보낼 정도의 국왕급 인물이다.
고려사를 다시 보니 후당과 송나라에서 태조왕건과 성종에게 보낸 책봉교서에 '장회무족' 즉 양자강에서 해운업으로 번성한 호족세력이라는 뜻과 '백제인들을 잘다스리라'고 부탁한 내용이 튀어나온다.
조선이 고려를 망가뜨리고 태조때 부터 성종때까지 100년 넘게 고려시대에 가지고있던 비기,사서를 모두 회수하고 숨긴사람은 찾아서 처형했다. 조선 태조 원년에만 고려왕족을 도륙했다.
문제는 책부원구의 내용을 받아들일 경우 태조왕건이 산서성,하북성,산동성과 동북지역,한반도를 관리하였던 인물이 된다.
무엇이 한국사의 진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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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史穿 작성시간 19.12.13 [是月,平盧軍節度王建爲臨淄王.二年,封東平王.五年,入覲,進封韓王. 이달에 왕건을 봉하여 평로절도로 삼았다. 2년에 동평왕으로 봉하였고, 5년에 입조하여 알현하매, 한왕으로 승차하여 봉하였다.]
혹시 [平盧軍節度檢校太尉兼中書令臨淄王王建立,進封東平王. 평로절도 검교태위 겸 중서령이자 임치왕인 왕건이 (이미) 보위에 올랐음에, 동평왕으로 승차해 봉하였다.]로 해독하면...?
구오대사를 편찬한 이가 이미 高麗의 寶位에 올라있던 王建을 王建立으로 오사하지는 않았을까?...... -
답댓글 작성자文古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9.12.15 북송시대 중반 1013년에 저술된 『책부원귀』에는 ‘평로절도사 왕건위임치왕 이년봉동평왕 오년 입근진봉한왕平盧節度王建爲臨淄王二年封東平王,五年入觐進封韓王.’ 으로 되어있다.
자치통감도 같은 내용이 있어서 1세기사이에 왕건립에서 왕건으로 바뀐 내력을 볼수잇지요.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